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65
“넌 나의 잠을 방해했다. 상처 입은 나의 몸을 치료하기 위한 배아를 파괴했다. 큰 죄를 저질렀다! 네가 누구든, 어디에서 왔든, 죽일 것이다! 너뿐만 아니라 네가 속한 부족까지 전부 묻어버릴 것이다! 배아를 파괴했으니 네 몸을 배아로 삼을 것이다!”
“시끄럽다!”
한제의 싸늘한 목소리가 상대의 말을 끊었다. 동시에 한 발 앞으로 나선 그는 비쩍 마른 손을 움켜쥐고는 차가운 눈빛을 번득이며 홱 잡아당겼다.
“그렇게 나오고 싶다면 꺼내주지!”
석상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발가벗은 비쩍 마른 몸 하나가 한제의 손에 이끌려 나와 땅에 내팽개쳐졌다.
한제는 상대가 떨어지면서 대지에 생긴 거대한 구멍을 향해 달려들었다.
“누군가가 살아 있다면 다행이군. 선인이든 수련자든 상관없다. 네 기억은 내가 갖겠다!”
한제는 한 줄기 번개처럼 지면의 깊은 구멍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데 그때, 분노에 찬 누군가의 고함이 그 구멍 안에서 먹먹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줄기줄기 금빛이 발산됐다. 약간 어둡고 보랏빛을 띤 것으로 보아 그리 순수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한편 빛이 발산된 순간 구멍에서는 어마어마한 충격도 뿜어져 나왔다. 안에서 폭풍이 몰아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깊은 구멍의 입구는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
구멍 근처에 이른 한제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마구 휘날렸고 심지어 몸과 신식까지도 흩어버릴 것만 같았다.
“감히 나를 공격하다니! 선인의 위엄에 맞서려는 자 죽여주마!”
구멍 안에서 들려온 포효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뒤이어 번득이는 금빛 속에서 비쩍 마른 인영이 나타났다. 다만 흐릿하고 모호한 상태라 그 몸을 뒤덮은 어두운 금빛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한제는 차게 코웃음을 쳤다. 공의 문을 파괴하고 천벌을 깨부순 그의 수준은 공령기 중기였다. 선인이라 해도 어지간해서는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봉인의 등장
이어 한제는 가볍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 손짓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셀 수 없이 많은 규칙이 왜곡됐다. 마치 세상 모든 규칙이 한제에 의해 원래의 궤도에서 벗어나 그의 뜻에 따르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쩍 마른 인영은 마구 몸부림을 쳤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그는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한제의 손에 목을 잡혔다.
“컥!”
한제가 손에 힘을 주자 비쩍 마른 인영은 피 안개를 뿜어냈지만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한제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상대는 척 보기에는 특별할 데라고는 없는, 그저 단순한 노인일 뿐이었다. 몸에 혼잡한 선인의 혈맥이 흐르고 있다는 것과 언뜻 보기에는 매우 허약한 것 같아도 사실 그 몸이 놀라울 정도로 단단하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하계의 수련자인 네가 감히 선인을 공격해? 감히 나를 붙잡아? 네놈이 강하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젊었을 당시 중상만 입지 않았더라면 너 따위는 단숨에⋯⋯.”
비쩍 마른 노인은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그 고고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미루어 한창 때 소위 ‘하계 수련자’들을 어떻게 대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한제는 노인을 허공으로 내던지고는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뻗었다.
콰르릉!
그 손짓에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바람과 구름의 기색이 변하면서 거대한 손바닥의 허상이 나타났다. 세상에 존재하는 힘을 흡수하면서 무궁무진하게 불어나던 손바닥은 지면으로부터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꼭 하늘을 꿰뚫고 그곳에 거대한 구멍 하나를 뚫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노인은 표정이 급변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다급히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거대한 손바닥이 곧장 그 비쩍 마른 노인의 몸을 강타했다.
콰쾅!
“크억! 네, 네놈이!”
피를 왈칵 토해낸 노인의 온몸에서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르르 떨리던 노인의 왼손은 피범벅이 되어 무너져 내렸다. 잔뜩 겁먹은 듯한 노인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기억 속 자신은 중상을 입고 거의 9성급에 가까운 고신의 체내로 들어가 상처를 치료해왔다. 한데 아직 완전히 치료되기도 전에 자신이 기생해오고 있던 고신을 누군가가 파괴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상대가 선인도 아니고 동부의 미물이라는 데 더욱 어이가 없었다.
일찍이 선존의 호위병 중 하나였던 그에게 저 정도 미물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처리해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한데 뜻밖에도 자신이 공격을 하기도 전에 오히려 어마어마한 공격을 받고 내팽개쳐지기까지 했다.
이는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는 더욱 분노했다. 그러다가 상대의 손에 목을 잡히고 왼팔이 무너져 내리자 덜컥 겁이 났다. 이제야 상대가 기억 속의 하계 미물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수! 너는 하계 역수로구나!”
노인의 목소리에는 경악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는 덜덜 떨며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소매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비쩍 마른 노인의 뒤에 나타난 그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콰쾅!
“크아악!”
노인은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토했다. 또다시 부상을 입고 비틀거리던 노인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때 주인님이 설치한 천벌은 역수의 출현을 막기 위함이었다! 천벌이 있는 한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역수가 존재할 수는 없는데… 주인님의 동부뿐만 아니라 선강 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부에서 태어난 하계의 역수 중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이는 없었는데⋯⋯.”
입가의 피를 훔쳐낸 노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몸을 홱 틀더니 눈을 번득였다. 선인인 그에게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목숨을 구할 수단이 있었다. 또한 당시의 큰 전투에서도 살아남았을 만큼 그는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노인은 혀끝을 깨물어 금빛 피를 토해냈다.
한데 그가 피를 토해낸 순간, 한제가 오른손을 들어 올려 노인을 가리켰다.
“정!”
그러자 노인은 몸을 바르르 떨었고 그가 토해낸 피는 허공에 그대로 멎어버렸다. 또한 그의 몸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것들 역시 찰나의 순간 멈추었다.
노인은 엄청난 충격으로 심신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정공술(定空術)! 이건 선존의 신통술 정공술이 아닌가! 저자가 어떻게 이 신통술을…?’
허나 그의 사고 역시 정신술 아래 멎어가기 시작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노인 앞에 이르더니 상대의 굳어버린 얼굴을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들어 그 정수리에 얹었다.
“당시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보자!”
한제는 노인의 정수리에 얹은 손을 통해 신식을 주입했다. 그러자 그의 높은 수준과 신식이 소리 없는 폭풍처럼 노인의 신식을 파고들었다.
노인의 몸에서는 수시로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칠규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정신술로 묶인 몸은 격렬하게 경련했다.
“끄아아악!”
그 끔찍한 고통에 정신술이 약간 흩어지자 노인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지만 묵직한 산처럼 정수리를 짓누르고 있는 상대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노인의 온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두 눈에는 두려움이 어렸다.
“감히 선인을 공격하다니! 나는 선존 휘하의 호위병, 사선(士仙)이다! 선인의 혈맥을 가진 나를 죽인다면 선존께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시끄럽다!”
한제는 싸늘하게 대꾸하더니 노인의 체내로 더 강력한 신식을 주입했다. 그리고 그의 신식은 노인의 모든 기억을 손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한데 그의 신식이 비쩍 마른 노인의 기억에 진입한 순간, 원고 선역 깊은 곳, 거대한 네 개의 고족 석상 중 하나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작! 자네의 후손은 수준은 높으나 퍽 거만하군. 감히 사선의 기억을 훑고 있어! 사선은 나름 선인의 혈맥을 가진 존재인데 어찌 미물만도 못한 자네의 후손이 그자의 기억을 탐하려 하는가!”
비웃음이 어린 목소리였다.
“그자는 세 번째 단계의 천벌을 뛰어넘었어. 천벌의 아홉 번째 태양으로부터 자신의 운명을 뽑아내기도 했지. 분명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동시에 어쨌든 그가 해낸 일이기도 해. 백호 자네는 녀석을 비웃지만 만약 자네가 하계의 수련자였다면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다른 석상의 누군가가 차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해내지 못할 이유도 없지! 우리 같은 선인의 기억에는 선존의 봉인이 찍혀 있어. 이는 우리 칠도종(七道宗)의 핵심 제자만이 가질 수 있는 행운이지! 미물 같은 하계의 수련자가 중상에서 회복 중인 사선을 죽이는 것까지야 그렇다 쳐도 선존의 봉인을 깨부수려 하는 것은 어찌할 것인가!”
이전에 들려왔던 목소리가 또다시 조소하듯 말했다.
“그만! 저자 때문에 자네들까지 싸울 필요가 있겠나? 주작, 자네의 후손은 분명 분수를 모르고 날뛰고 있어. 만약 저자가 선존의 봉인 아래 죽는다면 자네의 계획에도 영향이 있을 텐데?”
또 다른 석상에서 세 번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자는 본디 내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어. 처음으로 이곳에 이른 자가 저자라는 사실은 내게도 놀라운 일이네.”
한참 후에야 주작이 답했다.
“범상치 않은 녀석이야.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역수는 태어나 처음 보네. 만약 우리 선강 대륙의 인재라면 이름을 크게 떨쳤겠지만 안타깝게도 녀석은 하계의 수련자지. 허나 아무리 뛰어난 자라 해도 선인을 상대로 수혼술을 펼치는 것은 미려한 짓! 선존의 봉인은 우리가 연합한다 해도 파괴할 수 없는 거라고. 녀석은 아마 1각도 버티지 못할 게야.”
마지막 석상에서 네 번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에서는 깊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네 석상의 목소리는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고 주위는 곧 다시 고요해졌다. 주작도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한제를 알고 있었지만 한제가 선존의 봉인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 ★ ★
비쩍 마른 노인의 신식은 하나의 세계를 이룬 채 삼엄하게 봉쇄되어 있었다. 짙은 안개가 한제의 신식이 진입하는 것을 막는 중이었다.
한제로서는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다. 은시(銀屍)의 기억을 뒤지려 할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짙은 안개를 마주한 한제는 신식을 응집시켰다. 그렇게 응집된 신식은 한제의 허상으로 나타났다. 긴 백발과 백의까지, 한제의 모습과 똑같은 원신이었다.
한제는 그곳에 서서 짙은 안개를 바라보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을 품은 안개는 마치 한 줄기 봉인처럼 이곳을 감싼 채 수혼술을 막고 있었다.
“은시에게도 이와 똑같은 봉인이 찍혀 있었지. 흥미롭군. 선존의 수하였던 선인에게는 모두 이런 봉인이 찍혀있는 모양이군.”
당시에는 은시의 신식에 찍힌 봉인을 풀지 못했다. 수준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억지로 열려고 했다가는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은시에게 큰 피해를 끼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쩍 마른 노인에게 한제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고 상대가 죽을죄를 진 것도 아니었다. 허나 지금의 한제는 아홉 개의 태양을 통해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선존과 그의 휘하 선인은 그에게 적과도 같았다.
특히 모완의 운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한제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다.
한제는 노인의 신식의 바다에서 안개를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유성처럼 안개를 향해 돌진한 그는 손을 휘둘러 광풍을 일으켜 안개 쪽으로 쏘아 보냈다.
광풍에 휩쓸린 안개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눈 깜짝할 사이 구멍이 생겨났다. 곧장 그 안으로 달려든 한제의 모습은 곧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한제는 안개 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의 안개는 그대로 갈라졌다.
안개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자 돌연 전방의 안개에서 일곱 색채의 빛이 번득이며 나타났다. 이 빛은 시커먼 안개 속에서 유난히 눈부시게 번쩍였다.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안개 속에는 한 중년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눈을 감은 사내의 온몸은 일곱 색채의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그 몸에서 발산되는 묵직한 압박감에 세상 어떤 존재도 감히 그 앞에 나서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일곱 빛깔의 사내는 한제가 소하성역의 칠채계에서 만났던 사람이 아니라 그의 저물공간에 들어 있는 조각상의 주인이었다. 또한 중년 사내는 누구도 그 휘하에 있는 선인을 상대로 수혼술을 펼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봉인이었다.
한제는 성큼 앞으로 나서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돌연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한제 앞에 거대한 손바닥이 하나 나타났다. 이 손바닥은 전방의 안개를 가르며 가부좌를 틀고 있는 중년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손바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중년 사내의 앞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순간, 손바닥은 무너져 내렸다. 더욱이 손바닥이 사내의 몸에서 3촌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와해되기 시작했음을 한제는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