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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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쉰 그는 잡무처에 있던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한참 망설이다가 석주를 꺼내었다. 그리고 이를 악문 채 다시 꿈속 공간으로 빠져들었다.
꿈속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한제는 사도환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까 그 시합에는 왜 나가지 않은 것이냐? 지금의 실력으로 보면 참가했었어도 현도종의 대제자라 뭐라나 하는 녀석을 단번에 죽여 버릴 수 있었을 텐데!”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선배님, 이 후배는 응기 3단계에 불과한 놈입니다. 어찌 그런 상대를 이기겠습니까.”
“헛소리! 내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이미 영동 단계의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너희 세상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응기 14단계에 해당하는 실력이지. 지난 30여 년간 본좌가 원영의 정화로 도와준 것이 그리 우습게 보이느냐? 네가 아직 응기 3단계라면 어찌 모든 제자들의 수준을 꿰뚫어볼 수 있겠느냐?”
한제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제가 정말 응기 14단계에 이른 수준이라는 말씀입니까?”
사도환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래, 내가 설마 네놈을 속이겠느냐! 이곳에서 수련한 덕에 네 실제 실력을 모르는 것뿐,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자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던 한제가 막 입을 열려던 그때 사도환이 다급히 말했다.
“네 사부 녀석이 널 찾는다, 얼른 나가 보거라!”
눈앞이 번쩍이는가 싶던 순간, 한제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손대주가 들어와서는 잠시 한제를 내려다보다가 툭 내뱉었다.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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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주가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자 한제도 황급히 뒤를 따랐다. 한제는 속으로 자신이 응기 14단계에 이르렀다는 사도환의 말을 떠올리며 든든해했다.
손대주는 곧장 약초밭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뜰에 도착한 그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제도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그를 따라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손대주는 돌로 된 탁자 위에 놓인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자야, 저걸 마셔라! 내가 널 위해 준비한 영약이다. 저걸 마신 후, 짐을 챙겨라. 어서 대산파를 떠나자.”
한제는 아무 말 없이 그 찻잔을 바라보기만 했다.
손대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직접 그 찻잔을 가져다가 한제에게 건넸다.
“대산파는 버틸 수 없어. 현도종의 시조(始祖)가 오면 지 목숨 챙기기에 바쁠 것이다.”
찻잔을 받아들지 않고 신식으로 그것을 확인한 한제는 차에 영기가 깃든 것을 확인한 뒤 말했다.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차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손대주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마셔라! 내가 직접 나서게 하지 말고!”
한제는 입을 다문 채 왼손으로 찻잔을 받아들고 손대주를 흘끔 바라보았다. 자신은 이미 응기 14단계에 이르렀다던 사도환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그는 기척 없이 오른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인력술을 통해 손대주를 단박에 짓눌렀다.
흠칫 놀란 손대주는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그 힘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어떻게 해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눈빛에 충격이 어렸다.
“이, 이건 무슨 법술이냐!”
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으로 다가가 손대주의 가슴팍을 살짝 때렸다. 그러자 손대주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렸고 그 틈을 타 한제는 손대주의 입에 찻물을 모두 쏟아 부었다.
손대주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는 흉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한제,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사부의 몸에 손을 대다니!”
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식으로 손대주를 살폈다. 그의 몸으로 들어간 찻물은 이미 모두 녹아들어 한 가닥의 은색 실과 같은 물체가 되어 있었다. 그 은색 물체는 혈관을 따라 머릿속으로 침투했다.
그리고 그 물체가 머릿속에 침투한 순간, 손대주의 흉악한 표정이 스르르 풀어지더니 마침내 평온해졌다. 그리고 눈빛이 점차 흐리멍덩해졌다.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부님, 저는 사부님을 해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 차를 마셨다면 함정에 빠진 것은 저였겠지요. 제게 먼저 악의를 품은 건 사부님 아니십니까?”
손대주가 멍청한 표정으로 불쑥 입을 열었다.
“차 마시면 안 돼.”
흠칫 놀란 한제는 손대주를 한참 바라보다가 물었다.
“왜 마시면 안 됩니까?”
“차에 삼선충초(三僎虫草)가 들어 있어.”
여전히 멍청한 표정으로 답하는 손대주를 보며 한제가 재차 물었다.
“삼선충초는 무슨 작용을 하죠?”
“잠깐 동안 상대의 모든 행동을 통제해 꼭두각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 중 하나야.”
한제의 눈빛이 살기로 번득였지만 그는 여전히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
“그걸 왜 제게 먹이려고 한 겁니까.”
그러자 손대주는 여전히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자신의 속내를 술술 털어놓았다. 손대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존에 알던 내용과 전혀 모르던 내용이 섞여 있었다.
한제는 손대주가 영기가 깃든 조롱박이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점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허나 손대주가 자신에게 수혼술을 펼치려 했다는 이야기나 화령초를 썼다는 이야기, 응기 1단계도 어려울 것이라 여겼던 한제가 3단계에 오른 것을 보고 비밀을 캐기 위해 삼선충초를 먹이려 했다는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듣는 것이었다.
모든 사정을 파악한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물었다.
“저와 관련된 일들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나요? 그리고 왜 처음부터 삼선충초를 쓰지 않았던 겁니까?”
“너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적 없어. 내게 득 될 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삼선충초는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어. 연말에 산 아래로 내려갔을 때 얻게 됐지.
삼선충초를 준 도우가 말하길, 축기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성공률이 10할이라더군. 원래는 조화단을 훔칠 때 쓰려고 가지고 있던 거였어.”
한제는 분노를 삭이며 차게 웃었다.
“제게 들킬 수 있다는 걱정은 하지 않으셨나요?”
“찻물로 우리면 들킬 염려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더구나 난 이 나이가 되도록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 무슨 짓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한제는 차가운 시선으로 손대주를 쳐다보며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짓이라도 할 생각? 저를 죽이기라도 할 생각이었나요?”
“그래야 한다면 당연히 그랬을 거야.”
순간 한제의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그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오른손으로 손대주의 정수리 부근을 내리쳤다. 그러자 손대주의 몸이 움찔하더니, 이내 얼굴에 달린 일곱 개의 구멍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제는 손대주의 시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사부인 사람을…
강압
한참 침묵하던 끝에 한제는 손대주의 시체를 수습한 후 대산파 밖으로 끌고 나가 산골짜기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손대주가 가지고 있던 짐을 챙겼다. 그 짐 안에는 제법 괜찮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침상에 앉아 신식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방 주위에 경계를 설정해 누군가가 이곳을 살펴보고 있다면 곧바로 알 수 있게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식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러다가 오산해의 벼락탄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여러 가지의 활용 방법을 상상해보았다.
허나 응기 3단계에 불과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 여겼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기에 거의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환에게 들은 바, 자신에게 응기 14단계에 이르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한제는 자신이 그어둔 한계를 벗어난 일들도 해내기 시작했다.
모든 처리를 완료한 한제는 석주를 꺼낸 뒤 생각에 잠겼다. 교류전이 열리기 하루 전, 석주 표면의 문자 부호가 모두 사라졌었다. 그리고 지금 보니 옅은 이파리 형태가 남아 있었다.
이에 대해 사도환은 다섯 개의 원소 중 물 원소가 충만해진 것이니 이제 나무 원소가 필요하다며, 대산파를 떠나 나무 속성의 재료를 찾으라 했다. 최대한 빨리 이 천역주의 나무 속성을 채우라는 이야기였다.
한제는 손대주를 제압하면서 자신의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고 어쩌면 사도환의 말대로 자신이 응기 14단계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주를 쥔 한제는 다시 서서히 꿈속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꿈속 공간에 도달하자마자 곧장 사도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좋아, 당시 이 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잘 기억해 둬라. 신선계는 굉장히 잔혹한 곳이야. 약육강식의 세상이지. 착하기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한참 침묵하던 한제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 앞으로의 수련은 축기 수준에 맞춰야 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저는 축기에 관련된 구결은 하나도 모릅니다.”
사도환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그 정도도 모를 것 같으냐? 허나 축기란 신선계에 입문한 단계인 만큼 꽤 어렵다. 조용한 장소를 찾아 바깥세상과 단절한 채 수련하는 편이 가장 좋지. 또한 축기 단계에 이른 순간 더 많은 영기가 필요하다. 샘물 따위는 버려두고 이슬을 준비해두는 편이 좋을 게야.”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할 수야 있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영동 단계, 그러니까 너희들 세상에서의 응기 단계란 천지의 영기를 이용해 체제를 바꾸는 기간이다. 축기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일 뿐이지. 넌 이제 거의 축기에 접어들었지만 응기 15단계에 이른 뒤에 제대로 수련하는 게 나을 것이다.
타고난 자질이 워낙 부족하니까. 비록 그간 내가 원영 정화를 통해 개조시켰다고는 해도 그 자체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내 몸뚱이가 있었다면 모르겠으나, 지금 상태로는 네 자질을 조금씩 개조해주는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사도환은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덧붙였다.
“지금 네게 공격 수단은 인력술밖에 없다. 내가 통달한 공격 방법들은 축기에 이른 뒤에나 익힐 수 있는 것이니, 너는 최대한 빨리 축기에 진입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황천승규결을 가르쳐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