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11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고신의 반점이었다.
한제의 몸을 뒤덮은 안개는 이미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미간에서는 완전히 자리를 잡은 여덟 번째 반점이 짙은 빛을 발산했다.
“삼손칠겁이 곧 다가오겠군!”
고신과 고족, 고요, 이 세 고족에게는 삼손칠겁이라는 난관이 있었다. 허나 이는 난관이면서 기회이기도 했다. 잘만 넘긴다면 힘이 대폭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한제가 마주하게 될 삼손칠겁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하고 거칠 터였다. 고신만이 아니라 고요와 고마의 난관 역시 함께 견뎌내야 하니까.
고족의 첫 번째 손과 두 번째 손은 두 개의 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각 신겁과 혼겁이었다. 한제는 현재 고신으로서 두 개의 손, 그러니까 네 개의 겁을 넘긴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 그가 마주해야 할 것은 최고의 난관, 세 개의 겁으로 이루어진 세 번째 손이었다.
한데 그는 고요와 고마로서는 아직 한 번의 손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8성급에 이른 순간 여덟 개의 겁을 동시에 넘겨야 했다.
한제의 왼쪽 눈에서 고요의 반점 여덟 개가 회전하면서 회오리를 형성했다. 그 안에서 발산된 요기가 한제의 얼굴 전체를 뒤이어 온몸을 뒤덮었다.
파란색으로 바뀐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온몸에 줄기줄기 핏줄이 돋아났다. 짙은 요기를 사방으로 퍼뜨리는 그는 진정한 요수(妖修)처럼 보였다.
한편 그의 백발은 기이하게 휘날렸고 양손 검지의 손톱은 체내에서 울리는 펑펑 소리와 함께 꿈틀거리면서 빠르게 자라났다. 그 길이가 족히 10척은 될 것 같았다. 동시에 자홍색으로 물든 열 개의 손톱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를 뒤덮은 짙은 요기가 점차 응집되면서 자홍색의 갑주를 형성해 몸을 감쌌다. 8성급 고요가 되어야만 응집할 수 있는 요갑(妖鉀)이었다.
요갑을 착용한 한제는 제단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의 뒤에 떠 있던 도고의 허상은 흩어져 사라지고 그 대신 거대한 고요가 나타났다. 머리에 뿔이 하나 나 있었고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은 길이가 수천 척에 이르렀다. 멀리서 보면 꼭 날리는 연기처럼 보일 정도였다. 전신이 파란 고요는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한제의 뒤에 그와 똑같이 가부좌를 틀었다.
한제는 두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체내 고요의 힘을 가동했다.
그때, 고요의 첫 번째 손에 속한 두 개의 겁이 강림했다.
고신의 겁과 마찬가지로 첫 번째 손을 이루고 있는 것은 뼈의 겁과 살의 겁이었다. 이 난관은 한제의 육체 안에서 폭발했는데 그러자마자 한제 주위의 요기는 곧장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이내 고요의 육신은 요기에 의해 뼈와 살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 고통쯤은 한제에게 참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당시 겪었던 고신의 겁에 비하면 우스울 지경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닷새가 지났을 때,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미간과 오른쪽 눈 위의 반점은 보이지 않았지만 왼쪽 눈의 반점 여덟 개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짙은 요기를 발산했다.
“고요의 첫 번째 손, 두 개의 겁은 고작 이 정도였군!”
일견 오만한 말이었지만 그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고요의 난관을 어렵지 않게 헤쳐 나왔으니 말이다.
곧장 고요의 두 번째 손이 찾아와 혼과 심신을 뒤덮었다. 주위의 요기는 거친 파도처럼 몰아쳤고 뒤편에 나타난 고요의 허상도 왜곡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이 무궁무진한 고통에 포효를 내지르려 하는 것 같았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왼쪽 눈을 두드렸다. 그는 온 정신을 두 번째 겁을 제압하는 데 집중했고 결국 열흘 만에 고요의 두 번째 손 역시 완전히 제압해 무너뜨렸다.
두 개의 손, 네 개의 겁을 잇달아 넘긴 한제의 요기는 증폭되어 하늘을 뒤흔들었다.
한제가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양 무릎에 얹은 순간, 왼쪽 눈에서는 고요의 반점이 점점 흩어졌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을 때 오른쪽 눈에서 고마의 반점이 돌연 번득이며 나타났다.
한제의 주위를 채우던 요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그 빈자리를 마기가 채워나갔다.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마기가 사방을 휩쓸며 검은 안개를 형성했고 꿈틀거리는 검은 안개 속에서는 수많은 혼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짙은 마기에 한제의 몸을 감싼 요갑이 사라지더니 한제의 백발과 확연한 대비를 이루는 검은 갑옷이 새로 응집됐다. 동시에 한제의 얼굴에는 수많은 문양이 나타났다. 이 문양이 퍼져 나감에 따라 한제는 더 이상 요수가 아닌 마혼으로 변해갔다.
마혼은 선(仙), 신(神), 요(妖)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였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여태까지 존재해온 마혼은 전부 거짓이었다. 고마 역시 진정한 마혼이 아니었다. 진정한 마혼은 육신도 영혼도 수준도 아닌 일종의 의지였다.
유아독존의 의지!
그런 의미에서 한제가 걸어온 길은 마혼과 매우 비슷했다. 하지만 진정한 마혼일 수는 없었다. 그의 주체는 고신이었기 때문이다.
고마의 반점이 회전하고 마기가 피어오름에 따라 두 눈을 뜬 한제는 무정하고도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고마의 첫 번째 손과 두 번째 손을 맞이했다.
고마의 손겁은 고요의 손겁과 그 위력이 비슷했지만 조금 더 강했다. 세 고족을 놓고 비교하자면 고신이 가장 강했고 고마가 그다음이었으며 고요가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손겁의 강력함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강 대륙의 기대
고마의 몸을 소환한 한제는 7일 후에야 첫 번째 손의 두 겁을 통과했고 다시 13일 후에는 두 번째 손의 두 겁마저 제압했다. 덕분에 그의 고마는 육체가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이제 한제가 가진 세 고족의 위력은 평형을 이루었다.
제단 위에 가부좌를 튼 한제의 미간에는 고신의 반점 여덟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8성급 고신!
2천 년이 넘는 수련과 여러 행운, 그만큼의 위기 속에서 마침내 8성급 고신에 이른 것이다. 더욱이 그는 8성급 고신이면서 8성급 고요였고 또한 8성급 고마였다. 그리고 세 고족을 합친 뒤 고신의 육신을 주로 삼은 한제는 도고이기도 했다.
한제의 미간과 두 눈에서 총 스물네 개의 반점이 동시에 회전하면서 도고의 기운을 발산했다. 그러자 강력한 기운이 심신에서 피어올랐다.
한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자신이 앞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난이자 난관임을 알고 있었다.
세 고족의 세 번째 손이 동시에 찾아왔다.
세 번째 손은 각각 세 개의 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겁은 고맥창궁혈(古脈蒼穹血), 두 번째 겁은 고도삼분신(古道三分神), 가장 강력한 세 번째 겁은 고조(古祖)의 은혜였다.
그 겁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한제도 알지 못했다. 도고의 유산을 물려받긴 했지만 전승받은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세 번째 손의 마지막 겁 두 개, 그중에서도 특히 최후의 겁은 선강 대륙 고국의 고찰에 가야만 넘길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겁을 마주할 때까지 수련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은 고국에서도 엄청난 일이었고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을 때는 큰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심지어 선인들조차 고국에서 마지막 겁을 넘긴 존재는 감히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당시 고국의 고찰에서 마지막 겁을 넘기고 ‘도고’라는 호칭을 갖게 된 엽막은 고국의 대존 중 하나로 등극해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한제는 제단에 앉아 점점 더 강해지는 도고의 기운으로 온몸을 감싼 채 세 번째 손의 첫 번째 겁을 기다렸다. 그 겁을 넘겨야만 진정한 8성급 고신이 될 터였다.
8성급에 이른 세 고족의 힘은 아직 그의 수준에 완전히 녹아들지 않은 상태였지만 공현기 초기 수준의 위력을 빌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곱 번째 본원을 형성해 그것마저 수준에 녹여 넣는다면 공현기 중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공현기 후기의 수련자와도 맞붙어볼 만했다.
고맥창궁혈이 다가오고 있었다.
창궁혈이란 모든 기력을 한데 응집해 형성한 한 방울의 피, 말하자면 이 난관을 넘으려 하는 이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 피를 이용해 하늘을 열고 고국의 혈맥에 바치면 알 수 없는 어둠 속 고조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난관을 넘긴 사람은 우주 어디에 있든 고조로부터 한 방울의 피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한 방울의 피와 융합함으로써 진정한 고족의 혈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혈맥은 선인의 혈맥과 동등한 존재였다.
허나 이 겁을 넘기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기력을 녹여내 한 방울의 피로 응집하는 와중에 느끼는 고통이 아니라 고조의 인정이었다. 누구나 인정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조의 인정을 받는다 해도 고조가 보내주는 피의 양에는 차이가 있다. 보통은 한 방울이지만 때로는 두 방울까지도 받는다고 한다.
도고 엽막은 이 겁을 넘길 때 세 방울의 피를 얻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얻은 이는 무려 여덟 방울을 얻었다고 전해지는데 바로 고국 선강 대륙 아홉 태양 중 하나인 현라 대천존이었다. 당시 칠도종 밖에서 또 다른 태양 도일 대천존과 저물 조각을 두고 다퉜던 절대 강자였다.
한제는 서서히 두 눈을 감았다. 그의 주위에서는 도고의 기운이 체내로 거두어지더니 그 안에서 응집됐다. 세 번째 손 첫 번째 겁의 시작인 창궁혈을 응집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가부좌를 튼 그의 몸은 흐릿한 허상이 중첩된 것처럼 바뀌었고 이내 그의 체내에서 또 다른 한제가 걸어 나왔다. 수련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분신이었다.
분신을 내보낸 지금, 한제는 완전하고 순수한 고족이 됐다.
“고요의 몸에서 고요의 기력을 뽑아 한 방울의 피로 응집한다!”
한제가 손을 휘둘러 자신의 몸을 가리키자 그의 온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왼쪽 눈이 그대로 녹아내렸고 극심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한제는 이를 악물었다. 몸의 일부가 뽑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녹아내린 왼쪽 눈에서 한 방울의 피가 빠져나왔다.
손톱만 한 핏방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안에는 가부좌를 튼 작은 고요가 있었는데 생김새는 한제와 똑같았다.
“고마의 몸에서 고마의 기력을 뽑아 한 방울의 피로 응집한다!”
한제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지금 그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한제가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몸을 내리누르자 오른쪽 눈이 퍽 소리와 함께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한제의 몸은 순식간에 마치 해골처럼 비쩍 말라갔다.
무너져 내린 오른쪽 눈에서는 검은색 핏방울이 나왔다. 마기에 휩싸인 채 고요의 피 옆에 떠오른 그 피에도 한제와 똑같이 생긴 고마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고신의 몸에서 모든 것을 녹여내 한 방울의 피로 응집한다!”
고통은 이미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제는 버텨냈다.
그의 몸은 빠른 속도로 융화되어갔다. 가장 먼저 두 다리가 녹아내렸고 뒤이어 두 팔이, 마지막으로 몸통이 녹아내렸다. 체내에서 발산된 피로 뒤덮인 그의 몸은 그대로 흩어져 사라지면서 완전한 피 안개로 변했다.
안개는 꿈틀거리다가 1각 만에 한 방울의 고신의 피로 응집됐다.
제단 위에 남은 한제의 분신은 본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그곳에 남은 것이라고는 세 방울의 피뿐이었다.
세 방울은 세모를 그리고 있었고 각 핏방울마다 한제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세 명의 한제는 동시에 두 눈을 번쩍 떴고 그 순간 세 방울의 피가 빠른 속도로 한데 융합하면서 한 방울로 합쳐졌다.
이 한 방울의 피는 고신과 고요, 고마의 모든 것이자 한제의 모든 것이었다.
선인 혈맥의 피와 달리 이 피는 금빛이 아니라 검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빛은 번득이면서 사방을 어렴풋이 비췄다.
세 방울의 피가 한 방울로 합쳐진 순간, 서늘하고 황량한 기운이 발산됐다. 하늘에 대한 고족의 반항심을 품은,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기운은 곧장 위로 솟구쳤다.
계내와 계외를 포함한 동부계 어느 곳의 어떤 수련자도 고조를 소환하는 이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다. 이 기운은 수련자가 아닌 고족의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동부계 내에서도 고족의 혈맥을 가진 사람들만은 혈맥을 통해 한 줄기 힘을 느끼고는 심신을 가늘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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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내, 그중에서도 수차례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운해성역의 고요들은 놀란 눈으로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이 느낀 기운은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숭배하고 싶게 만들었다.
같은 시각 나천성역의 무너진 동림성 부근. 형태 없는 균열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여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고신인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고맥창궁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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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외 태고 성신, 오래된 무덤. 이곳에는 대전에 남아 전승을 완료하던 탁삼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한제로부터 서사의 기억의 유산을 받고 그동안 융합한 덕에 탁삼인 동시에 깨어난 서사이기도 한 그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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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강 대륙 북쪽의 허공에 떠 있는, 그 자체로 동부계와 비슷할 정도의 거대한 도시. 바로 고국이었다.
그 도시 아래로는 어둠으로 뒤덮여 평생 햇빛이 닿은 적 없는 감옥이 있었다. 고족의 도시에 짓눌려 있는 감옥 안에는 선인 혈맥을 가진 수많은 수련자가 갇힌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