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79
사 씨 노인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휘몰아치던 바람은 흩어져 청령성에 녹아들었고 그 순간, 이 수련성의 영력(靈力)은 돌연 몇 배나 더 증폭됐으며, 대지의 영맥(靈脈)에서 끝없는 영기가 분출됐다.
강물에도 줄기마다 영력이 녹아들어 쪽빛으로 물들었다.
평범한 산봉우리도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영기가 들어차면서 영산(靈山)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다름 아닌 한제 때문이다. 그는 꿈의 도를 통해 이 청령성과 하나로 녹아들었다. 이를 통해 그가 곧 청령성이고 청령성이 곧 그인 상태가 됐다.
도에 대한 깨달음은 그가 이 청령성이 됐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무형의 존재가 되어 일으킨 격렬한 변화에 이 청령성은 마치 생명체처럼 그와 함께 도를 깨달은 상태가 됐다.
“사람에게는 령(靈)이 있으니 도를 이해할 수 있고 마수들에게는 정신이 있으니 도를 깨달을 수 있다. 세상 만물 중 령과 정신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 천도를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수련성에도 혼이 있으니 마찬가지로 도를 깨달을 수 있다.”
한제는 청령성에 녹아든 채 천도의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 혼을 명확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여태 수련자와는 다른 혼을 이렇게 가깝고 이렇게 또렷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 혼은 허상이었지만 동시에 실체를 갖춘 존재이기도 했고 지능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본능적인 힘뿐이었다.
이 힘은 오랜 시간 청령성에 존재해왔던 수련자들의 호흡, 모든 일반인들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이 수련성의 모든 생명들의 생각이 오랜 시간 무르익으면서 형성된 것이었다.
“산마(散魔)는 수련성이 가진 혼의 힘을 추출했었지. 이제는 나도 할 수 있다.”
호탕한 목소리가 온 청령성에 울리며 천둥처럼 널리 퍼져나갔다.
일반인들은 이 거대한 소리에 털썩 엎드려 빌기 시작했고 수련자들은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사 씨 노인은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영혼에서부터의 떨림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 순간, 그는 마치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귀신이 아니었군.”
어떤 깨달음이 노인의 마음속에서 떠올랐고 그는 생각에 잠긴 채 걸었다.
청령성의 영기가 미친 듯이 짙어진 순간, 각 문파에서 폐관수련을 하며 원영기를 돌파하여 화신기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던 수련자들은 체내의 영기가 폭발하듯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특히 반쯤 화신기에 이른 채 맴돌던 수련자들은 각자의 경지를 얻어 화신기에 이르는 데 성공했다.
청령성은 겉으로 볼 때는 금방이라도 폐허가 될 것 같았지만 사실은 어린 수련성으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안의 영맥이 무르익어 진정한 영기를 풍기는 수련성이 될 수 있었다. 한제의 깨달음으로 그 시기를 앞당긴 셈이었다.
특히 횡운봉(橫雲峰)은 아래쪽부터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해 결국 완전한 영산이 됐다. 그 봉우리에서 풍기는 영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짙었다.
이때 청령성의 사방에서는 묘연하고 모호했으나 모든 수련자는 물론 일반인들조차도 또렷하게 그 존재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미친 듯이 응집되었다.
그 힘들은 모두 횡운봉 꼭대기에 응집돼 한제의 육신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이내 한제가 깨어났다.
그의 눈빛은 밝지 않았지만 온 우주가 담겨 있는 듯 깊었다.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지만 하늘의 위엄이 어려 있는 듯했다. 또한 그의 안색은 창백했지만 빛의 기운을 품고 있는 듯 눈부셨다.
그는 지금 육신도 원신도 다 가지고 있는 상태였지만 수련자들조차 눈을 감은 채로는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을 터였다.
이전에는 세상에 녹아들 때 그의 모습까지도 완전히 사라졌지만 이제는 육신과 원신이 분명 존재하고 있는데도 세상에 녹아든 것과 같았다.
원하기만 한다면 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의 생각과 의지가 곧 원인과 결과였다.
“천도에는 흔적이 없다. 난 무의식중에 나의 인과 안에 빠져들었구나. 만약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기이한 일이군. 수많은 생각들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라 나의 의식을 대신하고 나를 움직이게 하다니⋯⋯.”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살기와 끝없는 서늘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때, 무궁무진한 힘이 청령성에서 솟아올랐다. 이 힘은 모든 일반인과 수련자 그리고 풀과 나무를 비롯한 모든 생명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 힘들은 미친 듯이 몰려들어 한제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한제의 눈빛을 따라 우주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만약 청령성을 강물에 비유한다면 그곳의 모든 생명들은 펄떡이는 물고기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물고기들은 한제의 몸에 녹아든 채 하늘에 반항하고 있었다.
한제의 상공에서는 음양의 도안이 느릿하게 회전했고 그 안에서는 막대한 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양은 회전하며 청령성 안의 모든 생명체들의 생각과 기운을 흡수하여 하늘에 대항할 힘을 만들어내려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힘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하늘은 여전히 하늘이었지만 한제의 눈에는 전보다 훨씬 더 고요해진 것처럼 보였다.
★ ★ ★
같은 시각, 청령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나천성역 네 구역의 교차점에 자리한 뇌선전. 고요하고 잠잠한 그 뇌선전의 누각 안에서 가부좌를 튼 채 좌선하고 있던 청수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한없이 잠잠한 눈으로 어딘가를 내다보았다. 마치 이 광활한 우주를 한눈에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스승님께서는 당시 이런 농담을 하셨지. 누군가가 그 신통력을 배운다면 백범과 같은 문파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자는 아주 우연한 기회로 호풍(呼風)을 배웠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청수의 눈에 슬픔이 드리웠다.
“스승님, 이 제자는 무능합니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렇게 남아 있게 된 이상 선계가 붕괴한 이유와 당시 제가 그렇게 미쳐 날뛰게 된 원인을 찾아 스승님의 복수를 하겠습니다.”
★ ★ ★
하늘에서 시선을 거둔 한제의 수준은 이미 규열기에 반쯤 이른 상태였다. 이제 언제든 완전히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가 될 수 있었다.
1천 년 남짓한 수련만으로 규열기에 이르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타고난 자질이 평범한 한제는 자신의 깨달음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굳건한 끈기를 통해 갖가지 인생사를 겪은 끝에 비로소 지금의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주작성에 있었을 당시, 어느 누구도 그가 이 정도 수준까지 이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한제의 표정은 침착했다.
무의식의 상태에서 깨어난 그때, 자신의 수준이 규열기에 반쯤 걸쳐 있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자신이 완전히 규열기로 들어선다면 천벌이 강림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천벌에도 신중히 대처해야겠군.”
문정기에 이르렀을 당시 원치 않게 하늘에 굴복했던 그 뒤로 매번 수준이 높아질 때마다 그는 천벌의 위엄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리고 천벌의 위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갈수록 위험해졌다.
고개를 숙인 한제는 쓰러져 있는 요빙운을 바라보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미간을 두드렸다.
그리고 두 손가락이 그녀의 미간에 닿은 순간, 그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마치 세상에 녹아드는 듯한 모습이었다.
“남의 도를 흡수하는 것은 그릇된 방법이다. 옳은 방법은 남의 도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깨달음을 얻는 것, 다른 사람의 도로 인과를 검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과의 경지를 성공시킬 정확한 방법이다.”
한제는 깊게 숨을 들이신 후 두 눈을 감고 경지를 가동했다. 하늘에 뜬 음양의 도안이 회전하면서 천천히 떨어져 내려 이내 그와 요빙운의 체내에 스며들었다.
한제의 미간에 있는 천역주도 느릿하게 회전하면서 그의 체내로 스며든 음양을 천천히 흡수했다.
“동생아⋯⋯ 동생아⋯⋯.”
시커먼 허공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배어 있었다. 허나 이 시커먼 어둠 속에서 그 목소리를 묵묵히 듣는 한제에게서는 기쁨도 슬픔도 드러나지 않았다.
“동생아⋯⋯ 언니가 구하러 갈게. 기다리고 있어⋯⋯.”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짐에 따라 허공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솟아올라 퍼져나가면서 그 구름 깊숙한 안쪽에서 한 소녀가 나타났다.
양팔로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소녀의 눈에는 두려움이 배어있었다.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의 몸은 한 줌 바람에도 흩어질 것처럼 허약해 보였고 늘어뜨린 머리카락 아래 창백한 얼굴의 표정은 무기력했다.
“언니⋯⋯ 언니⋯⋯.”
겁에 질린 목소리가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언니 여기 있어. 반드시, 반드시 너를 구하러 갈게, 동생아⋯⋯. 울지 마, 언니 여기 있어⋯⋯. 널 구하러 갈 힘만 기르면 곧장 데리러 갈게! 울지 마, 어머니도 안 계시니 이제는 너와 나만 남았잖아.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너를 놀리고 괴롭히지 못할 거야. 언니 말 들어, 꼭 거기서 기다려!”
고개를 든 소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중얼거렸다.
“언니, 나 가기 싫어! 무서워⋯⋯.”
그때, 돌연 허공에서 늙은 손 한 쌍이 불쑥 튀어나와 소녀를 틀어쥐더니 허공 저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언니! 언니!”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하지만 결국 그 목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가다가 이내 사라졌다.
“동생아, 꼭 널 구하러 갈게. 기다려, 꼭 기다리고 있어야 해⋯⋯.”
울음 섞인 목소리에 담긴 슬픔은 하늘과 땅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함 힘을 품은 채 퍼져나갔고 이에 사방의 허공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조각으로 무너져 내리는 허공에서는 광풍이 불어닥쳤고 폭풍이 된 광풍은 그 모든 것을 찢어 버렸다.
허공이 깨지면서 그 아래 푸른 대지가 드러났다. 그곳에서는 붉은 옷을 입은 소녀 두 명이 까르르 웃으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이 어린 소녀들이 자매라는 것은 누구나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언니를 쫓는 소녀의 몸은 허약해 보였지만 그 창백한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언니를 잡으면 사탕 사줄게!”
언니는 고개를 돌려 제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천천히 가!”
그때, 언니를 뒤쫓던 동생이 풀썩 넘어지더니 이내 앙앙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는 얼른 동생 곁으로 달려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울지 마, 돌아가는 길에 언니가 사탕 사줄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생은 언니의 옷자락을 덥석 잡더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잡았다.”
“너, 거짓말이었구나!”
두 소녀는 까르르 웃으며 서로에게 장난을 쳤다.
잠시 후, 놀다 지친 두 소녀는 풀밭에 앉았다. 동생은 고개를 들어 언니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