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59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타산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한제를 끌어안고 재빨리 후퇴했다. 그의 온몸을 둘러싼 문양은 거의 다 무너져 내렸지만 타산의 거칠고 강건한 표정은 여전했다. 몸을 두른 회색 연기가 체내로 흡수되면서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켰고 일부는 한제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그때, 저 멀리서 대두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육신은 천운자의 분신이 날린 일격에 붕괴한 상태였고 원신 역시 중상을 입어 금방이라도 흩어질 지경이었다.
중상을 입은 뇌길 역시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는 대두의 원신을 막아서며 가장 가까이 있던 천운자의 분신이 쏟아낸 일격을 그대로 받아냈다.
쾅!
뇌길의 육신도 무너져 내렸고 원신 역시 거의 흩어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부풍자가 손을 휘둘러 재빨리 그 원신을 거두었지만 그러는 사이 부풍자 역시 천운자의 또 다른 분신이 날린 검에 가슴이 꿰뚫리고 말았다.
“크으…”
부풍자는 신음을 토해내며 진도삼자의 남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 ★ ★
타지아는 두 팔을 벌려 뒤편에 초승달과 같은 허상을 만들어냈다. 이에 그와 맞서고 있던 다섯 노인이 꺼내 들었던 공(空)급 법보는 무너져 내렸고 노인들은 그 강력한 기세에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피를 토해냈다.
1백 명에 가까운 주작성종 사람들이 원신을 응집하여 만들어낸 화염 거인 또한 붕괴했고 흩어진 원신들은 각자의 육체로 돌아갔다.
“크윽!”
“쿨럭!”
원신이 돌아온 순간, 주작성종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를 토해냈다.
한편, 천운자는 덤덤한 얼굴로 타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아래에 한참이나 숨어 있던 네가 다시 나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타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그는 아주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 이곳의 참상은 자신과 관련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방금 한제가 죽음을 목전에 둔 것을 목격한 순간,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타산⋯⋯.”
한제의 얼굴은 파리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예리했다. 타산의 부축을 받고 서있는 그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난 괜찮으니 가서 대두를 도와라.”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검집을 꽉 쥔 채 살기가 등등한 눈빛으로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그는 마치 당시 주작성에서의 살기로 점철된 마혼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하늘의 뜻에 거스르는 수련자인 이 이한제는 죽더라도 땅에 꼿꼿이 서서 죽을 것이다!”
그 순간, 한제의 손에 들린 검집이 펑 하고 무너져 수많은 조각이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녹이 잔뜩 슨 철검뿐이었다.
이전과 다르지 않은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던 타산은 잠시 망설이다가 뒤로 물러나더니 몸을 홱 돌려 대두가 있는 곳으로 훌쩍 날아갔다.
한제가 타산을 떠나게 한 것은 그가 문양 부족의 성조가 남긴 유산을 물려받았다고는 해도 천운자를 마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금 죽음을 무릅쓰고 그를 보호해준 타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중상을 입지는 않은 듯했지만 사실 천운자의 두 번째 공격을 받아낼 여력은 없었다.
철검을 쥔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공손한 얼굴로 천운자를 바라보며 허리를 숙였다.
“한 번만 더 스승님이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지요.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전 어디에 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든 주작성을 떠났을지, 아니면 구석진 곳을 찾아 숨어 있었을지⋯⋯. 이 일격은 이 제자의 삶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제가 죽거든 윤회의 굴레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더라도 제 유해를 주작성, 고향 땅에 묻어주십시오. 또한 사도환과 저 사람들은 스승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부디 저들은 놓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천운자는 덤덤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천운자의 답을 들은 한제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패기와 오만함이 어려 있었다. 몸 곳곳이 아팠고 원신은 조각나는 것 같았지만 그의 손은 조금의 떨림도 없이 철검을 들어 올렸다.
“천운자!”
기세가 돌변한 한제는 원력을 남김없이 그 철검에 쏟아부었다. 순간 그 철검은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허공에 나타난 허상의 검이 천운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자루, 두 자루, 세 자루⋯⋯.
천운자는 미동도 없이 덤덤하게 한제를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검들을 바라보았다.
일곱 자루, 여덟 자루, 아홉 자루⋯⋯.
춤을 추듯 빙글빙글 맴돌던 하나의 검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다시 나타난 다음 검은 천운자를 향해 쏘아지며 반짝이는 검광을 형성했다.
열 자루, 열한 자루⋯⋯.
열아홉 자루의 허상이 나타났을 때, 한제는 피를 토했다. 그의 몸을 두른 붉은 갑옷도 빛을 잃기 시작했다.
스무 자루, 스물한 자루, ⋯⋯스물세 자루!
한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한계치였다.
그때, 한제의 붉은 갑옷이 흩어지더니 한 줄기 불 속성 원력이 되어 그 철검 안으로 녹아들었다. 그리고…
스물네 자루!
한제 체내에서 펑, 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의 두 눈에서는 핏물이 흘러내렸다.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그는 낮게 기합을 넣으며 다시 한 번 철검을 들어올렸다.
천운자의 주위를 맴돌던 철검들이 쉭쉭 소리를 내던 그때, 눈 깜짝할 사이 스물다섯 번째 검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 스물다섯 번째 철검이 나타난 순간, 한제의 가슴팍에서 피 안개가 터져 나오면서 상처가 벌어졌다. 그는 크게 휘청거렸지만 가까스로 쓰러지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
비참한 미소를 흘리며 다시 철검을 들어 올린 한제는 스물여섯 번째 검을 만들어 천운자를 베게 했다.
그때, 천운자의 덤덤한 얼굴에 마침내 변화가 일었다. 한제를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고민하는 빛이 어렸다.
“다 소용없다. 지금의 나를 막기 위해서는 이 차공열 법보가 적어도 서른 자루는 되어야 한다.”
“그렇습니까⋯⋯?”
한제는 눈앞이 흐려졌지만 멈추지 않고 오른손을 다시 휘둘렀다. 천운자의 몸을 맴도는 검광이 쉭쉭 거리는 가운데 스물여섯 번째 검이 나타났다.
한제의 칠규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철검을 내던졌다. 던져진 철검은 천운자 근처에 이르렀다가 뒤로 떠밀려 나오며 스물일곱 번째, 스물여덟 번째, 그리고 스물아홉 번째 검으로 바뀌었다.
천운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순간 한제 체내의 원신이 대대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흩어지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위축된 상태였다. 허나 그 상태에서도 원신은 더욱 많은 원력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서른 번째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뒤를 이어 서른한 번째와 서른두 번째 검도 천둥번개를 동반하며 나타났다.
“서른세 번째 검!”
한제는 하늘을 뒤흔들 듯 거대한 고함을 내질렀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는 펑, 펑 소리와 함께 피 안개가 분출되더니 서른세 번째 검으로 응집됐다.
이 서른세 자루의 검은 천운자의 곁을 맴돌다가 한제의 손짓에 곧장 요령의 땅을 꿰뚫을 듯한 기세로 천운자를 향해 돌진했다. 철검에 잔뜩 슬어있던 녹의 흔적 역시 그 검광에 녹아들었다.
콰콰쾅!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주위의 모든 이들은 싸움도 멈추고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충격이 시작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타지아 역시 기이한 눈으로 그쪽을 돌아보았다.
“주인님⋯⋯.”
타산은 주먹을 바르쥔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주인님!”
대두의 원신도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신이 남아 있는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은미
“한제야!”
옷자락이 완전히 피로 젖은 채로 한제가 있던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도환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한제와 천운자가 있던 곳은 검이 일으킨 바람에 휩쓸렸고 그 강력한 폭풍이 퍼져나가면서 요령의 땅에는 격렬한 진동이 일었다. 이내 대지가 무너지고 하늘이 뒤집혔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온 하늘이 찢어졌고 그 너머의 우주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우주로부터 무궁무진한 힘이 쏟아져 들어왔다.
허나 그 강력한 충격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운자는 덤덤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짙고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삼지창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옷자락은 강한 바람에 휩쓸려 찢기듯 조각나 있었고 머리카락 역시 적지 않게 빠진 채였다.
마지막 힘을 쏟아부은 한제는 텅 비어버린 눈으로 쓰러졌다. 하늘 높이 솟아 있던 거대한 기둥에서 벗어난 그의 몸은 땅으로 추락했다.
‘이렇게⋯⋯ 부모님을 뵈러 가는 구나⋯⋯.’
자신의 몸이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끼며 한제는 흐릿한 눈으로 갈라진 하늘 사이에 드러난 우주를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부모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자신을 향해 손을 뻗은 그들의 얼굴에는 아주아주 오랜만에 보는 자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기억 깊은 곳에서만 되새길 수 있었던 미소였다.
‘어쩌면⋯⋯ 이 편이 더 좋을지도⋯⋯.’
한제도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 뒤로 모완의 모습도 보였다.
‘다들⋯⋯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한제는 멍한 눈으로 계속해서 추락했다.
“사도환⋯⋯ 주일 선배⋯⋯.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합니다.”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한데 그 순간, 요령의 땅을 품은 우주에 두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곤허경의 노인과 모은미였다.
항상 냉랭했던 모은미였지만 한제가 높이 솟은 지면에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본 그 순간, 그녀의 냉랭함이 그대로 무너졌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심경이 된 그녀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깨닫기도 전에 한 줄기 빛이 되어 곧장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곁에 있던 노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녀를 막지는 않았다. 그저 요령의 땅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