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내 감각에 미미하게 느껴진 살기.
하지만, 그 살기는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잘못 본 건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와 함께 이 경기에 참가한 ‘발 빠른 사슴’이 따가운 시선으로 소리쳤다.
“황제 폐하! 뭘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는 겁니까? 경기에 집중하세요.”
“…그래.”
멋쩍은 것도 잠시, 그 잠깐 사이에 쇼니 부족 팀이 우리 골대 사이로 공을 집어넣어 일점을 얻어갔다.
중앙으로 다시금 양쪽 팀 전사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나도 조용히 진형 왼쪽으로 걸어갔다.
‘맵 창!’
관객석을 맵 창으로 빠르게 훑어본 나는 다시 한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빨간색 점이 하나도 없고, 전부 다 푸른색.
내가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켜놓자.’
심판을 보는 원로가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황제 폐하! 준비됐습니까?”
“준비됐으니까 경기 시작해도 됩니다.”
내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느새 ‘발 빠른 사슴’이 다가와 잔소리를 퍼부었다.
“황제 폐하! 아까부터 왜 이러세요? 이러다가 경기에 지면 어떡하려고 그럽니까? 부족의 명예가 걸린 경기라고요. 잘 좀 해봅시다.”
“알았다니까.”
그때,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며 경기가 다시 시작했다.
선공은 일점을 빼앗긴 레나페 부족.
레나페 부족 여자가 공을 안전하게 뒤로 돌리며 패스를 하기 시작했다.
‘발 빠른 사슴’이 패스하는 공을 빼앗으려고 우리 진영으로 돌진하는 쇼니 부족 전사들을 보고 우리 레나페 부족 전사들에게 소리쳤다.
“각자 한 명씩 막아!”
“지금부터 좌측을 공략한다!”
나를 비롯해 레나페 부족 전사들이 쇼니 부족 전사들을 진로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두 진영의 남자들이 치열한 몸싸움을 하는 동안 우리 팀의 여자들이 훤히 뚫린 좌측 경기장을 패스를 주고받으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쇼니 부족의 여자들이 다급히 그녀들을 온몸으로 저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레나페 부족 일점!”
정확히 두 개의 작대기 사이로 공을 집어넣은 레나페 부족 팀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우리 레나페 부족 팀의 세리머니가 끝나자 우리에게 일점을 빼앗긴 쇼니 부족으로 선공이 넘어갔다.
피이이이이이이이!
경기가 다시 시작되자 쇼니 부족 여자들이 패스를 주고받으며 빠르게 우리 진영으로 넘어왔다.
난 나를 막는 쇼니 부족 전사들을 뿌리치고 패스할 곳을 미리 선점했다.
“이쪽!”
“조심해!”
레나페 부족 여자들에게 포위당한 채 압박을 받던 쇼니 부족 여자가 우왕좌왕하며 공을 우측으로 힘껏 던졌다.
“받아!”
그 순간, 몸을 날려 내가 주인이 없는 공을 빠르게 낚아챘다.
하지만, 파사헤만(Pahsaheman) 경기 규칙에 따라 손으로 공을 패스하거나 들고 갈 수 없었다.
어느새 쇼니 부족 전사들이 나를 압박하기 위해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난 재빨리 공을 바닥에 대고 발로 힘껏 찼다.
퍼어어어어엉!
두 개의 작대기와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내가 찬 공이 허공으로 쭉쭉 뻗어갔다.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공이 저렇게 멀리 나갈 수 있어?”
“역시 황제 폐하야!”
“뭐야? 작대기까지 날아가잖아.”
아주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공이 그대로 두 개의 작대기 사이로 지나갔다.
“레나페 부족 일점!”
심판을 원로의 외침과 동시에 관중석에 있던 ‘달이 뜨다’와 ‘하늘의 별’이 그 누구보다 기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주 큰 이천일! 아주 잘했어!”
“아빠! 최고!”
난 우리 진영으로 뒤돌아 달려가며 손가락으로 그녀들을 가리키며 간단히 세리머니를 펼쳤다.
어느새 ‘발 빠른 사슴’과 우리 레나페 부족 팀원들이 다가와 축하를 건넸다.
“멋진 공차기였습니다. 황제 폐하!”
“다음에도 부탁합니다.”
“이제부터 바닥에 떨어진 공은 무조건 황제 폐하가 차는 겁니다.”
잠시 후, 쇼니 부족과 레나페 부족 경기는 레나페 부족의 승리는 끝이 났다.
7 대 3.
원래 파사헤만(Pahsaheman) 경기 규칙에는 시간제한 없이 12점을 먼저 획득한 팀이 이기는 게임.
그래서 가끔 밤늦게까지 경기가 진행된 적도 많아 내가 직접 경기 규칙을 바꿔버렸다.
경기 시한 제한은 전, 후반 각각 삼십 분.
후반에도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롱킥으로 한 점을 더 얻어낸 나는 상대편인 쇼니 부족 팀과 인사를 나눈 뒤 경기장을 나섰다.
경기에서 이긴 덕분인지 레나페 부족 전사들과 여자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황제 폐하!”
“한 시간 안으로 끝내니 체력 소비도 없고, 좋네요.”
“황제 폐하! 다음 경기에도 부탁드립니다.”
난 그들을 말을 들으며 슬쩍 맵 창을 확인하며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역시나 붉은색은 없었다.
‘…음!’
경기 중에도 가끔 맵 창을 확인했지만, 붉은색으로 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만일을 대비해 맵 창을 끄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
* * *
“서스쿼해녹 부족 결승 진출!”
와아아아아아아!
9 대 8.
모히칸 부족을 상대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서스쿼해녹 부족은 파사헤만(Pahsaheman) 경기에서 아주 큰 돌풍을 일으키며 결국 결승전에 안착했다.
“황제 폐하! 서스쿼해녹 부족 전사들의 손발에 제법 잘 맞네요.”
결승전에서 우리 레나페 부족과 붙게 된 서스쿼해녹 부족의 경기를 지켜본 ‘발 빠른 사슴’은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황제 폐하! 서스쿼해녹 부족 전사들의 손발에 제법 잘 맞네요. 우리가 질 거로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야 할 것 같아요.”
마치 경기 분석관처럼 ‘발 빠른 사슴’이 냉철하게 서스쿼해녹 부족 전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주요 인물만 잘 막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황제 폐하! 또 한 번 멋지게 작대기 안으로 차 주십시오.”
“기회가 온다면 득점해야지.”
결승전까지 온 이상 우승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했다.
잠시 후, 역시나 우리의 예상대로 서스쿼해녹 부족과 치열한 경기가 벌어졌다.
4 대 4.
두 부족 다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경기하는 스타일이라 점수가 크게 나지는 않았다.
파사헤만(Pahsaheman) 경기 실력도 거의 비슷했고.
경기에 집중하고 있던 나는 이마에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상대편이 또 돌진한다!”
“지금 이 시각에 점수를 빼앗기면 안 돼.”
“막아!”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여러 번 경기를 뛰어서일까?
서스쿼해녹 부족도, 우리 팀인 레나페 부족도 많이 지쳐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이제 오 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로 끝난다면 연장전에 돌입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장전까지 가서 승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끝내자.’
지금까진 내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고 설렁설렁 뛰었다.
난 상대편의 여자를 거머리처럼 마크하며 그녀의 손에서 공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잡았다!”
그때, 그녀의 패스를 차단한 우리 편의 여자가 공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리 팀의 전사들과 여자들이 그녀를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황제 폐하가 공을 차게 해야 돼.”
“얼른 황제 폐하께 패스해.”
그녀가 재빨리 나에게 발밑으로 공을 던졌다.
동시에 서스쿼해녹 부족 전사들과 여자들이 나에게 몰려왔다.
지금 여기서 공을 찬다 해도 상대편의 몸에 다 막힌다.
그렇다면….
난 사슴 가죽으로 만든 공을 발등으로 가볍게 차올렸다.
머리 위까지 올라간 공이 작은 포물선으로 그리며 내 앞으로 가로막고 있는 서스쿼해녹 부족 전사를 간단히 제쳐버렸다.
학창 시절에 축구 좀 했던 나는 멋진 개인 드리블을 선보이며 상대 진영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헛다리 짚기로 상대편 전사를 우물쭈물하게 만들어 버리고.
휙! 휙!
마르세유 턴으로 상대편 전사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따딱! 따따닥!
팬텀 드리블로 세 명을 간단히 제쳐버렸다.
관객석에서 감탄이 섞인 함성이 연달아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
심지어 쇼니 부족 전사들도, 우리 레나페 부족 전사들도 화려한 내 발기술을 보며 무척 놀라워했다.
“……”
드디어 내 앞에 막는 자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뒤에서 서스쿼해녹 부족 전사들이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골대와의 거리는 대략 이십 미터 정도.
남은 시간 십 초.
난 발끝을 세운 채 힘껏 공을 찼다.
퍼어어엉!
발등에 맞은 공이 낮고, 빠르게 두 작대기 사이로 매섭게 날아갔다.
그 순간, 심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레나페 부족 일점!”
동시에 레나페 부족 팀이 기쁨의 환호성이 질렀다.
“이겼다!”
“난 황제 폐하께서 공을 몰고 갈 때부터 승리를 확신했어.”
주먹을 불끈 쥔 나의 세리머니가 끝나자 서스쿼해녹 부족 전사들과 여자들이 패배를 직감했는지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공을 들고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공을 패스하는 순간 심판을 보는 원로가 경기 종료를 알렸다.
“레나페 부족 승!”
와아아아아아!
‘하늘의 태양’에 속해 있는 부족들의 화합과 단합을 위해 치러진 파사헤만(Pahsaheman) 경기 대회는 결국 레나페 부족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경기를 몇 개 더 추가해서 올림픽을 열어도 되겠어.’
결승에서 아쉽게 패배한 서스쿼해녹 부족 팀을 황제 폐하로서 위로를 건네자 어느새 관객석에 있던 사람들이 경기장 안으로 벌떼처럼 몰려왔다.
“최고의 결승전이었어.”
“황제 폐하의 마지막 질주는 정말 대단했어.”
“서스쿼해녹 부족도 졌지만, 너무 잘한 경기였어.”
“내년 대회가 너무 기다려지는데.”
순식간에 경기장 안은 파사헤만(Pahsaheman)의 선수들과 사람들로 뒤섞였다.
“황제 폐하! 악수 한번 해주십시오.”
“황제 폐하를 여기서 직접 뵙게 되네요.”
“영광입니다. 황제 폐하!”
그때, 내 뒤에서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스으으으윽! 스으윽!
어디서 구한 걸까?
예리하게 날이 선 단검 두 개가 내 가슴과 옆구리를 향해 빠르게 파고 들어왔다.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몰려온 상황이라 그 단검들을 피할 공간은 없었다.
판단은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난 인벤토리에 보관된 방패와 단검을 떠올렸다.
어느새 내 왼손에 쥔 방패를 들어 몸을 가렸다.
단검이 허무하게 방패에 막히자 나를 암살하려 했던 두 명의 이리 부족 수습 전사들이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과 함께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암살이다!”
“이리 부족 전사들이 황제 폐하를 공격했다!”
그 순간,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나를 호위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뛰어온 ‘우직한 곰’과 친위대 전사들이 들이닥쳤다.
“우직한 곰! 다 죽‥인다!”
“죽이면 안 돼.”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우직한 곰’의 거대한 도끼가 이리 부족 전사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퍼어억!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친위대 전사들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이리 부족 전사를 난도질하듯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다.
휘이이익! 푸욱! 푸우욱!
‘젠장!’
순간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두 명의 싸늘한 시체를 내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흘러나왔다.
휴우!
“누가 사주했는지 물어 볼 수도 없고.”
하지만, 어느 부족이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 대충 감이 왔다.
* * *
파사헤만(Pahsaheman) – 레나페 부족의 전통 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