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10
“배이라⋯⋯. 늦지 않았네. 딱 맞춰 왔어.”
대머리 청년의 출현에 허공자의 눈빛이 굳어졌고 눈동자는 바짝 졸아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운선 부부의 눈빛 역시 서늘하게 번득였다. 오직 천운자만이 옅은 미소를 짙고 있었다.
선기에 휩싸인 구룡(九龍)의 진은 용들의 포효 아래 보라색 빛을 격렬하게 번득였다. 그 빛이 반경 수천 척을 완전히 뒤덮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다섯 번째 선부가 열린 것이다.
선제(仙帝) 청림이 폐관수련을 하고 있다는 선령천경(仙靈天境)의 다섯 번째 선부가 어떤 곳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곳은 당시에도 오직 청림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이를 위반하는 자는 예외 없이 죽임을 당했다. 심지어 그의 딸인 청상 역시 평생 단 한 번도 그곳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한제는 보라색 빛 속에서 몸이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흩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주 기이한 느낌이었지만 고통은 없었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그 느낌은 실제로는 순식간에 끝이 났고 한제는 낯선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곳은 검은 모래로 뒤덮여 있었다. 쉭, 쉭 하고 불어오는 바람이 검은 모래를 이리저리 흩날렸다. 땅거미가 지는 때인지 하늘마저 어둑해 회색 장막으로 뒤덮인 것만 같았다.
한제는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안색은 어두웠다.
요령의 땅 전역을 뒤덮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던 그의 신식으로도 이곳은 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더구나 그의 신식이 닿은 공간 안에는 오직 한제 자신밖에 없었다. 이 안으로 들어온 모든 사람은 뿔뿔이 흩어진 듯했고 서로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한제는 높은 곳에서 살피기 위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허나 채 1백 척 높이에도 이르기 전에 그는 표정이 급변했다.
하늘에서 추락하는 위기감에 그는 재빨리 땅에 착지한 후 오른쪽 눈에서 푸른 빛을 번득였다. 그러자 청광순(靑光盾)이 튀어나와 앞을 막아섰다.
쾅!
청광순이 나타난 것과 거의 때를 같이 해 한 줄기 회색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곧장 충돌하며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한제는 뒤로 1백 척 가까이 밀려난 뒤에야 겨우 몸을 멈춰 세웠다.
서늘한 눈빛을 번득인 순간 그의 뒤에서 고신의 허상이 나타났다. 한제는 고신의 위력을 담아 주먹을 휘둘렀고 그 주먹은 회색 기운과 충돌했다.
콰르릉!
회색 기운은 순식간에 붕괴했지만 한제는 마음을 놓기는커녕 위기감을 느끼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붕괴했던 회색 기운이 순간 수십 갈래의 더욱 강력한 기운을 품고는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쾅! 쾅!
충돌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고 한제는 끊임없이 뒤로 물러났다. 회색 기운은 갈수록 빨라지면서 계속해서 한제를 바짝 쫓았다. 청광순이 막아내고 있는데도 느껴지는 엄청난 힘에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어느새 1만 척 이상 밀려난 한제는 싸늘한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회색 기운들이 재차 달려드는 순간 입을 쩍 벌려 원신의 기운을 한 움큼 뱉어냈다. 그리고 원신의 기운과 회색 기운이 충돌한 순간 다시 주먹을 휘둘러 일련의 음폭(音爆)을 일으켰다.
콰르릉!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던 순간, 한제는 다시 한 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열 개가 조금 넘었던 회색 기운은 전부 무너져 내리더니 곧장 수백 갈래가 되어 다시 돌진해온 것이다.
‘대체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한제는 머리가 저릿해졌다. 첫 번째 주먹을 날렸을 때는 반동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두 번째 주먹을 날렸을 때에는 거대한 반동에 온몸이 찌르르 울렸다.
불쾌한 느낌은 곧 사라졌지만 한제는 세 번째 주먹을 날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동안 청광순은 한제의 온몸을 감싼 채 수백 갈래가 된 회색 기운의 연속적인 공격을 막아냈다.
광활한 검은 사막 안에서 한제는 끊임없이 도망쳤고 수백 갈래의 회색 기운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추격했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땅을 뒤덮은 모래 위로 긴 선과 같은 흔적이 남았다.
이곳에서는 순간이동도 축지성촌도 소용없었다.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기껏해야 단 1촌을 이동하는 데 그쳤다.
‘도착하자마자 이런 기이한 존재와 맞닥뜨리다니…’
한제는 쓰게 웃었다. 기를 쓰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회색 기운들은 살기 어린 빛을 번득이며 끈질기게 추격해왔다.
한숨을 내쉰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맹렬하게 몸을 홱 돌리며 하늘을 가리켰다.
“호풍(呼風)!”
육신의 힘으로 이 골치 아픈 회색 기운을 처리할 수 없다면 선술을 이용해볼 생각이었다.
어스름했던 이 세상에서는 순간 검은 바람이 빽빽하게 몰려들었다.
한데 네 마리 흑룡이 모습을 드러내려던 찰나, 어두운 하늘은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처럼 급격히 변해 버렸다. 어느새 하늘의 절반 정도가 회색 기운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이 회색 기운들은 쉭 하고 날아들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회색 회오리가 되어 순식간에 흑룡들을 흩어 버렸다.
눈이 휘둥그레진 한제는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회오리는 모든 회색 기운들을 흡수하면서 점점 더 커져 결국에는 수만 척 길이로 불어난 뒤 곧장 한제를 추격했다.
등 뒤에서 훅 끼쳐오는 흡인력에 한제는 심장이 덜컥했다. 회오리가 끊임없이 추격해 오는 가운데 그것이 지나온 자리로부터 다시 회색 기운들이 나타났고 곧장 회오리 안으로 흡수됐다. 그렇게 한제를 뒤쫓는 동안 회오리는 점점 커져 갔다.
‘대체 저게 뭐냔 말이다!’
이를 악문 한제는 고신의 솥을 소환해 고신의 힘으로 온몸을 뒤덮은 채 솥 안으로 녹아들었다.
고신의 보물을 이용해 모습을 숨겼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1천 척 정도를 이동해 있었다.
이에 한제는 좌절했으나, 이내 다시 이를 악물고 무언가를 결심했다.
1천 척은 순식간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는 거리인 데다가 고신의 힘을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회오리를 멈추게 하는 것뿐이었다. 아주 잠시라도 회오리를 멈출 수만 있다면 도망칠 가능성이 생길 터였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수십 자루의 거대한 검을 꺼냈다.
검들은 곧장 하나의 검진(劍陣)을 형성하더니 회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검들이 회오리에 접근한 순간, 한제는 크게 외쳤다.
“검폭(劍爆)!”
거의 동시에 각 검들은 파멸적인 기운을 발산하며 폭발하더니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회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의 파편들은 그대로 회오리를 뚫고 들어갔고 덕분에 회오리는 아주 잠깐 움찔 하고 멈추었다.
검들을 잃은 것은 아쉬웠지만 한제는 곧장 고신의 솥으로 빛을 번득여 사라졌다. 그리고 1천 척 떨어진 곳에 나타난 순간. 다시 한 번 고신의 솥이 번득였다.
마영(魔影)
짧은 순간 연속으로 아홉 차례나 고신의 솥을 이용한 한제는 순식간에 거의 1만 척을 이동했지만 여전히 안심하지 못했다. 그 회오리가 다시 쫓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제는 씁쓸한 얼굴로 이를 악문 채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전방에 한 줄기 균열이 생겨나더니 검은 전광이 흐르는 허상의 멸신모(滅神矛)가 나타났다.
한제는 멸신모를 쥐더니 매섭게 내던졌다.
그 창은 순식간에 회오리를 뚫고 들어갔다.
콰르릉!
창에 어린 파멸적인 기운이 폭발하면서 거대한 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에 따라 온 세상이 진동하는 듯했다. 그리고 회오리가 무너져 내렸다.
그 틈에 한제는 다시 수십 차례나 고신의 솥을 이용해 이동했다.
그러나 뒤쪽의 상황을 살핀 한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갔다.
무너져 내렸던 회오리가 회색 기운과 마찬가지로 눈 깜짝할 사이 열 개가 넘는 같은 크기의 회오리로 불어나 곧장 추격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데도 회오리를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위기만을 자초했다. 수많은 위기를 겪은 한제였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더구나 저 회오리들은 허상이 아니다. 때려서 흩어 버릴 수도 없고 법보도 통하지 않으며 신통력으로도 처리가 안 된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에 잠긴 동안에도 회오리들은 점점 가까워졌고 끊임없이 회색 기운을 흡수하며 커져갔다.
‘고신의 솥을 이용해봐야 지금의 거리만 유지될 뿐이다. 결국에는 따라잡힐 거야. 그렇다면… 피할 수 없다면 맞서는 수밖에!’
한제는 제자리에 꼿꼿이 버티고 섰다. 맞붙을 것이라면 회오리가 더 커지기 전에 해야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일 수 있다.
한제는 고신의 힘으로 온몸을 뒤덮었다. 그의 체내에서는 펑, 펑 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거대하게 불어났다.
그리고 이내 진짜 고신의 모습이 드러났다.
수천 척에 달하는 그는 한 손으로도 하늘을 떠받칠 수 있을 듯했고 미간에서는 다섯 개의 반점이 회전하고 있었다.
열 개가 넘는 회오리들이 접근해온 순간, 한제가 성난 고함을 내질렀다.
“크아아아!”
그는 걸음을 내딛으며 고신의 솥을 발동했다. 그는 순간 사라졌다가 회오리 앞에서 나타났다.
★ ★ ★
선령천경(仙靈天境) 다섯 번째 선부 깊은 곳에는 나무다리가 하나 있다. 그 다리 아래로는 검은 물이 흘렀고 그 물속에서는 이따금씩 유영하는 거친 그림자가 드러났다.
지금 그 다리 위에는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온몸을 갑옷으로 두른 채 짙은 검은 안개로 휩싸인 그의 용모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그에게서는 음산한 마기(魔氣)가 풍겼다. 그 마기가 어찌나 짙은지 이곳이 곧 마역(魔域)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꼼짝도 않은 채 시종일관 가부좌를 틀고 있던 그의 앞 허공에는 작은 병이 하나 떠 있었다. 병의 입구는 나무 마개로 막혀 있어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으로 빠져나올 자는 누구일까? 인간의 살과 피를 맛본 것이 얼마나 오래전의 일이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그의 목소리는 마치 뼈와 뼈가 부딪히며 갈리는 듯 거칠었고 두 눈은 피에 굶주린 듯 번득였다.
이미 힘만으로는 회오리를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한제는 낮게 기합을 넣으며 육신으로 그 회오리에 저항했다.
‘이 회오리의 힘과 고신의 힘 중 어느 쪽이 더 강한지 봐야겠다!’
회오리들은 위협적인 쉭, 쉭 소리를 내며 달려들어 곧장 한제의 몸을 휩쓸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 회오리의 위력을 실감한 한제는 거대한 파도에 맞부딪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그 거대한 파도와 함께 달려든 광풍은 온몸을 갈기갈기 찢으려 들었다.
네 개의 회오리가 완전히 덮쳐 든 순간, 그 내부에서 펑, 펑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한제는 뒤로 세 걸음 정도 밀려났다.
그 순간, 근처에 있던 고신의 솥이 다시 한 번 번득였고 한제는 1천 척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회오리들의 공격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