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44
“허 도우, 무슨 일로 떠나려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도울 수도 있어.”
떠돌이 거사 역시 포권을 하며 덧붙였다.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말게. 우리의 밑천을 넘긴 지 보름도 되지 않아 돌연 떠나려 하니 우리도 이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손석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허 도우, 물론 자네를 믿네만 이번 일은⋯⋯.”
세 사람이 이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자신들의 가산 대부분을 넘긴 데다가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피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한데 그때, 한제의 표정이 돌연 변하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어서 다른 세 사람도 같은 행동을 보였다.
염운성 밖에서는 환동이 성라반을 탄 채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냉랭했고 표정은 한없이 오만했다.
“아가씨께서 맡기신 일이다. 최대한 깔끔하고 빠르게 처리할 것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모든 놈들을 다 죽여 버리겠어!”
환동은 유성처럼 긴 잔영을 남기며 돌진해 순식간에 염운성으로 진입했고 곧장 신식을 펼치며 선력을 동원해 기세를 떨쳤다.
염운성의 모든 수련자는 마치 천신이 강림한 듯 강렬한 환동의 기세를 느꼈다. 보잘 것 없는 미물을 대하는 듯한 오만한 기세가 온 염운성을 휩쓸었다.
“나는 천환성 환가(幻家)의 2품 족위 환동이다. 염운성의 문정기 수련자들은 속히 나와 나를 맞아라!”
그 오만방자한 목소리는 마치 천둥처럼 염운성 전역에 울려 퍼졌다. 대부분의 수련자는 덜덜 떨었고 수준이 낮은 수련자들은 피를 토해내기도 했다.
바위 아래에서 좌선을 하고 있던 청년 또한 한 움큼 피를 토해내면서 몸의 기력마저 잃고 쓰러졌다.
류미를 떠올리다
한편, 염가의 선조와 손석, 그리고 떠돌이 거사의 얼굴은 순간 하얗게 질려 버렸다. ‘환가’라는 두 글자가 예리한 검처럼 원신을 찔러드는 듯했다.
“왔구나⋯⋯. 결국 환가가⋯⋯ 왔어⋯⋯.”
손석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씁쓸한 얼굴로 한제를 돌아보았다. 염가의 선조도 떠돌이 거사도 동시에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들 의 눈에 담긴 짙은 절망감 속에는 한 줄기 기대가 깃들어 있었다.
한제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으나 두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그는 곧장 신식을 펼쳤고 그러자 하늘에 어떤 글자가 나타났다.
꺼져라.
그와 동시에 천둥번개가 하늘에서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꽈르릉!
그 천둥번개를 본 환동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한 줄기 하얀 빛을 만들어냈다. 그와 동시에 냉랭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퍼져 나왔다.
환동은 자질이 부족해 천환무정도를 익히지는 못했다. 대신 그가 수련한 것은 환가의 두 번째 술법인 심의오행결(心意五行訣)이었다. 그가 깨달은 경지는 오행결 중 금결(金訣)로 이는 단단함을 상징했다.
환동의 오른손이 만들어낸 하얀 빛은 마치 하늘의 빛을 모두 흡수한 듯했다. 환동은 그 빛의 위엄이 깃든 손을 아래쪽으로 꾹 눌렀다.
한제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눈에서 전광만 쏘아 보냈다. 그의 눈에서 발산된 전광은 그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동시에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적멸지의 바람을 일으켰다.
쿠오오!
짙은 전광이 어린 채 천둥번개의 천벌과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하는 이 적멸지는 그 위력이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해진 상태였다.
적멸지의 바람은 칠흑처럼 어두운 빛이 되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검은 빛의 사방에서는 여러 개의 파문이 일어났는데 그 파문에도 전광이 흐르면서 파지직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굉음이 되어 진동했다. 검은 빛 역시 천둥번개의 위엄을 휘감은 채 성난 듯 강력한 기세를 떨쳤다.
콰르릉!
한제의 손가락질 한 번에 환동의 몸을 두른 빛은 그대로 와해됐다.
“큭!”
환동은 창백하게 질린 채 곧장 몸을 뒤로 물렸다.
그때, 적멸지의 바람이 번득이는 전광을 쏘아 보내더니 한 마리의 흑룡처럼 환동에게 달려들었다.
“이놈! 감히 환가의 행사를 방해하려는 것이냐?”
환동은 저물대에서 금색 검을 한 자루 꺼내 들더니 반대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금(金)의 위엄!”
결인이 찍힌 금색 검은 쉭 소리를 내며 적멸지의 바람에서 비롯된 검은 빛을 향해 달려들었다.
꽝!
하늘이 붕괴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금색 검은 마디마디 부서지다가 결국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적멸지의 바람은 여전히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이에 환동은 합장을 한 후 손을 뻗었다.
콰르릉!
“크아악!”
거대한 소리와 함께 환동의 몸이 경련했다. 이어서 그는 피를 토해내며 유성처럼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그의 몸에서는 전광이 번득였는데 전광이 한 번 번득일 때마다 내상이 깊어졌다. 한데 그때, 기이하게도 그의 몸에 흐르던 전광의 일부가 갈라지더니 체내로 흘러들었고 이에 환동의 원신은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한제는 문정기 초기 수준일 때에도 신통술로는 문정기 중기 수련자를 월등이 능가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수준은 여전히 문정기 초기 수준이라 해도 체내의 선력은 이미 문정기 중기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깨달음만 얻으면 완전한 중기로 접어들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문정기 중기 수준인 환동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환동은 얼굴이 완전히 하얗게 질려버렸고 눈에는 충격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 이건 대체 뭐지! 이게 대체 무엇이기에 이리도 끔찍하단 말인가? 겨우 한 번의 신통력으로 내게 이런 중상을 입히다니… 저자는 염운성 사람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 이 일에 대해 아가씨께 보고해야 해!’
환동은 두 손으로 다리를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두 다리에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속도가 빨라졌고 그의 모습이 반쯤 흐려졌다. 순간이동을 하려는 것이다.
한제는 도망치려는 상대를 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칠성검진이 튀어나와 일곱 갈래의 빛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칠성검진은 검존 능천후가 만든 것으로 아무나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칠성검진은 환동이 순간이동을 하려는 순간 그의 곁에 이르렀다. 이어서 일곱 개의 검에서 튀어나온 일곱 개의 검령이 한데 얽히더니 허공을 움켜쥐었다.
쨍강!
거울이 깨지는 듯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순간이동을 하기 위해 허무의 공간에 들어선 환동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허무의 공간이 뜯겨나가더니 그 틈을 비집고 일곱 자루의 검이 들어와 환동의 몸을 겨누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곧장 원신까지 찌를 기세였다.
환동이 나타난 순간부터 붙잡힐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순간이었다.
염가 선조는 찬 숨을 들이켰다. 한제의 강력함은 몸소 겪어 알고 있었지만 제삼자 입장에서 보려니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저 허목이라는 자를 절대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떠돌이 거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저자는 어쩌면 문정기 후기 절정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반면 손석은 그들만큼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한제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 오히려 기뻐했다.
‘허목이 강할수록 나에게는 더 좋은 일이지.’
한편, 환동은 죽음의 칼처럼 사방을 감싼 칠성검진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그는 이를 갈며 일갈했다.
“염학풍, 손석, 조전문! 죽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허나 지목된 세 사람은 말없이 서늘한 눈으로 환동을 노려보았다. 환동은 그들의 눈빛을 보고 일이 잘못 돌아가도 한참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지금 나를 죽인다면 다른 사람들이 올 것이다. 네놈들 힘으로 우리 환가와 대적한다면 멸문을 피할 수 없을 터! 날 풀어주고 법도에 따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도록 하자!”
환동은 염학풍을 비롯한 세 사람에게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한제를 살피면서 저자가 어째서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 추측해보려 했다.
염학풍은 환동의 말에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곧 무언가를 결심한 듯 덤덤하게 말했다.
“환 도우, 자네가 염운성에 무슨 일로 온 것인지 도통 모르겠군.”
환동은 염학풍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가 나머지 두 사람도 훑어보며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이렇게 나오겠다는 건가? 좋다, 말해주지. 4년 전, 우리 환가의 사람을 죽였으니 너희 세 가문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염학풍이 한제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허 도우, 저자를 우리에게 넘기는 것이 어떻겠나?”
한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 씨였군? 자네는 대체 누구이기에 우리 가문의 일에 끼어든단 말인가?”
환동은 한제를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허 도우, 우리 가문의 선조가 돌아오셨네. 자네, 정말 우리 가문의 선조 어르신께 대적하려는 것인가? 이 환동이 약속하건대, 나를 풀어준다면 아가씨께 자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겠네. 자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아가씨?”
한제가 의아한 듯 돌아보자 손석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허 도우도 모르는 것이 있군. 환가 선조가 돌아올 때 연맹성역에서 한 여인을 데려와 수양딸로 삼았다더군. 심지어 환혈법까지 써서 그녀를 직계 가족으로 들이려 한다던데?”
그때, 환동이 다시금 목청 높여 외쳤다.
“우리 선조 어르신께서는 수련의 2단계에 진입하셨다! 수천 년 전에 이미 음양이의의 경지에 이르셨지!”
허나 그의 위협이 전혀 통하지 않은 듯, 한제는 피식 웃었다.
“이자는 자네들에게 넘기지.”
한제는 덤덤하게 말하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칠성검진의 검광이 환동의 체내에서 흐르며 그의 원신을 봉인한 후 곧장 한제 곁으로 돌아왔다.
“할 일을 마치고 몇 달 안에 돌아오겠다!”
한제는 말을 마친 뒤 곧장 몸을 날렸다.
그때, 환동이 이를 갈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를 죽인다면 아가씨께서 너희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환미 아가씨는 선조 어르신의 유일한 제자이자 앞으로 우리 가문의 가주가 되실 분이다!”
그 말에 한제는 우뚝 멈춰 서더니 천천히 몸을 돌려 환동을 바라보았다.
“환미? 그녀의 원래 이름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