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09
끝없이 이어진 숲 역시 선기의 폭풍에 휩쓸리면서 요기가 완전히 제거되었다. 요물과도 같았던 숲속의 나무들은 바르르 진동하며 곧고 단단하게 뻗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숲속의 마수들 역시 선기의 폭풍을 피할 수는 없었다. 충만한 요기로 번득이며 서로를 물어뜯고 있던 사슴 무리도 이들을 사냥할 틈을 노리던 거대한 뿔이 달린 호랑이도 선기의 폭풍에 휘말리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슴들은 몸을 뒤덮었던 보라색 반점이 사라지면서 본연의 색으로 돌아갔고 거대한 호랑이도 경련을 일으키더니 머리에 달려 있던 뿔이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검은색이었던 녀석의 몸도 순식간에 하얗게 변해 버렸고 심지어 그 주위에 선기까지 맴돌면서 두 눈에 지능이 담겼다.
선기의 폭풍이 확산됨에 따라 온 숲을 뒤덮고 있던 요기는 완전히 제거되었고 멀리서 본 숲은 이제는 선경(仙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숲 밖에서 흐르는 강도 그 안에 있던 기이한 형태의 물고기들도 같은 변화를 맞았다. 온 요령의 땅이 선기의 영향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네 개의 빛기둥이 모두 활성화됨에 따라 다시 나타난 선기가 이곳을 오염시킨 요기를 빠르게 몰아내고 있었다.
요군의 수도들과 부락들 또한 선기의 폭풍으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가고 있었다. 요령의 땅 사람들은 고통에 찬 표정으로 하나둘 고꾸라졌고 그들의 몸에서는 요기가 빠져나와 선기에 의해 지워졌다.
모든 요기가 짙은 선기 아래 완전히 사라지면서 심지어 하늘까지도 점점 맑아졌다.
이제 이곳에 남은 요령(妖靈)은 없었다. 이곳은 선령천경이었다.
하지만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이 선령천경 안에는 아직 요기가 굳건히 버티고 있는 곳도 있었다. 선기의 폭풍이 몰아치는데도 이런 요기는 못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령천경의 한 산골짜기 안 연못에서는 요기 어린 얼굴이 하나 나타나더니 온 세상을 뒤덮은 선기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청림도 정말 대단하군. 그 동굴들이 열리는 순간 이렇게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날 줄이야⋯⋯. 만약 내가 다른 요령을 흡수하지 않았다면 분명 엄청난 압박에 짓눌려 있었겠지! 허나 이제는 상관없다. 이 요령의 땅이 다시 그 당시와 같은 모습을 되찾는다 해도 문제없어! 동굴은 열렸고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한다! 고마(古魔), 선제(仙帝), 이 배이라가 간다!’
그 얼굴은 순간 일그러지더니 곧장 연못 밖으로 튀어나와 한 줄기의 요사스러운 빛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선기(仙氣)의 폭풍이 그를 훑고 갔지만 오히려 그 요사스러운 빛에 흡수면서 요기가 되었고 배이라에게서 번득이는 요사스러운 빛은 더욱 강해졌다.
★ ★ ★
어느 요군 수도의 지하. 선기의 폭풍이 스쳐 지나가던 순간, 가부좌를 틀고 있던 요석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는 그 선기를 느끼자마자 몸을 바르르 떨었고 그 순간 흘러넘치는 듯한 요기가 그녀의 체내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요기는 이내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해 그녀의 몸에 드리운 선기를 전부 빨아들였다.
다음 순건 요석설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요령의 땅 허공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요기로 뒤덮여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냉랭한 기운만큼은 극에 달해 있었다.
잠시 그대로 머물러 있던 그녀는 곧장 요사스러운 빛줄기가 되어 돌진했다.
한편, 선기의 폭풍에도 여전히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또 있었다. 지금은 연혼종(煉魂宗)으로 바뀐 화요군(火妖郡)이었다.
선기의 폭풍은 연혼종에 이르러 한제의 석상에 깃든 요기도 흩어버리려 했지만 그 순간 석상으로부터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키야아아!”
선기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연혼종의 수백만 제자들은 일제히 혼번(魂幡)을 휘둘렀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혼백이 도시 가득 퍼져나가 산골짜기 안의 검은 석상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연혼종 수도 전체가 검은 안개로 뒤덮였고 수많은 혼백들은 쉭쉭 소리를 내며 선기의 폭풍에 저항했다. 하지만 선기의 폭풍은 너무도 강력해 연혼종은 성난 파도 속의 조각배처럼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상황에 처했다.
검은 안개 속에 가부좌 튼 채 좌선을 하고 있는 수백만 명의 연혼종 제자들은 질겁했지만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때, 사방을 휩쓸던 선기의 폭풍 중 일부에 돌연 약간의 변화가 일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회오리가 되어 연혼종이 나머지 세 갈래의 선기 폭풍에 저항하는 것을 도와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세 갈래의 선기 폭풍은 멈칫하더니 빙 둘러 먼 곳으로 가버렸다.
연혼종을 도와준 선기의 회오리는 그제야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수축하여 나머지 선기의 폭풍들을 뒤쫓아 다시 그 안에 녹아들었다.
선기의 폭풍이 온 선령천경을 휩쓸던 그때, 동서남북에서 솟아오른 빛기둥은 화려한 빛을 번득이며 줄기줄기 광선을 쏘아대 하늘을 뒤덮었다.
뒤이어 이 네 개의 빛기둥에서 발산된 광선은 서로 연결되며 그 옛날의 선령천경이 본래 가지고 있던 보호막을 다시 회복했다.
그 순간, 네 빛기둥의 정중앙이자 선령천경의 최중심부이며 끝없이 이어진 산맥이 있던 이곳에서는 색색의 광선이 맴돌았고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땅이 진동하면서 그 산들에서는 큼지막한 돌들이 떨어져 내리면서 부연 모래 먼지가 일었다. 멀리서 보면 모래 먼지로 완전히 뒤덮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때, 그 산맥 중 하나에서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돌과 바위가 반절 정도 떨어져 내리더니 그 안쪽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보라색 용이 포효를 내지르며 몸을 꿈틀거렸다. 산맥처럼 웅크리고 있던 그 용의 위를 덮었던 돌과 바위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캬아아아!”
보라색 용은 승천하면서 온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이 용은 매우 위엄이 넘쳤고 두 눈에서는 한없이 냉랭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때, 또 하나의 산맥이 무너져 내리면서 두 번째 보라색 용이 포효와 함께 날아올랐다. 뒤이어 다른 산맥들 역시 하나하나 갈라졌고 그때마다 보라색 용들이 속속 날아올랐다. 그렇게 하늘에 나타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포효를 우렁차게 내지르는 보라색 용은 총 아홉 마리였다.
이 아홉 마리의 용은 선회하며 교차하더니 보라색 빛을 번득이며 원형의 진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 진이 완성된 찰나, 선령천경 전역을 뒤덮은 선기는 한층 더 증폭되었다.
그 진은 허공에 뜬 채로 보라색 빛을 번득였는데 수백 리 떨어진 곳에서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선부(仙府)가 열리다
진에서 멀지 않은 허공이 왜곡되더니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능천후와 조 씨 성을 가진 손선, 그리고 둘 사이에 선 허공자였다.
허공자의 표정은 덤덤했으나 눈빛만은 밝게 번득였다.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한 차례 왜곡이 일어나더니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이번에 나타난 사람을 본 순간, 능천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허공자 역시 고개를 들어 막 도착한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천운자는 침착한 얼굴로 허공자를 향해 포권을 했다.
“허공자 도우를 뵙습니다.”
허공자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천후의 초대로 나 역시 이곳에 오게 됐네.”
천운자는 아홉 마리의 용으로 형성된 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혼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는데 허공자 도우께서 오셨으니 일이 순조롭게 풀리겠군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두 번 더 공간의 왜곡이 일어났고 그 안으로부터 운선 부부와 한제 일행이 나타났다.
운선부부의 뒤에는 허상의 그림자가 하나 붙어 있었는데 그 그림자는 한제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몸을 바르르 떨었다. 두 눈에는 감격과 안심의 빛이 어려 있었다.
한제는 운선 부부를 한 번 훑어보았다. 두 사람을 이전에 본 적이 있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부부의 뒤에 선 허상을 본 순간, 그의 눈빛도 흔들렸다. 그 허상은 다름 아닌 주일이었다.
이오는 흥미롭다는 듯 한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가 네 번째 선부의 열쇠를 가져갔다는 이한제냐?”
한제는 신중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저 부부의 수준을 간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제는 동굴을 차지한 뒤 요령의 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운선 부부에 대해 요석설을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한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오의 곁에 있던 호연이 작게 웃었다.
“내기 했던 거 기억나? 내가 이겼네.”
이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제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조석의 심연 화요군 입구에 있었던 그 금제, 네가 배치한 것이냐?”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 손에 한 줌의 풀이 나타났다. 그것이 당시 자신이 배치했던 금제임을 알아본 한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더니, 내가 너 정도였을 때는 이런 교묘한 금제는 만들지 못했지.”
길게 한숨을 내쉰 이오는 대견하다는 듯 한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한제는 포권을 하며 대답한 뒤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며 이오의 뒤에 있는 그림자를 한 번 더 훑어보았다.
한제의 눈빛이 닿자 주일의 두 눈도 순간적으로 번득였다.
그때, 돌연 저 멀리 떨어진 하늘 끄트머리에서 몇 갈래의 빛이 쉭 하고 날아들었다. 선두에는 그 촌부처럼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중년의 여인이 있었고 그녀의 뒤로는 네 명의 제자가 따르고 있었다. 제자들 중에는 곤허의 성녀로 추측되는 여인과 곤허도 있었다.
중년 여인은 가까이 다가와서는 먼저 천운자를 보았다가 운선 부부를 자세히 살피더니 선의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제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허공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천운자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으나 미묘하게 미간이 구겨졌다.
뒤이어 멀리서 또다시 두 갈래의 빛이 날아들었다. 호리병 위의 노인과 흑의(黑衣)의 사내였다.
호리병 위의 노인은 먼저 모인 이들을 차례로 살피다가 운선 부부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피식 웃으며 천운자의 곁으로 향했다.
흑의의 사내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말없이 한제 일행의 곁에 섰다.
한제는 그 사내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말 한 마디 나눠본 적 없지만 상대가 매우 냉정하고 다른 이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흑의의 사내는 한제와 눈을 맞춘 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덤덤한 말투였다.
“나와 함께 가도록.”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홉 마리 용으로 형성된 진은 보라색 빛을 발산하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멀리서 돌연 짙은 요기의 화염이 일더니 곧장 돌진해왔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요기의 화염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사내인지 여인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인영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심신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 요기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인영 역시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짙은 한기 서린 눈빛이 요기를 뚫고 마치 예리한 검처럼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 인영은 다음 순간 시선을 거두더니 말없이 천운자의 곁에 섰다.
천운자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저 먼 곳에 닿아 있었지만 약간의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는 여유롭게 다가오는 붉은옷의 대머리 청년이 있었다. 그는 용모가 매우 준수했고 은연중에 요사스러운 아름다움마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머리에는 머리카락 한 올 없었고 온몸에서는 선기가 맴돌았다.
가까이 다가온 그는 가장 먼저 한제를 보며 웃었다.
“동생, 내가 늦었군.”
한제는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