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81
그때, 화염 안에서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튀어나와 강인 앞에 서더니 뜨거운 열기를 막아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코앞에 이르렀음을 자각한 강인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마음은 온통 두려움으로 잠식되어 있었다.
“내,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한편, 허운과 그의 스승은 지화가 폭발한 순간 이곳에 도착했다.
백발노인은 착지하자마자 표정이 급변하더니 제자를 데리고 황급히 뒤로 수천 척이나 물러났다. 거의 동시에 동굴 입구를 막은 문이 콰쾅 하고 무너져 내렸고 뜨거운 열기가 훅 빠져나와 사방을 뒤덮었다. 산골짜기의 모든 동굴은 불바다에 삼켜졌다.
사방의 산봉우리 역시 화염에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조짐을 보였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분분히 놀라 동굴에서 빠져나온 창룡종 제자들은 놀란 눈으로 이곳을 살폈다.
“선조께서는 외출 중이신데 어찌 이런 지화의 변화가 일어난단 말인가!”
허운의 스승은 어두운 안색으로 아래쪽의 불바다와 그 너머 강인의 동굴을 응시했다.
그때, 세 갈래의 강력한 기운이 창룡종에서 튀어나와 허운의 스승 곁에 나타났다. 두 사내와 한 여인으로 백발이 성성한 노인과 노파, 한 명의 중년 사내였다.
이들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특히 중년 사내는 공령기 후기에 달했다.
그는 하늘을 향해 낮게 호통 치듯 말했다.
“창룡종 제자들은 들어라! 지화는 1만 년에 한 번씩 이변을 보인다! 이번에는 그 이변이 조금 앞당겨진 듯하니 두려워 말고 속히 천수진(天水陣)을 배치하라!”
천둥 같은 그의 목소리가 반경 수만 리까지 퍼져 나갔다. 그러자 수만 명에 달하는 창룡종 제자들은 떨리는 심신을 가라앉히며 허공에 가부좌를 튼 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들의 온몸에서는 구름 같은 기운이 피어올라 거대한 진을 하나 형성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타난 진은 멀리서 보면 반경 수만 리를 뒤덮은 시커먼 구름층처럼 보였다. 새카만 구름은 허공을 뒤덮은 채 창룡종 제자들을 감싸고 있었다.
방금 나타난 장로들인 노인과 노파는 중년 사내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은 구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들이 무슨 신통술을 발휘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구름층 안에서 그들은 두 마리의 거대한 용으로 변신했다.
몸길이가 수십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이 용들은 구름층 너머로 거대한 머리를 드러내더니 지면을 불태우고 있는 불바다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하늘에서는 콰쾅 소리와 함께 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두 마리 용이 분출해낸 대량의 수증기 역시 광풍에 휩싸이며 지면을 압박했다.
“여 장로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중년 사내가 엄숙한 얼굴로 허운의 스승에게 물었다.
“지화의 다음 이변까지는 무려 3천 년이나 남았네. 한데 이렇게까지 앞당겨졌다면 필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
중년 사내의 시선은 백발노인에게서 허운에게로 옮겨졌다.
“조 장로 이번 일은 분명 정상적인 지화의 이변과는 다르네. 어쩌면 강인 때문일지도 몰라. 그가 어디선가 시체 두 구를 가지고 돌아온 이후 지화에 변화가 일어났네. 아마도 그자가 꼭두각시를 제련하는 사이 사고가 일어난 것 같아.”
여 장로라 불린 허운의 스승은 지면을 뒤덮은 불바다 속에서 타오르는 산봉우리 너머 강인의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인? 들어본 것도 같은데… 세 번째 세대의 제자였던가?”
중년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종주와 선조 모두 대혼문으로 출타 중이시네. 옥패를 보내놓았으니 돌아오시는 중일 터. 대체 강인이 가져온 시체들이 무엇이기에 지화의 변이까지 일으킨 것인지 확인해봐야겠군!”
중년 사내는 살기를 번득이며 말했다. 창룡종은 이번 지화의 폭발에 아무런 대비도 해두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적지 않은 건물과 동굴이 파괴됐고 선초와 종파에서 보관해오던 물건들 역시 재난을 피하지는 못했다. 적지 않은 대가였다.
곧장 몸을 훌쩍 날린 조 장로 주위로 수증기가 나타났다. 이 수증기는 폭이 30척에 달하는 기포를 형성해 그를 감쌌다.
불바다에 뒤덮인 대지에 이른 조 장로는 활활 타오르고 있는 강인의 동굴로 향했다.
동굴의 대문은 이미 무너져 내려 더 이상 접근을 막는 장애물은 없었기에 조 장로는 순식간에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면서도 경계심을 놓치는 않았다. 이미 이곳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허나 자신의 높은 수준에 대한 자부심과 자만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동굴에 들어선 순간 조 장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룡종 도포를 입은 한 청년이었다. 멍한 표정의 청년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두려움이 어린 눈으로 동굴 안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른 화염 기둥을 응시하고 있었다.
청년의 시선을 따라 동굴 안 깊숙한 곳에서 마치 화염으로 이루어진 기둥처럼 치솟고 있는 불바다를 본 순간, 조 장로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 역시 본원을 가지고 있었고 수준이 공열기 후기에 달했다. 창룡종 안에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반열에 올라 있었고 천우주를 통틀어도 충분히 상위권에 꼽힐 만한 강자였다.
그런 자답게 화염 기둥을 본 순간 그는 그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인영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인영 뒤로는 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순간 조 장로는 심신을 진동하게 하는 기운이 그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저게 대체 무슨 시체란 말인가!”
멍하니 주저앉은 채 겁에 질려 있는 강인을 어두운 표정으로 노려보던 조 장로는 이내 차게 코웃음을 치며 화염 기둥을 향해 다가갔다.
화염 기둥 앞에 이르자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기포는 펑, 펑 소리를 냈고 화염 역시 그 기포의 기운에 안쪽으로 갈라지면서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어떤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가 감히 우리 창룡종에 몰래 들어온 것인가! 내 너를 꼭두각시로 제련하지 못하면 천우주 모든 수련자의 웃음거리가 될 터!”
조 장로는 한 걸음 더 나서며 몸의 절반 정도를 화염 안으로 들이밀었다. 그러자 화염은 콰쾅 하고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올랐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기포를 파괴하지는 못했다.
한데 그 순간,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뜨자 조 장로의 안색이 급변했다. 저 백발 청년이 두 눈을 뜬 순간 무시무시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이 기운은 너무도 강력해 하늘과 땅을 뒤흔들 것만 같았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밝은 달 앞의 반딧불만큼이나 보잘것없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조 장로는 걸음을 멈추었다.
“꺼져라!”
한제는 서늘하게 외치며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동굴 안은 마치 한겨울처럼 싸늘해졌다. 심지어 동굴 밖으로도 서늘한 바람이 뿜어져 나가 내리던 비를 곧장 얼려 버렸다. 지면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던 불바다 역시 순식간에 꺼질 기미를 보였다.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조 장로였다. 그는 상대가 손을 휘두름과 동시에 몸을 감싼 기포가 쩌적 하고 얼어붙었다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지켜보았고 뒤이어 피를 토하며 동굴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쿨럭! 크으으…”
그의 두 눈이 두려움과 불신의 빛으로 물들었다.
“넌 누구냐!”
동굴 박 지면에 처박힌 조 장로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강 대륙에서의 첫 번째 전투
한편, 창룡종 제자들과 구름 속에서 용으로 변해 있던 두 장로는 조 장로가 끈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처박히는 모습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여 장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체 저 동굴 안에 누가 있기에 공령기 후기인 조 장로가 저리 처참한 모습으로 튕겨져 나온단 말인가?
그때였다.
“시끄럽다!”
강인의 동굴 안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사방이 고요해졌고 비 역시 우뚝 멎어버렸다.
이 광경에 여 장로는 더욱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규칙을 품은 목소리! 만물을 꼼짝 못 하게 만들다니… 필시 공현기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인데⋯⋯ 저자는 대체 누구지? 강인은 대체 누굴 데려온 것인가!’
그 무렵, 동굴 안의 강인은 조 장로가 한마디 말과 손짓 한 번에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본 순간 완전한 절망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방금 전 지화가 폭발하는 장면까지 직접 목격했기에 자신이 어마어마한 재난을 창룡종 안으로 끌고 들어왔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 이건 행운이 아니었어. 저자는 조종(祖宗)이야!’
그러는 동안, 화염 안의 한제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그의 신식은 방금 전 지화를 폭발시킨 순간 사방으로 뻗어 나간 상태라 주위에 자신을 긴장하게 할 만한 강자는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세 장로의 대화로 미루어 지금 외출 중인 이곳의 종주와 시조가 돌아오는 중임을 알 수 있었지만 이 넓고 광활한 곳에서는 제아무리 세 번째 단계 수련자라도 금방 당도하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선강 대륙은 동부계와 달랐다. 이 점만큼은 깨어난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강자가 넘쳐나는 곳 아니던가?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지화를 일으켜 주위에 두른 채 끊임없이 흡수해 화염의 본원을 자양하던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화염 밖의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감히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던 강인이 한 줄기 빛이 되어 화염 기둥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강인의 목을 틀어쥔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상대와 눈을 맞췄다. 그 순간, 강인은 머릿속에서 10만 개의 천둥이 내리치는 것만 같은 콰쾅 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꼈다. 이에 저항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겁에 질린 얼굴로 몸을 덜덜 떨었다.
“서, 선배님. 제발 사, 살려주십시오.”
한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상대의 목을 쥔 손을 통해 신식을 뻗어 상대의 심신에 주입하더니 기억을 뒤졌다. 곧 원하는 기억을 찾은 그는 손을 휘둘러 강인을 화염 기둥 밖으로 내던졌다. 강인은 좀 전까지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 다시 묶이고 말았다.
“종주는 공현기 초기, 선조인 두청은 공겁기 초기⋯⋯.”
한제는 미간을 팩 구겼다. 공현기 초기야 눈에도 차지 않을 수준이었지만 공겁기 초기라면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저물공간을 열 수는 없고 당연히 꼭두각시 이사도 꺼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겁기 수련자에 맞서기는 힘들어. 일단 적당한 곳에서 저물공간 문제를 생각해봐야겠군. 나머지 본원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확인해봐야 하고…”
아직 이곳 환경에 익숙해지기 전이니 요란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결정을 내린 그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대지가 다시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고 땅속 깊은 곳에서 더 많은 지화가 뿜어져 나와 동굴을 완전히 뒤덮었다. 심지어 일부는 동굴 밖으로 흘러나가기까지 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동굴 외부의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수준이 높은 조 종로는 단박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버럭 외쳤다.
“도망치려는 겐가!”
그의 안색은 어두웠다. 방금 전의 일만으로도 두려웠지만 그보다는 곧 돌아올 선조의 분노가 더욱 두려웠다. 선조는 어쩌면 조 장로를 목각 인형으로 제련해버릴지도 모른다. 이전에도 그런 일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기에 기우라고 볼 수는 없었다.
조 장로는 이를 악문 채 낮게 외쳤다.
“여장천, 손몽득, 한심! 저자가 도망치려 하네! 허나 절대 도망치게 둬서는 안 돼. 그랬다가는 선조의 분노를 사게 될 게야! 창룡종 모든 제자여, 천수진을 철수하고 도남술(道喃術)을 발휘하라!”
말을 마친 조 장로는 부상을 억누른 채 곧장 튀어 나갔다. 그의 뒤에서 안색이 급변한 여 장로 여장천도 이를 악문 채 몸을 날렸다.
구름층 안의 용 두 마리도 한 쌍의 남녀로 돌아왔다. 선조의 무시무시함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곧장 모든 힘을 발휘해 동굴로 달려들었다. 세 번째 단계의 네 장로는 힘을 모아 한제가 떠나지 못하도록 막을 생각이었다.
수만 명의 창룡종 제자들은 조 장로의 명에 따라 천수진을 철수하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중얼중얼 무언가를 외기 시작했다. 이 중얼거림은 하나로 합쳐져 기이한 힘을 형성하더니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도남술은 대혼문의 신통술이지만 대혼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창룡종 선조 또한 익힌 바 있다.
이 소리를 자세히 들어본다면 수만 명의 수련자가 반복적으로 외는 것은 단 두 글자 도와 혼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도혼⋯⋯ 도혼⋯⋯.”
이 소리로 이루어진 힘은 아래 대지를 뒤덮고 동굴 안으로 전해져 한제의 귀에도 닿았다. 순간 한제는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한 줄기 힘이 체내로 들어와 도념에 녹아들어 영혼을 분리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날카롭거나 자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기이한 마력을 가지고 있어 혼백을 육신과 분리해내고 심지어 도념과 경지에 간접적으로는 본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한제가 이곳에서 도망칠 수 없도록 막았다.
동부계에도 도남술과 비슷한 술법이 있지만 이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다. 현겁 수준의 수련자와 수차례 붙어 본 한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 술법이 얼마나 강력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