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나의 제안에 당황한 듯 ‘검은 눈동자’가 잠시 머뭇거리며 물었다.
“소방대라… 황제 폐하! 죄송하지만, 소방대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그녀가 흥미를 보였다.
난 간단히 소방대에 관해 설명했다.
“자경단은 도시와 마을의 치안을 담당한다면 소방대는 주로 화재 진압이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는 일을 하게 되지.”
“…그렇군요.”
‘검은 눈동자’가 고민에 잠기는 동안 난 차분히 기다렸다.
원래는 올해 겨울을 끝으로 의무 복역을 마친 전사들을 선별해 소방대를 창설하고 했다.
하지만, 저번 화재 사건으로 소방대를 서둘러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마침, 희생과 봉사가 상징인 소방대와 딱 어울리는 인재도 발견했고.
‘어느 정도 교육과 훈련만 받으면 소방대를 잘 이끌어 같긴 해.’
심안으로 본 ‘검은 눈동자’의 능력치는 무척 평범했다.
하지만, 그녀의 성향을 보여 주는 설명 창에 ‘정의롭고 용감함.’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내 눈에 띄었다.
게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불 속에 나와 함께 과감하게 뛰어들어간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때, ‘검은 눈동자’가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했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소방단원이 아닌 소방대 전체를 지휘하는 겁니까”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검은 눈동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좀 당황하긴 했지만… 알겠습니다. 앞으로 신설될 소방대를 황제 폐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이끌어가 보겠습니다.”
“잘 결정했어. 소방대의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여기 찬란한 노을이 얘기해 줄 거야.”
잠시 후, 소방대 수장 임명이 끝나고 ‘검은 눈동자’가 회의장을 나갔다.
“죄송합니다. 황제 폐하! 제가 화재 현장에서 빠른 결정을 내렸다면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아이들을 빨리 구출할 수 있었을 텐데.”
‘찬란한 노을’은 화재 진압 현장에서 그게 자꾸 마음이 걸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판단과 선택은 옳았다고 본다.
만일, 게임 시스템 능력이 없었다면 아마 나도 그 불길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행정부 수장으로써 최선의 결정을 한 거니까. 앞으로도 모든 일에 냉철하고 현명한 판단을 해 줬으면 한다.”
난 저번의 화재 현장에서 그 누구의 편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용감한 늑대’도, ‘찬란한 노을’도, 심지어 자경단 수장도 각자의 가치관과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했으니까.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저를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동한 표정으로 말하는 ‘찬란한 노을’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방대 훈련 일정표를 따로 만들어서 보내 줄 테니까, 이번에 제대하는 전사 중에 뛰어난 전사들을 미리 선별해 놓는 게 좋을 거야.”
“네, 황제 폐하!”
* * *
‘아주 큰’ 도시, 종합 경기장.
며칠간 칼바람도 불었다가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추수가 끝난 가을과 겨울은 ‘하늘의 태양’의 전 지역이 도로나 건물 건설로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겨울도 막바지에 다다르며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2년간의 복무를 끝마친 전사들이 제대하는 날이다.
“2년간의 세월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몰랐다.”
“다들 고생했다!”
“너는 고향 마을로 돌아갈 거야?”
“응. 고향에 돌아가서 자경단이나 해 보려고.”
“나는 이번에 신설된 소방대에 한번 지원해 볼 생각이야.”
종합 경기장 안은 올해에 제대하는 전사들과 그들의 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내가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내자 ‘불굴의 주먹’이 제대하는 전사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오와 열을 맞춰라!”
“마지막까지 ‘하늘의 태양’ 전사답게 행동했으면 한다!”
삼백 명의 가까이 되는 전사들이 ‘불굴의 주먹’의 지시하에 신속한 동작으로 대열을 갖췄다.
“일동 차렷!”
임시 설치된 단상에 내가 올라가자 ‘불굴의 주먹’이 다시 한번 절도 있는 동작으로 큰소리로 외쳤다.
“황제 폐하께 경의를 담아 충!”
“충!”
경기장 안이 오늘 제대하는 전사들의 우렁찬 목소리로 떠날 갈 듯 울려 퍼졌다.
단상에서 그들을 내려보며 난 역시도 감회가 새로웠다.
2년간의 복무.
오늘 제대하는 전사들한테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을 거다.
훈련소에서 한글도 깨우치고, 전투 기술뿐만 아니라 특기에 따라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오늘 제대하는 전사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어딜 가든 밥벌이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사회에 나가서도 ‘하늘의 태양’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동안 ‘하늘의 태양’을 지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내 연설이 끝나자마자 관객석에 있던 전사들의 가족이 힘찬 박수를 쳤다.
동시에 오늘로써 ‘하늘의 태양’ 전사가 마지막인 전사들이 ‘불굴의 주먹’의 구령에 따라 나에게 힘찬 경례를 했다.
“황제 폐하께 경의를 담아! 충!”
“충!”
단상에 내려온 나에게 ‘찬란한 노을’이 보고서를 가지고 다가왔다.
“각지에서 소방대에 지원한 전사들의 명단입니다.”
오늘 종합 경기장에서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중심 마을에서 제대 행사가 열린다.
난 그녀가 준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봤다.
“생각보다 많군.”
“네. 아무래도 월급도 많고, 나라에서 해주는 혜택도 많다 보니 소방대에 많이 지원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다 뽑을 수는 없지. 시험을 치러서 소방대원들은 뽑는 게 좋을 것 같군.”
“알겠습니다. 그럼, 체력 위주로 시험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소방대가 주로 하는 일이 화재 진압이나 사람을 구조하는 일이다 보니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했다.
그래서 소방대 훈련 일정표도 체력에 관련된 훈련이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
내 허락이 떨어지자 ‘찬란한 노을’이 자신을 보좌하는 사람들과 함께 관청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황제 폐하로서 할 일을 하기 위해 가족들한테 제대 축하를 받는 전사들 쪽으로 걸어가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수고했다.”
“전사로서 황제 폐하를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민심을 올리는 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대하는 전사들에게 가끔 사회에 나가서 뭘 할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저랑 일하고 싶다고, 연구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부대에서 요리가 특기라 시장에서 식당을 열 계획입니다.”
“저만의 농장을 갖고 싶습니다.”
나를 ‘신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전사들과 가족들에게 간단한 말로 축복을 내려주며 그들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깃들길 바랐다.
* * *
‘좋은 물(미시간 호수)’ 호수 서쪽, 포타와토미 부족 마을.
나무로 울창한 숲에 꽤 큰 포타와토미 부족 마을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수십 명의 와이언도트 부족 전사들은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자작나무 껍질로 뒤덮인 원뿔 모양이나 사각형의 움막들을 지나가고 있었다.
“와이언도트 부족 사람들이 왜 왔지?”
“무기를 든 거 보니 전사들이네.”
마을에 있던 포타와토미 부족 사람들이 다 나와 와이언도트 부족 사람들을 경계의 시선으로 쳐다봤다.
잠시 후, 마을 중앙 광장에 있는 움막으로 들어간 와이언도트 전사들은 무기를 무장 해제한 뒤 포타와토미 부족 대추장이 오길 기다렸다.
움막 한가운데에 있는 장작불이 거의 타들어 갈 때쯤 포타와토미 부족 대추장과 원로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장작불을 중심으로 털가죽을 입은 포타와토미 부족 대추장과 원로들을 빙 둘러앉자 와이언도트 부족 사람들을 이끄는 한 남자가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와이언도트 부족 대전사 ‘방울뱀의 꼬리’입니다.”
움막 안의 상석에 앉아있는 포타와토미 부족 대추장 ‘조용히 앉아 있는 자’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연락도 없이 와이언도트 부족이 우리 부족을 방문한 이유가 궁금하군. 말해보게.”
“네.”
한동안 와이언도트 부족 대전사 ‘방울뱀의 꼬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포타와토미 방문 목적에 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혹시 ‘하늘의 태양’ 연맹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포타와토미 부족 대추장과 원로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 * *
저녁이 되자, 자신들의 임무를 무사히 끝마친 와이언도트 부족 사람들은 조용히 포타와토미 부족 마을을 떠났다.
“대전사님! 우리 얘기를 전혀 믿지 않은 분위기이더군요.”
와이언도트 부족 전사의 말에 커다란 주먹코를 가진 ‘방울뱀의 꼬리’는 마치 포타와토미 부족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단, 의심이라는 씨앗을 심어 놓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지. 나머진 대추장님과 원로들께서 알아서 의심의 씨앗에 물을 뿌릴 것이다.”
“그렇군요.”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지?”
“오타와 부족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한편, 포타와토미 부족 대추장과 원로들이 있는 움막은 아직도 회의하고 있었다.
“악신인 타위스카라라니. 말도 되지 않는 얘기입니다.”
“우리 삼불 평의회 동맹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로쿼이 연맹을 ‘하늘의 태양’ 연맹이 정복했다는 얘기는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와이언도트 부족이 ‘하늘의 태양’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악신이라고 꾸며낸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와이언도트 부족이 뭘 원하는지 모르지만, 그 불길한 의도에 우리 부족이 끌려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어떤 의견도 내지 않고, 원로들의 의견을 가만히 듣고 있던 포타와토미 부족 대추장 ‘조용히 앉아 있는 자’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마이애미 부족 대추장을 통해 ‘하늘의 태양’ 사람들이 곧 우리 부족을 방문하기로 했으니 그들에게 직접 우리가 궁금한 것에 관해 물어본 뒤 그때 판단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추장님!”
그리고 원로 중의 한 명이 자작나무 껍질 종이에 그림 문자로 방금 회의한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 * *
‘하늘의 태양’ 수도, ‘아주 큰’ 도시 외성.
번화가 한복판에 사람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기계 제작 연구소에서 뭔가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혹시 가죽에 싸인 저것 말인가?”
“그래. 바퀴를 보며 수레인 것 같기도 한데.”
때마침, 내가 ‘게으른 비버’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길 양쪽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환호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황제 폐하다!”
저번에 화재 사건으로 나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다.
“오셨습니까? 황제 폐하!”
기계 제작 연구소 기술자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큰 부담 갖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내 옆에 있는 ‘게으른 비버’는 이 자리에 참석한 ‘찬란한 노을’을 보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황제 폐하! 그럼, 바로 우차를 시연하겠습니다.”
“그래.”
내 명령이 떨어지자 ‘게으른 비버’가 앞으로 나서서 기술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들소 두 마리를 데리고 오세요.”
“우차와 들소를 연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들소가 놀라지 않게 다들 조심히 하세요.”
잠시 후, 우차를 시연할 준비를 끝마치자 ‘게으른 비버’가 나에게 다가왔다.
“황제 폐하! 우차를 직접 타 보시겠습니까?”
‘하늘의 태양’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화제성이 짙은 이벤트를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게으른 비버’와 함께 우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하늘의 태양’ 사람들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두 마리 들소와 길게 연결된 고삐를 가볍게 당겼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