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66
267. 나의 가장 소중한 (2)
***
미쳤나?
정말 미친 건가?
델은 신음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위원들이···!”
영토 반을 떼 줄 테니 거기에 신성제국을 세우라느니 하는 헛소리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고대 종족이 익히 떠올릴 법한 발상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달란트가 필요하면 ‘좋은 가격에’ 팔겠다니?
델의 생각엔 싸우자는 말과 같았다. 풀어 쓰면 사실상 이런 의미이기에.
– 네게 사기를 쳐서 강탈했고, 최근까지도 우리가 멋대로 쥐어 짜던 네 형제자매의 고혈을 원한다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하라.
‘카인.’
델은 민준의 반응에 주목한다.
‘어떻게 침착할 수가 있지?’
만약 입장을 바꿔 델이 같은 제안을 받았다면 광분했을 것이다. 당장 통신기를 집어 던져 부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다.
방금 전 잠시나마 수형자 카인처럼 느끼게 만들었던 기세도 온데간데없다. 그저 차갑기만 하다.
델은 그의 정신이 온전한 태초의 종족으로 돌아온 것을 직감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 민준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화내지 않는군. 감정을 억제하는 것인가, 아니면 필요 없는 감정을 모두 제거한 것인가?”
민준은 그 질문을 무시했다.
“그 머저리 같은 제안을 하려고 연락한 것은 아닐 테고.”
“당연하지. 그 협상안이 누구의 발상인지 짐작하겠는가?”
“카바이트겠지.”
“정확하다.”
엔델리온은 민준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리 없을 거라 확신했고.
“복수에 눈이 뒤집힌 토드는 절대 협상은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지. 여태 가장 많은 사상자가 생긴 이들이기도 하고, 그들은 애초에 그런 종족이니까. 무조건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뤄서라도.”
토드는 이런 제안을 보낼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며.
“카바이트는 처음부터 이 전쟁이 장기화 될 건 예측했지만, 진행되는 양상을 보자 더 큰 불안감을 느낀 것 같다.”
그들은 조급해진 결과 이런 협상안을 고안하게 된 것이다.
민준의 함대가 덫은 쉽게 회피하고, 파죽지세로 차원을 넘어 진군하는 태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델은 이쯤 되니 그 미친 발상보다, 아직도 이야기를 들어 주는 민준의 태도 쪽이 더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태초의 종족은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그리곤 마치 상대에게 안부를 전하는 듯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수치를 모르는 역겨운 짐승들이군.”
엔델리온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았다.
“그들 사고방식으로는 당연한 일이야. 카바이트는 자신들이 예전 당신에게 한 짓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 살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애초에 목표가 정당하면 수단은 신경쓰지 않는 종족이다. 처음부터 그랬다지, 그 지렁이들은.”
왕의 청동색 표피가 부글거렸다. 인간의 조소 비슷한 제스처.
“달란트 실물을 거래한다는 발상도 그걸 자신들의 정당한 소유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천년에 가까운 시간 실질적으로 점유했으니 상대에게 항변권은 없다는 당당한 태도.
“애초에 빼앗긴 쪽이 잘못이라는 뜻이다. 타인이 손을 댈 수 있도록, 오랫동안 깊은 잠에 든 채 취약점을 노출시킨 쪽이··· 그러니까 빌미를 제공한 종족이 당연히 감당할 몫이라고.”
잠에서 깨지 못하는 태초의 종족은 이미 가축이나 다름없었다.
지성을 가졌되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할 수 없는 현 상황이 판단을 정당화했다.
이미 집단으로 피를 뽑아 저장하는 공정을 완성한 상태에서, 농장 밖을 떠도는 개체 하나가 가족이 흘린 피를 돌려달라 주장할 때.
농장주는 과연 반환할 의무를 가지는가?
왕이 말했다.
“협상을 준비할 때 첫 단계는 아측이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파악하는 것이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두 번째는, 상대의 마지노선을 예측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카바이트는 두 번째 단계에서 이미 실패한 것이지.”
거기까지 듣고 나서도 민준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갈갈이 날뛰며 화를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기억을 되찾은 이후, 그의 혈관 속엔 언제나 들끓는 분노와 차가운 적의가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살의는 항상 숨막히는 해일처럼, 날카로운 불꽃처럼 그의 내면을 갉아먹는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기에 민준은 그것을 터뜨릴 필요가 없었다.
타인을 향한 감정의 토로는 상대의 인지와 반응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그들의 인정이 무의미했다.
재판관은 죄수의 공감을 필요치 않는다.
“곧 당신에게 전달될 제안은 시간 낭비의 초석에 불과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묻고 싶었다.”
태초의 종족은 오직 동족의 해방을 원하고.
고대 종족은 오직 그것만은 막으려고 한다.
양측의 강렬한 의지는 평행선을 그릴 뿐, 서로 엮이거나 포물선을 그리는 법이 없다. 교집합은 요원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묻는다.
“혹여 우리가 떠올리지 못한 절충점이 존재하는가? 카바이트가 주창한 망상은 잊어도 좋다. 반대로 당신이 내세우고픈 대안은? 협상은 진정 불가한가?”
민준은 대답하는 대신 웃었다.
그 표정을 왕은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이 흐르고.
“그렇다면···.”
대꾸가 없었음에도, 답은 명확하고도 선명하게 전해졌다.
왕은 애초에 민준이 협상에 응하고자 이 자리에 나온 게 아님을 깨달았다. 심지어 항복을 권유하지도 않았다.
남은 것은 전면전 뿐이다.
왕은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대화를 수락해 주어 다행이었다고.
그녀의 눈동자가 방향을 튼다.
“@#%$@^^@.“
기습적으로 또 본명을 불린 델은 엉겹결에 대답했다.
“네, 어머니.”
그들은 좀 전처럼 왕가의 언어로 대화했다.
“결정을 내렸는가?”
“네?”
“난 이미 네게 자살을 명령했다.”
델의 눈동자에 단호한 빛이 서렸다.
확신이 담긴 목소리.
“아니요, 할 수 없어요.”
수명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죽을 수 없다.
모처럼 통신이 이어진 지금 델은 모왕에게 주장하려 했다.
그들의 가짜 영생을 지탱하는 현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모왕 연배의 엔델리온 중에는 이미 열 번도 넘게 몸갈이를 한 이도 있다는 걸 델은 안다.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을 지탱하기 위해 죽어 나간 열 명. 더 끔찍한 부분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무고한 죽음은 영생이 지속되는 시간만큼 계속 쌓일 것이다.
이런 체제는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어머니, 저는···.”
지구를 탈출한 시발점이 된 사건은 납치였으나.
지금은 민준의 포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돕고 있음을 말하려던 순간.
“그만.”
델은 왕의 눈빛에 조급한 기색이 스친 것을 느꼈다.
타인이 봤다면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빠르고도 희미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어머니!”
델이 항변하려던 찰나.
왕이 매우 빠른 속도로 문장을 읊조렸다. 비밀 언어로 발음된 그 말은 델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조각난 꿈결의 음률. 가벼운 바람 뭉개져 메아리치도다. 투명한 눈꽃에 사그러지는 우주. 별 밭에서 길잃은 아흐레의 아침. 한장의 이파리 속 별자리 출렁이고, 다시 가냘픈 생의 한순간. 옅은 고요 닦아낸 자리에서 비로소 그대 평안하리라.”
“네? 뭐라고요?”
델은 순간 모왕이 정신 착란을 일으켰나 싶었다.
그 읊조림은 단단한 의미를 건져낼 수 없는, 무작위의 문장 조합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때.
“······아?”
파앗!
델은 당황했다.
왜?
어째서 갑자기 시야가 바뀐 것인가?
——!
그전까지 델은 민준과 비슷한 눈높이에서 통신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지평선 너머가 보이지?
시선을 돌린다. 저 청동색 살점 아래에 까만 티끌처럼 같이 보이는 게 통신기다.
방금 전까지 민준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민준은 하늘 높이 날아오른 상태.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
델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인지하려 애썼다.
나는···.
출렁!
휘이이익!
반사적 움직임.
촉수가 대지를 긁으며 가로지른다. 흙먼지와 바위가 사방에 튀고 거친 굉음이 울렸다.
델의 폴리모프가 풀린 것이다.
‘어째서? 난 의도한 적 없는데···.’
다시 인간 형태로 돌아가자.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쿠르르르!
델은 몸을 일으키려 시도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육신이 정신의 통제를 잘 따르지 않는다.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촉수가 흐느적거리다 이내 대지 위로 팽개쳐졌다.
‘설마?!’
델은 방금 전 모왕이 읊조린 노래를 떠올렸다.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암호, 혹은 시동어일지도 모른다.
델도 모르는 사이 몸 속에 입력된.
평상시에는 절대로, 실수라도 읊을 수 없는 형식으로 엮인 이해 불가능한 문장.
그걸 들은 순간 자신의 육신은 반응했다,
‘어머니!’
콰르르릉!
촉수가 경련하는 방향을 따라 땅이 갈라졌다.
델의 머리가 핑핑 돌며 현기증이 밀려왔다. 다음으로 엄습한 것은, 몸이 조각나는 통증.
촤아악!
엔델리온의 살갗이 갈라지고 푸른 체액이 폭포처럼 솟구쳤다. 델은 육신이 붕괴되는 중임을 깨달았다. 혈관과 근육을 타고 염동력이 폭주하고 있었다. 몸속에 피라냐 떼를 풀어놓은 듯이, 잘게 조각내고 찢으며 산 채로 분쇄한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뚫고.
“델!”
민준의 갈라지는 외침이 들렸다.
발작하듯 떨던 그녀의 몸이 통신기를 덮쳤다. 파직! 영상 속의 왕이 사라졌다.
델이 시각을 잃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전신이 쪼개지는 아픔에 몸부림치며, 델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 나와라!=
화신의 노호가 정신파를 타고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델은 옅은 안개 같은 기운이 주변을 감싸는 걸 느꼈다. 체내에 그녀의 것이 아닌 생명력이 흘러넘친다.
민준이 그녀를 살리기 위해 손을 쓴 것이다.
그리고 급히 모함 밖으로 뛰어나온 주교들이 단체로 신성력을 쏘아 대는 것도 감지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노쇠하여 한계 직전까지 몰려 있던 육신은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안 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온몸에서 피를 뿜으며 델은 간신히 정신파를 만들어냈다.
=카인. 염치 없지만, 부탁해.=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사유의 끈을 잡고 버티며.
다시 한 번 텔레파시를 보낸다.
그 내용은 민준은 물론 함께 들은 주교들까지 놀라게 했다.
=내 영혼을··· 옮겨 줘.=
***
“영상 신호가 끊겼습니다. 하지만 위성을 통해 공주님의 생명 반응은 계속 감지 중입니다.”
엔델리온의 모성.
관료를 향해 촉수 괴물들의 왕은 되물었다.
“진행 속도는?”
그래프를 확인하던 이가 말한다.
“매우 빠릅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왕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나마 다행이군.”
델은 끝까지 몰랐다. 아마도 그녀는 육신 안에 그토록 많은 종류의 제약 장치를 심어둔 최초의 왕족일 것이다.
모든 안배는 그녀가 수형자 생활을 할 때 설치되었다.
엔델리온을 이끌 왕가의 후계가 범죄를 저지르고, 종족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교화형을 판결받았을 때.
그 징벌의 일환으로 몸갈이 순서는 밀리고 혼은 혐오스러운 인간 몸에 감금당한 당시.
왕은 미래를 대비하여 껍데기만 남은 본체에 여러 장치를 심어두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왕은 잠시 침묵한다.
그녀가 아시프-666와 대화를 시도한 것은, 정말 협상의 여지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맞았다. 하지만 왕 자신도 그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딸에게 육성을 들려 주는 것이었다.
의미 불통의 시를 읊은 것 외에도, 대뜸 ‘자살하라’라는 명령어부터 시작하여 민준과의 대화 사이 사이에 분간이 어려운 음파 형태의 코드를 숨겨 놓은 걸 그들이 알 턱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녀가 직접 읊어서 전해야 했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었으므로.
신료들이 위로하듯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면전이 불가피한 지금, 공주님이 계속 포로로 잡혀 있다면 상황이 더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협상의 여지가 없는지 몸소 확인하셨잖습니까.”
광산 행성이 폭발한 뒤, 엔델리온 측은 그들이 나아가는 경로 상에 몇 가지 함정을 더 준비했다.
그런데 적의 함대는 마치 예측했다는 듯이 그중 일부를 회피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다.
그 원천은 당연히 공주 밖에 없었다.
“아시프-666에게 목숨을 위협받았을 터이니 공주님의 잘못은 아닙니다만, 결국 불운이 겹쳤다고 밖에···.”
공주가 스스로 협조했을 가능성은 떠올리지 못하는 그들.
혹은 개중 몇몇은 알더라도, 일부러 모른척하는 것이다.
그들 의중을 가늠하며 왕은 담담한 척 말했다.
“괜찮다. 아이는 다시 만들면 되니까.”
***
윰투스는 노호했다.
“성모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붕괴하는 엔델리온의 몸에 신성력을 쏟아붓던 그는 순간 자신을 억누르지 못했다.
감히, 신격 존재들 앞에서 불경한 짓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참을 수 없었다.
죽어가는 엔델리온이 영혼을 옮길 방법은 오직 하나였기에.
“설마, 저 아이들의 몸을 빼앗겠다는 뜻입니까?!”
몸갈이를 위해 키워진 촉수 생물들.
아직도 모함 안에서 성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 아이들.
정작 죽을 위기에 닥치자, 그리도 무서웠는가? 저 멀쩡한 아이들을 죽이고 몸을 빼앗겠다는 것인가?
윰투스는 자신이 왜 이리도 화를 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모가 원한다면, 그리고 신이 원한다면 그대로 행할 일인데도.
그 순간.
=아니···.=
델은 힘을 쥐어짰다.
“엇?!”
그리고 윰투스는 자신의 경거망동을 후회하게 되었다.
델의 몸 위에 아공간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어떤 형체가 툭! 튀어나온 것이다.
“······?!”
민준 역시 그것만큼은 예상 못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델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약간의 수치심을 느꼈다. 지금까지 민준에게도 비밀로 했던 것을 들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은밀한 갈망이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꿈꾸게 되는.
시력을 잃은 어둠 속에서 그것의 형태를 떠올려 본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도저히 이 상태로는 쓸 수 없다고 판단하여 보관만 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민준이라면 가능하다. 쓸만한 상태로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다.
델은 안간힘을 다해 말했다.
=여기로···!=
한때 델은 수형자인 전남편에게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호문쿨루스, 가짜 몸의 제작에 긴 시간을 쏟았다. 비록 지금은 아시프-1의 본체로 개조되었지만 본래 민준을 위한 선물이었다. 그의 영혼을 거기로 옮긴 뒤, 평범한 인간으로 위장하여 도망치게 돕겠다는 계획이었다.
구멍투성이의 작전이었고 준비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진짜 몸처럼 기능하고 영혼에 거부반응이 없는 인형을 만드는 게 그리 간단했으면 위원회에서도 진작 몸갈이 대신 그 방법을 썼을 터.
하지만 델은 포기하지 않았다. 완성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고, 어쨌거나 외형과 내구도 만큼은 쓸만한 정도로 만들었다.
그리고 델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사실 전남편을 위한 인형만 만들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너··· 설마!”
민준은 델과 함께했던 수형자 시절, 당시 전처가 썼던 인간 육신을 복장까지 완벽히 모사한 호문쿨루스를 바라보았다.
***
촉수 신하가 왕에게 보고했다.
“생명 반응이 끊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