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85
286. 나의 가장 소중한 (21)
***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요한 기억들을 잃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은 채 그저 한 가지 일을 얼마 전까지 반복해 왔다.
그것은 주변에 흘러 넘치는 강렬한 섬광을 영혼으로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 작업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괴로워··· 너무 아파.’
그는 자신에게 한계가 없다는 사실만은 기억했다. 어떤 벽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많은 달란트라도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흡수를 멈췄다.
‘더는 안 돼. 이 이상 섞이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될 거야.’
본능적인 인지였으며, 직감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너무 아파. 고통스러워.’
달란트의 파도와 공명하는 일을 멈추자 괴로움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엘라후-프라가에 잠들어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한 꿈을 꿀 수도 없었고, 그들처럼 심장 내벽에 고정되어 있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맥박에 의해 밀려나 혈관 안을 흘러 다니다가, 그 중간 지점을 틀어막은 혈전(血栓) 비슷한 것이 되었다. 본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거대한 덩어리로 변한 것이다.
그는 그런 끔찍한 상태로 사유를 계속했다.
시작과 끝을 더 이상 종잡을 수 없는 고통 속 명상.
‘벗어나고 싶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
간절했다. 그만두고 싶다.
애초에 버티는 게 어리석은 짓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빛의 해일에 영혼을 맡기고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렸으면 편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달란트를 더 흡수해서, 내가 아니 다른 무언가로 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괴로워. 너무 괴로워.’
지금 이 자아를 붙들고 있는 대가는 끔찍한 아픔이다.
그렇다면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오로지 괴로움에 의해 담보되는 의식이라면.
‘······.’
하지만, 서럽게도.
포기하려고 할 때면 울컥하고 어떤 감정이 터지며 올라왔다.
이게 진짜 나의 끝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불안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망스럽고 화가 난다.
‘싫어!’
어렴풋한 기억 너머 누군가 생각나려 했다. 자신이 계속 버티고 있었던 이유. 그에겐 돌아가야 할 장소와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제 그마저 희미했다. 그리움 대신에 고통과 불안, 분노가 내면에 홍수처럼 범람한다.
그럼에도 그는 의식을 놓아버리지 않았다. 떠올려야 한다.
아지랑이 같은 기억에 집중하려던 순간.
– ···그러니까.
그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 역시 영혼 깊숙이 박혀 있던 기억 파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애써 떠올리려고 했던 것이 아닌, 다른 종류다.
건져 내려고 의도한 것보다 훨씬 오래된 기억인 것 같기도 했다.
– ···알겠니? 고통, 불안, 분노. 이런 감정은 생존에 유리하지. 그걸 예민하게 느끼는 유전자일수록 전승될 가능성이 높아. 아픔에 민감해야 불을 맨손으로 만지지 않을 거야. 불안에 기민해야 맹수의 흔적을 보자마자 도망칠 테지. 그리고 분노를 강하게 느낄수록 먹이 경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오를 거야.
잠깐만, 이게 무슨 말이지?
모순적이게도 그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동시에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 그러니,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진화한 건 당연한 일이야.
– 물론, 그에 따른 단점도 있어. 고통과 불안, 분노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기 힘들게 방해하지. 하지만 네 유전자는 너의 행복에 관심이 없단다.
기억이 울렁거리며 목소리가 퍼진다. 그는 그 낯설고도 익숙한 울림에서 무거운 권위를 느꼈다.
하지만 상대의 정체를 기억할 수 없다. 혼란스러웠다. 누가 한 말이었지?
– 하지만 우리는 원시시대의 선조들과 달리 위험을 지식으로 분별할 수 있지. 그리고 맹수를 피해 나무 위로 숨을 필요도, 돌도끼로 서로의 두개골이 얼마나 단단한지 실험해 볼 필요도 없어. 사람들은 그 낡고 고루한 보호 기제 때문에 나쁜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느끼지 않아도 돼. 그걸 도와주는 게 우리의 일이야.
우리의 일?
– 그들에게서 나쁜 감정을 완전히 빼앗으려는 게 아니야. 그런 감정 역시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요소니까. 대신, 그걸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행복감을 만들어 주자는 거지.
그는 억울함을 느꼈다. 그녀에게 말대꾸를 하고 싶었다.
그럼, 왜 우리만 고통을 여과 없이 그대로 느껴야 하죠?
– 그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지. 우리는 선명한 고통과 불안, 분노를··· 그 괴로움을 100%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그런 감정은 때때로 우리의 잠재력을 한계 너머까지 자극하니까.
– 이제 네 머릿속에 그걸 심을 수 없는 이유를 알겠니? 고귀한 자들은 그래서는 안 돼.
고귀한 자들.
그는 그 말이 담은 사전적 의미 이상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무게도.
기억 속의 스승이 말했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네 머릿속에 그게 없기 때문이야. 사람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불안이지. 그런 감정은 때때로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오기도 한단다.
– 그러니 안심하렴. 넌 그 무엇도 잃어버리지 않았어. 너는 완벽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아.
– 어서 아침 먹어라. 그리고 오늘 수업은 좀 늦게 시작하자. 축사는 나 혼자 다녀올게.
– 그래, 넌 무엇 하나 잃어버리지 않았어.
– 그 무엇도···.
쿵! 쿵! 쿵!
그는 잠시 오래된 기억을 향했던 의식을 다시 밖으로 돌렸다.
혈관을 틀어막은 지점을 경계로 위쪽 맥박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심장이 뛸 때마다 달란트 혈류가 사정없이 그를 내려친다.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반면, 아래쪽은 빛 조각 하나 없이 완전히 매마른 상태. 그리고 지금 그가 의식의 방향을 돌린 이유는 그쪽에 있었다.
‘···누구지?’
저 아래쪽에서,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
차원 #00-001의 성계. 고대 종족이 거주하는 중심부보다는 외곽에 더 가까운 우주의 어느 지점.
수백여 척의 함대 간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위원회 지휘선의 레이더 장교가 보고했다.
“적 함대는 무반동 추진 엔진을 최대 출력으로 가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계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어느 정도 걸리지?”
“적어도 10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10분이면 따라잡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보고를 받은 사령관은 미소 짓는다. 동시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것들.’
양측 전함은 완전히 동일한 모델이고 성능도 같다.
하지만 위원회 쪽은 성계 중심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는 중 충분한 가속을 얻어 한계 속도에 도달한지 오래다.
이 정도 크기의 전함이 하이퍼 스페이스(Hyperspace) 밖 정상적인 물질계를 항해할 때는 한계 속도를 광속의 55% 정도로 설정한다. 그 이상 가속하면 성간 물질이나 방사능이 실드에 데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한편, 교단의 전함은 기껏 한계 속도에 가까워졌던 항속을 약간 떨어뜨렸다가 다시 끌어올리는 중이다. 방향을 곡선으로 틀며 도주하는 사이 감속을 겪은 것이다.
아시프-1이 포로의 기억을 읽었을 텐데도 그 궤도는 충분히 효율적이지 못했다.
‘아는 것과 실제로 재현하는 것에는 격차가 존재하기 마련이지.’
토드 사령관의 생각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지금도 적은 미사일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온 상태이지만, 사령관은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광자포가 가장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거리까지 말이다.
“앞으로 5분 내, 광자포 최고 출력 사정거리에 돌입합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이던 사령관의 시선이 순간, 한 곳에 멎었다.
“저놈들···?”
도주하는 교단의 선체에서 일제히 무언가 떨어져 나오는 장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미사일인가?
하지만 그렇게 간주하기엔 궤도가 엉망진창이었다.
레이더를 확인한 장교가 말했다.
“적이 함선에서 일제히 화물칸을 분리하여 우주 공간에 유기하고 있습니다.”
토드는 혀를 찼다.
“조금이라도 질량을 줄이려는 발악이군.”
우습다기보다는 화가 났다.
저 전함은 본래 고대 종족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더 빨리 도망치기 위해, 남의 소중한 자산을 우주 공간에서 분해해 버리다니.
어쨌든, 무게와 크기를 줄인 덕분에 교단 전함의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결국은 따라 잡힐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잠시 후, 위원회의 스크린에 비친 적 함대 꽁무니가 두드러지게 커졌다. 우주의 심연을 뚫고 애써 도망쳤지만 여기까지였다.
“아군 진열 선두와 적 함대 후미 간 거리 30광초 내 돌입! 광자포 최고 출력으로 타격 가능합니다!”
때가 왔다.
토드 사령관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 함대 사격 개시!”
깔때기 모양으로 펼친 위원회의 함대에서 일제히 굵은 빛줄기가 쏟아졌다.
일부는 교단의 실드에 부딪쳐 튕겨 나갔지만, 착실하게 구멍을 뚫는 빛화살도 보였다.
그때.
“···뭐야?”
적 함대의 뱃머리가 휘며, 궤적이 다시금 곡선을 그린다.
이해할 수 없는 함대 운용이었다.
“정말 개판이군!”
도망치던 교단은 방향을 또 한 번 180도 바꿨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진로를 완전히 거슬러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밀접하게 모여 럭비공 같은 형태를 만든 교단 함대가, 꼬리로 갈수록 좁아지는 깔때기를 가로로 눕힌 듯한 위원회 진형으로 접근한다.
위원회가 만든 아가리 속으로 몸을 던지는 듯한 태세.
사령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도주가 힘들 것 같으니 이제라도 정면 돌파하겠다는 거군.”
밀접 진형의 이점을 살려, 화력을 한 점에 집중시켜 포위망에 구멍을 뚫겠다는 의도인가?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토드는 호쾌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좋아, 환영이지. 저놈들 마음대로 하게 둬라! 우리 진형 깊숙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
속이 빈 원기둥 진형의 위원회는 그들을 방해 않고 받아들였다.
완벽하게 포위한 다음 일망타진하려는 계획.
사령부 전함의 인공지능이 적측 속도를 계산했다. 연산 결과를 들은 사령관이 지시한다.
“앞으로 1분 25초 뒤, 전 함대 사격 재개한다!”
흩어졌던 위원회의 전함 이백여 척은 원주(圓柱) 진형의 폭을 좁히기 시작했다. 특히 꽁무니는 벽을 만들 듯 뭉친다. 교단이 빠져나갈 퇴로를 완전히 막는 것이다.
그대로 시간이 흐른 뒤.
사령관이 명령했다.
“전 함대, 사격!”
다시 한번, 검은 우주에 눈부신 소나기가 작열했다.
직전의 교전보다 훨씬 정교하게 조절된 광자포가, 그들이 만든 깔때기 내부로 쏟아져 내렸다.
예상하기로 적의 실드는 이미 상당 부분 소모된 뒤다.
그러니 이번 집중포화를 절대 견뎌내지 못할···.
“···뭐야?!”
그때였다.
토드의 눈이 커졌다. 레이더 장교 및 함포 장교 역시 방금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몸을 굳혔다.
“어떻게 된 거야?!”
함포 장교가 황급하게 인공지능과 확인하기 시작했다.
상대는 분명 직전까지, 전함의 한계 속도 근처까지 가지도 못했다. 광속의 겨우 35%에 해당하는 속도였다.
그런 타깃의 항속과 궤적을 정밀 계산하여 사격했음에도···.
“어떻게 된 거냐니까?!”
사령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들이 예상했던 통쾌한 장면은 실현되지 않았다. 교단의 함대가 산산조각나며 불꽃을 토하는 광경은 없었다.
광자포는 허무하게 검은 허공에서 서로 부딪치며 산란했다. 사정거리를 조정했기에 그나마 직선으로 계속 뻗어나가 아군 진열을 타격하는 일은 피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격추되었어야 교단 함대는 그곳에 이미 없었다.
“에러인가?!”
레이더 장교는 공황에 빠진 얼굴로 인공지능과 거듭 확인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에, 에러가 아닙니다. 센서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의 연산도 정확···.”
“젠장, 그럼 다시 계산해서 사격해! 저 망할 것들을 쏴 맞추라고!”
다시금 불타는 열선이 검은 공간을 조각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교단 함대는 인공 지능이 예측한 좌표와 궤도보다 앞서 움직였다. 그래서 광자포가 계속 빗나가는 것이다.
장교 한 명이 디스플레이를 보며 말했다.
“적 함대가··· 설명 불가능한 속도로 가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속도는 광속의 55%! 이미 한계 속도에 돌입했습니다!”
“뭐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금 전까지 광속의 0.35배로 항해하던 함대가 몇 초만에 그 두 배 가까이 가속했다고?
그랬다가는 전함이 버텨내지 못한다.
그들이 당황한 사이에도 사격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적 함대는 컴퓨터의 연산을 초월한 속도로 가속을 이어 나갔다.
위원회가 쏜 광자포 중 몇 발은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밟은 격으로 타깃에 근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적 함대는 생물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보였다. 진형을 조금 틀거나 배와 배 사이의 거리를 살짝 조정하여 그 틈으로 적의 광자포를 흘려보낸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지휘관이나 인공지능의 계산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신경 전달물질 속도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그 사이, 큼직한 쌀알 형태로 뭉친 교단 함대는 이미 포위 진형 후방까지 나아가고 있었다.
사령관이 더욱 믿을 수 없는 보고를 들은 것은 그때였다.
“적 함대··· 광속의 75% 돌입!”
사령관은 입을 쩍 벌렸다.
“오버 드라이브(Overdrive)?!”
무반동 추진 엔진을 한계까지 굴리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실드가 찢겨 나갈 텐데!”
그런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실드를 결착시킨 교단 함대는 혜성이 된 것처럼 꼬리에 에너지의 파동을 늘어뜨리며 돌진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저 전함은 위원회 것과 동일 성능의···.
‘잠깐!’
사령관의 사고가 거기에서 멈췄다.
방금 적함의 가속은 제6세대 무반동 추진 엔진으로는 불가능한 퍼포먼스다.
광속의 75%까지 끌어 올린 항속을 버티는 실드 역시 위원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단순한 오버 드라이브가 아니라··· 오버 테크놀로지(Over technology)였나?!”
엔델리온이 여태 관찰한 바에 따르면, 교단이 빼앗은 전함들은 수많은 차원을 넘어오면서도 본래의 성능 이상을 구현한 적이 없다.
당연한 일이었기에 의심한 적도 없었다. 전함은 그들 손에 들어간 상태에서도 최초 설계시 가정한 범위 내 항속과 화력만 선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철저히 의도된 연기였다면?
실은 아시프-666에 의해 그 이상의 성능을 펼칠 수 있도록 개조된 상태였지만, 고의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면?
사령관은 자신이 낚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맙소사!”
그들이 얼어붙은 사이, 실드의 광휘로 둘러싸인 교단 함대는 순식간에 돌진했다. 그대로 위원회가 만든 포위진의 꼬리까지 근접한다.
그리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전함의 벽을···.
—-!
너무도 손쉽게 뚫고 통과해버렸다.
사령관의 눈에는 반으로 갈라지고 옆구리가 파손된 채 튕겨 나가는 아군 전함이 보였다.
교단의 함대는 방해꾼들을 유유히 따돌리고 위원회 본부 쪽을 향해 멀어지고 있었다.
그 찰나, 인공지능은 그들의 속도를 계산했다.
“적함대, 광속의··· 95%까지 돌입했습니다!”
자신들을 포위하기 위해 만든 원통형 진형을 ‘통로’로 써 버리는 압도적인 기술차.
‘잠깐만, 이렇게 되면.’
사령관은 혼이 얼어붙는 듯한 끔찍한 느낌과 함께 외쳤다.
“현지점에서 위원회 본부까지 거리는?!”
추격전 때문에 전장은 이미 성계 중심부에서 상당히 멀리 옮겨진 상태.
오퍼레이터가 답했다.
“1.07광시(光時)입니다!”
빛의 속도로 움직여도 대략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
사령관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시프-1이 어설픈 함대 운용을 보이며 느릿하게 움직이다 따라잡힌 건 의도된 행동이었다. 위원회의 전함을 여기까지 유인하기 위한 술책!
그 목표를 이룬 뒤 교단은 상대를 따돌린 채 놀라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항속을 그대로 유지하면 빛보다 조금 늦게 본부에 도달할 터.
반면, 고대 종족의 전함이 같은 거리를 움직이려면 두 배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격차는 대략 한 시간.
“맙소사, 지금 본부에는···!”
거기 남은 전함은 초인의 단신(單身) 양동 작전을 대비한 수십 여척이 전부다.
한 시간 동안 본진이 무주공산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 틈을 타 150여척의 적함이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 차라리 할 수 없는 일을 떠올리는 편이 빠를 것이다.
사령관이 발악에 가깝게 외쳤다.
“당장 본부와 영계 통신을 연결시켜! 공간 왜곡장을 해제하라고!”
이렇게 된 이상 초장거리 텔레포트로 귀환해야 한다. 전함 자체의 성능으로 우주를 가로질러서는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간 접이를 방해하는 그것을 일시적으로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적 함대 역시 텔레포트가 가능하게 되겠지만 차라리 그편이 낫다. 어느 정도 민간인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성계 중심부에서 양 함대가 격돌하는 편이 말이다.
그때, 통신 장교가 넋이 나간 목소리로 외쳤다.
“본부의 응답이 없습니다!”
사령관은 무릎이 후들거리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잘 되던 통신이 왜 갑자기 두절되었는가?
“대체, 거기에선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