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07
208. 마음의 발명(The Invention of Heart) (5)
***
화끈!
“아야!”
하은성은 목덜미를 스치는 통증을 느꼈다. 불덩어리를 뾰족하게 빚어 살갗을 긁는 감각이었다. 그는 비늘에 덮인 앞발, 혹은 손을 들어 그 부근을 더듬었다. 손바닥과 목덜미의 비늘이 마찰하며 금속성의 소리가 났다.
“오늘 왜 자꾸 이러지?”
환상통(幻想痛) 같은 아픔은 금방 사라졌지만, 드래곤에 빙의된 유령은 이 현상에 약간의 불길함을 느꼈다.
아픔을 느끼는 곳이 그가 기억하는 자리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은성의 직접적인 사인.
분명 두 눈으로 목격했지만 얼굴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괴한이, 희한한 모양의 단검을 쑤셔 박은 자리다.
목에 꽂힌 칼은 심지어 고스트가 된 후에도 영체의 일부가 되어 남았다.
“여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짧게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통증은 그들이 이 차원에 도착한 직후 시작되었다.
하은성은 창밖을 본다. 지구를 떠나고 세번째로 겪는 이계의 풍경이 펼쳐졌다.
‘혹시 이 근처에···?’
차원 #77-102.
이곳, 윰투스의 고향에 대해 하은성이 아는 내용은 많지 않았다. 그 외계인 사제와 함께 움직인 지 며칠이 지났고 서로 이야기할 기회도 많았음에도.
그럴 이유가 있었다. 순수한 궁금증 때문에 고향에 대해 물어보면 대화는 결국 윰투스의 집요한 포교 행위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사제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고향을 설명하려면 종교 이야기를 뺄 수 없었다.
왜냐면 그곳은 엘라후-프라가 교단에 의해 지배당하는 신정일치 체계였으니.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고, 몇백 년 전에 교단에서 모든 국가를 통일했다 했지. 그 뒤에 전국민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개종시켰고.’
윰투스는 하은성의 궁금증을 종교에 대한 호기심으로 오해하고 자꾸 교리를 설파하려 했다.
드래곤이 신을 믿지 않는 건 물론 알았지만, 하은성은 용의 몸에 인간 영혼이 들어간 상태이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어쩌면 우주 역사상 최초로 드래곤을 개종시킨 종교인이 될지 모른다는 희망은 윰투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어쨌거나, 여태 계속 실패했지만.
‘그런데.’
전 국민이 같은 종교를 믿으며 교단에게 지배당하는 사회.
이걸 들었을 때 하은성이 상상한 것은 바티칸 시국(市國) 같은 풍경이었다. 그가 아는 비슷하기라도 한 국가는 그곳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적인 분위기. 역사가 느껴지는 잘 정돈된 거리를 평화롭게 거니는 사제와 수녀들. 그들 위를 축복하듯이 내리쬐는 햇살과, 드넓게 펼쳐진 푸른 하늘.
하지만 하은성이 이곳에 와서 목도한 풍경은.
‘이런 동네일 줄은 정말 몰랐네.’
창 밖에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미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지구가 딱 100년 정도 후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하은성 일행이 머무는 건물도 꽤나 높아 보이는데, 창밖에 빼곡하게 펼쳐진 건물들 역시 거의 비슷한 높이였다. 하은성은 저절로 숨어 지냈던 홍콩의 풍경을 떠올렸다.
예스럽고 거룩한 분위기를 예상한 것과 달리 건물 외벽에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뜩였고, 빌딩 사이사이 좁은 하늘에는 홀로그램이 영상과 문자를 화려하게 그렸다. 교통수단으로 보이는 비행 물체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빌딩 숲 사이를 거침없이 누비는가 하면, 곳곳에 배치된 확성기가 떠들어 대는 소음도 대단했다.
하은성은 물론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영상과 음성은 대부분 경전 구절이나 종교적 잠언을 다루고 있었다. 그의 상식과 달리 매우 화려한 방식으로.
또한 일행이 머무는 방에는 TV와 비슷한 기기도 있었는데, 호기심 삼아 틀어 본 하은성은 기겁을 했다. 맹세하건대 이 청년은 22년의 인생과 1년 남짓한 사후(死後)를 통틀어 그토록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을 본 적 없었다.
반면 이번에는 기절하지 않은 촉수 공주는 그걸 보며 ‘뭘 하는 거지? 지구의 비쥬(Bisou) 같은 건가?’ 라고 의아해 하다가 곧 담담하게 현상을 이해했다. ‘아, 그게 이마에 달려 있는 거군.’
여튼 여러모로, 하은성이 상상한 ‘경건한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장소였다. 윰투스의 고향은.
“제가 돌아왔습니다. 두 분 다,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그리 말하며 얼굴을 들이민 사람은 윰투스였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교단에 불려가 긴 시간 증언을 한 뒤 돌아온 것이다.
그의 질문에 델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고, 하은성은 뭔가 웅얼거리려다 단념했다.
사실, 엘라후-프라가 교단은 손님 대접에 소홀하지 않았다. 외계의 예절을 모르는 하은성이 보기에도 정중한 태도였으며 숙소나 식사도 정성을 들인 것이 보였다.
심지어 원한다면 바깥나들이도 안내해 주겠다고 교단에서는 제안했다. 하지만 델은 관심이 없어 보였고, 하은성 역시 포기했다. 도약을 하자마자 드래곤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한 이곳 대기는 실로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건 없고, 그냥 궁금한 건 있는데요.”
“무엇입니까?”
“이 동네는 날씨가 항상 이래요? 안개가 하루 종일 안 없어지네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햇빛 보기 힘들겠다며 걱정하는 그에게, 윰투스는 웃으며 말했다.
“아! 오해하셨군요. 저건 안개가 아닙니다. 스모그라고 부르지요.”
“스모그? 그게 뭔데요?”
2020년의 한국에 익숙한 청년에게는 낯선 단어일 수밖에 없었다.
지구는 80년대 위원회로부터 마정석 수입을 시작하며 대기 오염 문제에서 상당 부분 해방되었다. 하은성이 황사는 알아도 미세 먼지나 스모그 같은 개념은 잘 모르는 이유였다.
설명을 들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연료를 ‘태운’다고요?”
“네. 화력 발전이라는 거지요. 지구에서도 과거에는 이 방법에 의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개념은 하은성 귀에는 무척 원시적이고 미개한 것으로 들렸다.
“왜 마정석을 안 쓰고요?”
윰투스는 다른 종족이 모르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이 행성을 완전히 ‘신성화’한 뒤부터 교단에서는 미래를 대비하여 마정석의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낮춰 왔습니다. 마정석은 전량 외계에 신혈을··· 불신자들 표현으로 달란트를 내고 수입해야 하는데, 불필요한 유출을 최소화하려는 판단이었지요. 덕분에 록다운(Lock-down)을 결행하고 마정석 수입이 완전히 끊긴 뒤에도 우리 차원은 에너지 대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럼 뭘 태워요? 설마 나무 같은 거?”
사극에서 본 기억을 더듬어 질문했지만, 윰투스의 대답은 다시 한번 예상을 빗나간다.
“이 행성의 자연 상태에서 서식하는 동식물 대다수는 진작에 멸종된 지 오래입니다. 어제 겪으셨겠지만 물도, 햇볕도, 토양도, 공기도 모두 가혹하지요. 어지간한 생물은 버티기 힘든 환경이니까요. 벌목을 하려고 해도 이제는 베어 낼 나무가 없지요.”
하은성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마정석이 없어도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아요? 옛날에는 그, 뭐냐. 핵폭탄으로 전기도 만들었다면서요.”
원자력 발전과 핵폭탄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크 커뮤니티 토박이의 단어 선정이었지만, 윰투스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간단합니다. 핵융합이나 중수소 연료 발전은 초기 설비 투자와 설계에 인력과 자원, 돈을 갈아 넣어야 하거든요. 그런 것보다도 지금 이 방법이 훨씬 싸게 먹히니까요!”
“······?!”
하은성은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윰투스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 세계가 위원회와 접촉하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땅에서 파낸 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프로세스는 매우 안정적이며 소모되는 자원은 자연에 풍부하게 존재하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땅만 파면 나옵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는 건 압니다. 외계에서 기술을 수입하면 효율성은 몇 곱절이 되겠지요. 하지만 거기에 투입될 돈··· 다시 말해 ‘달란트’를 아끼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하지만 저 상태로 아무 문제가 없나요?”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바깥을 가리키면서, 하은성은 그리 물었다.
문제가 없을 수가 없었다. 이미 윰투스의 입으로 말했지 않은가? 야생 상태의 동식물 상당수가 멸종한 상태라고.
하지만 윰투스는 너무도 담담하게, 부드럽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물론 문제가 있지요.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사제는 하은성이 몇 번이나 흘려들었던 그들 종교의 교리를 읊는다.
“어차피 신들이 잠에서 깨면, 모두 붕괴하여 사라질 거짓된 세상인데요.”
***
총대주교, 펠릭스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를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은 회의실 상석에 ‘손님’을 앉혀 놓은 채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어제 이 차원에 도착한, 위원회가 천문학적인 현상금을 내건 일행의 리더 역할을 하는 자였다. 교단은 그에게 일단 객(客)의 지위를 주어 맞이했다.
남자를 화신으로 인정하자는 논의 자체에 펠릭스는 크나큰 불쾌감을 느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본다.
‘저런 놈이, 우리가 모시는 절대자의 분신이라고?’
엘라후-프라가 교단은 잠들어 있는 신들의 사랑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애쓰는 집단이다.
또한 선지자를 만나 이 교단의 뿌리를 다지고 차원계 곳곳에 확장시킨 중추 역할을 한 종족은 다름아닌 세눈박이들, 레파탐족이다.
그렇기에 펠릭스는 생각했다. 만약 신이 세상에 화신을 내려보낸다면 그 모습은 레파탐을 본뜰 수밖에 없다고.
신은 그들을 사랑하며, 레파탐은 신의 사랑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종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남자. 일부 사제들이 화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는···.
‘인간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모시는 절대자가 하필 인간 형태로 현신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다시 한번 남자의 얼굴을 뜯어발길 듯 살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중요한 것이 없는 밋밋한 이마는, 펠릭스에게 생리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다시금 자문한다.
‘이마에 ‘세번째 눈’도 없는 모자라고 부족한 자. 신이 두눈박이로 나타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화신이 아니다. 절대 아니야!’
펠릭스는 저 인간이 화신이라는 주장에도, 화신과 신이 사실상 동일 존재라는 교리 해석에도 결사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그리 주장하는 사제들의 대표 격인 주교였다.
그의 교리 해석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제들에게 환영받았으며,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진 끝에 ‘교황 대리’조차 무시 못 할 수준이 되었다.
펠릭스는 남자를 보며 의지를 불태웠다.
‘자, 어디 한번 증명해 봐라. 네가 화신이라는 것을!’
검은 머리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고저가 미미한 목소리.
“자신이 복귀할 계시의 날까지 기다리라는 선지자의 예언과, 신혈을 당장 내놓으라는 내 요구가 어긋나는 게 문제라는 거지?”
민준은 교단 대표를 맡은 외계인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Yeh-min-choong.”
“······.”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끝음절이 영 귀에 거슬렸지만, 민준은 안건에 집중하기로 했다.
“선지자는 ‘우리들의’ 잠이 얕아지는 시기에 돌아올 테니, 제단에 달란트를 보관하라고 했지.”
“정확합니다, 그날 선지자께서 제례를 직접 주관하시기로 했습니다. 신들을 잠에서 깨우는 의식을 말입니다.”
경전 속 묘사된 선지자는 종교의 창시자인 동시에, 교단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유일한 교황이었다.
교단 대표 역할을 맡은 외계인이 교황이 아니라 교황 대리인 이유였다.
민준은 생각에 잠겼다.
저들의 기대와는 달리 선지자는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 제례를 주관할 수 없다.
그사이 위원회 손에 영혼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과거에 민준은 계획을 바꿔야 했다.
‘내 요구대로 대뜸 내놓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상은 했지만.’
설마 자신이 화신이라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할 줄이야.
돌이켜 보면, 윰투스를 비롯한 이단재판관들이 그에게 복종한 것은 민준이 재생 능력을 선보이고, 하은성을 가축처럼 부리고, 달란트를 맨손으로 만지는 기적(?)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그 이상의 무언가.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원하는 것이다.
민준은 단순한 해결책과 복잡한 해결책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냥 이 녀석들을 밀어 버리고 제단까지 직행해서 달란트를 털어 버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들은 조건만 충족되면 민준에게 광신도와 같은 믿음을 바칠 자들이다.
그런 종족들에게 괜히 원한을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우회할 길이 있으면, 우회한다.
‘좋아, 그럼···.’
민준은 결론을 내렸다. 그사이 경전 내용을 구구절절 읊던 교황 대리의 말을 끊으면서 툭, 뱉는다.
“어차피 양쪽 말이 다른 게 문제라는 거 아니야?”
“···아? 그, 그렇습니다만.”
“그럼 당사자랑 직접 확인하면 되겠네.”
“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사자라니?
그 질문의 답을, 민준은 허공을 짚으면서 내보였다. 그들이 둘러앉은 테이블 위에 위압감 넘치는 손짓으로 내려놓는다.
쿵!
이 자리에 모인 교단을 대표하는 고위 사제들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무엇···?”
“말했잖아. 당사자랑 직접 확인하자고. 그 예언을 한 본인, ‘아시프의 서’에 나오는 선지자 말이야.”
“······?!”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펠렉스는 분노마저 느꼈다. 그리고 민준을 정신병자 취급하며 노려보았다.
‘저 후안무치한 자가, 지금 우리 교단을 욕보이려고?!’
그가 불타는 눈으로 민준의 얼굴과 번갈아 쏘아보는 그곳에는, 상대가 막 꺼내 든 검은색 후라이팬이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