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76
허나 그의 몸은 완전히 갈라지지는 않았고 강력했던 살육의 기운은 빠른 속도로 약해지다가 곧 흩어져 사라졌다.
하얗게 질린 채 자신이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중년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서 청수가 검은 피를 토해내며 뒤로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청수는 공격을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했다. 육신이 그 공격에 필요한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힘을 잃고 뒤로 밀려나던 그의 몸을 분홍색 옷의 여인이 받아 부축했다.
여인을 본 청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홍색 옷차림의 여인은 혼란스런 얼굴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청수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를 아니 심지어 청수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어째서⋯⋯?”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데 그때, 광풍과 번개를 일으키던 중년 사내가 포효를 내지르며 살기와 기쁨이 동시에 번득이는 눈으로 달려들었다.
콰쾅!
거의 동시에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모은미가 있던 수련성을 둘러싼 빛의 장막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공격을 퍼붓던 음탕하고 사악한 기운의 청년이 크게 웃으며 곧장 모은미에게로 향했다.
“봉계 지존의 여인이니 분명 그 맛도 훌륭할 터!”
청년의 음탕하고 지저분한 농지거리를 들으며, 모은미의 눈빛에 결연한 의지가 들어찼다. 그녀의 곁에 있던 신종 사람들도 분분히 몸을 날리며 생애 최후의 순간 적들과 함께 숨을 끊으려고 했다.
같은 시각,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 밖에서 계외 공현기 수준 수련자와 교전을 벌이던 청림과 소하성역의 주인, 그리고 홍삼자 또한 큰 위기를 맞았다. 격렬했던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전투가 될 것만 같았다.
그때, 온 우주를 짓누를 듯한 어마어마한 기운이 저 멀리서부터 요란하게 달려들었다. 계내 수련자들에게는 절망을 계외 수련자들에게는 기쁨을 선사하는 기운이었다.
우주에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그 균열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계외 태고 성신의 것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거대한 궁전 하나가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태고 성신 내 수많은 수련자들의 숭배를 받는 이 궁전은 그들의 믿음의 대상인 장존의 행궁이었다.
장존이 계내에 나타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검은 도포를 입은 채 궁전 위에 선 그의 모습은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들어 올린 비쩍 마른 손에 온 세상을 파멸시킬 법한 기세가 어려 있는 것만큼은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들어 올린 손을 저 아래 홍삼자와 소하성역의 주인, 그리고 청림을 향해 뻗었다.
“이제 다 끝났다!”
노인의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가 뻗은 오른손에서는 거대한 손바닥 문양이 나타났다.
온 우주의 빛을 가릴 것처럼 거대한 손바닥은 실체를 갖춘 듯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을 향해 콰르릉 하고 내리 떨어졌다. 숨 막힐 듯 강력한 기운이 계내 모든 수련자들의 마음을 절망으로 짓눌렀다.
광풍과 번개를 일으켰던 거구의 사내는 비릿하게 웃으며 청수 부녀를 향해 달려들었고 음탕하고 사악한 눈빛을 드러낸 도비선은 소매를 휘두르며 신종의 수련자들을 날려버린 뒤 모은미에게 다가갔다.
바로 그때였다. 나천성역과 운해성역의 접점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쐐애액!
그것은 분명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였다. 파괴적인 힘과 분노, 살의를 품은 화살. 그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장존이 소환한 손바닥에서 울려 퍼지는 요란한 소리를 압도했다.
한제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초점이 흐려진 두 눈을 감으려던 청수는 저 먼 곳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사제!”
그를 부축한 분홍 옷의 여인 역시 고개를 들더니 전에 없이 밝은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들에게 달려들던 거구의 사내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다른 수련성에서는 죽음을 각오했던 모은미의 결연한 눈에서 밝은 빛이 번득였다. 또한 얼굴에는 기쁨에 찬 미소가 가득 떠올랐다. 평생을 통틀어 몇 번 보인 적 없는 미소였다. 그가 죽지 않았음을 알고 또 믿고 있었던 그녀였다.
반면 그녀에게서 1백 척 거리에 이르러 있던 도비선은 경련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누구도 무엇도 그 앞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백의를 입은 백발의 청년. 그 위아래로 두 개의 거대한 바퀴가 맴돌았다.
이를 본 청림의 두 눈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이 어렸다. 분명 눈에 익은 화살이었지만 감히 그 정체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계내 수련자들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충격은 계외 수련자들의 충격에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지금 계외 수련자 모두는 심신이 경련하는 것을 느꼈고 한제를 알아본 이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특히 당시 한제를 죽이려 했던 공현기 수련자들은 그야말로 기겁하고 말았다.
“이한제!”
“저자가 죽지 않았다니!”
“저건 이광의 화살 아닌가!”
당시 이광의 화살의 위엄을 직접 경험했던 선비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러는 사이 화살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에 따라 엄청난 파문이 일며 성역이 무너져 내렸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골짜기가 생겨났다.
운해성역과 나천성역의 접점에서부터 이어진 골짜기는 길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전 (1)
한제의 분노와 곤허, 소하, 운해성역을 거치며 축적된 그의 살의가 어린 화살은 장존의 궁전 위에 이르러 거대한 손바닥 문양을 짓눌렀다.
한제와 장존의 대결이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화살과 장존의 손바닥 문양이 충돌했다.
꽈르릉!
충돌의 순간, 손바닥 문양은 끊임없이 진동하며 일곱 색채의 빛을 번득였다. 이 빛은 아주 강렬했지만 살의로 가득한 화살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나천성역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히 뒤흔들렸고 엄청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에 손바닥 문양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화살은 손바닥 문양을 관통했다. 심지어 전보다 더욱 충격적인 기세를 품은 채 상공의 균열에서 나타난 궁전으로 곧장 돌진했다.
“제아무리 이광의 활이라 해도 네가 나를 죽일 정도의 힘을 발휘할 리 없다!”
궁전 위에 선 장존이 검은 도포를 광풍에 마구 휘날리면서 비틀린 표정으로 광기 어린 빛을 번득였다. 동시에 그는 낮게 고함을 내지르며 한 걸음 나서더니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화살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비쩍 마른 두 손을 휘둘러 일곱 색채의 빛을 번득이며 화살을 막으려 했다.
꽈릉!
충돌의 순간 또다시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의 빛은 그대로 찢겨나갔고 뒤이어 나머지 빛들도 격렬하게 뒤틀리다가 결국 무너져 내렸다.
장존이 소환한 일곱 색채의 빛으로도 화살을 막지 못했다. 한제의 수준은 장존보다 낮았지만 동부 안의 이 세상에서 이광의 화살을 막을 자는 몇 되지 않았고 장존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크윽!”
장존이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는 사이 도포의 소맷자락은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고 비쩍 마른 두 팔이 드러났다. 안색이 어두워진 장존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혀끝을 깨물어 한 움큼의 피를 뿜어냈다.
금빛을 품은 피가 선인 혈맥의 힘을 발하면서 금빛 태양이 됐다. 이 태양이 떠오르자 태초의 규칙이 이 성역을 뒤덮었다.
“넌 나를 죽이지 못한다!”
장존은 낮게 고함을 내지르며 두 손으로 금빛 태양을 떠밀었다.
“한낱 시동에 불과한 놈이 건방지구나! 썩 꺼져라!”
한제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던 순간, 장존의 태양과 이광의 화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꽝!
굉음이 터지자 근처의 수련자들은 귀가 터져나갔다.
금빛 태양은 격렬하게 진동했고 장존이 힘껏 떠밀고 있음에도 오히려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콰쾅!
또 한 번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태양은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그러나 그로 인한 강렬한 충격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지 않고 화살의 압박 아래 장존을 향해 밀려들었다.
“크악!”
장존은 피를 토했고 그의 검은 도포는 펑 소리와 함께 터지고 흩어졌다. 동시에 뒤로 튕겨나간 장존은 결국 균열 안에서 나타난 궁전에 처박혔다.
쿠르릉!
장존과 충돌한 궁전은 여러 갈래의 균열을 드러냈다.
그 순간, 장존을 바짝 뒤쫓은 화살이 궁전으로 향했다. 장존은 재빨리 결인을 그리며 두 팔을 힘차게 떠밀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거대한 우물이 나타났다. 우물에는 또 다른 세상과 무궁무진한 우주가 담겨 있었다.
이 우물은 장존의 두 번째 향불의 세계였다. 그가 선강 대륙에 있었을 당시 광인으로부터 하사받은 법보이기도 했다.
우물이 소환된 순간, 화살이 날아들었다.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서 있던 우물은 화살이 달려든 순간 잔잔한 물결이 일었고 우물의 수면에 똑같이 생긴 화살이 비쳤다.
우물 속 허상의 화살은 곧 수면을 뚫고 나와 이광의 화살을 향해 달려들었고 두 화살은 충돌했다. 하지만 허상의 화살은 별다른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무너져 소멸했다.
“쿨럭! 이… 이럴 수가!”
장존은 또 한 번 피를 토해내고는 경악에 가득차 외쳐댔다.
“주인님의 선인의 불멸체를 사용했구나! 그 귀중한 선인의 불멸체를⋯⋯ 이렇게 써버리다니! 허나 네가 그 화살을 몇 번이나 더 쏠 수 있을 것 같으냐! 기껏해야 두 번! 그 이후로 너는 절대 선인이 될 수 없을 터! 그때의 너는 미물과 다를 바 없으리라!”
허나 장존의 말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허상의 화살을 깨부순 화살이 그의 몸에 박히면서 어마어마한 힘을 가했기 때문이다. 장존의 육신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뒤쪽의 궁전도 함께 파괴됐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궁전은 계외 수련자들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다. 그들에게 이 궁전은 성물이었으며, 영원히 파괴되지 않을 존재였다.
허나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궁전은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장존이 사라지고 궁전이 파괴됐다.
장존은 아직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 상태는 아니었다. 화살에 관통돼 흩어지고 부서졌던 그의 피와 살점은 다시 응집해 균열 밖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봉멸족의 삼명술!”
한제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되살아난 장존은 창백한 얼굴로 곧장 균열 너머로 달아났다. 동시에 뒤로 뻗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벌어졌던 균열을 무너뜨렸다.
균열이 사라지면서 생겨난 굉음의 메아리가 천천히 흩어져 사라지고 정적이 찾아왔다. 수십만 명의 시선은 모두 한제에게 몰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