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3
비검을 발판 삼아 바람을 맞으며 빠른 속도로 날아 대산봉을 지나치면서 한제는 산맥과 숲, 마을의 크고 작은 변화를 관찰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고향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눈빛이 흔들렸으나,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그곳을 지나쳐갔다.
대산봉이 있는 곳은 조나라의 북쪽 끄트머리로 구석진 곳에 있어 작은 마을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한제의 목표는 여기에서 만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조나라 최대의 도시, 천수성이었다.
천수성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여러 번 접해본 적이 있다. 비할 데 없이 큰 그곳에는 수십만 명의 조나라 대군이 주둔하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천수성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한제는 종종 그곳을 둘러보는 꿈을 꾸기도 했다.
신선이 되기 위한 삶을 살기 전까지는 과거시험에서 두각을 드러낸 뒤 수도의 대관이 되어 부모님을 봉양하며 잘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
한제는 머릿속에 맴도는 옛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서남쪽으로 향했다.
천수성
서남쪽으로 향하던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멈춰 섰다. 귓가에 사도환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열흘이나 쉬지 않고 날더니만 길을 모르는 모양이군?”
한제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거야 내가 알아서 잘 가고 있는데 자꾸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 끼어드는 바람에 길이 헷갈려서 그런 거죠.”
그러자 사도환이 싱겁게 웃으며 대꾸했다.
“오는 길에 숲이 아주 많았지. 어쩌면 그곳에 나무 속성의 식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다 너를 위해서였어.”
한제는 뭔가 대꾸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길 저 먼 곳에서 시작된 긴 마차 행렬이 천천히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 ★ ★
류산은 천수성의 위무표국의 우두머리로 체구는 그리 크지 않지만 힘이 넘쳤고 일처리가 확실해 천수성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였다. 심지어 고용주들도 그를 귀히 대접하여 그에게 일을 부탁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운송하고 있는 보석들은 정말이지 골치 아픈 존재였다. 게다가 운송해야 할 거리도 너무 멀어 이 일을 의뢰한 고용주도 갖은 힘을 들인 끝에야 겨우 류산에게 이 일을 맡길 수 있었다.
류산은 원체 호탕한데다가 사람 사귀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자라 운송 일을 맡아 처리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각지의 도적떼들과도 일면식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지금 상당히 흡족했다. 최근에 받은 의뢰를 무사히 마쳤기 때문이다. 좀도둑 녀석들을 몇 마주치긴 했지만 위험은 없었다. 도적떼도 한 번 마주쳤지만 그들은 류산을 보자마자 공격 태세를 거두었다. 이에 류산은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눈을 살짝 감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곧 천수성에 도착할 예정이고 이번에 고용주가 맡긴 일도 원만하게 처리한 상태였다.
“국주님, 이번 임무도 안전하게 완수했는데 고용주가 얼마나 떼어줄까요?”
곁에서 말을 타고 있던 건장한 청년, 양삼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이번에 운송한 물건은 굉장히 귀중한 것이었으니 우리도 한몫 크게 챙길 수 있겠죠?”
양삼 곁에 있던 시커먼 얼굴의 남자도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자 류산이 마침내 부하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말했다.
“고용주가 언제 우리를 푸대접하더냐? 쓸데없는 말일랑 말거라.”
“알겠습니다. 국주님이 그리 말씀하신 이상 이 양삼은 마음 편히 먹고 있겠습니다.”
그때, 호탕하게 웃으며 양삼에게 맞장구를 치려던 검은 얼굴의 남자가 순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국주님, 저기 저거… 사람입니까?”
류산은 그쪽을 가만히 응시했다. 멀리 떨어진 길 한가운데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경계심이 생긴 류산은 양삼을 불렀다.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거라. 여비가 모자라다면 돈을 좀 주고… 집밖을 나서다보면 어려운 때는 항상 있는 법이니까.”
양삼은 씩 웃으며 대답한 뒤 두 다리를 조였다. 그러자 그의 다리 사이에 끼인 말은 울음소리를 내며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와의 거리가 꽤 좁혀졌는데도 양삼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말을 더욱 재촉했다. 말은 더욱 빠르게 다리를 놀렸다.
류산은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양삼은 다 좋았지만 넓적다리를 경박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일의 내막도 모른 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실력을 뽐내곤 했다.
이를 본 검은 얼굴의 사내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양삼 녀석은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 그리 좋은가 봅니다. 그래도 녀석의 기마 기술만큼은 흠 잡을 데가 없죠.”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길을 잃은 한제였다. 그는 말을 탄 사내가 자신 쪽으로 내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말은 거침없이 단숨에 그의 앞에 당도했다.
양삼은 상대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진지해 보이는 그 청년은 말을 탄 자신이 부딪힐 듯 달려왔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한 양삼이 고삐를 당기자 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앞발을 들어 올렸다가 한제의 곁에 멈췄다.
양삼은 포권을 취하며 소리 높여 말했다.
“천수국 위무 표국의 양삼이라고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한제는 상대를 훑어본 뒤 미소를 지으며 마찬가지로 포권 자세를 취했다.
“천수성으로 가는 방향을 찾고 있었습니다. 방해가 되었다면 미안합니다.”
양삼은 흠칫 놀란 얼굴로 한제를 잠시 바라보았다. 특히 상대의 두 손과 관자놀이를 집중해서 살피던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무슨 일로 가시는지 물어도 될까요?”
한제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기에 양삼은 다시 한제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곧 표국의 일행들도 도착했다.
“양삼, 무슨 일이지?”
류산의 물음에 양삼은 말 머리를 돌리며 외쳤다.
“천수성으로 가는 길을 찾는답니다.”
고삐를 쥔 류산이 말을 몰아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오더니 한제에게 물었다.
“반갑군요. 나는 위무 표국의 국주 류산이라 합니다. 이름을 물어도 될까요?”
“이한제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천수성에 가고 있지요. 한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류산은 한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불쑥 물었다.
“혹시 과거시험에 응시하십니까?”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약간의 솜씨를 익히기 위해 천수성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류산의 표정이 온화해졌다. 적합한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시험이 머지않은 이때, 주위에 있는 마을의 과거시험 응시자들이 구름처럼 천수성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은 책을 가득 짊어지고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이 청년에게서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 과거시험 응시자라고 했다면 의심이 갔을 터였다.
“잘됐습니다. 저희도 마침 천수성으로 가던 중입니다.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희와 함께 가시지요.”
한제는 감격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포권 자세를 취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국주님.”
검은 얼굴의 사내는 한제를 흘끔 바라보며 웃었다.
“말을 탈 줄 아십니까?”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류산은 뒤쪽에 있는 마차를 가리키며 웃었다.
“감사하긴요, 집을 나서 여정을 떠나다보면 어려운 일을 맞닥뜨리는 순간이 항상 있더이다. 저기 타시지요. 나흘 정도면 천수성에 도착할 겁니다.”
한제는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한 뒤 마차에 올랐다. 그가 탄 마차 뒤쪽으로는 똑같은 마차가 열 대 이상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신식으로 그것들을 훑어본 한제는 모든 마차가 텅 비었다는 것을 확인하자 마음 놓고 가부좌를 틀었다.
양삼은 고삐를 당겨 한제가 탄 마차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헌데 여정을 떠나신 마당에 짐은 없으십니까?”
한제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강도를 만나서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흠칫 놀란 양삼은 한제를 한참 바라보다가 위로하듯 말했다.
“목숨이라도 건져 다행입니다. 요즘 세상은 워낙 위험하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제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신식으로 숲을 살핀 그는 두 사람이 그곳에 숨어 이 마차 대열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허나 마차들이 숲을 지나칠 때까지 두 사람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제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루의 여정이 끝나고 해가 산으로 뉘엿뉘엿 기우는가 싶더니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선두에 선 류산이 외쳤다.
“내일은 천수성 근처에 닿을 것이다. 고용주가 사람을 보내올 것이니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 바로 출발한다. 천수성으로 돌아가면 내 홍빈루에서 한턱내마!”
사내들이 크게 웃으며 말의 안장을 벗겨 한데 모아놓고 마차로 주위를 빙 둘렀다. 천막을 세운 후 잘 사람은 자러 가고 술을 마실 사람은 마셨다. 교대로 부근을 순찰하는 사람도 너덧 있었다.
양삼은 마차에서 내린 한제를 끌고 모닥불가로 다가갔다. 하루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양삼은 한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모닥불 가로 가는 동안에도 자신의 무용담을 과장되게 늘어놓았다. 한제는 그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어주었고 그럴수록 양삼은 더욱 자신의 이야기에 도취되었다.
모닥불 근처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표국주 류산과 검은 얼굴의 사내, 그리고 청색 옷을 입은 중년의 서생이었다. 그 서생은 얼굴이 하얗고 이마가 넓었으며 눈에서는 지혜로운 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한제를 본 류산이 웃으며 말했다.
“선생, 이쪽이 아까 말했던 천수성으로 간다는 사람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한제를 향해 소개했다.
“이쪽은 우리 위무 표국의 이 선생입니다. 이제 보니 두 분의 성이 같군요. 인사 나누시죠. 이 선생은 배움이 깊어 여러모로 박학다식한 분이십니다.”
중년의 서생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류 국주, 칭찬이 과하십니다. 보잘것없는 실력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