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84
285. 나의 가장 소중한 (20)
***
교단과 위원회.
양측 포문이 일제히 열리고 서로를 향해 집중 포격을 시작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광자포와 미사일이 서로를 노렸다. 곳곳에 핵융합의 열꽃이 피고 에너지의 격류가 휩쓸었다.
토드 사령관은 교단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호오?!”
모여 있는 만큼 집중 타격하기에 용이하다. 그럼에도 교단의 함대는 밀집 진형을 유지했다. 교전이 시작된 후에도.
촉수들 예상이 맞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고.”
지시에 따라, 통발 같은 위원회의 진형이 점점 더 조여 들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광자포의 파괴력과 사정거리를 정밀하게 조정했다.
그에 맞서 아시프-1의 함대는 군집을 이룬 물고기떼처럼 순식간에 방향을 바꿨다. 위원회가 만든 깔대기 같은 함정 아가리에 빠지기 전, 급히 회피를 시도한다.
“벌버둥쳐 봤자 헛수고다!”
위원회는 차원 방벽이 뚫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157척의 전함이 한꺼번에 차원 #00-001로 넘어왔다는 건 끔찍한 비보였다. 전함이 차원 곳곳에 퍼져 게릴라전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단은 한덩어리로 뭉쳐 움직이고 있다. 세뇌 능력자에게 의존하는 급조된 군대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사령관은 생각했다.
“아주, 좋아. 더! 거리를 좁혀라!”
무수한 미사일이 터지고 광자포가 산란한다. 위원회 레이더에 거대한 폭발 반응이 잡혔다.
“적 전함 격추 확인!”
이제 겨우 1대였지만, 앞으로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질 것이라 사령관은 확신했다.
“적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한 대를 잃어버리고 나니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생각보다 훨씬 쉽게 돌아가는 전황에 사령관은 만족스러웠다.
뭐야, 고작 이 정도였는가?
토드는 미소를 짓는다.
“이제 와서? 어림도 없지. 전 함대 추격하라!”
적이 모여 있을 때 일망타진할 기회다. 실수를 깨달은 저들이 뒤늦게라도 뿔뿔이 흩어져 차원 #00-001 곳곳으로 숨어들면 매우 골치 아파질 수 있었다.
사령관은 전의에 불타올라서 추격을 외쳤다.
그렇게 그들은 점점 더 성계 외곽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채굴 기지는 직경이 3천 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공 행성은 성계 내 태양이나 다른 행성에 이끌려 공전하지 않고 항상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고대 종족 입장에서는 기지가 조금이라도 이동하면 곤란했다. 달란트의 분출구, 제로 포인트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과 연결된 기기 및 설비 역시 제자리를 지켜야 마땅했다.
그래서 엔델리온은 이 인공 행성 표면에 마법으로 매우 무거운 질량을 부여했다.
질량 때문에 기지 주변 시공간이 왜곡되었고, 그에 따라 발생한 중력장은 주변 행성의 궤적과 거리에 따라 시시각각 조절되어 기지가 끌려 가는 일을 막았다.
물론 그 무서운 중력이 기지 내 거주 구역이나 작업 구역까지 영향을 미치면 사람들과 기기가 끔찍한 형태로 압착될 것이 뻔하기에 그런 공간은 국소적 반중력장으로 보호를 해 둔 상태다.
엔델리온의 왕은 망령들이 날뛰다 그 보호 장비마저 건드리는 사태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기지 내부는 외벽의 거대한 중력장에 간섭당한 끝에, 속이 빈 고철덩어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캬아아아아!=
기지 안에는 여전히 잔혹한 지옥도가 펼쳐진 상태였다.
검회색 파도가 곳곳에 굽이치며 터진다. 통로를 가득 채운 영의 물결이 탐욕스러운 혀를 날름거렸다.
=꺄아아악!=
=살려줘, 구해줘··· 너무 괴로워!=
=캬아, 끄아아아!=
은색 빛기둥이 뿜어져 나오는 제단을 파괴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도, 망령들은 난폭한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기지 안엔 아직 생존자가 많았다. 귀신들은 산자에게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강인한 전사들은 끝까지 버티며 망령에 대항했다. 그들은 기다리면 위원회 본부에서 지원군을 보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미친 귀신들을 향하여 반격했다.
그런 아수라장은 외부에서는 관측되지 않았다. 적어도, 육안으로는.
매끈한 금속 재질 갑판을 보유한 채굴 기지에, 크기로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별이 접근한다. 대륙과 바다의 경계가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재단된 행성. 땅에는 산맥은커녕 두드러지는 굴곡 하나 없었다.
엔델리온의 모성.
그들의 별을 움직이던 촉수 오퍼레이터가 말했다.
“사정거리 내 진입. 이동을 중단합니다.”
촉수들의 행성은 성간 물질의 농도가 가장 낮은 경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채굴 기지의 인력(引力)과 서로 간섭하지 않을 거리에서 멈췄다.
별이 이번에 움직이며 그린 궤적은 비교적 짧았다. 이미 차원 중심부로 옮겨 놓았던 상태이기에.
“아니, 왕은 대체 또 뭘 하려는 거야?!”
그사이 전파된 왕의 긴급 명령 때문에 엔델리온 국민들은 다시금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며 쉘터로 피신하는 중이었다. 차원 방벽이 뚫렸다는 소식은 정보 통제 때문에 전해지지 않았지만, 전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 그들 중 일부만, 침착을 유지한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들이 사는 거주지가 이동함에 따라 머리 위의 별자리도 바뀌는 건 흔한 일이지만, 지금은 한 행성에 지나치게 많이 접근한 상태다.
다른 별과 착각할 수 없는 특별한 행성에.
“채굴 기지?!”
“갑자기 왜 여기까지 온 거지?”
영문을 알지 못하여 당황하던 그들은 갑작스러운 대지의 진동을 느꼈다.
쿠르르릉!
채굴 기지와 마주 본 쪽의 대륙이 갈라지며 높은 탑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바깥 공기를 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던 설비였다. 연구자 촉수 한 명이 기겁하며 외쳤다.
“저건··· 새로 만들고 있는 ‘처형탑’이잖아?!”
위원회가 붙잡은 수형자들이 생존세를 제때 내지 못하거나, 수감된 상태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를 때. 위원회는 그들을 영혼소거형에 처한다.
그리고 그 도구를 개발하고 제작할 수 있는 종족은 당연히 엔델리온밖에 없었다.
최초의 처형탑은 최초의 수형자를 위해 사용되었다. 안타깝게도 당시는 아시프-1의 혼이 크고 작은 조각으로 쪼개져서 변방으로 흩어졌기에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 후로도 처형탑은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는 위원회도 영혼을 ‘완벽하게’ 소멸시키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논하는 단계까지 왔다.
물질계의 에너지가 새로 생성되거나 소멸하지 않는 것처럼, 영혼 입자 역시 사라지는 대신 끊임 없이 분해되고 엔트로피가 증가하며 무질서도를 높일 뿐이라는 이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한들, 자아의 개념이 사라질 정도로 잘게 쪼개는 건 가능하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처럼.
쿠르르르!
아직 파이널 테스트 단계이기에 엔델리온들 행성에 보관중이던 그것을, 촉수왕은 이른 감이 있음에도 사용하기로 했다. 실사용 중인 기존의 처형탑, 구(舊) 모델이 보관된 위원회 본부는 이동할 수 없지만, 촉수들의 행성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탑의 첨단은 본래 설계 의도처럼 행성 표면을 겨냥하는 대신 대기권 밖을 노렸다.
신하가 보고한다.
“발사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이번에 소거해야 할 영혼은 한두 명이 아니다. 평소의 처형 집행과는 전혀 다른 상황. 따라서 처형탑은 가공할 동력을 장전하는 중이다. 연료는 다름 아닌, 미리 채굴해 놓았던 달란트였다.
왕은 지금 전사자와 부상자의 몸갈이를 위해 비상용으로 남겨 놓은 분량까지 끌어 쓰고 있다.
아직 저 인공 행성 안에 (엔델리온을 제외한) 위원회 전사들이 생존한 것은 알고 있으나, 망령들이 내부를 전부 파괴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다른 종족의 위원들도 동의한 사항이다.
왕은 지시했다.
“발사.”
명령이 떨어진 즉시.
파아아앗!
처형탑 꼭대기에서 보이지 않는 강렬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대기권을 뚫고 치솟아 캄캄한 우주 공간을 넘어 채굴 기지를 타격했다.
파동은 기지를 구성한 금속 구조물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전자파 등을 수반하지도 않았기에 기기 작동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것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오직 생물,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육신 안에 깃든 영혼이었다.
“크··· 크아아악!”
“이, 이게 뭐야? 본부는 대체 뭘 하고··· 아아악!”
그때까지 살아남아 망령들과 필사적으로 싸우던 전사들은 곧 자신들의 영혼이 산산이 조각나며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육신의 고통과는 결이 다른 끔찍한 고통이었다. 존재의 근원이 들끓으며 증발했다.
차라리 행성을 통째로 폭발시켰다면 죽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자아의 중심점을 겨냥한 공격이었다.
전사들이 하나씩 쓰러진다. 그들 영혼은 관측이 불가능할 정도의 미립자로 변하여 흐트러졌다. 재가 흩날리듯 주변으로 스며든다.
피아를 식별하지 않는 공격은 망령들에게도 직격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지금까지 고대 종족 전사들을 참혹하게 살해당하면서도, 그들 자신 역시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망령들은.
=아아, 드디어!=
=사라질 수 있어. 이제 끝났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
그들의 정신파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망령들은 오히려 자아의 소멸을 환희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민준이 그들에게 준 기회였다.
영원토록 반복될 지옥에서 벗어나 의식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던지는 기회.
복잡하고 정교하기 짝이 없었던 정신이 무질서로 돌아가는 현상. 자아의 개념을 해체하고, 내가 존재하기에 뒤따르는 모든 갈망이 사라지고, ‘자신’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
=드디어···!=
그들은 마침내 구원을 맞이했다.
***
시간이 흐른 뒤.
채굴 기지를 휩쓸던 비명과 절규, 악다구니는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망령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실은 잘게 으깨진 영혼 파편, 혹은 영혼의 먼지가 주변에 가득 쌓여 있을 테지만 그것은 너무도 작은 입자다. 뛰어난 영체감응 능력자가 와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심지어 지금도, 엔델리온 행성에서 쏘아 보내는 파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동시에 영혼이 없는 골렘 부대를 대기권 밖으로 사출하여 이 행성으로 접근시켰다.
그렇게 황급히 파견한 이유가 있다. 왕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행성의 중심으로 이어진 ‘천국의 문’은 아직 열려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방비하게 개방되어 안쪽의 통로를 노출시킨 문 앞에.
팟!
육신(肉身)을 지닌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이이잉!
영혼을 으깨려는 파동이 민준에게도 엄습한다. 신이 얼굴을 찌푸릴 정도의 공격은 되었다.
그는 바로 손을 들어 방어막을 만든다. 그러자 혼을 찢어발기려던 파동이 허무하게 흐트러졌다.
민준은 사방에 찢긴 고대 종족의 살점과 내장, 흥건한 체액에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대신 그가 이곳에 온 이유를 노려본다.
거기엔 교단이 엘라후-프라가라고 부르는 차원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는 망령들을 기지로 침투시키는 계획을 세울 때, 어느 정도의 달란트가 비산하여 없어질 것을 각오했다. 귀신들이 문을 뚫은 순간 그 압력 때문에 달란트가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올 것이라고.
하지만 주변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저 혈관의 하류가 완전히 마르고 혈액의 흐름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확인해 봐야겠다.’
다음 행보를 딛기 전 필히 해결해야 할 부분이었다. 어쩌면 계획의 목적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저 너머에 있다. 태초의 종족은 그렇게 생각했다.
=꺄아아아아악!=
기존에 소환한 망령들은 전부 분해되어 사라진 상태이지만, 민준은 자신이 펼친 보호막 안에서 새로이 귀신들을 불러낸다. 이번에는 아드키엘과 충분히 융합되지 않은 상태라도 상관없었다. 고대 종족이 쳐 놓은 입구의 결계는 이미 깨졌으니까.
치이이익!
그들의 영혼에도 같은 인장을 새긴 뒤, 민준은 귀신들을 천국의 입구로 밀어 넣었다.
‘가라. 가서 내부가 어떻게 된 건지 보고 와!’
혈관 안으로 진입한 망령들은 민준에게 내부 정보를 전달했다. 바짝 마른 혈관벽이 계속 보인다. 귀신들은 내시경 끝에 달린 카메라처럼 실시간으로 영상을 민준의 머릿속에 비췄다.
그렇게 계속 심장 쪽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던 중.
‘······!’
망령의 이동이 드디어 멈췄다.
그 지점은 예전에 교황 대리가 진입했던 상류도, 채굴 기지와 연결된 하류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였다.
굳이 분류하자면 중류(中流)라고 해야 할까?
‘저건···?!’
망령과 시야를 공유한 민준의 표정이 굳었다. 귀신들은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본래 없던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해물의 정체는 영체였다. 모습을 묘사하자면, 퉁퉁 부풀어 오른 익사체를 영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의 이름을 민준은 되까린다.
‘하은성!’
처참하다.
본래 그 유령이 지녔던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영혼의 크기 자체가 달라졌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부풀어 오르고 확대된 상태. 윤곽이나 굴곡도 거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영적 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본래 하은성이었던, 눈부신 빛을 발하는 구체(球體) 때문에 혈관에는 조금의 빈틈도 없다. 어쩌면 혈관벽 너머까지 영체를 뻗어 자가잠식을 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 기이한 광경을 보며, 민준은 중얼거린다.
‘자아의 붕괴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란트를 흡수한 거군.’
하지만 결국은 한계점에 도달했다.
‘저 녀석은 어떤 결계든 관통하여 나아가는 영혼이지만··· 그 사실과는 별개로 달란트만큼은 절대 더 흡수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거다. 다시 말해서 달란트는 이제 하은성의 영체를 통과할 수가 없다. 접촉하면 막아버리는 거야.’
그 결과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이러했다.
달란트를 한계까지 흡수한 하은성은, 스스로가 굳은 핏덩어리가 되어 혈관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