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77
북소리가 광장을 휩쓸고 하늘 끄트머리까지 퍼져 나갔다. 한제는 조금도 밀려나지 않은 채 3촌 정도 튕겨 나온 주먹을 다시 휘둘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둥, 둥, 둥, 둥-!
네 번이나 연이어 북이 울렸다. 그러자 강한 기세의 폭풍이 북으로부터 사방으로 확산되었다.
광장의 대지에 마디마디 균열이 일며 고리 형태로 미친 듯이 퍼져 나갔다. 하늘도 격렬하게 진동했고 구경꾼 중 많은 사람이 피를 토했다. 하나로 합쳐진 다섯 번의 북소리에 극심한 내상을 입었고 몇몇은 그 자리에서 가사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여덟 요수 중 천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광장에 서 있던 총관도 표정이 변했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놀란 이유는 다섯 번이나 북을 울렸다는 사실보다도 그러는 동안 한제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돼!”
황부수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흥, 말도 안 되기는…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고.’
현부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한 내상을 생각하자 후회가 밀려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일곱 명의 요수들이 칼처럼 예리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 아래층에 앉은 부수들은 더욱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다섯 번의 북소리에 따르는 반동은 하늘을 뒤흔들 정도였다. 그 격렬함은 요장 급이 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묵비처럼 천부적인 힘과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네 번 연속의 북소리에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허나 한제는 연속으로 다섯 번이나 북을 울렸고 그렇게 중첩된 반동에도 전혀 밀려나지도 않았다. 마치 다섯 번의 북소리에 아무런 반동도 실려 있지 않은 것처럼…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다섯 번이나⋯⋯?”
“뭔가 비겁한 수를 쓴 것이겠지!”
“하… 하지만 묵비를 능가하지는 못할 거야!”
구경꾼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요장들도 대부분 찬 숨을 들이켰다.
우삼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제와 자신을 비교해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요장들 중 유일한 여인인 사련 또한 투구 너머의 눈동자를 번득이며 한제를 살폈다.
진도는 곁에서 놀란 표정으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는 석소에게 말했다.
“말하지 않았나. 내 사제는 굉장히 강하다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석소는 차게 코웃음을 쳤지만 안색은 변한 상태였다.
요장 중 유일하게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은 묵비였다. 그는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 시선을 돌린 채 말없이 서 있었다. 반면 곁에 있던 대나검종 수련자는 한제를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 무렵, 총관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천요고를 바라보면서 주먹을 바르쥐었다.
한제는 천요고에서 손을 뗀 뒤 총관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모든 사람의 눈빛은 일제히 한제와 총관에게로 향했다.
“제가 이겼군요.”
한제는 총관을 가리키며 덤덤하게 말했다.
한제는 생의 낙인으로 견뎌냈지만 너무나 강한 반동에 생의 낙인을 2천 개 정도나 잃게 됐다. 허나 생의 낙인은 끊임없이 생장하고 번성하므로 곧장 다시 만들어졌다. 이것이 바로 생의 낙인이 가진 가장 놀라운 부분이었다.
한제를 바라보던 총관은 차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는 ‘다섯 번 넘게’라고 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냐? 너는 다섯 번을 쳤을 뿐이니 나와의 내기에서 비긴 것이지 이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말에 구경꾼들은 총관의 비겁함을 속으로 비난했다.
반면 한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조용히 총관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둥-!
여섯 번째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구경꾼들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폭발적인 반동이 휩쓸고 지나갔다. 한제의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지면의 균열이 다시 요동쳤다. 마치 땅속에서 용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총관을 빤히 바라보며 또다시 주먹을 다시 휘둘렀다.
둥-!
일곱 번째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선 북소리로 일어났던 반동이 성난 파도 같았다면 일곱 번째 북소리의 반동은 폭발적인 대홍수와 같았다.
콰아아!
묵비는 여섯 번째 북소리의 반동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일곱 번째 북소리의 반동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순간, 하늘과 땅의 기세가 변했다. 북소리는 폭풍을 일으키며 천요고를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하늘에서는 벼락이 요란하게 내리쳤다.
허나 한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하늘로 곧게 솟아올라 오른손을 천요고에 댄 채 총관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일곱 번입니다!”
총관은 경련이 일어난 얼굴로 한제를 노려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널 요제 폐하께 추천해주마!”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저와의 내기는 그게 아니었을 텐데요?”
“무엄하다!”
총관이 소리쳤다. 그의 눈에서는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다시 말해 봐라!”
“저는 총관님의 한쪽 손을 원합니다!”
한제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광장의 모든 이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총관에게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다시 주먹을 휘둘렀고 여덟 번째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둥-!
여덟 번째 북소리는 하늘을 가득 뒤덮었고 한제의 목소리를 실은 채 무수히 많은 메아리를 만들어내며 울려 퍼졌다.
“저는 총관님의 한쪽 손을 원합니다!”
온 세상에 오로지 한제의 목소리만 남은 것 같았다. 마치 한제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목소리라도 되는 듯, 하늘이 울고 땅이 포효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세에 총관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난 그의 귓가에 웅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그는 하늘의 위엄과 맞닥뜨린 듯한 착각과 함께 자신의 팔을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이 불쑥 일었다.
구경꾼들은 입을 떡 벌린 채 쑥덕거리는 것도 잊었고 때문에 주위는 적막에 휩싸였다. 그들의 시선은 아직도 하늘에 꽂힌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처음으로 시선을 하늘에서 한제에게 옮긴 것은 묵비였다.
요수들은 미묘한 표정으로 한제를 살폈고 오로지 천수만이 한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남아일언중천금이지!’
일곱 요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금 충격을 받은 게 자신만은 아님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의 위엄을 담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천수가 감았던 눈을 살짝 떠 혼탁한 눈빛으로 한제를 살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한편, 넋이 나간 황부수 곁에서 현부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총관은 재빨리 근엄한 표정으로 한제를 노려하며 느릿하게 말했다.
“목소리와 북소리를 섞어 하늘의 위엄을 빌리다니. 허나 이는 북소리의 위력을 빌렸기에 가능했을 터. 네 힘만으로 그게 가능하겠느냐?
총관은 비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만약 저 북을 열다섯 번 울린다면 하늘에 대고 맹세컨대, 내 스스로 팔 하나를 잘라 주겠다! 허나 그럴 수 없다면 닥치거라. 더 소란을 피운다면 더는 참지 않고 네놈을 끝장내겠다!”
한제는 콧방귀를 뀌는 총관을 냉랭한 눈으로 응시했다. 일전에 보인 태양의 창으로 미루어 총관은 문정기 중기 절정에 상당하는 자였다. 게다가 그자의 공법이 흉포했다. 그의 신통력은 아마도 태양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신통력 덕에 그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 중에서도 강한 편에 속해 보통의 문정기 후기 수준의 사람과도 겨룰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상대의 약점이라면 태양이 없는 밤에는 힘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환한 대낮이라면 한제로서는 그에게 이길 방도가 없지만 음기가 강한 한밤중에 붙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했다.
표정이 변한 천수(天帥)
한제는 천요고로 시선을 돌렸다. 여덟 번째 북소리의 반동으로 한제의 몸을 두른 생의 낙인 중 3천 개 정도가 파괴된 상태였다.
‘한 번만 더 울리면 10위 안에는 들 수 있다. 내상을 입어가면서까지 그 이상 울릴 필요는 없어. 허나 이 천요고의 소리는 강변의 거문고 소리처럼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북을 치는 것 자체가 도는 아닐 터이나 이 북의 반동에 실린 힘에는 거역이 깃들어 있다. 내가 북을 치는 데 쓴 힘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반동은 자연스럽지 않은 거역의 뜻이 실려 있는 것이지. 자연스러움과 그 반향에는 천도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한제는 기이한 눈빛으로 천요고를 주시했다.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주먹을 휘둘렀다.
둥-!
아홉 번째 북소리의 반동은 밀려드는 홍수처럼 한제의 오른손을 타고 체내에 충격을 퍼부었다. 거역의 힘이 실린 반동이 온몸에 흘러들면서 한제의 몸을 두른 생의 낙인은 빠르게 소멸되어 갔다. 1백, 8백, 1천, 1천 2백, 3천 4백, 3천 7백…
처음으로 모든 생의 낙인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 생의 낙인이 붕괴되었을 때, 천요고의 반동력은 한제의 체내로 들어와 파죽지세로 경맥을 따라 질주했다. 마치 폭풍에 휩쓸린 것처럼 머리카락이 휘날렸고 옷이 펄럭였다.
‘큭! 이번은 훨씬 강력하군,’
한제는 무려 열아홉 걸음을 밀린 후에야 겨우 멈춰 섰다. 붉게 상기됐던 얼굴은 잠시 후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총관은 한시름 놓은 듯 냉소를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열다섯 번은 불가능하다. 고작 아홉 번째에 저 정도인 걸 보니 열 번째가 한계일 것이다.’
주위는 고요했다. 묵비를 뛰어넘는 아홉 번째 북소리에 사람들은 이한제라는 이름이 천요을 밝게 빛내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요제는 능력 있는 자라면 출신을 묻지 않고 기용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천수 역시 원래는 수련자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경꾼들은 모두 눈도 깜짝 않고 한제를 응시하고 있었다.
운려해 역시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한제에게서 나타난 변화는 너무나 컸다.
“아홉 번이라니⋯⋯ 나도 저렇게는⋯⋯.”
운려해는 쓰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제는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덤덤한 얼굴로 천요고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