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68
한제는 천둥번개와 화염, 고신의 힘, 규칙의 반점이 만들어낸 전의까지 녹아든 검을 크게 휘둘렀다.
꽝!
짧지만 강렬한 소리와 함께 형용할 수 없는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갔다. 가까이 있던 성지는 단숨에 가루가 되어 버렸고 열여섯 개의 수련성 역시 한참이나 밀려나면서 궤도까지 바뀌었다.
이것은 하늘을 가른 검기였다.
눈부신 붉은 빛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빛이 되어 사방을 휩쓸었고 이에 한제에게 달려들던 팔은 우뚝 멈춰 섰다. 이어 손가락 끝이 바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손목을 타고 한 줄기 붉은 선이 나타났다.
츄악!
“끄아아아!”
순식간에 손바닥이 팔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사방으로 피를 뿌렸고 참혹한 비명이 회오리 안에서 울려 퍼졌다. 팔은 곧장 되돌아갔지만 붉은 검의 기세는 사라지지 않고 매섭게 회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검기에 휩쓸린 회오리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회오리는 움푹 파였지만 정작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듯 회전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어서 손이 잘려나간 팔이 회오리 안으로 모습을 감췄고 회오리 또한 서서히 사라져갔다.
회오리가 완전히 사라지려는 순간, 한제는 한 걸음 나서며 다시 한번 붉은 검을 휘둘렀다. 허나 여전히 회오리에는 아무런 손상도 입히지 못했다.
그때, 회오리 안에서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어떻게 그 검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목소리는 이내 회오리와 함께 흩어져 사라졌고 한제의 공격은 허무하게 회오리가 사라진 허공만을 갈랐다.
“난 너희들이 누군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상관하지도 않는다. 허나 언젠가 하늘을 부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내 아내의 혼을 거둔 네놈들을 벌할 것이다!”
한제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외쳤다. 태고 성신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진정한 분노와 광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편, 불멸의 번개는 회오리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로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한제는 몸을 홱 돌려 불멸의 번개를 노려보았다. 번개는 칠백만 천지로 이루어진 참천검에 당해 허약해진 데다가 방금 한제의 분노를 피하지 못해 한층 약해져 있었지만 그 상태로도 도망치려 했다.
“어딜 도망치려 하느냐!”
한제는 단숨에 번개를 움켜쥐려 했다.
불멸의 번개는 도망치는 대신 한제를 공격하려는 듯 달려들었지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번개를 꽉 움켜쥐었다.
번개는 마구 몸부림을 쳤지만 한제는 아랑곳없이 한입에 삼켜버렸다.
“이 번개와 태고 뇌룡의 혼백들을 제련하고 대장로의 원신에 담긴 천둥번개까지 거두면 내 천둥번개의 본원은 완성될 터. 수준도 높아지겠지.”
한제에게 손이 잘린 천도의 사자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당시 한제가 주작성에서 마주했던 천도의 사자보다는 훨씬 강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제의 천둥번개와 불의 본원, 그리고 붉은 검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한제는 천도의 사자가 다시 나타남으로써 분노했고 모완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갔으나 애써 억눌렀다.
그는 소매를 크게 휘둘러 천도의 사자의 손바닥을 앞으로 끌어왔다. 팔에서 잘려 나온 손바닥은 이미 살덩이가 아닌 결정체가 된 상태로 손바닥 모양의 결정석처럼 반짝였다.
한데 손바닥에는 지문이 없었다. 수준이 아무리 높은 수련자라 해도 마음대로 지문을 없앨 수는 없는 법이었다.
“천도의 사자는 지문이 없는 것인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손바닥을 저물공간에 넣고는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섬뇌족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한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한제는 이제 섬뇌족에 관해 산령상인에게 맡기기로 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더 이상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한데 그가 막 떠나려는 순간, 저 멀리 여러 수련자 틈에서 한 사람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튀어나왔다. 그는 반짝이는 방추형의 무언가를 타고 있었다.
“주, 주인님! 저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종대홍이었다. 종대홍의의 말은 섬뇌족을 배반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에 다른 섬뇌족의 눈빛이 급변했으나,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삶이란 선택의 연속! 나 종대홍의 운명 역시 지금의 결정에 달렸다. 여기에 남아 봐야 어차피 나는 죽은 목숨이다.’
한제는 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냉랭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한 종대홍은 심신이 바들바들 떨리는 와중에도 다급하게 말했다.
“주인님, 조, 종대홍입니다! 한 번 주인님은 영원한 주인님이지요. 부디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평생 주인님을 모시겠습니다. 절대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가고 싶다?”
한제는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종대홍은 뒤통수에 꽂히는 부족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황급히 한제에게 다가갔다.
“주인님을 따르게 허락만 해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살인이든, 방화든, 도적질이든 상관치 않을 겁니다! 뭐든지 해낼 자신 있습니다. 허이국보다도 더요! 주인님, 그러니 제발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종대홍을 한 번 훑어보더니 다시 몸을 돌리며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 거친 바람이 불어와 종대홍을 감싸더니 저물공간으로 들여보냈다.
이어서 한제는 산령상인과 천쇠에 이른 섬뇌족 수련자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향했고 두 눈으로 붉은 빛을 번득여 극의 경계를 쏘아 보냈다.
붉은 번개는 엄청난 속도로 주위를 한 번 훑더니 첫 번째 천쇠에 이른 어느 수련자의 체내로 들어가 눈 깜짝할 사이 원신을 무너뜨렸다. 그러더니 등을 통해 빠져나와 곧장 두 번째 천쇠에 이른 다른 수련자의 등을 뚫고 들어가 머리를 터뜨리고 빠져나왔다.
“산령상인, 잘 계시게! 난 이만 물러나겠네!”
짧게 인사한 한제는 극의 경계를 거두고 성큼 발을 내딛더니 사라졌다.
순식간에 두 수련자를 죽이는 모습에 모든 섬뇌족 사람들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산령상인은 낭랑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잘 가시게.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 믿네!”
“다시 만나게 되면 크게 놀랄 텐데? 하하하!”
한제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크게 놀랄 거라고?”
산령상인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깊게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신통력을 발휘해 남은 섬뇌족을 향한 복수를 이어나갔다.
★ ★ ★
태고 성신의 우주를 가르며 나아가던 한제는 온몸의 기운을 거두었다. 그러자 그는 점점 약해지다가 거의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게 됐다. 체내의 다섯 갈래 본원 역시 서로 뒤얽히면서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라면 나를 찾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터. 허나 내게는 본원이 있다. 본원으로 내 기운을 숨기고 사람들 틈에 섞여든다면 나를 찾기란 힘들 거야. 우선 최대한 빨리 천둥번개를 제련해야 해!”
이어서 그는 몇 차례 축지성촌을 행한 끝에 어느 수련성에 나타났다.
그곳은 태고 성신의 어느 작은 부족이 거주하는 곳으로 일반인들로 북적댔다. 그중에서도 수도는 특히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생기가 넘쳤다.
그 무렵, 한제의 머리는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하나로 묶인 상태였다. 백의를 입고 손에는 부채 하나를 든 그는 영락없는 서생 같았다.
한참을 걷던 한제는 어느 술집 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진언족(眞言族) 수련자 예환은 성격이 괴상하기로 유명하지. 일반인 세상에 섞여들어 사는 것을 즐기는데 아내인 초월현을 만난 과정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네. 오늘은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이야기해주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니까 다들 잘 들으라고!”
한제는 피식 웃었다. 이곳의 일반인 도시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대담하게도 수련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대놓고 하다니. 대부분은 날조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겠지만 저런 모습만 보더라도 일반인들이 수련자를 친숙하게 여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도시에 들어선 순간, 한제는 신식을 펼칠 필요도 없이 이곳에 적지 않은 수련자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저 술집 안에서도 한 쌍의 남녀 수련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심지어 황성이 있는 동쪽에서는 무려 백여 명에 달하는 수련자의 존재가 감지됐다.
‘차라리 잘됐군. 덕분에 이곳의 생기는 더욱 혼란하니 본원을 이용해 기운만 숨긴다면 당분간은 아무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거야. 천둥번개를 완전히 제련해 원신에 녹여 넣는다면 어느 정도로 강해질까?’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술집을 슥 훑어보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수도는 매우 넓고 사람도 많았는데 대부분은 서쪽 지역에 거주했다.
한제는 이런저런 것들을 보고 들으면서 이곳은 주작성과 달리 은이나 금이 아닌 반정(磻晶)이라는 것을 화폐로 사용함을 알게 됐다.
반정은 크기에 따라 액수가 결정됐다. 수련자들에게는 쓸모없으나, 반짝거리고 희귀하다는 특성 때문에 화폐로 사용됐다. 물론 한제의 수준으로는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수도에 들어선 한제는 원신 한 갈래를 땅속으로 녹여내 재빨리 한 바퀴를 돌게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정의 광맥을 찾아냈다.
이어서 원신을 거두어들임과 동시에 반정을 일부 제련했고 곧 그의 저물공간에는 반정이 수북이 쌓였다.
서쪽으로 나아갈수록 빽빽하게 자리한 집들은 매우 낡았고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길들도 거칠고 조잡했으며, 행인들의 행색은 남루했다.
특이하게도 거의 모든 집의 처마 밑에는 꿰어놓은 나뭇잎들이 걸려 있었다. 이곳의 풍습인 듯했다.
한제는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은 채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지역에서 집을 하나 구했다.
어느 길의 중간쯤에 있는 이 집 대문 밖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그 나무 밑에서는 국수와 술을 파는 노점이 있었다.
깨끗한 식당에 갈 형편이 안 되는 빈민들이 끼니를 때우고 술을 마시는 곳이리라.
태고성신령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라 곳곳이 왁자지껄했다.
이웃들은 한곳에 모여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고 적지 않은 아이들이 어우러져 길바닥의 돌이나 흙을 가지고 놀았다.
한제는 자신의 집 문 앞에 앉아 따스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그가 집을 사서 들어오자마자 많은 이웃이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한제는 이 순박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온화하게 맞아주었다. 이웃들에게 그는 시험을 준비하는 서생이었고 누구도 그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곳곳에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사내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 곧 주위는 조용해졌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로 나무 밑에서 노점을 운영하던 구부정한 노인과 두 일꾼이 장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노인은 곰방대의 연기를 빨아들이며 저쪽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한제를 힐끗거리더니 술병을 들고 다가갔다.
“밤공기가 차군. 선물일세. 몸을 데우는 데 도움이 될 게야. 술값은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부자가 되면 갚게나.”
껄껄대며 술병을 건넨 노인은 다시 몸을 돌려 두 일꾼과 함께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