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90
두청만이 아니었다. 화룡 역시 몸을 덜덜 떨었고 포악하던 눈빛에도 두려움이 드러났다. 애초에 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억지로 뽑혀 나온 녀석은 금색 문양을 보자마자 당장 도망치려는 듯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10만 척 이상을 뛰어넘은 녀석은 벌써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였다.
진신(眞身) 본원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화룡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금색 문양이 번득이면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는 결과조차 확인하지 않고 두청이 제압해둔 화룡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저 멀리서 대지를 진동시킬 정도로 우렁찬 소리가 울리더니 금색 문양이 빠른 속도로 돌아왔다. 그 안에서는 조그맣게 축소된 화룡이 몸부림치며 절망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를 본 두청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과연 대천존이 직접 만든 법보로구나! 보아하니 전력을 다한 것 같지도 않은데⋯⋯.’
넋이 나가 있던 두청은 얼른 미소를 지으며 한제에게 포권을 했다.
“자맥의 혼을 두 개나 얻게 됐군. 축하하네. 이 정도면 자네의 본원이 완전히 인간의 몸을 갖출 수 있겠어.”
그 말에 고개를 살짝 저은 한제는 말없이 오른손으로 금색 문양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 안에 갇혀 있던 화룡이 금빛에 휩싸인 채 튀어나와 화염 공 안으로 들어갔다.
비로소 완전한 자맥의 혼 하나를 흡수한 화염 공은 이글이글 타올랐고 본원의 몸통은 빠르게 인간의 형태를 갖춰갔다.
하지만 몸통이 절반 정도 응집됐을 때, 화염은 점차 사그라들면서 꺼질 듯은 기색을 보였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두청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한제의 심사를 알아차린 두청은 얼른 오른손을 들어 자신이 짓눌러놓았던 화룡을 가리켰다. 그러자 몸부림치며 포효하던 그 자맥의 혼은 화염 공으로 향했다.
“캬오오오!”
화염 공의 어마어마한 흡입력에 화룡은 비명을 질러대며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화염 공이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다.
1각 후, 한제의 화염 본원은 완전한 인간의 몸통을 갖게 됐다. 이제 남은 것은 머리뿐이었다. 인간의 몸통과 사지에 주작의 머리를 단 모습은 다소 기괴해 보였다.
한데 그때, 지금껏 흡수했던 화염의 힘을 모조리 소진한 화염 공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직 완전한 인간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화염의 본원에서는 강력한 위압감이 발산됐다.
이 위압감이 사방을 뒤덮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두청은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흠칫 놀랐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직 완전한 몸을 갖추지도 못했는데 이런 위력이라, 완전해지면 도대체⋯⋯?’
두청은 찬 숨을 들이마셨다. 언젠가 자신도 본원을 인간 형태로 응집시키겠다는 결심과 함께 두 눈에는 깊은 갈망이 드러났다.
‘188개의 지맥과 3개의 자맥으로도 완전한 인간 형태를 응집할 수는 없다니, 쉽지 않군. 하긴, 그러니 동부계에서는 인간의 형태를 갖춘 본원을 본 적이 없지. 그곳의 자원으로는 애초에 불가능할 테니까.’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본원을 인간 형태의 진신(眞身)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했다.
‘머리를 응집시키려면 화염의 힘을 대체 어느 정도나 갖춰야 할까?’
한제가 고민에 잠겨 있는 동안, 아직 완성되지 않은 화염의 본원은 불바다가 되어 그의 왼쪽 눈동자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한제의 왼쪽 눈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전처럼 화염 문양이 새겨지는 대신 두 개의 눈동자가 나타난 것이다. 덕분에 그 눈에서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살짝 흔들던 한제가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다 몸을 날리자 그의 뒤로 어떤 허상이 나타났다. 이 허상은 한제와 발을 맞추어 움직이는 듯했지만 그 생김새를 또렷하게 살필 수는 없었다.
두청은 또다시 찬 숨을 헉 들이마셨다.
‘본원이 인간의 모습을 갖추면서 나타난 그림자야! 그림자가 언제나 대혼문 선조의 뒤를 따르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주인이 하는 모든 것을 심지어 신통술마저 따라하는 그림자…’
한제 역시 이것이 본원이 진신으로 응집되면서 나타난 변화임을 알아차렸다. 한데 그의 뒤로 나타난 그림자는 천천히 옅어지다가 결국 완전히 사라져 더는 보이지 않았다.
“창룡종으로 가지. 잠시 그곳에 머물러야겠어.”
한제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두청은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했다.
“영광일세. 내 우리 창룡종 모든 제자를 동원해 지화맥을 찾도록 돕겠네. 장로까지 싹 다 파견하지!”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두청과 함께 날아갔다. 두 사람 뒤로 산맥 속 지화 자맥이 점차 말라갔다.
두 갈래의 빛이 천우주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특히 두청은 그 높은 수준 덕에 더욱 빨랐는데 이에 틈틈이 한제를 힐끔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체 수준이 어떻게 되는 거지? 공령기 절정? 한데 내 신통술을 두 개나, 그것도 아주 여유롭게 받아냈어. 수준을 감춘 걸까? 좋아, 어디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 보겠어!’
두청은 천천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고 그러자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그렇다고 대놓고 살필 수는 없지. 어쨌든 저자를 통해 대천존을 만나야 하니까.’
한제와의 거리가 벌어지는 듯하자 두청은 속도를 조금 늦추려 했다. 한데 그때, 그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한제의 두 눈에서 서늘한 빛이 번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손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고 그 속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캬오오오!”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에 두청은 화들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육신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그 비명에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기세가 어려 있었던 것이다.
‘대, 대체 무슨 흉수지?’
표정이 급변한 두청이 지켜보는 사이 검은 안개에서 흡혈마수가 튀어나왔다. 그 흉측한 생김새와 예리한 주둥이, 작은 산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에 두청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제는 앞쪽으로 한 발 나서 흡혈마수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흡혈마수는 쏜살처럼 돌진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었다.
“두 도우, 너무 느리군. 얼른 따라오게.”
멀리서 들려오는 한제의 목소리와 그 어마어마한 속도에 두청은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미 저만치 멀어진 한제와 흡혈마수가 보이지도 않자 두청은 자기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은 씁쓸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애써 충격을 억누르고는 전속력으로 한제를 뒤쫓았다.
‘그 많은 법보와 본원, 범상치 않은 흉수와 든든한 뒷배, 무려 일곱 개의 본원에 그중 하나를 진신으로 응집하기까지 한 상대에게 까불다니!’
두청은 자책과 동시에 비참함을 느꼈다.
‘젠장할, 난 왜 이렇게 형편없을까? 저자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군!’
생각할수록 괴로웠다. 더구나 한참을 가도 한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허나 대형 종파의 수제자와 다를 것 없는 저자와 달리 내 모든 것은 스스로 일궈낸 것이다. 그러니 저자는 그저 나보다 운이 더 좋았을 뿐!’
두청은 그렇게 생각한 후에야 마음을 좀 다잡을 수 있었다. 한제가 지난 2천여 년 동안 겪은 온갖 고난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보름이 지났다. 그 사이에 한제는 몇 차례 멈춰 서서 두청을 기다렸다. 흡혈마수는 지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녀석은 비행을 하면서도 수련자가 호흡하는 것처럼 선강 대륙의 기운을 흡수해 점점 빨라졌다. 속도만큼은 한제보다 몇 배는 빠를 듯했다.
반면 지난 보름 동안 쉬지도 못하고 질주한 두청은 몰골이 엉망이었다. 가끔 한제와 무시무시한 흉수가 멈춰 서서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좌절감은 깊어졌다.
‘후우, 전에는 일부러 금색 문양을 숨기고 있더니 지금은 내가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치고 나갈 수 있으면서 일부러 슬슬 따라잡혀 주는군. 사악한 놈!’
두청은 쓰게 웃었다.
다시 며칠이 지났을 무렵, 지칠 대로 지친 두청의 저 앞으로 창룡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옆에 선 한제는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쉬지 않고 날아온 흡혈마수도 쌩쌩해 보였다.
그들이 근처에 이르자 창룡종 제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 명의 장로는 곧장 상공으로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창룡종에 재앙을 안긴 원흉을 잡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뜻밖에도 선조는 헐떡이는 반면 한제는 매우 여유로워 보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선조의 절친한 벗을 맞지 않고 멍하니 뭣하고 있느냐? 이쪽은 나의 도우, 이한제다. 우리 창룡종을 도와준 것에 감사를 표하려고 특별히 모셔왔지.”
두 눈을 부릅뜨고는 제자들을 노려보던 두청은 소매를 휘둘러 사람들을 물렸다.
“이 도우, 이쪽, 이쪽으로⋯⋯.”
뒤이어 그는 한제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앞장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창룡종 제자들은 뜨악한 표정이었으나 선조가 저리 나오니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거참, 선조는 하찮은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 성격이거늘…”
중년 사내가 이전에 한제에게 잃었던 두 팔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저자와 맞붙었으나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으신 건지도 모르지.”
그 무렵, 두청은 한제를 창룡종 뒷산으로 안내했다. 그곳음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으나 산과 동굴들은 대체로 멀쩡했다.
동굴 안은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벽과 천장에는 머리통만 한 야명주가 빽빽해 동굴을 환히 밝혔는데 고개를 들면 마치 우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동굴에 마련된 여러 개의 석실은 연단이나 폐관수련 등 목적에 따라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이 도우, 누추하지만 건물과 동굴을 새로 지을 때까지 며칠만 여기서 지내주게. 새 동굴이 완성되는 대로 옮겨주겠네.”
두청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이 동굴 정도면 매우 훌륭한 편이었다.
바닥에는 해동(海東)에서 가져온 돌판이 깔려 있어 강력한 기운을 응집해주었고 곳곳에 박힌 야명주의 품질도 높았다.
연단용 석실은 더욱 훌륭했다. 그동안 두청이 오랜 시간동안 수집하고 강탈해온 귀한 것들로 꾸며져 있었던 것이다.
“괜찮네.”
한제는 동굴 안을 한 번 둘러본 뒤 가부좌를 틀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두 도우, 난 다른 주에서 온 터라 이곳 천우주 어디에 지화의 주맥이 있는지 알지 못하네.”
천우주는 너무 넓어 신식으로 뒤덮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지화의 주맥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청우 진인
한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파악한 두청은 그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천우주는 화(火) 속성을 띠고 있고 온 세상 화맥 대부분이 이곳에 있다네. 모든 줄기의 화맥이 커다란 진을 이루어 천외(天外)의 화우(火牛)를 진압하고 있다는 설이 있지. 화우는 막강한 신통술을 가진 소인데 선강 대륙이 처음 생겨날 무렵 우리 선족 선조에게 죽임을 당해 몸뚱이는 이 천우주가 되고 원신은 화맥에 진압됐다고 하네. 소문의 진위를 판별하고자 오랜 세월 수많은 이가 나섰으나 여태 실마리를 발견하지는 못했어.”
두청의 말대로 진위는 알 수 없었으나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었다.
“한데 다른 소문도 있다네. 줄기줄기 지화맥은 선족이 깔아놓은 게 아니라 화우의 경맥이라는 거야. 이 소문대로라면 지화의 주맥을 찾으려면 천외 화우의 온몸을 관통하는 경맥을 찾아야 할 걸세. 이 맥은 대혼문과 연결되어 있지.”
두청은 마지막 말을 할 때 금제로 사방을 봉쇄하고도 불안했는지 목소리까지 한껏 낮췄다.
“대혼문은 동주 9종 13문의 하나로 수많은 강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법술으로도 유명하지. 그곳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이렇게 신중해야 하네.”
두청의 목소리는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내게는 화염의 본원이 있어 그 경맥을 남들보다 잘 감지할 수 있다네. 매번 대혼문에 방문할 때마다 내 화염의 본원은 압박되곤 하지. 마치 대혼문이 극강의 의지로 뒤덮여 있어 모든 화염의 힘을 굴복시키는 것처럼. 내 예상대로라면 분명 그곳에 천우주 지화맥의 주맥이 있을 거야. 대혼문에는 화염의 본원을 궁극에 이르도록 완성한 수련자도 있고 그곳의 선조인 청우 진인은 자네처럼 화염의 본원을 진신으로 응집시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