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62
이런 살육은 몇 차례나 반복됐다. 그리고 한 번 진행될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동시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피 안개는 두꺼워졌다.
하루 동안 네 번의 살육이 진행되었다. 매번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덕분에 한제의 몸을 두른 피 안개는 수백 척 두께로 늘어났다. 상당한 두께였지만 저 멀리 피 안개의 두께가 1천 척에 달하는 사내도 있었다.
그는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마치 왕처럼 하늘에 떠 있었다.
“크아아!”
마지막 살육이 끝난 뒤, 그 검은 머리의 청년은 돌연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의 몸을 두른 피 안개가 순간 꿈틀거렸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한 줄기 번개가 내리치더니 은색 용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났다.
냉랭한 눈으로 무정하게 아래를 훑어보던 용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사람들의 몸을 두른 피 안개가 솟아올라 그 용의 입속으로 흡수되었다.
왕처럼 떠 있던 청년은 포효하며 튀어 올라 은빛 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가 1만 척 높이로 솟아올랐을 때, 용은 돌연 몸을 틀어 은색 눈빛을 번득였다. 그러자 청년의 몸은 곧장 피와 살로 뭉개지더니 하늘에서 뚝 떨어졌고 그의 몸을 두르고 있던 피 안개는 용에게 흡수되었다.
모든 피 안개를 흡수한 용은 이내 사라졌다.
은빛 용이 사라진 순간, 한제의 눈빛이 맑아졌다.
‘저 용이 꼽추 사내가 말한 요제의 요검인가? 그렇다면 이곳에서 벌어진 살육으로 만들어진 피 안개는 그 요검의 식량인 모양이군.’
은빛 용에게 죽임을 당한 검은 머리의 청년은 어느 피 웅덩이 안에서 새롭게 부활했다. 살기를 모두 잃은 그는 일반인처럼 변한 상태였다. 이전과 같은 피 안개를 만들어내려면 또다시 그만큼의 살육을 해야 할 것이다.
하루의 살육을 마치자 사위가 고요해졌다.
한제는 피 웅덩이에 앉은 채 살심을 느꼈다.
“내가 살육 선결을 처음 배웠을 때 그 사람이 나의 경지는 생사윤회이니 살육 선결을 익힐 수 있겠다고 말했지.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피 웅덩이에서는 짙은 살기가 계속해서 한제의 체내로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뭔가 모호해. 살육 선결과 생사윤회의 연관이라⋯⋯.”
한제는 침묵했다.
살육 선결 (3)
날이 밝자 다시 살육이 시작됐다.
몇 번의 살육을 반복하는 동안 한제는 살육에 푹 빠져들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살념은 갈수록 커지고 묵직해졌다. 끊임없는 살육과 끊임없는 살념의 흡수를 통해 점차 살심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살육이 끝나고 나면 1백 명 남짓의 사람들이 허공에 남곤 했다.
한바탕 살육이 끝난 뒤 새빨간 눈으로 사방을 둘러본 한제는 지금 하늘에 떠 있는 사람이 50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은 더 이상 서로를 죽이지 않고 각자 흩어져 하나씩의 피 웅덩이를 차지한 채 묵묵히 호흡했다. 이때, 하루 동안의 살육을 거친 한제의 몸을 두른 피 안개의 두께는 5백 척에 달할 정도였다.
시간은 또 다시 흘러갔다.
또 한 차례의 살육이 시작되었다가 끝났다. 한제는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하늘에는 20명도 안 되는 사람만 남아 있었고 한제의 몸을 두른 피 안개의 두께는 7백 척이었다. 살아남은 다른 자들의 피 안개도 그 두께가 수백 척에 이르렀다.
하루, 또 하루…
이 붉은 세상 속에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한제는 알 수 없었다. 만약 다섯 갈래의 회색 기운이 완벽한 생의 낙인이 되어 그의 몸에 퍼지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몇 차례나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생의 낙인을 가진 한제는 날개 달린 범처럼 살육이 벌어질 때마다 두각을 드러냈다.
어느 날, 마지막 살육이 끝났을 때 하늘에는 단 두 명만 남게 됐다.
그중 하나는 한제였다. 그의 몸을 두른 피 안개의 두께는 수천 척에 달해 멀리서 보면 마치 붉은 태양처럼 보일 정도였다.
다른 한 명은 그 검은 머리의 청년이었는데 그의 몸을 두른 피 안개는 오히려 한제의 것보다도 두꺼웠다.
그때, 하늘에서 다시 은색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냉랭한 눈으로 아래쪽을 살피던 녀석은 다시 피 안개를 흡수하려 했다.
“크아아! 죽어!”
검은 머리의 청년은 다시 포효하며 맹렬히 솟구쳐 올라 은색 용에게 달려들었다. 용은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거대한 발로 허공을 내리눌렀다.
펑!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청년의 몸은 피와 살이 짓이겨진 덩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몸을 두른 피 안개는 은빛 용에게로 흡수되었다. 동시에 어느 피 웅덩이에서 청년이 부활했다. 전신에서 흘러 넘쳤던 살기를 잃은 그는 묵묵히 웅덩이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하늘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때, 은색 용의 눈빛이 한제에게 향했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피 안개에서 벗어나 땅으로 내려섰다. 용은 한제가 남긴 피 안개를 흡수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용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한제는 맑은 눈빛으로 피 웅덩이로 향했고 그곳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분분히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피 웅덩이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의 입가에 점차 미소가 피어올랐다. 미소는 점점 커지더니 결국 큰 웃음이 되었다.
“크흐흐. 하하. 하하하하!”
한제의 웃음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들은 모두 살념을 흡수하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살육 선결… 살념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을 때 그 생기로 낙인을 만드는 것,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삶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었어. 이것이 곧 생사윤회! 삶과 죽음의 전환! 그 은색 용이 흡수한 피 안개 역시 그렇다. 그것으로 체내에 생기를 공급하는 거야. 사실 이 붉은 세상의 진 또한 같은 원리겠지. 그래, 그거였어!”
한제의 눈이 밝게 빛났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다섯 갈래의 회색 기운이 곧장 생의 낙인에서 빠르게 응집되어 한제의 가슴 앞에서 교차되더니 하나의 회색 회오리를 만들었다. 이 회오리는 빠르게 회전하면서 점점 한제의 가슴팍에 섞여 들어가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한제는 자신의 기운이 급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붉은 세상에서 나타난 적 없던 살육의 기운이 한제의 몸에서 폭발했다.
순간, 피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눈을 번쩍 뜨더니 한제를 돌아보았다.
“살육의 기운!”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육 선결의 기운이 확산되는 순간, 한제로부터 가장 가까운 피 웅덩이들 안에서 뭔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몇 번이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지 모를 사람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들의 무너져 내린 육신에서는 회색 기운이 줄기줄기 발산되어 살육의 기운을 형성했다.
순간, 1백 개가 넘는 살육의 기운이 나타나더니 회색 유혼처럼 한제 주위를 맴돌았다.
뒤이어 한제를 중심으로 알 수 없는 기운이 파문처럼 퍼져나갔고 그 기운이 닿은 피 웅덩이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이들은 회색 기운으로 변해갔다.
붉은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 줄기 한 줄기의 회색 기운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 하나하나가 살육의 기운이 되어 한제 주위를 맴돌았다.
이렇게 무너져 내린 사람들은 더 이상 부활하지 않았다. 모두 진정한 죽음을 맞은 그들은 육신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맑은 눈빛을 되찾았다. 그 맑은 눈빛에는 비로소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깃들어 있었고 하나같이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멀리 떨어진 피 웅덩이에 앉아 있던 검은 머리 청년이 돌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붉은 눈에서는 붉은 안개가 드러났다. 그는 낮게 포효하며 이를 악물었고 유일하게 붕괴되지 않고 남았다.
3792개의 회색 기운이 한제를 맴돌며 춤을 추었다.
한제는 갑자기 피 웅덩이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이 붉은 세상에 남은 것은 그와 검은 머리의 청년, 단 둘뿐이었다.
하늘에서 돌연 한 줄기 벼락이 내리치더니 다시 은색 용이 나타났다. 용은 거대한 두 눈에 짙은 살기를 담아 한제를 내려다보았다.
“캬오오!”
은색 용은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며 한제를 향해 발을 뻗었다. 하늘을 무너뜨릴 듯 강력한 기운이 훅 끼쳐왔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몸을 맴돌고 있는 3792개의 살육의 기운이 짙은 살기를 번득이며 하늘로 치솟았다. 이어서 이 3천 개가 넘는 회색 기운은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렬한 위력을 내뿜으며 예리한 검처럼 변해 은색 용의 발과 맞닥뜨렸다.
쾅!
붉은 세계가 뒤흔들렸다.
은색 용의 발은 살육의 기운들에 충돌해 조각조각 찢겼다.
“크오오!”
용은 격렬한 포효를 내질렀고 두 눈에는 전에 없던 강력한 살기가 번득였다. 한쪽 발을 다침으로써 용은 더 이상 완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지만 지금 상태로도 요장 하나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요제의 검인 이 용에게는 감히 덤벼들지 못할 위엄이 있었다. 녀석은 한낱 식량에 불과한 미물의 도발에 분노가 치솟았다.
은색 용은 몸을 훌쩍 날렸다. 한 줄기 검광이 녀석의 입에서 나타났는데 그것만으로도 이 붉은 세계는 무너져 내릴 듯했다.
콰르릉!
검광은 공간을 무너뜨리며 달려들었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은색 용이 있는 쪽이 아니라 이 세계의 입구 쪽이었다.
그의 뒤로 수천 개의 살육의 기운이 따라붙으며 하나하나의 낙인이 되어 한제의 미간에 쌓여갔다.
눈 깜짝할 사이, 3792개의 생의 낙인이 모두 한제의 미간에 녹아들더니 곧바로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이제 한제는 3천 개가 넘는 방어막을 두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그 은색 용의 검광이 한제를 내리쳤다.
쾅!
순간 한제의 전신을 뒤덮은 생의 낙인이 미친 듯이 번득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제는 발을 멈추지 않았고 이내 입구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사라진 순간, 이 붉은 세계에 남은 유일한 사람인 검은 머리의 청년이 외쳤다.
“사… 살려줘!”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았다.
그때, 은색 용은 허탈한 모습으로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낱 미물이 자신의 검광을 완벽히 막아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이 용에게는 엄청난 치욕이었다.
“캬오오!”
용은 더욱 분노해 포효하더니 검은 머리의 사내를 본 척도 않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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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요성 중앙에 있는 제도의 황궁 검각.
이곳은 어떤 장식도 없이 그저 텅 비어 있었다. 지면에 거대한 붉은 진이 그려져 있고 그 중앙에 뱀 모양의 은색 검이 꽂혀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