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4
‘등화원…’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이 그의 신식에서 피어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그간의 모든 상황을 명확하게 알게 됐다. 사도환이 최후의 순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구해준 것도 떠올랐다. 이 공간의 균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공간의 균열에 들어온 순간, 석주는 순간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라져 버렸다’. 흔적도 없이…
하지만 한제는 이미 또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석주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혼에 녹아들었다는 것을… 이제 한제의 영혼에 융합되어 하나로 뒤섞여 있는 상태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토록 강력한 신비의 생물들도 모조리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도환 역시 죽은 게 아니라 긴 잠에 빠진 것뿐이었다. 그는 잠에 빠지기 직전에 한제 부모님의 영혼을 자신의 원영에 감싸 함께 잠들게 해둔 상태였다.
신식의 소생
모든 기억을 회복한 뒤, 한제는 자신의 신식이 매우 커져 있음을 알게 됐다. 거인의 시체도 그 신식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붕괴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한제는 신식을 움직여 거인의 시체로부터 빠져나갔다. 그러자 다시 추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허공에 떠서 자신의 몸을 기탁할 다른 시체를 찾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됐다. 한제는 시체를 찾으면 그 안에 기탁했고 그때마다 그 신비의 생물들은 여지없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의 신식은 계속해서 성장했고 점차 강한 생물을 삼킬 수 있었다. 이제 신식을 움직여 직접 신비의 생물들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한제는 이곳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기억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되새길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자신에게 있었던 모든 사건들을 상세히 분석해보기까지 한 후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예전에 본 진법서의 내용을 되새겼다. 그 책의 모든 진법을 완전히 통달한 후로는 다시 할 일이 없어졌다.
한제는 공간의 균열의 출구가 나타나기를 끊임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신식은 너무 커져서 어느 구멍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신 그 틈에 부딪힐 때마다 균열이 붕괴되는 조짐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만 한두 차례 부딪히고 나면 그 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한두 차례의 충격으로는 균열을 붕괴시킬 수 없다면 신식이 더 커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에 그는 다시 미친 듯이 신비의 생물들을 흡수해댔다.
그는 허공을 날아다니며 신비의 물질을 발견할 때마다 곧장 삼켜버렸다. 이런 생활 역시 오랫동안 지속됐다. 매번 틈을 발견할 때마다 그는 그 틈에 부딪혔고 균열이 붕괴될 듯한 조짐은 갈수록 커져갔다. 한제는 언젠가 한두 번의 부딪힘 만으로 균열이 붕괴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신비의 생물들도 수가 점차 줄어, 이제 백방으로 찾아다녀도 한 마리조차 찾기 힘들었다.
따라서 그는 탐색 범위를 넓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크기가 거의 비슷한 신식체를 마주하게 됐다. 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을 넘었잖아!”
모호한 목소리가 한제의 신식을 타고 들려왔다.
한제는 흠칫 놀라며 같은 방식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여기에서 어떻게 나갈 수 있지?”
“나가? 무슨 소리야? 여기서는 나갈 수 없어!”
상대는 천천히 물러나더니 곧 사라졌다.
한제는 한참이나 침묵했다. 상대의 말에 숨겨진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공간의 균열 안에 그와 같은 신식체가 더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욱 강한 신식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 신식체들 사이에는 서로가 맡은 구역이 있는 듯했다. 혹시라도 구역을 넘어갔다가 결투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한제는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이후 자신과 비슷한 신식체 세 개를 만났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실력으로는 아직 균열을 붕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돌아가고자 하는 한제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계획을 세웠다. 이날, 그는 신식을 펼쳐 그의 구역을 뒤덮었다. 신식이 넓게 펼쳐질수록 파동은 더욱 격렬해졌다.
한제는 신식이 닿는 곳곳의 위치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어느 위치에 미세한 틈이 나타났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신식을 곧장 그 틈으로 들이 밀었고 그 순간 과감하게 신식을 끊어버렸다.
신식은 그 공간의 틈으로 순조롭게 들어갔다. 틈이 모습을 감추고 나자 끊어버린 신식과의 감응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한제는 침착하게 또 다른 틈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 ★ ★
소표는 3성 수련국 거록국(巨鹿國) 영무종(靈武宗)의 6대 제자였다. 그가 거대한 부석 위에 앉아 지난 몇 년간의 전리품을 정리하고 있던 때, 갑자기 그의 소리 전달 옥패가 번쩍였다.
소표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옥패를 이마에 대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빨리 서북 48도로 가! 주인 없는 신식이 하나 나타났다.”
소표가 역외 전장에서 알게 된 친구 갈양의 목소리였다. 둘은 모두 축기 후기 수준으로 때때로 함께 사람을 죽여, 가진 것을 빼앗는 비밀스러운 약속도 맺고 있었다.
갈양의 말에 소표는 미친 듯이 기뻐했다. 신식은 역외 전장에서도 가장 진귀한 존재로 완전한 법보보다도 더 희귀했다. 강력한 수련자가 사망하면 그 원영이 육체를 빠져나오는데 이 원영이 소멸된 후에야 아주 극소수의 확률로 하나의 신식이 만들어졌다.
이 신식의 구체적인 작용을 소표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역외 전장에 들어올 때 상급 수련국의 사자가 나누어준, 반드시 상납해야 할 물건 목록 중에서 가장 중요한 10개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 목록에 나와 있는 물건들을 상납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중요한 물건일수록 보상도 커졌다.
소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끼며, 몸을 훌쩍 날려 서북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벌써 적지 않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저 멀리 거대한 덮개가 하나 있었고 그 안쪽에는 짙은 푸른색의 거대한 빛이 들어 있었다. 그 빛은 허공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표의 두 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저물대를 두드려 시커먼 삼지창을 꺼내 들더니 곧장 내던졌다.
“슝!”
★ ★ ★
한제는 얌전히 공간의 균열에서 틈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뒤, 그의 신식이 펼쳐진 범위 안에 별안간 여덟 개의 틈이 나타났다.
한제의 신식은 그 틈으로 들어갔고 잘렸다. 여덟 개의 신식은 공간의 균열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런 과정이 줄곧 지속됐다. 한제의 신식은 갈수록 작아졌고 밖으로 내보낸 신식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았다.
역외 전장에는 3년 동안 광풍이 불고 있었다. 3년 전 갑자기 나타난 그 주인 없는 신식이 소표와 갈양 두 사람에게 탈취된 뒤, 역외 전장의 모든 정리조 사람들은 광분했으며, 그 후부터 거의 매일 역외 전장에는 신식이 나타났다.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는 신식이 얼마나 많은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괴이한 현상은 평소였다면 상급 수련국의 시선을 끌었겠지만 이 3년 동안 상급 수련국에서는 단 한 명의 감찰원도 보내지 않았다.
역외 전장 안은 현재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 알 수 없는 기묘한 원인으로 인해 그 안의 사람들은 나가지 않았고 밖에서도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은 결국 공간의 균열에 있었다. 지난 10년간 역외 전장에 공간의 균열이 너무 많아졌고 특히 몇몇 입구 쪽 지역에서는 더 심각했다.
이에 4, 5성 수련국 강자들은 역외 전장이 이미 붕괴의 가장자리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짐작했다. 때문에 원영기 고수라도 역외 전장에 들여보낼 수 없었다. 수습 불가능한 대붕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6성 수련국 사람을 초청해 상황을 회복하는 방법은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역외 전장 안에 대량의 신식이 있다고는 해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 신식들은 이미 5성 수련국에서 서로 몇 개씩 나눠 가진 상태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외 전장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힘들여 회복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보통은 법술을 사용해도 더는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되면 그 전장은 버려졌다.
허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분명 몇 천 년은 더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 전장이 왜 단 10년 만에 이렇게 급속도로 악화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게 한제 때문임을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만약 그가 장시간 동안 공간의 균열 안 이곳저곳을 부딪치고 다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였다.
공간의 균열 속에서 흐르는 시간은 역외 전장에서의 시간과 전혀 달랐다. 공간의 균열 속에서 보내는 1백 년은 역외 전장에서는 고작 1년도 되지 않았다.
한제는 무려 7백여 년을 공간의 균열 여기저기에 부딪히고 다녔지만 바깥세상에서는 단 7년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것이다.
비록 한제 혼자서 저지른 일이었지만 무려 7백 년간 지속된 공격에 자연스레 역외 전장은 빠르게 악화됐다. 이제 어떤 4, 5성 수련국의 수련자도 감히 이 역외 전장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따라서 그저 그 전장 안에 있는 3성 수련국 수련자들에게 모든 정리 작업을 취소하고 신식을 찾는 데에 전력을 다한 뒤 다 함께 전송진을 구축해 빠져나올 것을 지시했을 뿐이었다.
이미 시간을 잊은 한제의 신식은 갈수록 약해졌고 갈수록 작아졌다. 지금 그는 더는 신식을 자르지 않고 비교적 큰 공간의 균열 속 틈을 찾고 있었다.
그의 신식이 펼쳐진 범위 안에 마침내 이전보다 몇 배는 더 큰 틈이 나타난 날이었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마량은 마음에 드는 법보 하나를 발견했다. 이 법보는 당시 그가 우연히 마주한 그 검은색 빛과 똑같이 스스로 날 줄 알았다. 그 법보를 위해 마량은 숨이 턱에 닿도록 꼬박 사흘을 뒤쫓고 있었다.
그 보라색 빛의 비검을 바라보던 마량은 전의 그 베틀 북을 뺏기지만 않았더라도 이토록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때 쫓았던 검은 빛이 지금 이 역외 전장의 빠른 붕괴를 야기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뭐, 어쨌든 저 비검을 손에 넣고 집결지로 돌아가자. 사형, 부디 대사형한테 넘어가지 말고 기다려 줘. 대사형은 사람 얼굴을 한 짐승이라고! 나만이 사형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단 말씀이야!’
마량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비검을 쫓았다.
“벌써 50년이 지났는데 사매는 어떻게 변해 있으려나? 전신결(戰神決)을 수련했으니, 이제 서른 정도로 보이겠지?
뭐, 아무튼 우리 전신전(戰神殿)에서 온 자들 중에는 이제 열 명도 남지 않았으니, 내가 돌아가면 분명 장문인께서도 환대해줄 거고 영원히 늙지 않는 단약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럼 어린 사매와도 혼인할 수 있겠지?”
마량은 음흉하게 웃었다. 생각을 정리하자 온몸에 힘이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검을 뒤쫓는 속도도 더 빨라진 것 같았다.
단 꿈으로 마음이 부풀어 있던 그때 마량은 저 멀리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두 갈래의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그 두 무지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마량에게 가까워지더니 순식간에 그를 스쳐지나갔다.
곧 하나의 무지개가 보랏빛 비검 있는 곳에서 번쩍이더니, 그곳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서른이 조금 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손을 꽉 쥐어 비검을 곧장 자신의 저물대에 넣어버리더니, 몸을 돌려 음산한 눈빛으로 마량을 바라보았다.
그때 또 다른 무지개가 떨어진 곳에서는 검은색 옷의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웃는 듯 아닌 듯한 얼굴로 마량 뒤에 서 있었다.
마량의 표정이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
“소표, 갈양!”
마량의 뱃속이 싸해졌다. 저 두 사람을 그는 이전에 멀찍이서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가진 것을 빼앗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마량은 과감히 가지고 있던 저물대를 풀어, 소표의 앞에 내던진 뒤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도우, 내가 지금까지 모은 것들은 다 거기에 들어 있소. 가져가도 좋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소표는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저물대를 신식으로 훑어본 뒤 마량을 다시 살피며 웃었다.
“내가 본 녀석 중 가장 의지가 약한 녀석이구나. 하지만 가장 눈치가 빠른 녀석이기도 하군. 좋아, 오늘은 놓아주마. 썩 꺼져라!”
한시름 내려놓고 막 달아나려던 마량이 갑자기 피를 토해냈다. 고개를 떨궈 보니 한 자루의 비검이 가슴을 꿰뚫고 나와 있었다. 마량은 몸을 덜덜 떨며 자신의 생명이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갈양을 바라보며 피가 가득 묻은 입으로 웅얼거렸다.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