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35
한참 고민하던 그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으나, 재빨리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약탈은 졸렬한 짓이야. 게다가 내게 필요한 양의 선옥을 보통의 수련자가 가지고 있을 리도 없지. 문정기 수준 수련자이거나 이 나천성역에서 이름을 떨치는 가문의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말이야. 또한 다른 사람의 선옥을 마구잡이로 빼앗았다가는 이곳을 떠나야 할 텐데 갈 곳도 마땅치 않아.”
그는 이내 저물대에서 몇몇 연기(煉器) 재료를 꺼냈다. 뒤이어 한 움큼 원신의 기운을 토해내 그 기운으로 재료들을 감쌌다.
잠시 후 재료들은 녹아내리면서 한제의 신식이 지시하는 대로 세 개의 틀을 이루었다.
하나는 비검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리거울이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비녀였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금제를 하나하나 그 안에 녹여냈다. 점차 세 법보에는 위엄이 어리기 시작했고 한 줄기 전광이 흘렀다.
금제를 다 건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당시 주작성에서 만났던 세월의 경지를 가진 수련자를 떠올리고는 구리거울에 세월의 경지를 주입했다.
잠시 후 다시 생각에 잠겼던 한제는 류미의 천환무정도를 떠올리며 각각의 허상들을 상상했다. 그러더니 눈에서 밝은 빛을 쏘아내 비녀에 녹여 넣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비검에는 어떤 경지도 녹여 넣지 않고 나이(挪移) 결인을 찍었다.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세 개의 법보는 반짝이는 빛이 되어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회전하면서 눈부신 빛을 발했다. 황홀한 광경이었다.
이 세 법보의 품질은 하급 선보에도 미치지 못하나 선력으로 구동이 가능하고 그 안에 포함된 경지의 신통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선력이 없는 영변기 이하 수련자라도 영력을 이용해 구동시킬 수 있을 것이나, 그 경우 위력이 훨씬 떨어질 터였다.
“준선보(準仙寶)!”
한제는 가볍게 중얼거렸다.
이는 그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법보였다. 사실 한제는 법보를 만들고 제련하는 능력은 부족했다. 그가 법보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은 주작성 화분국에서 얻은 연기 옥패에 기록된 내용뿐이었다.
그러니 상식적으로는 그가 이런 법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허나 한제는 자신만의 도를 가지고 있었고 수준도 문정기에 이른 상태였다. 또한 그는 금제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한제는 법보들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로서는 이 법보들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구리거울만 쥔 채 눈으로 줄기줄기 금제의 빛을 번득였다.
“만약 이 법보에 전수의 효과를 입힐 수 있다면 가격을 적잖이 올릴 수 있을 거야.”
한제는 두 눈을 감고 끊임없이 금제를 쏟아부었다.
일반적인 법보에 찍을 수 있는 것은 신식뿐으로 그것은 사용자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낙인 같은 것이지만 누군가가 신식을 지워버리면 더 이상은 통제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유산으로 전수받은 보물에는 신식 외에도 전수의 법결이 찍혀 있기 때문에 누군가 빼앗아간다 해도 통제 권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전수의 효과가 있는 법보는 가격이 높았다. 존혼번과 사신차 등도 전수 법보였다.
한제는 눈을 감은 채 전수의 비밀에 대해 생각했다.
전수할 수 있는 보물을 만드는 방법은 오직 법보를 만들고 제련하는 연기(煉器) 실력이 뛰어난 자들만이 알고 있는데 그런 방법들은 쉽게 유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런 법보의 가격이 높은 것이다.
한제는 미간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도저히 모르겠군. 어쩌면 내가 너무 편협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전수의 효과를 거는 대신 법보에 특수한 봉인을 건다면? 그리고 그 봉인을 여는 방법이 기록된 옥패를 같이 판다면? 그럼 진정한 전수의 효과가 깃든 법보는 아닐지라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그 방법으로 강한 봉인만 걸 수만 있다면 분명 전수의 효과와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제는 눈에서 금제의 빛을 번득이며 왼손으로 결인을 그려 구리거울에 금제를 하나 걸었다. 이어서 금제를 계속해서 그려내 결합시키더니 검은 빛을 번득이는 복잡한 문양을 만들었다.
비검
한제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손으로 방 한쪽에 있던 촛대를 가리켰다. 그러자 촛대는 곧장 타오르면서 연기를 피워 올렸고 천장의 구슬에 흡수되기 전에 연기를 끌어와 그 위에 금제의 문양을 찍었다. 문양은 곧장 녹아내리더니 한 갈래 검은 연기가 되어 구리거울 안으로 파고들었다.
뒤이어 한제는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더니 방금 만든 금제를 풀 수 있는 결인을 옥패에 기록했다.
그 무렵, 하늘이 점차 밝아져오고 있었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사방의 짙은 영력에 정신이 맑아졌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한제는 여유롭게 걸어 출구를 지나쳐 갔다. 여전히 바위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청년이 경멸 어린 눈빛으로 그런 한제를 지켜보며 혀를 찼다.
“외부 수련자들은 최대한 많은 영기를 흡수하려고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호흡만 하는데 저자는 영기가 가장 진한 새벽 시간의 호흡도 포기하다니… 자질만이 아니라 노력도 부족하니, 저자는 평생 원영기에 이르지 못할 거야!”
청년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눈을 감은 채 호흡했다. 호흡의 속도는 이전보다 조금 더 빨라진 상태였다. 마치 다른 사람이 흡수할 영기를 빼앗기라도 하려는 듯…
한편 한제는 전날 봐둔, 서쪽 구역의 자유 시장으로 향했다.
“원영기 이상 수련자가 많지 않을 테니 그리 좋은 판매 장소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돌려 바위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청년에게 걸어갔다.
“도우, 이 성에 높은 등급의 법보를 거래하는 곳이 따로 있습니까?”
한제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청년은 눈을 뜨더니 경멸을 숨기지도 않고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동쪽 구역 보합루(寶合樓)!”
말을 마친 그는 다시 눈을 감았고 한제가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자 혀를 끌끌 찼다.
“겨우 결단기 주제에 높은 등급의 법보를 얻으려 하다니… 보합루 문간 안에 발을 들일 자격도 없는 주제에…”
★ ★ ★
한제는 여유롭게 걸어 동쪽 구역으로 향했다.
동쪽 구역에는 일반인이 드물었고 대부분은 수련자였다. 상점에는 활기가 넘쳤고 옥으로 만든 화려한 건물들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심지어 몇몇 상점 밖에는 사람 키 높이의 거대한 영석이 세워져 있었다. 제련되지 않은 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그 영석에서 짙은 영력이 발산됐다. 몇몇 점포 밖의 영석은 높이가 20척에 달해 작은 언덕 같았다.
영맥에서 이런 영석을 파내는 것은 일반적인 수련자로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한제는 흥미로운 눈으로 상점 밖의 설치물들을 구경했다. 자신의 상점이 얼마나 뛰어난 상품들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려고 가져다둔 듯했다.
한제는 상급 영석이 세워져 있는 한 점포에 흥미를 느꼈다. 크지 않은 그 점포는 총 2층으로 강력한 기세를 풍기면서도 매우 우아해보였다. 편액에는 용과 봉황이 노니는 듯한 필체로 「청죽각(靑竹閣)」이라고 쓰여 있었다.
허나 한제는 청죽각을 지나쳐 갔다. 동쪽 구역 끄트머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누각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앞에는 높이가 30척에 달하는 상급 영석이 무려 여덟 개나 세워져 있다. 영석들은 마치 진을 이룬 듯 짙은 영기를 뿜어냈다.
주위 환경에 완벽히 녹아들어 매우 자연스러운 이 누각에는 긴 영석에 글자를 새겨 만든 편액이 걸려 있었다.
보합루(普合樓)
보합루에서는 강력한 위엄이 물씬 느껴졌고 신식의 접근을 저지했다. 한제는 억지로 그 안을 살피려 하지는 않았다.
한데 한제가 보합루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그 안에서 나온 중년 사내 하나가 그 앞길을 막아섰다. 사내는 한제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 보합루의 규칙을 모르는 겐가?”
한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중년 사내는 한제를 신중하게 살피다가 내심 놀랐다. 그는 수많은 수련자를 봐왔는데 수준이 매우 높은 수련자가 아니고서는 보합루 앞에 설치된 진의 위력에 이토록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보합루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두 가지 유형의 수련자와 나가지 못하는 한 가지 유형의 수련자가 있네. 원영기에 이르지 못한 수련자와 상급 영석 10만 개 이상을 가지지 못한 자는 들어올 수 없고 아무 것도 구매하지 않고서는 나갈 수 없다, 이 말씀이야!”
그 말에 한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고 그 표정을 본 중년 사내가 차게 물었다.
“영석 10만 개를 가지고 있나?”
최근에는 선옥을 주로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한제에게 영석은 많지 않았다.
“도우는 우리 보합루의 규칙에 부합하지 않으니 들어올 수 없네. 또한, 들어온다 해도 나올 수 없을 테니 돌아가게.”
“이 법보, 사겠나?”
한제는 대답 대신 저물대에서 전날 제련해낸 비검을 꺼내 들며 불쑥 물었다.
중년 남자는 비검을 한 번 훑어보더니 피식 비웃었다. 아주 저급한 방식으로 만든 비검에는 특별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검광도 어두웠다.
사내는 심지어 신식을 이용해 살피지도 않고 육안만으로 대충 훑어보고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보합루에 들어올 사람을 판별하는 일만 벌써 몇 년째 하고 있는 그의 안목은 상당히 뛰어났다. 게다가 자신에게 좋은 법보가 있다면서 저급한 법보를 꺼내 드는 수준 낮은 수련자도 한두 번 봐온 것이 아니었다.
중년 사내에게 눈앞의 어리숙한 수련자는 그런 자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저자가 꺼낸 비검에 모종의 신통력이 깃든 것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중년 사내는 어떤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사지 않겠네, 돌아가게!”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중년 사내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한데 중년 남자는 떠나기 전 한제가 보인 눈빛에 소름이 쫙 끼쳤다. 상대의 눈빛에 원신마저 꽝꽝 얼어버릴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깜짝 놀란 그는 창백한 얼굴로 비척비척 물러나 멀어져 가는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보합루 안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봉, 왜 그러느냐?”
중년 남자는 얼른 고개를 조아리고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손 어르신, 방금 어떤 수련자 하나가 법보를 팔러 왔었습니다.”
보합루 안에서 한 매우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의 굽은 등과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고 두 눈도 약간 흐릿했다.
노인은 궁금한 듯 물었다.
“무슨 법보?”
중년 남자가 공손하게 말했다.
“비검 한 자루였습니다. 그냥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했지요. 어쩌면 정말 신통한 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별 볼 일 없는 신통력일 겁니다. 우리 보합루의 거래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법보죠.”
사내는 매우 공손해졌다. 노인의 수준은 화신기 초기에 불과하지만 보합루에서의 신분은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년 사내는 노인이 일찍이 영변기 중기 수준에 이르렀다가 큰 부상을 입어 화신기로 떨어진 것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노인은 멀어져 가는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탁한 그의 두 눈에 약간의 의혹이 어렸으나 곧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돌려 다시 보합루 안으로 들어갔다.
“어딘가 익숙한 뒷모습인데⋯⋯.”
노인은 피로해 보이는 몸으로 누각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쪽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