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08
209. 마음의 발명(The invention of Heart) (6)
***
엘라후-프라가 교단의 비밀 경전, 아시프의 서는 기록한다.
오랜 옛날 세눈박이 레파탐족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성스러운 말씀에 따르면 그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그는 촌부들 앞에서 기적을 보이며 숭배받았다.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기적이었다. 그는 배고픈 자를 먹이고, 아픈 자를 치료하고, 죽은 자를 되살렸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모두가 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었을 때, 선지자는 본격적으로 지혜를 전달했다.
그는 가장 먼저 백성들이 마땅히 섬길 존재를 알려 주었고.
-너희야말로 태초의 종족을 영접하기에 가장 알맞음을 내가 아느니라
그들이 신을 어떻게 섬길지 가르쳤으며.
-끊임없는 기도로서 그들을 두드리라. 깊은 잠에 빠진 신들을 흔들지어다.
신들이 잠에서 깨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 설파했다.
-그때 비로소 모든 거짓이 무너지리라.
헌데, 교단의 유일한 교황인 그의 생김새에 대해 경전은 일절 묘사하지 않는다.
경전에 따르면, 그가 레파탐족 곁에 머물던 시절 많은 이가 그의 생김새를 똑똑히 보았다. 그럼에도 선지자가 그들 곁을 떠난 뒤 누구도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신비롭고 기이한 일이었다.
그들이 선지자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그가 남자였다는 사실뿐이었다.
***
회의실에는 싸늘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사제를 대표하는 자, 교황 대리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 물건은··· 어떤 의도로 꺼낸 것입니까?”
주저하다가 한마디 덧붙인다.
“오해의 여지가 없이, 조리 도구로 보입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어투에는, 이미 상대를 화신 후보로 여기는 존중의 기운마저 희미해져 있었다. 나머지 사제들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반응을 본 민준은 생각한다.
‘이런 형태로는 신뢰를 사기 힘들겠군.’
한동안 색깔별로 들고 다니며 유용하게 써먹느라 민준에게는 익숙해졌지만, 다른 이들에겐 실로 뜬금없었다. 어딜 봐도 생활감이 가득한 후라이팬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창조물에게 정신파로 속삭였다.
‘아무래도 변신이 필요하겠다.’
후라이팬은 경쾌하게 되묻는다.
=어떤 형태로 말입니까?!=
민준은 교단에서 섬기는 선지자의 정체를 안다.
모를 수가 없다.
애초에 민준이 그를 창조하였으며 지금도 손에 쥐고 있으니까.
엘라후-프라가 교단은, 민준이 아시프-1을 통해 계획했다 실패한 복수극의 흔적이다.
아시프-666이 탄생하기 전에 먼저 붙잡힌 아시프-1은 위원회에게 세뇌당한 척하면서 여러 차원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미래에 민준의 동족을 깨울 안배를 남겼는데, 이 교단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들 앞에서 민준이 할 일은 간단하다.
그들이 얽매인 약속의 주체, 선지자가 여기 있음을 증명하는 것.
‘후라이팬이 교단 시조이자 선지자라는 진실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음, 좀 서운한데요? 형태가 꼭 본질을 결정하지는 않는데요. 뭐, 저는 그 시절 기억이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내가 기억하니까 상관없어. 아무튼 진실을 납득하기 힘든 모양이니 적당히 포장하는 게 좋겠다.’
=후라이팬 말고 저들이 쉽게 수용할 형태로 변하라는 말씀이시죠?=
‘저들이 보자마자 위엄을 느끼고 신성한 도구로 인정할 모양이 좋겠는데.’
그는 외계인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곧 저들이 소지한 어떤 물건에 주목한다.
‘아하.’
사제들이 다들 허리춤에 하나씩 찬 그것은 손잡이에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단검이었다.
민준은 윰투스가 저것을 성검으로 부른다는 걸 기억했다.
‘그래, 저게 딱 맞겠군. 애초부터 너와 깊게 엮인 물건이니.’
저 단검은 신성력을 담는 무기인 동시에, 교인들 인생에서 중요한 행사에 쓰이는 제례 도구였다.
레파탐족은 특정 나이가 되면 교황 대리 앞에 선다. 그들에게 교단의 대표는 세례를 내리는데 방법이 상당히 과격했다.
다름 아니라, 성검을 세례받는 자의 목덜미에 쑤셔 박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깊숙이 찔러서 상처를 낸다. 곁에 대기하던 성직자가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만약 다른 종족, 예를 들어 인간 같은 자들이 세례를 받는다면 치료하기도 전에 즉사할 깊이였다.
‘저 단검으로 변신해라. 사소한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복사해야 돼.’
=······.=
민준의 말에 항상 빛과 같은 속도로 답하던 아시프-1이, 지금 이 순간에는 약간의 뜸을 들였다.
‘왜, 손잡이 문양이 너무 복잡해? 수집한 파편 중에 이 기억은 없나? 저 문양은 원래 너도 잘 아는··.’
그때였다.
팟!
민준의 걱정이 기우였던 듯 아시프-1은 순식간에 형태를 바꿨다.
“헉!”
교황 대리를 비롯한 모두가 그걸 보고 급한 숨을 들이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단검은 그들 모두 너무나 잘 아는 성물이니까.
민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여태 다른 모양으로 위장해 두고 있었지. 이게 ‘그’의 진짜 모습이다.”
후라이팬이 위장이고, 성검 형태가 진짜라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라니, 누구를···?”
사제 대다수는 아직도 이 대화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감조차 잡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 중 단 한 명.
“······.”
교황 대리만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숨결을 옅게 떨고 있었다.
민준은 손에 쥔 아시프-1, 성검을 흉내 낸 그 모양을 살폈다.
그 손잡이에 새긴 조각은 매우 정교했으며,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다. 문양은 인간인지 레파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누군가, 피인지 눈물인지 확언이 어려운 액체를 흘리는 장면을 묘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조각이 단순히 예술적, 종교적 목적으로 새겨진 것이 아님을 민준은 안다.
손잡이 문양의 굴곡에는, 옛 존재들이 사용하던 암호가 숨겨져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이걸 해석할 수 없지만, 그대로 복사해서 열쇠처럼 사용하는 건 가능하다.
방법도 간단했다. 검에 달란트를 흡수시킨 뒤 산 사람에게 찔러 상처를 입히면 그 영혼에 암호가 복제되어 각인된다.
선지자가 가르친 이 의식을 교단에서는 세례라고 불렀다.
기억을 더듬으며 민준은 다시 둘러보았다. 세례의 증거가 외계인들 목덜미에서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날붙이가 관통한 흉터. 신성력으로 치료해도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다.
대다수 사제의 목에 그것이 남겨져 있었다.
단, 한 명만 빼고.
민준은 슬슬 대화를 마무리짓기로 했다.
“아!”
그 순간, 사제들은 분위기가 급변한 것을 느꼈다.
“이, 이건!”
공기가 납처럼 무겁게 피부를 짓누른다. 사제들은 숨을 쉬기 힘든 막대한 위압감을 느꼈다.
시선을 피하고픈 충동을 참으며 기운의 근원을 본다.
민준이었다.
사제들은 몸을 떤다.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이 저 남자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긴장이 온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신경과 핏줄을 따라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여태 평온한 어조로 대화를 나누던 몇 초 전이 꿈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급격한 변화였다.
그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민준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까마득히 긴 시간을 견딘 자연의 일부, 혹은 그들의 인지범위 밖에서 피조물을 응시하는 냉담한 관찰자처럼 보였다.
사제들을 향한 그의 칠흑 같은 두 눈에는, 감히 해석하기 힘든 빛이 일렁였다.
“아니야. 이런 건··· 신성력이 아니야!”
압도당하지 않으려 애쓰며, 펠릭스는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꽉 다문 이가 살점을 씹은 통에 핏기가 몽글몽글 올라왔다.
몇 번이나 되뇐다. 이런 건 신의 증거가 아니다. 신에게 간절히 기원했을 때 대가로 돌아오는 이능. 그런 흔적이 지금 저자에게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거역하기 힘들었다.
얼어붙은 시간을 다시 감아 돌리듯, 민준이 중얼거렸다.
아시프-1을 직시하며.
“이 칼을 너희도 알 것이다.”
어느새 말투까지 바뀌어 있었다.
연출은 완벽해야 하니까.
“먼 옛날, 너희가 선지자라고 부르는 그가 너희 선조들 앞에 나타났지. 그리고 손수 모두에게 세례를 내렸다. 목에 칼을 찔러 피를 냈지. 세례를 받은 자들 영혼에는 각인이 남았다. 엘라후-프라가에 닿을 자격을 얻은 것이지.”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종교적인 언어로 해설한다.
“선지자가 사라진 후에도 적절한 자가 선발되어 그 역할을 대신 맡았고, 그의 칼을 흉내 낸 모사품을 만들었다. 선지자의 대리인은 모조품 칼을 신혈에 담근 뒤 교인의 목을 찔렀다. 그럼으로써 각인은 이어졌고 더 많은 신혈을 모을 수 있었다.”
민준은 툭, 시선을 던진다. 정면에 방금 그가 말한 대리인이 있었다.
교단에서 아시프-1의 역할을 대를 이어 대신해 온 자.
교황 대리.
“우리를 섬기는 모두가, 우리 뜻을 세상에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듯이.”
민준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성검 형태의 아시프-1이 둥실 공중에 뜨더니 민준이 인도한 방향을 따라 날아갔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하지만 멈추지도 않고 느릿하게, 유유하게 흘러갔다.
“최초의 교황인 그 역시 알맞은 곳에 쓰기 위해 준비한, 나의 도구였다.”
선지자를 자신의 도구라고 선언한 민준은, 무심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그사이에도 단검은 계속 교단의 대표를 향해 나아갔다. 사제들은 침 삼키는 것도 잊은 채 눈으로 그 움직임을 좇았다. 검이 그리는 궤도의 끝, 그곳에 앉은 교황 대리는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동공이 쉴새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비록 그가 먼 옛날 너희 앞에 사람의 형태로 나타났으나.”
허공을 가르고 나아가던 칼의 속도가 천천히 느려지더니 한 지점에서 멈췄다.
교황 대리의 코앞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교황 대리는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그것을 잡고 싶은 충동과,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싶은 상반된 충동을 동시에 느꼈다.
그때 민준이 선언하듯이 말했다.
“돌아올 때는 본질에 맞게 도구의 형태로 온다 해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을 터.”
사제의 입술이 떨렸다.
“설마?”
민준이 그에게 권했다.
엄숙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가 말했잖은가? 선지자의 예언이 문제라면, 여기서 당사자와 직접 대화로 해결하자고.”
지금 여기에 그 당사자가 있었다.
사제는 저도 모르게 경전 구절을 읊는다.
“짐승들은 나를 ‘아시프’, 가장 큰 악을 행한 죄인이라 부르더라.”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시프. 그가 네 눈앞에 있다.”
사제들이 경악했다. 어찌 사람이 검이 될 수 있는가?
그 유일한 가능성은.
“에고 소드?!”
선지자의 영혼이 검에 봉인된 것인가?!
민준은 교단의 대표에게 권한다.
“그래, 그다. 아시프야. 선지자가 여기 이렇게 돌아왔다. 그러니 손에 쥐어 봐. 어서.”
교황 대리의 귀에, 그 속삭임은 도저히 성스러운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악마의 속삭임 같기도 했다.
그렇기에 달콤했다.
그는 자신이 교황이 아니라 대리자에 머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손가락이 움찔거린다.
그대로 목덜미를 쓸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이기며, 대신에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검이 말했다.
=너는 비밀스러운 약속을 기억하는 아이로구나.=
“헉!”
사제는 뱃속에 번개와 불이 뒤섞여 요동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를 향해 아시프-1은 민준이 가르쳐 준 대사를 열심히 읊었다.
후라이팬은 아직 완벽히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창조주가 이른 대로 정신파를 울린다. 잔뜩 끌어 모은 위엄을 담아.
=너희와 함께하던 그때, 내 손수 모두를 세례하였으나 딱 한 명은 그러지 아니하였다. 한 명만은 상처를 내지 않은 채 남겼다.=
결국 참지 못하고, 교황 대리는 다른 손으로 자신의 목을 훑었다.
민준이 봤던 대로, 사제들 중 단 한 명만 목덜미에 상처가 없이 깨끗했다.
바로 교황 대리였다.
교단을 대표할 자는 대를 이어 어렸을 때부터 선별되어 교육받는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다른 사제와 달리 세례를 받지 못했다. 목을 찔러도 혼에 각인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지자가 그리 안배한 이유는 비밀로 지켜지는데, 다들 유체 이탈의 위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몸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제들이 있는데, 교단 대표에게 그런 사고가 생기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교황의 대리인들에게만 구전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 자리를 대신 지킬 이들. 그들만은 영혼에 낙인을 새기지 못하리. 이유는···.=
그들만 알아야 할 비밀을, 검이 말한다.
=내가 돌아오는 그날, 비로소 내 직접 그에게 세례를 내릴 것이기에.=
선지자가 사라진 뒤 누구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다 못해 어떤 종족인지조차 전승되지 않았다.
그럼 교황이 돌아왔을 때 그가 맞다는 걸 어찌 증명할 것인가?
그날을 대비하여 교황은 약속을 남겼다.
먼 훗날 돌아올 그가, 자리를 대신 지키던 이를 직접 세례한다. 비로소 그의 영혼에 각인이 새겨진다. 그동안 대를 이어 봉사한 자에게 영광을 내린다.
그리고 선지자가 바톤 터치를 하듯 비워 둔 교황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직접 세례를 내린다.’
문장을 곱씹는다.
지금까지 대리인들은 교황이 검을 들고 자신의 목에 찌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하지만··· 교황이 직접, 검의 형태로 온다면?
외계인은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알고 계신다. 우리끼리 지키던 비밀을, 알고 계신다.’
칼은 정신파로 유혹한다.
=네 목은 아직 상처 하나 없이 희고 밋밋하구나. 지금까지 약속을 잘 지켜 왔도다. 이제, 내가 약조한 바를 지킬 차례다.=
다른 사제들이 신이 잠든 장소를 목격하고, 영혼을 신혈로 적시고, 황홀경에 빠지는 영광을 겪는 사이.
교황의 대리인들만 복된 기쁨을 포기하며 자리를 지켜야 했다. 위험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행정과 정치에 힘써야 했다.
그는 대를 이어 갈망한 염원이 손에 잡힐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세례를 받으면 나도, 갈 수 있다. 신들이 잠든 그곳에!’
신의 지팡이로서 그 이상의 영광은 없으리라.
그는 저도 모르게 칼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쥐었다. 충혈된 눈으로, 날을 자기쪽으로 돌린 뒤 천천히 들어 올린다. 사제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검이 되어 돌아온 교황을 내 목에 찔러 넣는다면. 선지자에게 세례를 받는 그 순간 나는···.
칼날이 천천히 그의 창백한 목을 향해 다가갔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그 장면을 민준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멈추십시오!”
날카로운 외침.
대리자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그 순간 펠릭스의 노호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Yeh-min-choong!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