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11
한제는 방금 겪은 회오리의 힘을 감안해 자신의 몸으로 몇 개의 회오리를 버텨낼 수 있을지 계산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회오리들은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한제가 푸른 빛을 번득이자 청광순은 수천 척 크기로 커져 그의 곁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고신의 육신에 청광순을 더한다면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결단을 내린 그는 곧장 시선을 돌리더니 가장 가까이 다가온 세 개의 회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세 개의 회오리가 청광순과 충돌했고 청광순은 격렬하게 번득였다. 이로 인해 일어난 상상을 초월하는 반동에 한제 역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그 틈에 아홉 개의 회오리가 달려들어 청광순과 충돌했다.
회오리가 멈추지 않고 달려들면서 한제는 끊임없이 후퇴했다.
아홉 개의 회오리가 전부 흩어져 사라졌을 때, 한제는 자신이 얼마나 멀리까지 물러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고신의 육신이라고는 하나 5성급에 불과한 터라 청광순을 이용했음에도 회오리의 끊임없는 공세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솟았다.
위기는 계속됐다. 앞에서는 열다섯 개의 회오리가 달려들고 있었다. 고신의 솥을 이용해고 그 엄청난 속도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콰콰쾅!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열다섯 개의 회오리가 거의 동시에 청광순에 부딪히고는 흩어져 사라졌다. 그 회오리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 파멸적인 힘에 청광순은 한제의 몸에 거의 딱 붙어 있었다.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며 끈 떨어진 연처럼 훌훌 떠밀려났다. 한 움큼 선혈이 울컥 솟아올랐지만 억지로 삼켜냈다.
수만 척이나 밀려난 뒤에야 땅에 처박힌 한제로부터 고리 모양의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땅을 뒤덮은 검은 모래가 솟구쳐 하늘을 거의 뒤덮더니 한참 후에야 가라앉았다.
땅에는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가 하나 생겨나 있었고 그 중앙에는 본래의 육신으로 돌아온 한제가 있었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힘겹게 일어나 그 깊은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검은 사막을 바라보며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의 눈에는 은근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5성급 고신의 육신으로 이렇게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처음이군. 저 회오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한제의 안색은 어두웠다. 분신과 본체를 융합시킨 뒤에는 정열기 수련자와도 맞붙을 수 있었기에 정열기 후기나 쇄열기 수준 수련자를 맞닥뜨리지 않는 바에야 생명의 위기를 느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특히 고신의 육신에 대해서는 거의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제는 다소 자신감을 잃은 채 너른 사막을 바라보았다. 마치 고신의 땅에 들어갔을 때처럼 단 한 번의 실수로 영원히 돌이키지 못할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최근에 너무 안일했지. 수준이 높아지고 분신과 본체를 융합시키면서 신중함을 잃었어.’
한제의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예전의 그 신중함과 조심성이 되살아났다.
‘이곳은 선제(仙帝) 청림의 동굴이다.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어.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 돼. 한시도 쉬지 않고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신식을 펼쳤으나 그 범위는 자신의 근방으로 제한했다. 그 상태로 그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회색 기운은 아까 내가 펼친 신식 때문에 나타난 것일지도 몰라. 처음부터 강력하긴 했지만 저항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지. 또다시 신식을 펼쳤다가는 그 회색 기운보다 더 위험한 무언가가가 나타날 수도…’
이런 직감은 1천 년이 넘는 수련 경험을 통해 생겨난 것이었다.
깊게 고민한 한제는 저물대에서 존혼번(尊魂幡)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혼백을 하나 쥐었다.
날카로운 표정의 이 혼백은 존혼번 안에서 제련되면서 이미 지능을 잃은 상태로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손하게 한제의 곁에 떠올랐다. 한제는 존혼번을 다시 저물대에 넣고는 그 혼백의 미간을 두드려 그의 신식 중 일부를 혼백 안에 남겼다.
작업을 마친 그는 혼백을 남겨둔 채 몸을 훌쩍 날렸다.
2각쯤 지나 혼백과 거리가 충분히 벌어진 것을 확인한 한제는 그 혼백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혼백 안의 신식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강렬한 위기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끼고는 혼백과 연결된 신식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 순간, 한제는 그 혼백이 남겨진 곳의 상공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한 줄기 회색빛이 하늘에서 그 혼백에게로 곧장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혼백은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미리 대비해둔 상태라 재빨리 신식의 연결을 끊지 않았다면…?’
신식 간의 연관을 끊어버릴 준비를 일찍이 해둔 데다가 불길한 낌새를 느낀 한제는 멀리 떨어진 곳의 상공을 바라보며 머리가 저릿해졌다.
갑자기 나타난 회색 빛은 순식간에 사라지긴 했지만 이전에 보았던 열 개가 넘는 회오리로부터 느낀 것보다 몇 배는 큰 두려움을 느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이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낮과 밤의 구분이 없는 이곳의 하늘은 꼭 짙은 먼지로 뒤덮인 것처럼 내내 먹먹하고 어둑했다.
근 한 달 동안 한제는 쉬지 않고 걸었다. 그동안 사람은커녕 생명이 있는 그 무엇도 보지 못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이곳에는 온통 검은 모래뿐이었다.
한제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져갔다. 이곳은 마치 금지된 땅이나 감옥처럼 절망감을 안겼다.
제아무리 수련자라 해도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면 어둠에 잠식될 것이고 그 어둠은 원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터였다. 이로 인해 악마 같은 존재로 변하게 될지도 몰랐다.
만약 마도(魔道)에 몸을 담은 사람이라면 이곳은 성지라 할 수 있으나 그들도 수준은 대폭적으로 증가할지 몰라도 결국 의식 없는 마인(魔人)으로 전락할 것이다.
지난 한 달 동안 큰 위기를 맞닥뜨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제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느끼는 위기감은 짙어지기만 했다.
한 줄기 미약한 신식의 파동이 흐릿하게 스쳐가는 것을 몇 차례나 느꼈지만 아무리 탐색을 해봐도 그 신식의 본체가 있는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날아서 이동할 수도 없었다. 존혼번에서 꺼낸 혼백들을 이용해 시험해본 결과 2백 척 높이까지 떠오른 순간 흩어져 사라졌다.
어느새 한제의 얼굴에는 한 줄기 검은 기운이 어렴풋이 드리웠다. 하지만 두 눈만큼은 이전처럼 밝게 번득이고 있었다.
‘사도환 선배님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군. 그분이 수련해온 것은 마도에 가까우니 이런 환경이라면 훨씬 수월할 텐데…’
한제는 말없이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의 얼굴에 드리웠던 검은 기운들이 뽑혀 나와 손에 녹아들었다.
손에 응집된 검은 기운의 덩어리를 바라보던 한제는 이전에 만났던 산마(酸魔)의 기운을 느꼈다.
“마기(魔氣)⋯⋯.”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순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기운의 덩어리는 무너져 내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 반경 1천 척을 뒤덮은 채 차차 흩어졌다.
걸음을 우뚝 멈추고 널리 퍼진 검은 기운을 응시하던 한제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어쩌면⋯⋯?’
한제는 생각에 잠긴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끝없는 이 검은 사막에서는 동서남북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걸어 출구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한 달이 지나 이곳에 갇힌 지도 벌써 두 달째였다.
한제는 온몸이 짙은 검은 기운에 휩싸여 있었는데 약간 마른 몸에 그 검은 기운으로 가득 뒤덮여 있는 그는 마치 마신(魔神) 같아 보였다.
두 눈을 감은 채 묵묵히 걷던 한제는 돌연 저 멀리서 한 줄기의 미약한 신식이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홉 번째⋯⋯.”
한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난 두 달 동안 미약한 신식이 그의 곁을 스쳐 간 것이 벌써 아홉 번째였다. 그 신식들이 한제의 마음에 끼친 압박은 서로 달랐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신식인 것이 분명했다.
잠시 후, 그 신식은 다시 돌아가면서 한제의 곁을 다시 스쳐갔다. 한제는 마치 그 신식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덤덤하게 말없이 걸었다.
‘아직이야.’
쫓다
한 달, 또 한 달⋯⋯.
이 검은 사막에 들어선 지도 반년이 됐다.
해도 달도 뜨지 않는 이 검은 사막을 걷다 보면 보통의 수련자는 고독과 적막에 미쳐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이곳의 고독감은 수십 년 동안 좌선을 할 때나 고신의 땅에서 보낸 1백 년의 고독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또다시 아득히 먼 저쪽에서 한 줄기 신식이 휙 날아와 한제 곁을 스쳐갔다.
한제는 맹렬히 고개를 쳐들고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서른두 번째⋯⋯. 나의 마기(魔氣) 역시 충분해졌다!”
이때 한제의 온몸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 멀리서 보면 꼭 강력한 마기로 뒤덮인 검은 화염 같았다.
곁을 스쳐 간 신식은 한제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곳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신식은 엄청난 속도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가까워진 순간, 한제의 온몸을 뒤덮었던 마염(魔焰)이 돌연 폭발했다.
지난 반년은 기다리고 쌓고 관찰한 시간이었다. 이 반년 동안 한제는 자연스레 형성된 마기를 묵묵히 관찰하고 그것을 쌓아왔다. 그러면서도 그 마기가 원신에는 녹아들지 않게 하기 위해 매우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이 순간, 그렇게 쌓아왔던 모든 마기가 터져 나왔다.
마염이 활활 타오르듯 움직이며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검은 화염이 하늘을 집어삼키려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때, 허공에서 거대한 마영(魔影)이 나타나 되돌아가려는 신식을 매섭게 집어삼켰다.
신식의 일부는 마염에 그대로 삼켜지는 순간, 한제는 냉랭한 원력이 마기를 타고 심신으로 흘러드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삼켜지고 남은 신식의 일부는 빠르게 물러나며 마염을 피해 달아났다.
한제는 검은 안개 속에서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반년 동안 웅크린 채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됐다.
그 신식이 도망치던 순간, 한제는 두 팔을 양옆으로 펼치며 반년 동안 참아왔던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
그와 동시에 한제의 몸을 뒤덮고 있던 검은 안개와 같은 마기가 폭풍처럼 쏟아져 나와 빠른 속도로 솟아올랐다.
검은 기운이 흘러나옴에 따라 대량의 안개가 한제의 체내에서 발산되어 허공에서 응집됐고 눈 깜짝할 사이 반경 수천 척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검은 기운 아래, 한제는 반년 동안 수많은 검은 기운에 가려지고 감춰졌던 진짜 얼굴을 점차 드러냈다.
허나 지금 그의 머리는 먹물처럼 검게 변한 채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나부꼈고 그의 얼굴은 푹 꺼져 꼭 가죽으로 뒤덮인 뼈 같았다. 눈 두덩이는 움푹했고 시커먼 혈관이 드러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전신은 짙은 악기(惡氣)에 뒤덮여 있어, 지금 그의 모습은 보통의 수련자가 아니라 마도의 길을 걷는 자 같았다.
반년 동안 마기를 응집한다고 해서 한제가 이렇게 변화할 리도 그렇게 많은 마기를 응집할 수도 없었다. 이 정도 양의 마기는 최소한 수십 년은 걸려야 쌓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한제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본디 정도(正道)의 수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천 년 넘는 수련을 해오는 동안 그는 정도와 마도(魔道)를 겸비한 상태였다. 특히 화마지(化魔指)를 발휘할 때는 마도의 수련자가 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 엄청난 신통력을 발휘하기 위해 극단으로 치달은 상태였다.
두 팔을 벌린 한제의 두 눈에 살기가 번득였고 허공의 마기는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끊임없이 확산됐다.
이 무궁무진한 마기는 마치 반년 전 한제의 손에 쥐어졌던 마기의 덩어리가 그러했듯 돌연 무너져 내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었다.
마기는 순간 반경 수십만 리까지 퍼져 나갔고 이에 도망치려던 신식은 그 범위에 포함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는 한제의 계획 중 두 번째 단계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