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48
“좋아. 그럼 그 녀석은 내게 넘기게!”
합의를 마친 두 사람은 모든 안개를 다 빨아들인 뒤 조용히 우주에 떠 있는 균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데 두 사람이 막 균열에 이른 순간, 태고 성신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진동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강력한 힘이 사방에서 몰려들더니 거대한 허상의 손바닥이 나타났다.
우뚝 멈춰선 묘음도존은 말없이 온 우주를 다 덮을 것처럼 거대한 손바닥을 올려다보았다.
구천마존 역시 멈춰 서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거대한 손바닥 아래에서 나타난 검은 기운들이 한데 모여들더니 흐릿하고 검은 인영을 하나 형성했다. 검은 도포 차림이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인영이었다.
“곧 큰 전쟁이 일어날 게야. 그러니 자네 두 사람에게는 어떤 일도 있어서는 안 될 터.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
“…”
짧은 침묵이 흐른 후, 묘음도존이 불쑥 입을 열었다.
“저 안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아직 점을 쳐본 것은 아니네만…”
검은 도포의 사내가 거친 목소리로 답했다.
“허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귀하께서는 저희를 구할 방법이 있겠지요.”
묘음도존은 그 말만을 남기더니 균열 안으로 사라졌다.
구천마존은 미소를 지으며 검은 도포의 사람을 향해 포권을 했다.
“보아하니 절반 이상은 회복되셨군요. 정말 저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부탁드립니다.”
구천마존 역시 곧장 몸을 날려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된 무덤의 균열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마치 영원히 그 상태로 우주 속에 떠 있을 것처럼.
검은 도포 사내의 흐릿한 인영은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한참 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태고 5존의 두 사람, 공현기에 이른 대황상인, 여기에 주진과 두 명의 원고 선비까지… 우리 태고 성신 전력의 3할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저 안에 모여 있다는 게 아무래도 불안해.”
★ ★ ★
오래된 무덤 안. 두 개의 거대한 손은 첫 번째 9급 암석 조각이 나타난 순간 또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균열 하나를 연 상태였다.
한제가 균열 안으로 들어선 순간, 거대한 손들은 빛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허나 구천마존과 분홍 옷의 여인은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막아 선 거대한 손들의 위엄에 감히 다가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한제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대한 손이 사라졌다고 해서 이들의 위기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봉인이 풀린 고요가 피처럼 붉은 눈빛을 번득이면서 입술을 핥더니 하늘을 항해 포효를 내지른 것이다.
한편, 균열 안으로 들어선 한제의 머릿속에는 아홉 번째 지도가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도고 엽막의 목소리가 심신에서 울려 퍼졌다.
“9급 암석 조각을 만들어 내다니, 나의 유산을 받을 만하다. 윤회의 문으로 들어가 천부로 향하라! 허나 그곳은 적을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둔 공간. 충분한 수준과 행운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지. 난 평생을 통틀어 한 번 패했으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문 왼쪽에 자리한 자는 나의 퇴로를 막아놓았다. 이광은 내 반평생의 기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왼쪽 눈을 쏘았지. 후계자여, 만약… 만약 네가 고족이 된다면…”
목소리가 흐려지면서 끝은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고 한제는 시야가 이지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력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어느 거대한 궁전 안에 들어와 있었다.
매우 넓어 한눈에 끝이 다 담기지도 않는 궁전은 휘황찬란했고 짙은 위엄과 함께 음산함도 느껴졌다.
음산한 기운은 한제의 전방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시체로 이루어진 군대가 4열로 서 있었다. 각 열마다 천여 명의 수련자가 있었는데 꼿꼿하게 선 채 칠규에서 피를 흘리는 그들의 두 눈에서는 거친 살기가 번득였다.
그들은 복장도 어딘가 낯설고 기이했다. 마치 흐르는 물 같기도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한제는 이와 비슷한 옷을 섬뇌족에서 불멸의 번개를 거둘 때 머릿속에 떠오른 화면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들의 정수리에는 녹색 화염이 피어올라 궁전 안을 환하게 밝혔다.
한제는 대전 상공에 뜬 채 그들을 훑어보았다. 이들은 모두 등불이 되어 있었다. 화염은 이 시체들의 원신으로 타오르는 촛불인 셈이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음산한 느낌이 더욱 깊어졌다.
한데 막 앞으로 나아가던 한제는 높이 솟은 대(臺) 하나를 보게 됐다. 돌로 이루어진 석대(石臺) 꼭대기에는 고신이나 앉을 수 있을 법한 거대한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또한 의자 앞에는 거대한 균열이 하나 있었는데 매우 충격적인 기운을 풍겼다. 누군가가 검이나 화살로 의자에 앉아 있던 자를 노린 흔적 같았다.
허나 의자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타원형 빛 덩어리 하나만 부드러운 빛을 발하며 떠 있었을 뿐이다.
수련자 대열의 중간에는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솥이 하나 있었고 그 안에서는 타오르는 향이 연기를 피워 올렸다.
한제는 말없이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이내 그는 눈앞의 거대한 대를 넘어 궁전의 절반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석대 뒤로도 거대한 솥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솥 주변에도 네 줄로 선 수련자들이 꼼짝도 않고 서 있었는데 그들의 머리 위에서도 화염이 타올랐다.
대의 전후좌우에 각각 하나의 솥이 있고 그 주위로 수많은 수련자들이 열을 이루어 서 있는 모양새였다.
한제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심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한참 뒤에야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 드넓은 궁전 전역을 모두 눈에 담지 못한 그가 말없이 손을 휘두르자 광풍이 나타나 눈부신 빛으로 궁전의 절반을 뒤덮었다. 덕분에 한제는 좀 더 먼 곳까지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한제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곳에는 수련자 수만 명으로 이루어진 여덟 개의 시체 산이 팔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 산들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 너머의 광경은 한제의 심신을 격렬하게 진동시켰다.
시산(屍山) 뒤로는 길이가 수십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용 여덟 마리가 있었다. 녀석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거칠게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하나같이 돌이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기이한 힘에 휩싸여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용들은 석대 위의 의자를 향하고 있었다.
용들 너머의 지면에는 거대한 법보 전차가 있었다. 빽빽하게 달린 가시에는 암적색 피가 잔뜩 묻어 있어 당시 얼마나 어마어마한 위용을 떨쳤을지 짐작케 했다.
전차 주위에는 비검에 올라탄 수련자들이 떠 있었다. 이들 역시 돌이 되어 있었지만 허공에 뜬 채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한편 그들 뒤 사방으로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수련자들이 보였는데 역시 전방을 향해 달려드는 동작 그대로 돌이 된 상태였다. 그 수는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그중에는 키가 매우 큰 이들이 백여 섞여 있었다. 석대를 등지고 있는 이들은 무언가를 떨쳐버리려는 듯 두 손을 마구 휘젓는 중이었다.
그보다 더 먼 곳에는 이 궁전만큼이나 거대한 여덟 개의 인영이 자신들에게 달려들고 있는 수련자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다시 더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한제는 더욱 경악했다. 그의 눈에는 독특한 생김새의 수련자가 들어왔다.
한 손에 우산을 든 채 허공에 떠올라 있는 이 수련자 역시 돌로 변한 상태였는데 그는 왼손으로 석대 위의 의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이 궁전의 마지막 한 사람이 있었다. 눈을 감은 채 허공에 뜬 그는 앞으로 뻗은 왼손은 뭔가를 쥔 듯 주먹을 쥐고 있었고 오른손은 뭔가를 당기듯 손바닥이 약간 구부려져 있었다. 마치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요한 궁전, 촛불이 타오르는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한참 후에야 시선을 거둔 한제는 거대한 석대 위에 내려섰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한제는 돌이 된 수많은 수련자들의 살기 어린 눈빛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사방에서 몰려든 살기는 실체를 갖춘 듯 그에게 달려들었다.
“흠!”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던 한제는 의자에 가로막혔다.
저 앞에는 엄청난 살기를 뿜어대는 거대한 균열도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을 노리며 쏘아져 나와 수많은 수련자와 전차, 고족들을 뛰어넘어 마침내 이곳에 떨어진 화살이 낸 듯한 균열.
그때, 한제는 어떤 힘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느꼈다. 암석 조각이 진화할 때마다 심신에 울려 퍼졌던 목소리를 통해 조금씩 자라난 그 힘은 한제의 온몸에 녹아들어 그를 의자에 앉히려 했다.
계승 (1)
저항할 틈도 없이 거대한 의자 위에 앉은 순간, 한제는 바르르 진동하면서 급속도로 부풀어 올라 눈 깜짝할 사이 수천 척에 달하는 고신이 됐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고신의 몸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간에서는 여섯 개의 반점이 나타나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 한 줄기 요기가 의자에서 발산돼 한제의 왼손을 타고 체내로 녹아들더니 왼쪽 눈에 자리 잡으며 여섯 개의 반점을 허상으로 나타냈다. 이 반점은 허상에 불과했지만 미간의 반점들과 교차되면서 똑같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쾅!
한제의 심신이 크게 울렸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한제는 점차 모든 것을 잊고 위엄을 발산했다. 강력하고 거친,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듯한 위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제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위엄은 점점 더 짙어졌고 마침내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마저 덜덜 떨게 할 정도의 위세를 갖게 됐다.
그의 이러한 기운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한제의 미간 속 천황로에 들어 있던 영동상인이었다. 온 힘을 다해 주진을 제압하고 천황로의 제련을 돕고 있던 그는 한제의 체내에 엄청난 기운이 축적된 순간 표정이 급변했고 두 눈은 두려움으로 떨려왔다.
그는 이내 한제의 몸 밖으로 나왔다. 그러지 않으면 그대로 짓눌려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제 미간의 번쩍이는 반점에서 튀어나온 영동상인은 얼른 대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좀 전까지 느꼈던 위압감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이 거대한 산봉우리처럼 그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일반인처럼 덜덜 떨었고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만약 고개를 들어 한제를 봤다면 고신이 된 주인의 모습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한편, 천황로에는 주진도 있었다. 워낙 오만하여 절대 굴복하는 법이 없던 자라 좀처럼 제련되지도 않았다. 만약 영동상인과 주위를 맴도는 여덟 방울의 독액이 아니었다면 그는 어떻게든 저항했을 터였다.
한제의 체내로 전해진 위압감에 그런 주진조차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한데 그가 경악하는 사이 덮쳐 든 강력한 위압감 때문에 주위를 맴돌던 여덟 방울의 독액과 고식엽들의 경계가 살짝 느슨해졌다.
그 순간, 주진은 몸을 날려 천황로를 빠져나와 한제의 미간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한제의 몸에서 발산된 위압감은 그대로 주진의 몸에 떨어졌다.
“헛!”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는 주진의 두 눈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강력하고 오만한 그조차 겁에 질리고 덜덜 떨게 만드는 기운이었다. 심지어 그는 한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은 그대로 소멸해버릴 것임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인 자신도 상대 앞에서는 한낱 미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태고 5존이라도 이런 느낌을 줄 수는 없으리라.
이 강력한 위압감이 주진을 무릎 꿇리려 했지만 그는 영동과 달리 아직 제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이자 봉천랑족의 선조인 그는 세상 어떤 존재 앞에서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었다. 이에 압박감이 커질수록 그는 더욱 몸부림을 쳤고 두 눈이 시뻘게지도록 이를 악물며 버텨냈다.
누구든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강력한 기운을 가지게 됐을 리는 없으니 이 기세와 위력은 한제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빌려온 것일 터였다.
‘저 의자구나!’
한제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이 기세와 위력은 곧 흩어져버릴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전에 굴복해버린다면 주진의 도심에는 흠이 남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타인에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생길 흠은 자신을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게 할 것이며, 심지어 영동상인처럼 상대의 노예가 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크아아아! 나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씹어뱉듯 터져 나온 주진의 고함이 고요한 궁전에 울려 퍼졌다. 그의 온몸에서는 땀이 흘렀고 펑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으며, 두 다리는 끊임없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를 악문 채 견뎌냈다. 입술을 비집고 흐른 피는 목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옷을 적셨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 강력한 기세가 끝에 이른 듯 한제의 두 눈과 미간에 나타난 총 열여덟 개의 반점이 회전을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의 체내에 축적됐던 기세와 위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쾅!
이전보다 열 배, 백 배는 강력해진 힘이 사방을 휩쓸며 궁전을 강타했다.
“쿨럭!”
주진은 피를 토해냈다. 그의 심신과 도심, 모든 의지가 찢기고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이 순간 그의 눈에 비친 한제는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절대자와도 같았다.
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