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42
스스로를 증명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그의 마음은 평온했다. 애초에 대학자라는 헛된 이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세상의 이치를 천천히 깨달아가는 노인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한제에게 있어 역린과도 같았다. 부모님의 고통과 슬픔에 한제는 분노했고 고통스러웠으며 또 슬펐다.
“대복, 다음과 같이 알려라. 난 앞으로 10년 동안 강연을 할 것이다. 내게서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설파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나를 능가한다면 난 이 집을 그에게 넘길 것이다.”
한제는 소매를 휘두르며 자리를 떴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대복은 많이 늙었지만 흥미진진해 보였다. 지난 3년 동안 누구보다도 더 분노한 게 그였던 만큼 한제의 말에 잔뜩 흥분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10년이라니, 역시 호탕한 녀석이야! 그간 주인을 깎아내리기 바빴던 놈들이 무릎 꿇는 모습이 벌써 기대되는군.”
세상 모두에게 열려 있는 10년 동안의 강연!
소성에서부터 알려진 소식이 조나라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소도영도 강연을 한 적은 있지만 딱 1년뿐이었다. 그런 강연을 10년 동안 진행한다니,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대담하고 파격적인 행보였다. 강연이란 무림고수끼리의 결투와 다르지 않으니 한제는 앞으로 10년 동안 누구의 도전이든 받아들이겠다고 공표한 셈이다.
잠깐의 적막 이후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한제에게 의혹을 품고 있던 수많은 학자와 귀족들은 조나라 황제의 비밀스러운 지지 아래 벌떼처럼 소성으로 몰려들었다.
★ ★ ★
소성으로부터 1천 리 떨어진 객잔에는 많은 서생이 모여 한제의 강연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10년이라니, 놀라운 이야기지. 이전까지 그자의 자격에 의문을 품었던 이들은 지금 모두 그곳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난 이한제라는 그에게 분명 자격이 있다고는 보지만 대학자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글쎄 난 잘 모르겠군. 10년 동안 강연을 하겠다고 공표했을 정도라면 자신감이 있다는 것 아니겠나? 며칠 전에도 유생 수십 명이 그를 찾아갔다가 결국 전부 설복당했다더군.”
객잔 내 창가 자리에서 작은 코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곳에는 네 명이 앉아 있었는데 세 명은 청년이었고 한 명은 노인이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차를 마시던 노인은 침착해 보였으나 내심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감히 강연을 하겠다고? 스승님께서는 녀석을 거두시지 말았어야 했어! 대학자라는 이름은 이 소일동의 것이었어야 한다고!”
조나라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소성 안, 소도영에게서 한제에게로 이어진 집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닫히지 않을 예정이었다.
한제는 침착하게 뜰에 앉아 계화주를 마시며 눈앞에 모여 있는 수백 명의 서생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10년 강연을 발표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고 그동안 그를 찾아온 이만 해도 벌써 1천 명이 넘었다.
오늘도 수백 명이 하나둘 모여 뜰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밖으로 늘어선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 뒤로는 노인들이 탄 마차들도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보다 더 먼 곳에서는 점점 더 많은 유생들이 소성으로 몰려드는 중이었다.
“저는 동운이라 합니다. 선생과 같은 시험에서 수재로 뽑힌 뒤 관직에 등극하여 지금은 조정 관료로 일하고 있지요. 오늘 제가 이렇게 온 것은 선생께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어서입니다.”
한 명의 중년 문인이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자세가 꼿꼿했고 한 줄기 고고함이 느껴졌다.
“저는 춘하추동의 변화가 갖는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선생의 가르침을 바랄 뿐입니다.”
중년 문인은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너는 봄에 태어나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병들어 늙으며 겨울에 눈을 감는다. 춘하추동에 대한 질문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생로병사에 대해 묻는 것 같구나!”
한제가 술을 마시며 답했다.
“그럼 생로병사는 왜 존재하는 겁니까?”
중년 문인은 한제의 답에 흠칫 놀라더니 재차 물었다.
“그것은 네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한제가 여유롭게 답했다.
중년 문인은 한참이나 멍한 얼굴로 서 있었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감고 숨을 다하는 순간, 그간의 삶을 되새겨보게 될 것이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죽어갈 때까지의 과정은 춘하추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음!”
답을 마친 한제가 소매를 휘두르자 다가온 하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이제야 뭔가를 깨우친 듯 보이는 중년 문인을 밖으로 안내했다.
“묻겠습니다. 저는 많은 책을 읽어 학식이 풍부합니다. 한데 저보다 못한 사람들이 입신양명을 하는 와중에도 저는 왜 30년 동안 이 모양 이 꼴일까요?”
뒤이어 나선 것은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었다.
“조나라에는 산이 있다. 높은 산도 있고 낮은 산도 있지. 그러나 높은 산이라고 해서 꼭 봉우리를 이루는 것은 아니고 낮은 산이라고 해서 꼭 맥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넌 산의 높이만을 비교하고 있지만 사실 높든 낮든 산은 산이다. 다음!”
사방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서생들은 분분히 놀라며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세상에는 왜 비가 내리며, 그 비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온 소년이 소리를 높여 외치듯 물었다.
“좋은 질문이다!”
벌떡 일어난 한제는 술병을 손에 쥔 채 계단에 올라섰다. 이윽고 계단 가장 높은 곳에 이른 그는 아래에 운집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서생들은 몇 달 전 한제에게 질문을 했거나, 앞으로 할 사람들이었다.
주위를 훑던 한제의 시선은 이내 집 밖의 어느 술집, 그리고 그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한 중년 사내에게 닿았다.
수많은 호위병에 둘러싸인, 화려한 차림의 그 사내에게서는 위엄이 흘렀다. 그는 서늘한 눈으로 술집 맞은편 소도영의 집 안, 계단 위에 올라 있는 한제를 바라보았다.
사내의 곁에는 도포를 입은 두 청년이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청년들의 표정은 한없이 침착했다.
“소도영이 죽었듯 저자도 죽겠지. 우리 조나라에 대학자는 필요치 않아!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은 저자를 죽일 수 없을 테니 그대들과 같은 선인을 초빙한 것이네.”
“겨우 일반인 하나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지.”
푸른 옷의 두 청년 중 한 명이 고고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편, 술을 한 모금 들이켠 한제는 여유로운 얼굴로 방금 질문을 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마. 비는 하늘에서 태어나 땅에서 죽는다. 그렇게 떨어지는 과정이 비에게는 삶이다!”
그 말에 사방에서는 전보다 더 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한제의 대답에 잠시 후에는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과 마차 안의 노인들까지도 놀란 듯했다. 심지어 어떤 노인들은 말없이 일어나 한제를 향해 절을 한 뒤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그 대답만으로도 한제가 대학자라는 칭호를 갖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선생께서 대학자 소도영을 10년 넘게 따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묻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왜 선인이 있는 겁니까? 그리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왜 그들에게 미물만도 못한 존재로 여겨지는 겁니까?”
어느 노인의 목소리가 뜰 밖에서 들려왔다. 그러자 사방의 서생들이 분분히 흩어졌고 그 사이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망 높은 사람인 듯, 적지 않은 서생이 노인을 향해 포권을 하며 절을 올렸다.
“선인에게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마음에 녹아들어 마음을 끝없이 크게 만들지. 그러니 우리 같은 일반인은 그들에게 미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도 나름의 생각을 갖고 그 생각을 온 세상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혀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선인을 보더라도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그러하듯, 우리 역시 그런 선인을 미물과 다르지 않은 존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말을 마친 한제가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을 보며 몸을 바르르 떤 노인은 잠시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한제를 향해 절을 하고는 곁에 있던 시종의 부축 아래 떠나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생들의 질문에 한제는 웃으며 하나하나 답을 해주었다. 그런 한제의 대답에 감복해 절을 하고 떠나가는 서생의 수가 늘어갔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보다는 밖에서 밀려들어오는 사람은 더 많았다.
“선생, 옛말에 이르기를 귓가에 음악 소리 들려오고⋯⋯.”
“난 옛글에 대해서는 모두 잊어버렸다. 내가 이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전부 내 스스로의 생각에 근거한 것이니 다시는 옛글에 대해 묻지 말라!”
한제는 상대의 말을 끊고 불쑥 답했다.
“선생, 저는 원인과 결과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는 지난 1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연구해왔는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깨닫지 못했지요. 선생께서 혹시 이에 대해 깨달음을 얻으셨다면 설명을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원인과 결과는 그저 원인과 결과일 뿐, 깨달음이 필요치 않다. 오직 체험할 수 있을 뿐, 설명할 수는 없어. 이해한다면 바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가 10년을 떠든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제는 들고 있던 술병을 싹 비운 뒤 한쪽으로 집어던졌다.
“대복, 술을 더 가져와라!”
대복은 의기양양해하면서도 아깝다는 얼굴로 얼른 술병 하나를 한제에게 내밀었다.
“이 수재에게 묻겠네. 아까 온 세상을 다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생각을 넓히면 두려움을 잊고 선인도 미물처럼 마주할 수 있다고 했지. 자네는 과연 정말로 그럴 수 있는가?”
거친 목소리로 질문을 해온 것은 음침한 얼굴의 노인이었다.
대산 아래의 집
한제는 상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소도영의 첫 번째 제자이자 조정의 대신으로 일하고 있는 소일동이었다.
“못할 리 있겠는가!”
한제는 웃으며 술을 마셨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난 순간, 술집에 앉아 있던 중년 사내 곁의 청년 하나가 눈을 번쩍 뜨더니 몸을 날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빛을 그리는 한편 허공을 가른 그는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무지한 미물이 선인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니, 네 죄를 알렷다!”
묵직한 목소리에는 어마어마한 위엄이 배어 있었다. 이에 소도영의 집에 모여 있던 서생들은 표정이 급변해 일제히 꿇어앉았다.
“선인이다!”
“진짜 선인이야!”
“이한제 저자는 선인을 능멸했으니 처벌을 피하지 못할 거야!”
검을 쥔 푸른 도포 차림의 청년이 경멸 어린 눈을 번득이며 돌진해왔다.
그러나 청년이 달려든 그때, 한제는 위엄 어린 얼굴로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하늘을 향해 낮게 호령하듯 외쳤다.
“네가 감히!”
어마어마한 기개가 깃든 목소리가 형태 없는 위엄을 형성해 사방을 뒤덮었다.
콰르릉!
이어서 맑았던 하늘은 삽시간에 어두컴컴해졌고 우렁찬 소리와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무릎을 꿇고 있던 수많은 서생들은 기겁을 했다. 심지어 술집에 앉아 있던 중년 사내도 술잔을 든 손을 벌벌 떨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말도 안 돼!”
사내의 곁에 있던 또 다른 청년 역시 두 눈을 부릅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