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리 부족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축제 분위기였던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우승의 기쁨도 잠시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발 빠른 사슴’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황제 폐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용감한 늑대’와 ‘우렁찬 천둥’도 어수선한 경기장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를 호위하라!”
“네, 수장님!”
친위대 전사들은 내 주위를 철통같이 호위하며 경계를 섰다.
“혹시 여기에 암살자가 더 있을지 모른다.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 그 누구도 경기장 바깥에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수습 전사들은 부족끼리 나눠 철저하게 검사한다!”
일반 전사들이 경기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따로 분리해서 검사하기 시작했다.
한편, 나를 습격한 시체를 보고 있던 ‘발 빠른 사슴’이 인상을 찌푸리며 ‘우직한 곰’을 쏘아붙였다.
“이렇게 죽이면 어떻게 해? 힘 좀 조절해서 한 명이라도 살려뒀어야 할 거 아니야?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누가 사주했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우직한 곰’도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내 눈치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모르게 눈‥이 뒤집혔다. 미‥안하게 됐다.”
‘우직한 곰’이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짓자 ‘발 빠른 사슴’이 더는 뭐라하지 않았다.
“됐어. 지금 와서 뭘 어쩌겠어.”
시체를 조사한 ‘발 빠른 사슴’이 나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두 명 다 이리 부족 수습 전사들입니다.”
“그렇군.”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누가 사주했는지 짐작은 가고?”
‘발 빠른 사슴’도 그 잠깐 사이에 생각을 정리했는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지금으로선 두 부족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내가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발 빠른 사슴’이 바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보면 이리 부족이 가능성이 제일 크긴 합니다. 다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이리 부족과 우리 ‘하늘의 태양’이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섰을 때 이득을 보는 부족이 누굴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이로쿼이 연맹?”
“네. 아마도 그들이 사주했을 겁니다.”
‘발 빠른 사슴’이 정보감찰부 수장으로 꽤 오래 있다 보니 제법 주변 정세를 볼 줄 알았다.
“아직 그들이 했다는 증거는 없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그 증거를 정보감찰부에서 죽어라 찾아야겠죠.”
자신의 바쁜 앞날을 예견한 건지 ‘발 빠른 사슴’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바로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황제 폐하! 정보감찰부에서 이들의 불온한 움직임을 미리 파악했어야 했는데.”
“괜찮아. 정보감찰부에서 모든 부족을 다 감시할 수는 없지.”
사기가 조금 떨어진 ‘발 빠른 사슴’을 위해 위로의 말을 건네며 나도 조용히 자책했다.
‘훈련소에 입소한 수습 전사들을 심안으로 일일이 확인했어야 했는데.’
지금까진 아무런 일이 없었기에 이번에는 훈련소에 퇴소할 때쯤 수습 전사들을 심안으로 확인해 적성에 따라 각 부대에 배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설마 수습 전사가 나를 암살할 거라고 전혀 예상을 못 했다.
물론, 그 어떤 자가 와도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
늘 조심하는 게 맞다.
‘발 빠른 사슴’의 보고가 끝나자 때마침 ‘용감한 늑대’가 다가왔다.
“경기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검사할 예정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군.”
“네. 일단, 황제 폐하를 관청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여기는 내가 직접 지휘하지.”
암살 시도가 있었는데도, 아주 평온한 내 모습에 ‘용감한 늑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맵 창으로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붉은색 점으로 보이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그랬듯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언제든 암살자로 돌변해 나를 습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일일이 심안으로 사람들을 확인할 생각이다.
그때, 친위대 전사들을 뚫고, ‘달이 뜨다’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뛰어왔다.
“아주 큰 이천일! 다친 데 없어?”
“괜찮아. 다치지 않았으니까.”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내 몸을 훑어보는 ‘달이 뜨다’를 품에 안아 그녀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잠시 후, 그녀를 돌려보내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심안으로 검사하기 시작했다.
먼저 일반 사람들부터.
* * *
날이 저문 지 꽤 오래됐다.
어두컴컴한 밤, 사방의 횃불들이 경기장 안을 환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경기장을 관람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마지막 줄만이 남았다.
초급 전사들이 스무 명밖에 남지 않은 그들을 통제하며 검사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차례대로 줄을 서시면 됩니다.”
초급 전사 두 명이 맨 앞에 있는 남자의 몸을 샅샅이 뒤지며 혹시나 단검이나 날카로운 무기가 있는지 확인했다.
“다음 분, 나오세요.”
나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들을 심안으로 상세히 확인했다.
‘특별히 수상한 점은 없군.’
잠시 후, 경기장에 있던 일반 사람들의 검사가 끝이 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훈련소에 입소한 수습 전사들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먼저 마치 자신이 죄지은 것처럼 불안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이리 부족 수습 전사들부터.
그들을 검사하는 전사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줄을 서!”
“검사하기 전에 자수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위협과 협박을 섞어 가며 친위대 전사들이 직접 이리 부족 전사들을 철저하게 검사하기 시작했다.
-성향 : 순수함.
-성향 : 이기적임.
-성향 : 신중함.
-성향 : 자신감이 가득함.
…
…
한동안 이리 부족 수습 전사들을 심안으로 세 번 이상 확인했지만, 딱히 의심되는 자는 없었다.
‘더 이상은 없는 건가?’
심안으로 죽은 자의 상태 창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맵 창이 말해주듯 언제든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할 수 있었다.
난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히간 부족은 아니야.’
최근에 이로쿼이 부족 연맹과 모히간 부족이 만났다는 정보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만나 거래를 했다는 얘기인데….
어쨌거나 이번에 훈련소에 입소한 수습 전사들을 정보감찰부를 통해 철저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 * *
관청 회의장.
‘하늘의 태양’의 주요 인물들이 모인 회의장은 이번 암살 사건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암살을 사주한 부족이 밝혀진다면 마치 당장에라도 전쟁을 치를 분위기였다.
국방부 수장인 ‘용감한 늑대’가 평소와 다르게 냉정함을 잃고 분노를 토했다.
“하늘의 태양을 대표하는 황제 폐하가 암살을 당할 뻔했습니다. 이 사건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 어느 부족이 암살을 사주했는지 밝혀진다면 국방부 수장으로서 모든 전사를 동원해 그 부족을 정복할 것입니다.”
그 의견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결의를 다지듯 앞다투어 분노를 표출했다.
문제는 어느 부족이 사주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화가 단단히 난 ‘용감한 늑대’와 수장들을 잠시 진정시킨 뒤 그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전 이리 부족이 암살을 사주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로쿼이 부족 연맹이 의심스럽습니다.”
정보감찰부 수장인 ‘발 빠른 사슴’의 의견에 외교부 ‘드넓은 대지’가 반론으로 맞섰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현재 우리와 적대적인 관계인 부족은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얘기하기가 무척 조심스럽지만,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일어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모든 부족이 전적으로 나를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선가 나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앞서나갔다.
그때, ‘드넓은 대지’의 마지막 발언에 수석 보좌관이자 행정부 수장인 ‘찬란한 노을’이 내 생각을 대변하듯 이의를 제기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외교부의 수장님의 마음을 잘 알지만, 너무 앞서가는 생각인 것 같네요. 물론, 내부 단속을 다시 점검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끼리 의심하며 다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 사건을 만든 부족이 우리끼리 내분이 일어나길 바라는 게 아닐까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찬란한 노을’이 다시금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증거를 찾는 게 우선입니다. 추후 암살을 사주한 부족이 밝혀진다면 그때 응징을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비롯해 모두가 그녀와 같은 생각인지 회의가 빠르게 진행됐다.
“외교부에선 이로쿼이 부족 연맹과 체로키 부족을 찔러보고 그들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알아보겠습니다.”
“정보감찰부는 내부부터 최대한 빨리 조사해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국방부는 훈련소 수장과 상의해 입소한 수습 전사들을 계속해서 관찰하겠습니다.”
잠시 후, 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시켰다.
“이 문제로 우리끼리 내분이 일어나선 절대 안 됩니다. 그리고 확실한 증거가 확보할 때까지 평소처럼 행동하시고 회의에서 나눴던 얘기를 절대 외부로 꺼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오늘 나눈 내용은 입 바깥으로 절대 꺼내지 않겠습니다.”
비밀 엄수까지 확인하고 난 뒤에야 기나긴 회의는 끝이 났다.
* * *
‘하늘의 태양’ 수도, ‘아주 큰’ 도시.
관청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면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도서관에 비치될 책들을 집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집필한 책은 고작 두 개.
언어와 사회.
앞으로 집필해야 할 학문은 산더미처럼 남아있었다.
지리, 교육, 군사, 수학, 건축, 화학, 의학, 약초, 조선술 등등.
오늘은 천문학이다.
해와 달의 움직임을 일일이 계산해 책에 적어 놓았다.
“이젠 별자리의 위치를 넣으면 되나?”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본격적으로 별자리 위치를 아주 상세히 그려나갔다.
황도 13궁을 기준으로 우선 양자리부터.
마음 같아서는 사람들을 시켜 책을 집필하고 싶었지만, 이 작업은 오로지 나만 알고 있는 지식이었기에 나밖에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첫 번째 책이 완성되면 나머지는 금속 활자로 대량으로 생산하면 된다.
그리고 나라의 초석이 될 천재들을 위해서라도 이 책들은 꼭 필요했다.
잠시 후, 양자리를 그리고 나자 벌써 밤이 됐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군. 오늘은 여기까지.”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가 보니 허리가 뻐근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굳은 근육들을 풀었다.
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오며 ‘찬란한 노을’이 잔뜩 상기된 채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황제 폐하! 건설부에서 금속 활자를 완성했다고 하네요.”
금속 활자라….
이젠 학교에 필요한 교재들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공방으로 가지.”
“네.”
황제로서 지금까지 금속 활자를 만드느라 고생한 건설부 직원들을 치하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성된 금속 활자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