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46
‘혹시 이광의 활도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은 건가? 어쩌면 내가 이대로 떠나는 게 오히려 저자가 바라는 것인지도 몰라! 만약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옥패로 이곳의 정보를 외부에 전달했을 때 오히려 4대 장군이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세 번째 주혼을 손에 넣을 수도 있어! 그러나 워낙 교활한 자라 정말로 부상을 입은 건지, 아니면 그런 척을 한 건지 알 수가⋯⋯.’
자하의 표정은 계속해서 변했다. 어떠한 확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제의 모습은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의 뒷모습에서는 초조해하는 기색이 슬쩍 드러났다.
‘부상을 억누르고 있는 건가?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저자를 죽이고 세 번째 주혼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을 칠채도인이든 전가 노인에게든 바쳐서 큰 공을 세우고 이후로는 선강 대륙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이를 악문 자하는 여전히 망설였으나, 이내 오른손을 들어 휘둘러 보라색 안개를 일으키더니 보라색 비검을 한제를 향해 날렸다.
‘일단 시도해보자! 만약 뭔가 수작을 부린 상황이라면 더욱 명확하게 행동했을 거야.’
그때, 보라색 비검이 눈 깜짝할 사이 한제로부터 1천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한제는 몸을 홱 틀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오른손 검지를 뻗었다. 공현기 수준의 힘을 품은 그의 검지와 보라색 비검이 맞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부상을 입은 척 연기하던 것을 중단하고는 체내의 수준을 모두 발휘했다.
일곱 번째 본원을 제외한 나머지 본원이 일제히 그의 주위를 맴돌며 오른손 검지에 녹아들었고 그로 인해 격렬하고도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거대한 소리에 비검은 바르르 진동하다가 보라색 안개로 무너져 내리며 뒤로 나가떨어졌고 한제 역시 휘청했다. 하지만 그는 반 발짝도 물러나지 않은 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기 어린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자하를 바라보았다.
여섯 개의 본원을 몸에 두른 그의 기세는 당당해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은 듯했다. 그는 그렇게 잠시 자하를 응시하더니 냉소하며 몸을 돌려 떠나갔다.
그 순간, 회오리 속 자하의 두 눈이 밝게 번득였다.
“부상을 입었구나! 게다가 가벼운 부상이 아니야.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연기였다면 더 나약한 모습을 보여 나를 꾀려 했겠지. 허나 그러지 않았어. 오히려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부상을 입었다는 진상을 숨기려 한 거야. 허장성세!”
그녀는 멀어져 가는 한제가 이곳을 떠나려고 하는 듯한 모습에 추측을 넘어 확신하게 됐다.
“틀림없어! 이한제,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을 게다! 여우처럼 교활한 너지만 이번만은 내게 들켰어!”
옥패를 거두어 넣은 자하는 탐욕 어린 눈빛을 번득였다. 한제를 따라잡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 마음에 그녀는 곧장 회오리에서 나와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감쌌던 회오리가 흩어져 사라졌다. 이제 자하에게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허나 그녀가 한 발을 내딛은 순간, 그녀의 몸은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자하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런!”
그 순간, 저 멀리서 한제는 몸을 홱 돌리며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더니 곧장 자하를 향해 돌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하에게는 어떠한 반응을 할 틈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에게는 이곳의 상황을 알리고자 옥패를 꺼낼 여력도 없었다. 붉은 검이 미간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그녀의 시야에 한제의 모습이 가득 들어찼다.
이내 그녀의 가슴팍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보라색 옷은 그 피로 물들어갔고 찢긴 옷자락 사이로 탐스러운 살결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옷 아래 감춰져 있던 여인의 속살이 보일 듯 말 듯 드러났으나 적에 대해서는 항상 냉철했고 여자에게 흔들리는 법이 없었던 한제로서는 미동도 없었다.
붉은 검에 꿰뚫린 자하의 가슴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항상 피에 굶주려 있는 붉은 검은 흥분한 듯 바르르 떨며 웅웅 우는 소리를 냈다.
자하는 창백한 얼굴로 피를 한 움큼 토해내더니 법보를 꺼냈다. 추락을 막으려는 속셈이었겠으나 보고만 있을 한제가 아니었다.
어느덧 한제는 자하의 눈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바짝 졸아든 자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본원의 위력을 담은 손을 후려쳤다. 거대한 화염으로 이루어진 주작이 된 화염의 본원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어 자하를 에워쌌다.
“꺄아앗!”
이글거리는 화염의 기세만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뒤이어 천둥번개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뇌룡이 나타나 포효하며 돌진하자 자하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의 본원도 속속 튀어나왔다. 또한 한제의 두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 있는 상태였다. 이 실핏줄들은 순식간에 튀어나와 자하의 사방을 봉쇄하고는 압박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살육의 본원이 한제의 손바닥에 녹아들었다. 대기가 서늘해지더니 붉은 눈송이가 몰아쳤다.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 벌어져 자하로서는 감히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콰쾅!
“쿨럭!”
요란하게 달려든 여섯 개의 본원에 자하는 연거푸 세 번이나 피를 토했고 추락도 멈추지 못했다. 심지어 법보를 꺼내기는커녕 결인을 그릴 여유조차 없었다.
내기
여섯 개의 본원이 몰아친 후 자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또 다른 본원의 위력을 품은 채 자신의 미간에 닿은 거대한 손바닥이었다.
꽝!
우렁찬 소리와 함께 자하는 또 한 번 피를 토해냈고 육신에는 붉은 균열이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뒤덮었다. 미간에 닿은 손바닥의 공격으로 원신마저 중상을 입은 자하는 점차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한데 그 무렵, 추락이 멈출 기미를 보였다. 비행 금지 규칙의 시한에 다다른 것이다. 허나 한제는 이 역시 계획에 포함시킨 상태였기에 규칙이 흩어져 사라지려는 찰나 달려들면서 오른손으로 상대를 가리켰다.
“정!”
정신술에 휩싸인 자하는 비행 금지의 규칙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추락을 멈추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영혼조차 멈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신술의 반작용을 억누르며 돌진한 한제는 순식간에 상대의 몸을 아홉 번이나 두드렸다. 그때마다 그가 주입한 봉인의 힘에 자하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아홉 번째 손짓에 마침내 봉인이 완성됐다.
거미줄과 같은 허상의 금제가 자하의 온몸을 남김없이 감쌌고 뒤이어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그녀를 그대로 거두었다. 채 열까지 세기도 전에 둘의 전투는 마무리됐다.
자하에게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기에 한제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허나 이미 완벽히 봉인해둔 상태라 언제든 원한다면 곧장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돌아온 붉은 검이 한제 주위를 맴돌았다. 한제는 한 걸음 내딛어 발아래 나타난 회오리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이 잔계에 벌써 세 차례나 사람이 들어왔다. 이제 어지간해서는 이곳에 들어오려 하지 않을 테니 떠날 시간이다.”
3백 개의 잔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잔계로 이동할 수 있었다. 통행을 위한 결인은 알지 못했지만 억지로 뚫고 나갈 수는 있었다.
★ ★ ★
3백 개의 잔계 중 하나. 백호 장군은 어느 수련성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백만 명에 이르는 일반인 병사들이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피가 강을 이루었고 쉴 새 없이 사람이 죽어나갔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이 정도 규모의 전쟁이 진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여기서 이런 살육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그래, 더 죽여라. 그럴수록 살기는 더욱 짙어질 터. 잠시 후 내가 그 살기를 모조리 흡수해주마. 그 살기를 이 잔계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제법 도움이 되겠지. 이 잔계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사람은 나다. 그러니 이곳의 모든 규칙은 내가 세웠지.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이 아니라면 누구든 이곳에서는 그 규칙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호장군은 칠채선존을 아주 오랫동안 따른 까닭에 이 3백 개의 잔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쟁 중인 양측에는 장군이 하나씩 있었다. 한쪽은 얼룩무늬 백마를 탄 채 하얀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등 뒤로는 호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백호 투구 사이의 두 눈은 서늘함과 흥분으로 번득였다. 하늘에 떠 있는 백호 장군의 허상과 일종의 연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백호 장군의 허상 맞은편에는 어두운 표정의 한 중년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몸은 흐릿해 바람이라도 불면 그대로 흩어질 것만 같은 사내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당황한 얼굴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사내 역시 허상으로 이곳에서는 백호 장군과 사내 둘만이 서로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백호 장군과 연계된 장군의 적군에는 망가진 철갑을 입은 병사가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낮은 기합과 함께 긴 창을 휘둘러 적을 처리했지만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분노와 두려움이 담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의 모습은 백호 장군 앞 허상의 중년 사내와 똑같았는데 바로 오행성 탑의 일곱 번째 층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때, 허상으로 허공에 떠 있던 백호 장군이 돌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대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얼룩무늬 백마의 장군 역시 고개를 번쩍 들어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냉소했다.
“허! 또 왔군. 이번에는 누굴까?”
오행성의 중년 사내 역시 고개를 들었다. 이 잔계에 회오리가 나타난 것을 감지한 그의 눈이 잔인하게 빛났다.
‘그래, 와라! 더 많은 자가 온다면 저 백호 장군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 빌어먹을 규칙!’
그때, 이 잔계 내 성역에 나타난 회오리는 빙글빙글 돌면서 흐릿한 인영을 나타냈다.
이내 회오리가 완전히 흩어져 사라지자 핏빛을 번득이는 붉은 검이 사방을 휩쓸면서 줄기줄기 붉은 파문을 일으켰다. 이 파문이 퍼져 나간 반경 1만 리는 순간 살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타난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데 한제가 등장한 순간, 백호 장군과 중년 사내의 표정이 급변했다.
백호 장군의 눈에는 격앙된 감정과 흥분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하늘 어딘가를 응시한 채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자가 이곳에 나타나다니, 하늘이 나를 돕고 있는 게야! 크하하핫!”
반면 중년 사내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비릿하게 냉소했다.
한제는 나타나자마자 신식으로 이 잔계의 온 우주를 뒤덮었다.
이 잔계는 한제가 방금 전까지 있던 곳보다 훨씬 넓어 곤허성역과 나천성역을 합친 정도였다. 하지만 이 안에도 수련성은 아홉 개뿐이었다.
한제는 곧장 세 번째 수련성에서 백호 장군과 중년 사내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더 자세히 그쪽을 살폈다.
‘이곳에는 이미 규칙이 제정되어 있지만 어떤 규칙인지는 모르겠군. 한데 어째서 그 둘의 모습은 왜 보이지 않는 거지?’
세 번째 수련성에 신식을 집중한 한제는 평원을 빽빽하게 채운 채 서로를 죽이고 있는 1백만 명의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가 싶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한제는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라 아직 이 잔계의 규칙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 잔계를 완벽하게 파악한 뒤 그 안에 녹아들 것인지, 아니면 그냥 돌아서 나갈 것인지 택할 생각이었다.
‘이곳의 규칙을 누가 세운 건지, 어떤 규칙인지 확인해봐야겠어!’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사라졌던 회오리가 다시 나타났다. 마치 곧장 이곳을 떠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도우, 어찌 그리 급하게 떠나려 하는가? 이곳의 규칙은 내가 세운 거라네. 기왕 들어왔으니 우리 내기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백호 장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제는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속으로는 차게 웃었다. 간단한 행동으로 원하는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기라니?”
“자네가 내가 세운 규칙에 죽을 것인지를 두고 내기를 하는 거지.”
“그래? 무엇을 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