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87
* * *
천외천이라는 말이 있다.
쩌저저저-.
콰아앙-!
지금 무림대전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었다.
“뭐, 뭐 이런 게 다 있어?”
“둘 다 진짜 플레이어 맞아?”
“랭커 아니고?”
“무, 물러나! 휘말린…….”
“어, 어어?”
“아아아악!”
파지지지직-, 콰앙-!
하르간의 주먹에서 뿜어진 전격에 경기장에 흩어져 있던 플레이어들이 휘말렸다.
전격의 범위는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넓었다. 분명 거리가 꽤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전격의 범위에 휘말렸다.
“기권!”
“나도! 젠장, 여기 더 못 있겠다!”
“나도 기권!”
“저런 것들이랑 싸워서 어떻게 이기라고?”
무대는 더 이상 다른 플레이어들이 서 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유원과 하르간의 싸움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고, 몇몇 플레이어가 전투에 휘말리는 걸 본 사람들은 기권을 선언했다.
‘진짜 결승전이군.’
남궁훈 역시 그 사이에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르간……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자신은 내력을 끌어올려 사방에 흩어진 전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르간.
그는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의 아들로서 자신과 늘 비교되어 오던 천재였다.
몇 번 이름을 들어 보았고,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경쟁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직접 본 하르간의 실력은 듣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저 정도면, 나 정도 수준이 몇 명이 있어도 이길 수 없다.’
유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준우승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자만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남궁훈의 시선이 하르간에게서 그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내고 있는 유원에게로 옮겨졌다.
‘정말 저 실력으로 랭커를 잡은 건가?’
* * *
쩌엉-!
하르간의 주먹을 받아 낸 유원의 몸이 뒤로 죽 밀려 나갔다. 전격을 상쇄시키지 못한 검이 힘들다며 비명을 지르고, 피부에는 조금씩 그을음이 생겨났다.
쾅-!
하르간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파슷-.
노란 전격으로 변해 움직인 하르간은 순식간에 유원의 옆으로 나타났다.
대체 민첩 스탯이 몇이나 되는 건지.
하르간의 움직임은 아직 랭커도 되지 못한 플레이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부우웅-.
쩌어엉-!
다시 한 번 경기장 중앙에서 굉음이 터져 나온다.
하르간의 눈매가 좁아졌다. 유원은 밀려나지 않았다.
“힘 좋네.”
“과찬의 말씀을.”
“그런데 그 검, 이제 곧 부러질 것 같은데?”
유원의 검은 한 눈에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이미 검신 전체에 금이 생겨나 툭 건드리면 유리처럼 깨어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
파지직-.
“그동안 뭘 한 거냐?”
콰지지지지-!
노란 전격이 몸을 뒤덮는다.
동시에 유원의 칼끝이 움직였다.
푸욱-.
번쩍-!
두 사람의 중앙에서 터져 나온 빛.
콰릉-!
그 직후, 번개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하르간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뜨끈함에 뒷걸음질을 쳤다.
주륵-.
툭, 투둑-.
어깨에서 흐른 피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제법 깊게 찔린 상처였다.
“흠…….”
한 손으로 상처 부위를 짚자, 손바닥에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고개를 든 하르간은 온몸에 노란 전격이 흐르는 유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충돌로 손해를 본 건 자신이 아니었다.
파직, 파지지-.
몸에 흐르는 전류.
저 정도 전류를 맨몸으로 얻어맞고 살아 있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살아 있냐?”
유원이 고개를 들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차분히 대답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하르간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자신도 상처를 입긴 했지만 어쨌든 손해를 본 건 유원이었다.
‘육체적인 능력은 저 녀석이 한 수 위다.’
하르간 역시 육체 능력은 상당했다.
힘과 민첩, 체력과 같은 스탯이 높아 마나를 사용하지 않은 격투에서도 꽤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부분만 놓고 보면 유원은 하르간보다 더 뛰어났다.
‘반대로 마력은 내가 몇 수 위.’
하르간은 그 점을 십분 활용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은 검.
‘일단 무기를 부순다.’
목표는 정해지자, 움직임은 더 명확해졌다.
하르간은 빠르게 다시 거리를 좁혔다.
주먹이 뻗는 방향은 급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검을 두드렸다.
쾅, 쾅쾅-.
쩌어엉-!
마치 권투라도 하듯, 연속적으로 주먹을 뻗어 온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검에 난 금이 빠르게 늘어났다.
‘이제 곧…….’
꽈악-.
주먹에 들어간 힘이 점점 강해졌다.
‘지금이다.’
눈을 번뜩이며, 하르간은 오른손을 뻗었다.
눈부신 빛과 함께 뻗어간 주먹에서 전격이 폭발했다.
번쩍-.
콰르릉-!
소리가 너무 크고 빛이 강렬한 탓에 멀리 있는 관중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싸우고 있는 당사자인 하르간은 지금처럼 짜릿할 수가 없었다.
차앙-!
검이 깨어졌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검은 유리조각처럼 흩어져 무수히 많은 파편이 됐다.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됐…….”
“훌륭했다.”
차분한 목소리.
승리의 달콤함도 잠시, 하르간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분명 승기를 잡은 쪽은 자신일 텐데.
‘훌륭하다고?’
하르간은 깨어진 검의 손잡이를 미련 없이 바닥에 떨어뜨리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우우우웅-.
유원의 마나가, 하르간의 전격을 밀어낸다.
“뭐 이런…….”
거인족의 모습이 이럴까?
갑작스레 눈앞에 있는 유원의 모습이 크게 느껴졌다.
“기억하냐?”
유원의 주먹이 쥐어진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식한 위력을 담고서.
“예전에 나한테 한 방에 얻어맞고 날아갔던 거.”
슈아아악-.
주먹이 가까이 날아온다고 느끼는 순간.
쩌억-!
안면에 충격이 느껴지고, 그대로 의식이 멀어져 갔다.
‘이런…… 미친…….’
투확–.
퍼엉-!
하르간의 몸이 위로 떠오르며, 경기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퉁, 투둥-, 투두둥-.
털썩-.
경기장을 뒹굴며 날아간 하르간의 몸이 바닥에 뒤집어엎어졌다. 간헐적으로 몸이 떨리고, 힘겹게 어깨를 들썩이는 걸로 그가 살아 있음이 확인될 뿐이었다.
“어?”
“뭐야?”
“뭐가 어떻게…….”
경기장 위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들.
“경기 아직 안 끝났다.”
그들을 향해, 유원이 손을 흔들었다.
“시간 없으니 얼른 시작하자고.”
* * *
턱-.
유원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칼자루를 집어 들었다.
[부러진 이름 없는 칼]# 구분 : 무기
# 여러 재질을 섞어 만든 칼이다. 마나 전도율은 최악이지만 날은 잘 벼려져 있다. 도축용으로 쓰면 될 듯하다.
# 현재 부러져 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의뢰해 만든 검. 이름도 없고, 효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검이다.
쓸모라고는 딱 하나.
‘마력 전도율은 진짜 최악이군.’
이걸 제대로 써본 건 처음이었다. 이름 없는 칼은 전투에서 쓸 만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애초에 부러질 때까지만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검이었다. 마력 컨트롤을 연습하기에는 이만한 아이템이 없었다.
그리고…….
‘대충 눈속임 정도는 됐으려나.’
마력을 억제시키는 효과 덕분에 관중석에서는 유원과 하르간의 실력이 엇비슷해 보였을 것이다.
이 관중들 안에는 꽤 많은 올림포스 측의 플레이어와 랭커들이 섞여 있었다.
또한, 아마도 훗날 유원과 싸우게 될 랭커도 있을 것이다.
무림대전은 수많은 눈이 보게 되는 자리.
랭커들의 눈을 속이려면 단순한 연기만으로는 힘들었다.
‘마지막 한 방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검이 부러진 이상, 싸움을 오래 끌 수 없다고 판단해 날린 일격.
‘그래도 이 정도면 눈속임 정도는 됐겠지.’
유원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경기장 위 스크린.
그 위로, 경기장의 중앙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비춰져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나오는 글씨.
[우승자]이윽고 유원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로 옮겨졌다.
[김유원]마나를 거의 쓰지 않고 싸운 탓에 유원의 몸에는 적잖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숫자가 꽤 있었다.
남궁훈은 유원과 싸우기보다는 기권을 선택했다.
이미 승부는 예전에 봤다고 말했는데, 유원은 남궁훈의 성격상 제갈진천과 무림의 플레이어들의 행동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제 834회 무림대전의 우승자는 플레이어 김유원입니다!
무림대전의 사회자는 10층의 심부름꾼이었다.
녀석은 허공 어디에선가 춤을 추며 나타났다. 무림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턱시도까지 갖춰 입은 나무 인형이었는데, 심부름꾼의 머리 위에는 작은 목함이 올라가 있었다.
심부름꾼은 유원에게 둥실 날아와 물었다.
-우승 소감은 어떠신지요?
“재밌었다.”
-끝인가요?
“그래.”
짧고 간결한 대답.
몇 번이고 무림대전의 사회를 본 적이 있었던 심부름꾼이었지만, 소감이 이러니 진행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 네. 잘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상품 증정을 시작할까요?
기다리고 있던 시간.
유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어서 줄 거나 주고 가라는 듯한 손짓이었다.
달칵-.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목함이 열렸다. 거리가 꽤 있었는데 화사한 쓴 내음이 코를 찔러 왔다.
맡아본 적 있는 냄새였다.
‘대환단.’
목함 안쪽으로 붉은색의 작은 단약이 들어 있었다.
무림을 대표하는 물건으로 하나를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돈과 시간이 가히 천문학적이라 알려진 영약.
또한, 모든 플레이어와 랭커들이 바라 마지않는 천고의 보물이었다.
-네, 상품은 여러분 모두가 알다시피 대환단입니다. 제작사인 소림에서 말하길, 이번 대환단은 특별히 더 잘 만들어졌다고…….
“감사히 쓰겠습니다.”
달칵-.
유원은 목함을 닫아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유원은 몸을 돌렸다. 수다쟁이 심부름꾼 사회자의 말을 더 들어 줄 생각은 없었다.
‘소화시키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
대환단의 크기가 기억하던 것보다 조금 더 컸다. 게다가 대환단 속에 들어 있는 마력을 다 섭취하려면 족히 며칠은 걸릴 것이다.
‘저쪽은…….’
유원의 시선이 관중석 한쪽으로 향했다.
‘맡겨 둬도 되겠지.’
천무진은 무림과 담판을 지으러 갔다.
남궁진운이 먼저 천마신교에 손을 뻗었고, 천마신교는 그 손을 잡았다. 무림에서 가장 랭킹이 높은 두 사람이니 걱정할 필요 없을 것이다.
당장 천무진 한 명만 하더라도 저 자리에 있는 무림의 랭커들을 혼자 쓸어버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천마신교가 합류하게 되면, 무림의 힘은 족히 두 배는 강해진다.’
하나의 세계를 아우르며, 하이랭커까지 보유한 길드.
천마신교가 합류한 무림은 이제 더 이상 중견 길드라 부를 수 없었다.
이제는 거대 길드의 끝에 한 발 걸친 규모를 지니게 될 터.
‘나쁘지 않아.’
유원은 단지 작은 돌은 던진 것뿐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10층의 세계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무림과 천마신교는 아우터와의 전쟁에서 선봉이 되어 싸웠던 길드.
그런 길드가 커지는 건, 좋으면 좋았지 결코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저벅, 저벅-.
유원은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20층이었다.
본격적으로 시험이 어려워지며, 무림에 이어 탑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지닌 세계.
그 세계에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았다.
‘일단은…….’
유원의 시선이 손안에 들어온 목함으로 옮겨졌다.
‘목표 스탯부터 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