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80
강인의 얼굴에 격앙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이런 때일수록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다.
한제로부터 수십 척 앞에 멈춰 선 그는 불길한 낌새가 느껴지면 곧장 도망치고 동료들을 부를 준비까지 해두었다. 자기 혼자서 이 행운을 독차지할 수 없다면 종파에 보고해 공로라도 인정받는 편이 나을 테니까.
그가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손목에 순간 한 줄기 균열이 나타났다가 흩어져 사라졌다. 사라지기 직전 그 균열에서 검은 옥패가 튀어나왔다.
강인은 광기 어린 기운이 흐르는 이 옥패를 움켜쥐더니 힘껏 던졌다.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되어 날아든 옥패가 한제의 가슴팍에 떨어지자 콰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산이 진동할 정도의 충격이 일어났다.
이 충격에 수천 척을 뒤로 밀려난 강인의 두 눈에서는 흥분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저항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냥 기절한 게 아니라 정말 죽은 모양이군! 내게 이런 행운이 따르다니! 으하하하!”
강인은 길게 웃으며 곧장 몸을 날려 순식간에 한제 곁에 이르렀다.
옥패는 한제의 몸에는 조금의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고작 정열기 수준의 위력을 가진 이런 옥패는 몇 백 개를 동원해봐야 한제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터였다.
또한 피천관은 그 안에 녹아든 한제의 기운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강인이 아니라 몇 차례의 현겁을 통과한 수련자라 해도 지금 한제와 이 관을 분리시킬 수는 없을 터였다.
한제 바로 앞까지 다가온 강인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피천관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정확히는 관이 아니라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여인을 보고 있었다. 절세미녀는 아니었지만 얌전히 잠들어 있는 여인의 모습에 음심이 자극된 것이다.
“여인도 있었군! 좋아, 좋아! 저 여인 역시 이 강인만을 모시는 꼭두각시로 만들어야겠어! 생각만 해도 즐겁군. 크흐흐!”
강인은 혀로 입술을 핥더니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오른손 손목에서 다시 균열이 나타나더니 그 사이로 거대한 그물이 튀어나와 한제와 피천관까지 뒤덮었다.
뒤이어 강인이 소매를 휘두르자 검은 바람이 일어나 주위를 감쌌다. 뒤이어 강인은 훌쩍 몸을 날렸다.
“엄청난 이득을 얻었군! 하하, 하늘도 나를 아끼시는 거야!”
강인은 흥분을 감추지 않고 빠르게 돌진했다. 이제는 최대한 빨리 종파로 돌아가 꼭두각시를 제련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 ★ ★
독기로 뒤덮인 산속에 자리를 잡은 창룡종은 부근 산봉우리에 온통 동굴을 뚫어 제자들이 수련할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봉우리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제자 수가 5만 명에 달했지만 종파 밖으로 나가 강탈 대상을 찾거나 동굴에 틀어박혀 폐관수련에 열중했기 때문에 해마다 열리는 종회(宗會) 기간이 아니면 서로 마주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강인이 긴 빛을 그리며 창룡종 산봉우리로 날아들었다. 산은 독기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에게는 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라도 한 듯 안개들은 그 곁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독기를 뚫고 들어가자 곧 거대한 산골짜기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강인이 막 그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돌연 호통이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누가 감히 멋대로 창룡종에 진입하려 하느냐! 셋을 셀 동안 이름을 대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
“허운, 이게 무슨 짓인가?”
산골짜기 앞에 멈춰 선 강인이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외쳤다.
“허, 자네였군. 안개가 짙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네. 목표를 물색한답시고 밖에 나가지 않았던가? 이렇게 빨리 돌아오다니, 그물로 뭘 잡았기에?”
약 올리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골짜기 안에서 한 청년이 나타났다. 무척 잘생긴 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등이 굽어 있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뭘 잡아왔든 자네가 무슨 상관인가!”
강인은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몸을 훌쩍 날려 산골짜기 안으로 사라졌다. 곱사등이 청년은 악독한 눈빛으로 강인이 떠난 쪽을 응시하다가 서늘하게 웃었다.
“기이하고 위험한 곳에 보물이 있는 법!”
낮게 중얼거린 그는 외부인의 침입을 막아야 할 당직 임무를 꼭두각시에게 맡겨둔 채 산골짜기 안으로 향했다.
그 무렵, 강인은 산골짜기를 가로질러 멀지 않은 산봉우리에 이르렀다. 그 안의 동굴로 곧장 들어간 그는 왼손을 뒤로 휘둘렀다. 그러자 동굴의 문은 스르르 닫혔고 그 위에 드리운 봉인을 활성화했다. 하지만 강인은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는 듯 아홉 개의 꼭두각시를 소환해 문을 지키게 했다.
그때, 동굴 안에서 두 개의 시커먼 목각 인형의 두 눈이 어스름하게 번득였다. 강인은 이 목각 인형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스쳐 가더니 동굴 깊은 곳에 이르렀다.
동굴의 꼭대기에는 주먹만 한 야명주가 부드러운 빛을 발산해 동굴 안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그리 강하지 않아 동굴 안은 어스름했다.
바닥에는 폭이 1백 척 정도 되는 진이 하나 있었다. 야명주의 빛 아래 진은 보라색 기운을 발산했는데 그 덕에 이곳의 분위기는 한층 더 기이해졌다.
강인이 손을 휘두르자 한제가 진 위에 떨어졌다.
잔뜩 흥분한 얼굴로 두 손을 비비던 강인은 진 옆에 가부좌를 틀었다.
“최대한 빨리 제련해야 해. 허운 그 음흉한 자식, 분명 나를 의심하고 있을 거야. 이 시체를 발견하면 어떻게든 빼앗으려 들겠지!”
강인이 손을 휘두르자 창룡종에서 꼭두각시를 제련할 때 사용하는 재료들이 하나둘 진을 향해 날아왔다.
동시에 강인이 결인을 그린 손으로 내리 누르자 진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활성화되면서 보라색 회오리를 일으켰다.
회오리가 진을 따라 움직이는 사이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한 줄기 지화(地火)가 솟아올랐다. 그러자 동굴 안은 순간 열기로 가득 찼다.
강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더니 흘러내렸다.
“이 망할 지화는 열기가 너무 강해 화염의 본원을 가진 수준 높은 수련자가 아니라면 견뎌낼 수는 없겠지. 난 언제쯤 그런 수준에 이를 수 있을까?”
강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지화가 조금 더 빠르게 일어나도록 재촉하며 제련을 시작했다. 진에 재료를 하나하나 던져 넣는 그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네가 누구였든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이 강인이 제련해주마!”
진에서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이때, 또 다른 산봉우리의 동굴에서는 곱사등이 청년이 공손한 자세로 한 백발노인 앞에 서 있었다. 노인의 얼굴은 머리와 달리 짙은 보랏빛이었다. 그런 그의 몸에서는 세 번째 단계 공열기 초기에 이른 수련자의 기운이 발산됐다.
“겨우 그런 하찮은 일로 내 폐관수련을 방해했단 말이냐! 너와 강인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만⋯⋯.”
호통을 치던 노인은 돌연 말을 끊더니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들어 강인의 동굴 쪽을 내다보았다. 꼭두각시를 제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 저자가 가져온 꼭두각시에는 분명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어렸을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강인에 대해 잘 압니다. 강인이 저리 급하게 구는 것을 보면 분명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꼭두각시는 보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스승님께서 그것을 빼앗아 제게 주십시오.”
등이 굽은 청년은 바닥에 꿇어앉아 읍소했다.
줄곧 강인의 동굴 쪽을 내다보고 있던 노인은 한참 뒤에야 바짝 졸아든 눈동자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이 일어나는 것을 본 허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리 많은 지화를 뽑아낸 것을 보면 분명 무언가 있기는 하구나. 좋아, 날 따라와라. 저 녀석이 대체 무슨 꼭두각시를 가져왔는지 보자.”
노인이 소매를 휘두르며 동굴 밖으로 나가자 허운은 기쁨을 애써 숨기며 얼른 그 뒤를 따랐다.
한편, 그 무렵 강인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격앙된 채 진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이 결인을 그리는 한편 각종 재료를 던져 넣고 있었다. 눈빛은 갈수록 날카롭게 번득였다.
“내가 쓸 수 있는 재료는 다 썼다! 이제 완성만을 기다리면 돼! 하하!”
강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점점 더 빠르게 진 주위를 맴돌았다.
보라색 기운이 피어오르는 진 안, 지화로 휩싸인 한제의 온몸은 타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 화염은 그에게 해를 끼치긴 커녕 오히려 끊임없이 그의 체내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의 오른손에 문양으로 새겨져 있던 흡혈마수도 눈을 떴다. 흡혈마수의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빛이 번득였다.
지화의 변화
진정한 선강 대륙을 직접 보는 것도 그 기운을 느끼는 것도 처음이었다.
깨어나자마자 한제는 피천관부터 살폈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마음을 놓고 자신을 감싼 지화를 바라보았다.
화염의 본원을 가지고 있는 한제에게 지화는 위해를 가하기는커녕 회복을 도왔고 심지어 선강 대륙 힘이 담긴 그것은 화염의 본원과 융합해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이는 외부에서 온 화염의 본원과 선강 대륙 화염의 본원 사이에서 벌어진 일종의 전쟁이었다.
지화가 승리를 거두어 한제 체내의 화염의 본원을 집어삼킨다면 그것은 한제의 수준을 변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한제는 여전히 화염의 본원을 가지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화염의 주인은 되지 못할 터였다. 왜냐하면 그 화염의 주인은 선강 대륙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제가 가진 화염의 본원이 승리한다면 한제는 이 세상 모든 화염의 진정한 제왕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한제는 위에서 맴돌고 있는 보라색 연기를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서 나약한 수련자 하나가 주위를 맴돌며 그로서는 처음 보는 갖가지 재료를 던져 넣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재료들은 화염을 더욱 빠르게 타오르게 하면서 진의 작용을 도왔다.
진에서 발산된 줄기줄기 기이한 힘이 체내로 뚫고 들어와 한제를 개조시키려 하고 있었다.
한제는 명석한 자답게 순식간에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혼수상태에 빠진 나를 저자가 발견한 모양이군. 보아하니 꼭두각시와 관련된 진인 듯한데⋯⋯ 나를 꼭두각시로 제련하려는 건가?’
한제의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그는 자신이 깨어났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잔뜩 흥분해 주위를 맴돌며 제련을 이어가고 있는 강인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신식을 한 줄기 땅속으로 녹여 넣을 뿐이었다.
그는 지화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가진 화염의 본원에 비해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다.
신식을 뻗치는 사이 한제의 두 눈에서는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반경 수만 리의 모든 산봉우리 아래로 지화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 산맥은 말하자면 지화의 맥에서 뻗어 나온 줄기였다. 매우 커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가느다란 갈래에 불과했고 이 맥과 연결된 중심 줄기는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까지 뻗어 있었다.
한제는 신식을 재차 뻗어 지화의 맥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이내 지화의 맥이 이 땅 아래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게 됐다. 심지어 안쪽으로 파고들수록 지화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이곳의 화맥은 마치 거대한 화진(火陣) 같은데⋯⋯.’
한제는 곧 신식을 거두었다. 방금 막 깨어나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도 못한 상태로 무턱대고 탐색을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파고들기는 어렵겠지만 지화를 뽑아내 제련함으로써 내 화염의 본원을 자양할 수는 있을 터.’
한제는 결심하자마자 오른손으로 지면의 진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순간, 온 창룡종이 바르르 진동했고 반경 수만 리의 산 아래 지화가 무언가에 자극을 받은 듯 강인의 동굴로 일제히 몰려들었다.
“으헛! 이게 무슨 조화냐?”
갑작스러운 변화에 강인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수많은 보호막을 소환했다. 그의 뒤에서는 아홉 개의 꼭두각시와 두 개의 목각 인형이 나타나 난데없이 폭발한 화염에 저항했다.
그 순간, 진 안에서는 콰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불바다가 화르륵 일어나면서 화염 기둥을 형성했고 진에서 피어오른 보라색 기운을 모두 불태우며 시야를 차단한 화염 기둥은 활활 타올랐다.
이때 동굴은 불안정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쩌적 소리와 함께 줄기줄기 균열이 나타났다. 강인 앞의 아홉 꼭두각시는 그 화염을 향해 일제히 뛰어들었다가 폭발해버렸다.
두 개의 목각 인형 역시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머리가 저릿해진 강인은 절망적인 눈으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화염이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