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35
말을 마친 그는 옥패를 꺼내 뭔가를 기록한 후 건넸다.
“관심이 있으면 가보게.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서는 안 돼. 내 생각에는 11급 흉수도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한제는 옥패를 신식으로 한 번 훑은 뒤 포권을 했다. 두덕은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이틀 동안 한제는 은연중에 성도의 구입을 원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자 누군가가 몰래 성도를 사들이기 시작해 이틀 만에 시장에 나온 거의 모든 성도를 사들였다. 그리고 이 성도들은 철저한 검증을 거쳐 창송자의 손에 들어왔다.
창송자는 성도를 든 채 한제를 찾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끝에 그는 곧 여러 개의 성도가 든 저물대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여 도우가 성도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네. 그러나 이 중 진짜가 몇 개나 되는지는 나도 모르니 잘 판별해야 할 걸세.”
저물대를 받아 든 한제는 흡족한 얼굴로 포권을 했다.
“창송자 도우, 정말 고맙네. 내 시간과 수고를 많이 덜어주었군.”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던 중 창송자가 불쑥 물었다.
“내일 경매가 끝난 뒤에 무슨 약속이라도 있나?”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일인가?”
잠시 머뭇거리던 창송자가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내 알고 있는 비밀 장소가 있는데 그곳에 어쩌면 도우가 좋아할 만한 물건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그러네.”
그는 품에서 옥패를 하나 꺼내 슬쩍 넘겼다.
한제는 그것을 살피지도 않고 창송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창송자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했다.
“여 도우는 원정이 꽤 필요한 것 같던데… 내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내 원정 1만 개를 줌세!”
한제는 말없이 신식으로 옥패를 훑어본 뒤 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방 안은 고요했지만 창송자는 재촉하지 않고 한제의 답을 기다렸다.
“원정 2만 개는 받아야겠군. 계약금으로 1만 개를 먼저 받고…”
한제의 침착한 목소리에 창송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허허! 그래, 좋네. 신종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야 원정 2만 개가 대수겠는가? 경매가 끝나면 원정을 가지고 찾아갈 테니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포권을 한 뒤 한제의 방에서 나온 창송자는 웃음을 거둔 뒤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신종 사람에게 원정이 부족할 리가 있나! 저자의 정체가 의심스럽군. 허나 그가 진짜 신종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지. 내가 그곳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수준은 급격히 오를 테고 때가 되면⋯⋯?’
창송자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1천 년간 준비한 시간이 목전으로 다가온 것이다.
서로 잊고 지내다
경매가 열리는 장소는 주성 중앙의 광장이었다. 허나 이 경매에는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수많은 보옥종 제자들은 반경 1만 척을 둘러싼 채 외부인들의 입장을 엄격히 저지했다.
경매의 시작을 앞두고 각 종파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초대장을 가지고 분분히 안으로 들어섰다. 이 경매에 상당한 관심이 있던 한제도 그쪽으로 향했다.
한제가 등장하자 모든 수련자가 공손한 표정으로 포권을 하며 예를 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는 주성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는 초대장이 없었지만 누구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광장에는 백여 명의 수련자들이 흩어진 채 떠 있었다. 대부분은 규열기나 정열기 수준이었고 쇄열기 수준의 수련자는 많지 않았다.
한제는 여유롭게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주위를 살피다가 저 멀리 이천매를 발견했다. 그의 시선을 느낀 이천매가 돌아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때, 붉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네 명의 중년 수련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한제를 보고는 포권을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여 도우가 미천한 우리 종파의 경매장에 오다니, 우리 보옥종의 영광이 아닐 수 없군.”
한제는 저 노인을 알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를 찾아온 손님 중 하나로 보옥종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조 장로였군.”
한제가 미소를 지으며 살짝 포권을 하자 노인도 매우 겸손하게 같이 인사를 건넸다.
노인은 직접 목격한 그 전투는 물론이고 며칠 전 한제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모든 것을 종주에게 전했다. 종주는 보옥종 제자들에게 절대로 여자호를 건드리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여 도우, 경매가 곧 시작될 예정이네. 팔고 싶은 것이 있다면 빨리 움직여야 할 거야.”
한제는 잠시 고민했다. 원정을 구하기 위해 팔고 싶은 물건을 몇 개 생각해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두 개의 법보를 경매로 팔고 싶기는 하네만…”
“그래? 여 도우의 법보라면 일반적인 물건은 아닐 텐데.”
조 장로는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한제는 말없이 저물공간에서 검은 빛에 둘러싸인 물건 두 개를 꺼냈다.
붉은 옷의 노인은 금제로 봉인된 두 개의 법보를 신식으로 살폈으나, 이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이것들은 경매를 담당하는 장로에게 넘길 테니 여 도우는 걱정 말게.”
말을 마친 그는 포권을 한 뒤 자리를 떴다.
그 뒤에도 여러 수련자들이 속속 한제를 찾아와 인사를 했다. 그중에는 창송자의 개인 모임에서 보았던 문인 같은 청년과 아름다운 여인도 있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광장이 진동하더니 사방이 고요해졌다.
드드드드!
땅이 점점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균열이 이는가 싶더니, 바닥에서 열여섯 개의 거대한 비석이 솟아올랐다. 비석들은 1천 척이나 솟은 후에야 천천히 멈추었는데 그 위에서는 빛이 맴돌았다.
곧이어 그 비석들 바깥쪽의 대지가 진동하더니 마흔 개가 넘는 작은 비석들이 솟아나 8백 척 높이에 이른 후에야 멈추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바깥쪽으로 높이가 5백 척에 달하는 비석이 백여 개 솟아났다. 비석으로 이루어진 진이 배치된 것이다.
수련자들 대부분은 이 경매에 처음 참여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분분히 흩어져 각자의 신분에 따라 비석을 하나씩 차지하고는 그 위에 앉았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가운데 열여섯 개의 비석 중 하나에 가부좌를 틀었다. 누구도 그를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열여섯 개의 비석에 앉은 수련자들은 모두 쇄열기 수준이었고 그 대부분은 한제가 아는 이들이었다.
모든 수련자들이 제자리를 찾아 앉았을 무렵, 이천매가 다가와 옆에 앉았다.
“저는 떠나려 합니다.”
이천매는 자리에 앉자마자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작게 속삭였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날려 한제의 뺨을 간질였다. 동시에 풍겨오는 옅은 향기에 한제는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때, 경매가 시작됐다. 판매를 맡은 것은 얼굴이 네모난 보옥종의 노인으로 광장에서 날아오른 그는 가장 먼저 방울 모양의 법보를 소개했다. 그 위에는 수많은 흉수들의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언제?”
한제는 방울 법보에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경매가 끝난 뒤 바로 갈 생각이에요.”
이천매는 조용히 답하고는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배웅해주지.”
한제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 무렵, 방울이 누군가에게 팔렸고 보옥종의 노인은 두 번째 물건을 꺼냈다. 단약이었다.
이천매는 고개를 돌려 한제를 바라보며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배웅해주시는 건가요? 봉래 대륙을 떠날 때까지?”
“그러지.”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경매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천매는 그런 한제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니면 9급 성역까지 배웅해주실래요?”
한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면 요종까지 배웅해줄래요? 함께 흉수들의 침입에 대항해볼래요?”
그 목소리는 피리 소리만큼이나 아름다웠으나, 한제는 여전히 침묵했다.
이천매는 고개를 돌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약 역시 판매가 완료되었다. 보옥종 노인은 세 번째 물건을 소개했다. 역동감 있게 출렁이는 강과 호수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원래는 이렇게 빨리 떠날 생각은 아니었어요. 확인할 일도 있었고요. 한데 어제 스승님이 연락을 해오셨지요. 요종의 균열 속 흉수의 수가 갑자기 늘기 시작했다고⋯⋯ 9급 성역 각 종파 제자들은 최대한 빨리 지원을 하라고요. 이렇게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요.”
이천매의 아련한 목소리에 한제는 덤덤하게 답했다.
“조심히 가시게.”
“일전에 여 형과 오청의 전투에 제가 개입하지 않았던 것은⋯⋯.”
이천매가 말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자 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이천매는 한제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알고 있나요?”
한제는 말없이 보옥종의 노인이 들고 있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 그림, 내가 갖겠다.”
그 한 마디에 그동안 가격을 부르던 이들이 일제히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구도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이미 오청이라는 강자가 저 엄청난 실력자와 물건 하나를 두고 다투었다가 어떻게 됐는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제가 허공을 움켜쥐자 그림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그림을 열어 확인한 뒤 이천매의 맑은 두 눈을 바라보며 그림을 건넸다.
“선물이네.”
이천매는 한참이나 말없이 한제를 바라보다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림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