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80
“언니, 선조 할아버지는 왜 우리를 이곳에 데려온 걸까? 엄마한테 데려다 주시려는 걸까? 나 엄마 보고 싶어⋯⋯.”
그때, 하늘의 색이 변하더니 붉은 구름이 사방을 휩쓸다가 두 소녀의 상공에 응집됐고 곧이어 그 위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수한 중년 사내에게서는 선인의 기운이 짙게 풍겼다.
“빙운, 몽운, 이리 오렴!”
사내는 아래로 내려와 복잡한 눈빛으로 두 소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숙부님, 엄마한테 가는 건가요?”
몽운이라 불린 소녀가 기쁜 듯 물었다.
중년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말없이 두 소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 미소는 어딘가 슬퍼 보였다.
“그래, 어머니한테 가는 거란다.”
말을 마친 그는 소매를 휘둘러 두 소녀와 함께 붉은 구름에 올랐다. 그러자 붉은 구름은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선조 어르신, 이 아이들은 무고합니다. 이 요운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이 아이들을 데리고 혈신성(血神星)을 떠나겠습니다.’
중년 사내는 이를 악물고 더욱 빠른 속도로 구름을 몰았다. 두 소녀와 중년 사내는 붉은 구름에 휩싸인 채 하늘 끄트머리로 돌진했다.
한데 바로 그때, 하늘에서 구름이 용솟음치더니 요사스러운 손 하나가 나타나 붉은 구름을 움켜쥐었다.
붉은 구름에서 펑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이내 그 안에서 안색이 창백해진 중년 사내와 겁에 잔뜩 질린 두 소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요운, 돌아와라!”
위엄이 가득한, 하지만 노기가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말의 반항을 할 마음조차 가질 수 없는 목소리였다.
“선조 어르신, 어째서입니까! 이 아이들도 우리 요가의 아이들입니다.”
요운은 슬픔과 분노가 섞인 얼굴로 크게 외쳤다.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 아이들의 운명이야! 벗어날 수 없다. 이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법보의 혼이 되기로 정해져 있었어!”
짙은 분노가 배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늘에 광풍이 일더니 중년 남자와 두 소녀를 감싼 채 사라졌다.
요빙운의 도(道)
요가의 사당 밖, 허공에서 떠밀리듯 나타난 요운은 창백한 얼굴로 피를 한 움큼 토해내더니 땅에 떨어진 뒤 수백 척 뒤로 밀려나며 비참하게 웃었다.
그는 겁에 잔뜩 질린 두 소녀가 마치 흡수되듯 사당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한제 역시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일종의 기이한 상태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요빙운의 도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 광경은 요빙운의 도를 통해 보이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녀가 일생동안 수련한 도의 근본이었다.
“선조 어르신, 가문의 법보가 정말 그렇게나 중요한 것입니까? 빙운과 몽운은 아비도 없습니다. 그 어미 역시 두 개의 법보에 혼을 녹여 넣을 아이를 낳을 도구로 선조 어르신께 이용당했지요. 한데 그 아이들마저… 정녕 그렇게 법보의 혼으로 쓰셔야만 하는 겁니까?”
요운이 비참하게 웃었다. 그는 두 아이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빙운과 몽운의 어미는 그의 누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또한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요가의 두 번째 세대 구성원 중 천부적인 자질이 가장 뛰어났던 이였다.
“오라버니의 말이 맞았어. 선조 어르신은 요령(妖靈)에 씌었어. 이전의 찬란했던 요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당시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오라버니를 난 줄곧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아. 오라버니가 당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침착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는 한제의 마음은 잠잠했다. 기쁨도 슬픔도 없었다.
사당 안으로 끌려 들어온 두 소녀의 얼굴에는 짙은 두려움과 무기력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동생은 덜덜 떨면서 언니를 꼭 끌어안았다.
“언니, 나 무서워. 너무 무서워⋯⋯.”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손가락이 하얗게 질리도록 언니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동생을 끌어안은 요빙운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그녀의 눈에도 극한의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이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임을 직감했다.
두 소녀의 앞에는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그는 머리와 눈썹까지 모두 붉었고 나이가 무척 많아 보였다.
노인의 번쩍 뜬 두 눈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혼백을 앗을 것처럼 날카로운 빛이 번득였다.
“우리 요가 사람으로서 영원히 빛날 가문의 영광을 위해, 너희들은 법보의 혼이 되어야 한다.”
말을 마친 노인은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허공에서 쩍 하는 소리와 함께 30척 길이의 균열이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리고 그 바람과 함께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등잔이 느릿하게 날아왔다. 등잔에서는 남색의 불꽃이 타올랐지만 열기는커녕 오히려 한없이 차가운 기운만 느껴졌다.
느릿하게 날아간 등잔은 두 소녀와 노인 사이의 허공에 이르렀고 그 순간 남색 불꽃은 격렬하게 타오르며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소녀를 향해 불꽃을 발산했다.
“이것은 요가의 보물이니라. 이 등잔에서 타오르는 불은 선계가 존재했던 때로부터 꺼지지 않았지. 말하자면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허나 5백 년 전, 이 화염은 꺼질 기미를 보였다. 난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그 원인을 알아냈지. 이 법보의 혼이 곧 소멸할 지경에 처한 탓이었다. 그 혼이 완전히 사라지면 불은 꺼질 것이다.”
노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할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3백 년의 시간을 들여 이 안에 들어 있는 혼의 일부를 뽑아 우리 요가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의 체내에 녹여 넣었다. 그리고 그 수련자의 몸 안에서 2백 년 동안 키워진 그것은 마침내 너희 두 자매로 태어났지. 이것이 바로 너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너희는 법보의 혼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야!”
노인의 말이 끝난 순간, 등잔의 불꽃이 왕성하게 타오르며 이내 화운(火雲)을 형성했다. 이 화운은 서서히 형태가 변하더니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리고 몸집이 거대한 존재가 온몸으로 불빛을 번득이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한제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마음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고요(古妖)!”
화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기이한 존재는 다름 아닌 고요였다.
온 사당은 화염의 기운으로 가득 찼고 고요는 입을 쩍 벌린 채 두 소녀를 한 번에 집어삼키려는 듯 달려들었다.
“언니!”
언니의 옷깃을 꽉 쥐고 있던 몽운이 날카롭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에는 짙은 두려움이 깃들어 있어 한제의 마음까지 진동하게 만들었다.
요빙운 또한 창백하게 질렸고 두 눈에는 극도의 두려움이 가득했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여태껏 느껴본 적 없던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에 요빙운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 한 걸음으로 인해 그녀의 동생이 더 앞에 남게 됐고 달려들던 고요는 한입에 그녀를 삼킨 뒤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찍 하는 소리와 함께 동생의 손에 꽉 쥐어져 있던 요빙운의 옷깃은 그대로 찢겨나갔다.
“언니! 언니! 사⋯⋯ 살려줘!”
사당에 가득 울려 퍼지던 참혹한 비명은 고요가 그녀를 삼키는 순간 뚝 끊겨버렸다.
털썩!
요빙운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렸다. 입술을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피가 흘러나왔다. 이내 두 눈 가득 짙은 한을 담은 채, 그녀는 고요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동생을 돌려줘! 차라리 나를 삼켜! 나를 삼키라고!”
고요는 몸을 웅크리며 곧장 등잔 안으로 되돌아가 이내 사라졌다. 등잔의 불은 순간 짙어지면서 밝은 빛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불빛 안에서 한 소녀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언니⋯⋯ 언니!”
옆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노인은 기이한 눈빛으로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요빙운은 한쪽으로 나가떨어졌다.
노인은 등잔의 불을 곧게 바라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지도 못했군! 한 사람만으로도 법보의 혼을 만들 수 있다니… 이제 너는 돌아가도 좋다.”
요빙운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등잔을 바라보았다. 밀물처럼 밀려든 짙은 원한에 그대로 잠겨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몽운…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었어. 내가… 내가 삼켜졌어야 하는 건데⋯⋯ 동생아⋯⋯.”
요빙운의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끝없는 후회뿐이었다.
“물러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어머니가 떠나기 전 동생을 잘 돌보라고 하셨는데… 난 그러지 못했어. 물러나서는 안 되는 거였어⋯⋯.”
요빙운은 등잔을 노려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선조 할아버지, 이 요빙운이 법보의 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평생이라도 천년만년이라도 괜찮습니다. 조금의 원망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몽운을 꺼내고 대신 저를 법보의 혼으로 삼아주세요. 제발요, 제발… 제발⋯⋯.”
요빙운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애원했다. 곧 미간이 피로 얼룩졌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제조차 꼼짝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배어 있었다.
그녀의 애원이 사당을 가득 채우고 심지어는 밖으로 퍼져나가 요운의 귀에도 이르렀다.
두 눈이 붉어진 요운은 몸부림치며 일어나 사당으로 향했다. 허나 그의 몸이 사당에 이른 그 순간, 강력한 힘 한 줄기가 그 안에서 뿜어져 나와 그를 덮쳤다. 요운은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났다.
“요가는 망하게 될 것이다.”
요운은 참혹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갈았고 저주를 내뱉었다.
한편, 노인은 바닥에 엎드린 채 애걸하는 요빙운을 바라보았다. 상대의 애달픈 목소리가 심신까지 뚫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는 드물게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얼른 본래 눈빛을 되찾은 뒤 허공에 떠 있던 등잔을 손에 쥐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것이 요몽운의 운명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말을 마친 그는 등잔을 균열 안에 집어넣고는 소매를 휘둘러 그 균열을 천천히 맞물리게 했다. 균열은 이내 사라져갔다.
“몽운!”
사라져가는 균열을 바라본 요빙운은 전에 없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 소리는 강한 충격이 되어 한제가 녹아들어 있는 이 상황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한제가 들어와 있는 요빙운의 기억은 금방 무너질 듯 위태로워졌다.
“몽운아, 기다려! 꼭 언니를 기다리고 있어야 해! 난 아직 너한테 사탕도 못 사줬고 어머니를 찾으러 가지도 못했잖아. 몽운아, 꼭 기다려야 해! 언니가 널 구하러 갈게! 언니가 꼭, 반드시 널 구할게. 약속할게!”
그녀의 날카로운 외침에 한제가 보고 있던 장면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사당도 등잔도 노인도 균열도 모두 조각나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바닥에 꿇어앉은 채 뼈저린 후회와 분노, 원한이 뒤섞인 눈빛의 요빙운뿐이었다.
“세상 모두를 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동생을 구할 수 있다면… 난 그리할 것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한제의 신념은 그 날카로운 목소리에 충격을 받으면서 요빙운의 경지를 직접 느끼게 됐고 그를 통해 자신의 도를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요빙운의 도 역시 한제의 눈앞에 드러났다.
두 소녀가 서로에게 의지하던 그 모습이 한제의 마음속 깊이 남았다.
“내가⋯⋯ 할 수 있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요빙운은 한제의 말을 들은 듯 고개를 들었지만 결국 그녀의 몸은 흩어져 사라졌다.
눈앞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고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앞에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한 빙산 아래에 요빙운이 있었다. 방금 전의 요빙운보다 조금 나이를 먹은 그녀는 빙산 아래에 가부좌를 튼 채 멍한 눈으로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 눈에서는 짙은 슬픔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