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43
한제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문을 이루고 있는 석판 중 하나에서 주작성 역외 전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찍이 그곳에 들어갔던 그는 이 문이 쪼개지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당시 천도에 의해 파괴됐던 동부계의 문이 다시금 응집되면서 동부계 전역을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격변을 야기한 것이다.
허공에 우뚝 선 문은 매우 거대해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내 안개 속에서 대량의 작은 돌 조각들이 날아들어 석판끼리 연결된 부분의 수많은 균열을 메웠다. 그러자 문은 완전해졌고 온 우주를 뒤흔들 법한 기세를 발산하며, 동시에 한 줄기 폭풍이 문에서 뿜어져 나와 강력한 힘을 퍼뜨렸다.
저 먼 우주, 짙은 안개 속 어딘가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옅어진 안개 사이에서 일곱 색채의 빛을 번득이며 칠채도인이 나타났다.
그는 매우 어두운 표정으로 거대한 문과 저 멀리 있는 한제를 번갈아 보았다.
“너였구나!”
칠채도인은 살기 어린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면서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가 노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안심이 된 것이다.
“그 늙은이만 아니라면 모든 것을 되돌릴 기회는 아직 있다!”
칠채도인은 소매를 휘두르며 한제에게 돌진하려 했다.
한데 그때, 거대한 문에서 일어난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강력한 힘을 발산했고 칠채도인은 급변한 표정으로 쭉 밀려났다.
같은 시각, 전가 노인이 반대쪽에서 나타났다. 그러자 강력한 기세가 사방의 안개를 흩어버렸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안개로 만들어진 외투를 두른 흐릿한 허상이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나타났다.
삼혼 중 하나인 그는 칠채도인과 마찬가지로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저 녀석이었군! 천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세 번째 주혼을 손에 넣었다면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 들어간 셈. 절대 죽음을 면치는 못하리라!”
흐릿한 허상 아래에 선 전가 노인은 주먹을 꽉 쥐더니 소매를 크게 휘둘러 문에서 불어오는 폭풍의 위력에 저항했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전가 노인과 그를 감싼 허상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허상의 두 눈에서 드러난 기이한 빛은 갈수록 짙어졌다.
한편, 한제는 거대한 문의 위력에 다른 방향으로 떨어져 나간 두 사람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꿇어앉은 채 숨을 거둔 사청의 시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더욱 깊은 슬픔이 묻어났다.
“가을 난이 가득한 이 산골짜기를 좋아했지. 여기서 가을 난과 함께 머물며 다시 깨어날 그 날을 기다리거라.”
중얼거리던 한제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산골짜기에서는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가을 난들이 사청의 시체를 감쌌다. 이내 사청의 시체는 가을 난으로 뒤덮인 봉분에 묻혀 사라졌다.
작게 한숨을 내쉰 한제는 가을 난 하나를 꺾어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발을 내딛어 하늘로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걸음을 내딛은 순간, 그는 우주로 올라갔다.
하늘에서는 방금 전 한제가 꺾은 가을 난 한 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바람에 실려 나풀나풀 흔들리던 가을 난은 산골짜기 안의 봉분 위에 떨어졌다.
흘러넘칠 듯한 생기를 품어 더욱 아름다운 그 난은 봉분 위에 떨어지자마자 어스름한 빛을 발하더니 가루로 흩어졌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이 가루는 산골짜기 밖 대지에 뿌려졌다.
이때부터 이 이름 없는 수련성 곳곳은 해마다 가을이면 가을 난으로 가득 뒤덮이게 됐다. 긴 잠이 든 사청을 위로하는 듯 맑은 난향이 수련성을 채웠다.
한편, 우주 한가운데 우뚝 선 거대한 문밖. 누구도 이 문에서 일어난 폭풍에 실린 힘을 견뎌낼 수 없었다. 오직 한제만이 그 폭풍 앞에서도 조금의 위기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폭풍은 거대한 문이 재조합되면서 일어난 것인데 이는 세 번째 주혼의 소생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세 번째 주혼은 한제의 체내에 있었다. 그렇기에 문에서 발산된 폭풍이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은 것이다.
이때 그의 전방에는 거대한 문이, 뒤로는 수련성이 있었다. 또한 한제는 거대한 문뿐만 아니라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도 함께 보고 있었다.
“이한제, 세 번째 주혼을 내놓아라. 그럼 너와 선계의 모든 이들의 안전은 보장하마. 또한 선강 대륙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네가 선강 대륙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폭풍의 힘에 애써 저항하던 전가 노인은 한제의 체내에서 세 번째 주혼을 또렷하게 감지하고는 얼른 외쳤다.
“이한제, 세 번째 주혼을 내놓는다면 네 아내를 되살려주마! 내게는 천도도 이 동부계도 필요치 않다. 전부 네가 갖거라. 세 번째 주혼만 내게 넘긴다면 난 이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떠냐?”
칠채도인도 눈을 번득이며 재빨리 외쳤다. 그리고 그 조건은 전가 노인의 조건보다 훨씬 매혹적이었다. 만약 이 일이 사청과 청수, 사도환과 관련 있지만 않았더라면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허나 한제는 그들의 말을 못 들은 척 문 앞에 서서 두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제의 이러한 행동에 전가 노인과 칠채도인의 눈에서는 살기가 풍겼다. 그들은 앞을 막아선 폭풍 때문에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이 폭풍은 곧 흩어져 사라질 터였다.
잠시 후 거대한 문의 다른 쪽에서 콰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4대 장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기가 무섭게 문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풍에 밀려났고 넷이 힘을 합친 뒤에야 가까스로 멈춰 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야 한제가 세 번째 주혼을 차지했다는 사실과 그가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에게 포위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물론 네 사람의 등장에도 한제의 표정에는 미동도 없었다.
또다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장존이 문 근처에 나타났다가 칠채도인 근처까지 밀려났다. 저 멀리서 한제를 응시하는 그의 두 눈에서는 경악의 빛이 드러나 있었다.
잠시 후에는 저 멀리 안개 속에서 계외 선비들이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의 표정은 한제를 보자마자 복잡하게 변했다. 한제와 오래된 무덤에서 접촉한 적 있는 세 번째 선비였다.
계외 원고 선역에서 튀어나온 칠도종 제자들도 곧 이곳에 이르렀고 잠시 후에는 자하가 나타났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자하의 눈은 이내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인 한제에게 닿았고 이내 살기로 번득였다. 한제에게 연합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후로 그녀는 그에게 살의까지 느끼고 있었다. 만약 이길 자신만 있었더라면 진즉 공격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잠시 후에는 안개 속에서 남색 빛이 튀어나왔다. 남몽도존이었다. 그는 평소와 약간 다른 모습이었고 이를 눈치챈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남몽도존은 두 노인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한제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마씨 노인을 비롯한 귀일종 수련자들이었다.
그들이 나타난 순간 사람들은 심신이 진동했다. 그리고 모든 이의 시선이 귀일종 수련자에게로 돌아간 순간, 거대한 문 앞에 선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더 이상 누구도 귀일종 수련자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모든 이의 시선은 이제 한제에게 집중됐다.
내로라하는 강자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한제는 여전히 덤덤했다.
“모두 모였군. 아마도 모두가 이 혼을 원하고 있겠지?”
한제가 주위를 슥 둘러보더니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서 세 번째 주혼이 어스름한 빛을 번득였다.
세 번째 주혼이 나타난 순간, 남몽도존과 세 번째 선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특히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 4대 장군은 더욱 그러했다.
“이건 사냥이다! 너희들이 사냥꾼일 수도 내가 사냥꾼일 수도 있지. 날 죽이면 세 번째 주혼을 얻게 되겠지만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모두 선강 대륙의 혈맥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불사의 몸을 가졌다 생각하겠지. 허나 이 사냥에서는 너희들과 나, 둘 중 하나는 죽게 될 것이다! 난 선강 대륙 선인도 적지 않게 죽인 바 있지. 그럼 이제부터 이 잔인한 사냥을 시작하겠다.”
한제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서는 극도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다시 한 번 주위의 모든 사람을 훑어본 한제는 냉혹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뒤이어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오른손을 꽉 쥐자 세 번째 주혼은 한제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한제는 거대한 문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동부계의 문이여, 열려라!”
이곳에 모인 이들 중 이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세 번째 주혼을 가진 한제뿐이었다.
한제는 곧장 선강 대륙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다. 동부계의 핵심에서 광기 어린 살육을 자행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이 사냥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볼 작정이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동부계의 문에는 수직으로 균열이 생겨났다. 이 균열로 인해 거대한 문은 둘로 나뉘었다.
뒤이어 울려 퍼진 우렁찬 소리와 함께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두 문을 안쪽으로 여는 것 같았다.
이 순간, 문에서 일어나는 폭풍은 더욱 강해졌고 열린 문 안에서는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사람의 심신에 파고들어 질겁하게 할 만큼 끔찍한 소리였다.
그 옛날 무너져 내린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문이었다. 요란한 소리는 더욱 격렬해졌고 사람들은 그 소리에 고막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한제만이 문 앞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열린 문틈은 이미 1천 척에 가까웠으나 이조차도 전체의 3할 정도에 불과해, 문이 완전히 열리려면 아직 한참 더 남은 상태였다.
한제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문틈으로 들어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이었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그 말을 끝으로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반쯤 열린 문안으로 사라졌다.
한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문에서 발산되는 폭풍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고 소리도 한층 요란하게 울렸다. 극강의 폭풍에 모든 이는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군!”
칠채도인은 두 눈으로 살기를 번득이며 이를 갈았다.
한편 전가 노인이 소환한 흐릿한 허상은 더없이 싸늘한 눈으로 한제가 사라진 문 너머를 응시했다.
이 두 사람은 한제의 말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한제가 문안으로 사라진 지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문은 마침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폭풍이 더욱 강해지면서 사람들을 수만 척이나 밀어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폭풍은 꺼지듯 사라졌다.
이제 동부계 핵심으로 통하는 문은 더 이상 저항력도 발휘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또렷하게 그 문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나간 것은 칠채도인이었다. 몸을 훌쩍 날린 그는 눈부신 일곱 색채의 빛을 번득이며 거대한 문안으로 달려들었다.
전가 노인이 뒤를 바짝 쫓았다. 그로서는 칠채도인이 세 번째 주혼을 차지하도록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노인이 거의 동시에 사라지자 다음으로 나선 것은 장존이었다. 잔영을 그리며 순식간에 대문 앞에 이른 그는 그 앞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이를 악물고는 발을 들였다.
다음은 남몽도존이었다.
남몽도존까지 사라진 후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다른 이들도 하나둘 문안으로 향했다. 그들에게도 각자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을 통해 동부계로 들어왔던 이들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이 문을 통해 나가고 있었다. 마치 한 차례의 윤회를 경험한 뒤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사냥터
대부분이 문안으로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움직인 것은 오행성의 마씨 노인과 귀일종 수련자들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지고 나서야 현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거대한 문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더니 피식 웃으며 따라 들어갔다.
“저 녀석의 시험은 이곳에서 끝이 나게 될 터.”
동부계의 우주는 여전히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온 우주를 뒤흔들 듯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소리만은 서서히 약해지다가 곧 완전히 사라졌다.
동부계의 문은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들어와 보라는 듯 활짝 열린 채였다. 허나 이 동부계의 문안으로는 선강 대륙의 혈맥을 가진 자만이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아니면 남몽도존처럼 선강 대륙의 혈맥을 가진 자의 혼을 빌리거나.
동부계의 수련자 중 이러한 변고를 감지한 이들은 모두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나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외도 계내도 마찬가지였다.
청수나 사도환처럼 그 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그저 사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은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나올 사람이 새로운 칠채선존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한제가 가장 먼저 나온다면 그것만큼 완벽한 결말도 없을 터였다.
말하자면 거대한 문안에서는 동부계 전체의 미래를 결정지을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 결과에 따라 동부계는 계속해서 새로운 칠채선존의 동굴에 불과한 존재가 될 수도 아니면 큰 변화를 맞게 될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동부계 내의 일반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채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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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계의 문안으로 들어간 한제의 눈앞에는 흐릿한 세상이 펼쳐졌다. 곳곳에 널린 폐허를 통해 당시 이곳에서 벌어졌을 어마어마한 전쟁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 폐허의 끄트머리에는 거대한 솥이 하나 있었다. 공중에 뜬 솥 주위로는 갈래 갈래의 검은 기운이 맴돌았는데 이 기운은 마치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