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315
316. 업(業) (21)
***
맨 몸으로 차원을 넘은 후유증이 점차 사라졌다. 일련의 고룡들이 전투를 포기하고 후방 요원으로서 오로지 도약마법에만 매달린 덕에, 방벽을 넘는 일은 과거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삐걱거리는 감각이 점차 제자리를 찾는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다음으로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드래곤들은 믿기 힘든 장면을 목도할 수 있었다.
“미리 듣긴 했지만,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군.”
수면 위에는 태양이 하나 더 뜬 것처럼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여덟 척의 전함 중, 한 척에서 빛의 파동이 출렁이며 사방으로 뻗는다. 그것은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일정 고도 내에서 움직였다.
드래곤들은 그것에 닿지 않으려 도망치거나 방어막을 펼쳐서 막는 등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동족들이 분석한 결과 저것은 순수한 신성력이 맞았다. 심지어 회복의 힘을 담고 있었기에 접촉해도 나쁠 일은 없었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고개를 갸웃한다.
“뭐, 곧 알게 되겠지.”
선발대로 도달한 그들 뒤로는, 지금도 공간이 일렁이며 순차적으로 도약 마법이 완성되고 있었다. 허공에 뚫린 구멍은 끊임없이 각양각색의 용족들을 토해냈고, 그런 그들 뒤에서 또 다른 게이트가 열릴 준비를 한다.
전 병력이 도달하기를 기다리며, 카이레디악을 비롯하여 먼저 도착한 드래곤들은 우주 모함을 포위하듯 감쌌다.
그들은 차원 #00-001에서 더 많은 전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지구로 오고 있을 터. 그들이 아시프-666과 합류하기 전에 오늘 작전을 성공시켜야 했다.
“···?!”
팟! 파파팟!
아직 모든 드래곤이 도약을 마치려면 아직 시간이 남은 시점.
“뭐야?!”
전함 주변에 섬광이 번뜩인다.
그것은 지휘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과는 구분되는 것이었다. 용들이 착각할 리가 없었다.
침입자들 얼굴이 일그러졌다. 빛이 터지는 자리마다 검은 얼룩이 남는다. 하늘에 찍힌 까만 점이 되어 진형을 갖춘 그들은, 비록 각양각색의 형태였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드래곤의 뛰어난 시력과 여섯 개의 뇌는 상대의 생김새를 순식간에 인지하여 파악한다.
누군가 외쳤다.
“살아있었어!”
처음 지구에 침공하여, 아시프-1을 제거하려다 역으로 궤멸당한 25개 차원의 연합군.
그들이 이 자리에 나타났다.
이어서 일제히 날개를 펼치더니, 맹렬하게 날아온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있다. 그런 그들을 반갑게 맞이할 정도로, 카이레디악은 우둔한 자가 아니었다. 이미 세뇌능력자의 존재를 알고 있으므로.
‘우려가 맞아떨어졌군. 그것도 최악의 방법으로!’
엄중한 경고를 담아 외쳤다.
“그만! 거기서 멈춰! 더 이상 다가오면 공격하겠다!’
그것은 의미 없는 선고임이 바로 증명되었다.
카이레디악 측이 공격하기 전에, 상대 측 진영에서는 이미 마력이 끓어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세뇌된 것이 분명한 수천의 드래곤. 그들 입가에 화염이 엉기고, 뿔 사이에 전기가 튀었다.
그들을 보는 선발대의 눈에도 경계와 긴장이 서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등 뒤의 허공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게이트가 만들어지는 중.
카이레디악은 혀를 찼다. 아시프-666을 제거하는 총력전이, 드래곤들 간 골육상쟁으로 시작될 판이었다.
두터운 구름이 움직이고 태양광이 내리쬐었다. 함대를 포위한 드래곤들과, 그런 그들에게 달려드는 드래곤들의 비늘의 반사광, 그런 그들 틈으로 떨어지는 신성력의 부스러기는 어떤 종족에게도 어지러움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멀미를 유발하는 빛의 격류 속에서, 두 드래곤의 군세가 충돌했다.
***
아시프-1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7일이나··· 지났다고요?!”
홱! 빠르게 고개를 돌린다. 넷째는 여전히 빛에 휩싸여 정신을 못 차리는 중.
이것이 신성력이 된 유령의 안배일까? 바로 7일 뒤로 자신을 보내버리다니!
아니, 더 정확히는 이레 간 자신을 잡아 둔 것이었다. 사제들 기억을 통해, 아시프-1은 그동안 현실에서 벌어진 일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넷째를 제거하려 하셨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 다행히도 고블린이 필사적으로 막은 것 같다.
동철이 직전의 일을 설명하며 만류한 덕에 민준은 아시프-1이 깨어날 때까지 며칠 더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늦게 깼어도 아버지는 실행에 옮기셨을 거다. 그대로 넷째가 죽어버렸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을 거야!’
동철이 마침 곁에 있어줘서, 그리고 때맞춰 자신이 깨어나서 다행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조차 유령의 계획일까?
시간을 초월한 자의 뜻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헤아리기는 어려웠다.
“몸은 멀쩡한 것 같고.”
창조주가 말했다. 이미 평소와 같은 담담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돌아온 뒤였다. 그는 한눈에 아시프-1의 육신이 정상임을 알아보았다.
“정신은?”
그것은 민준이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아시프-1은 말했다.
“멀쩡합니다.”
민준으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사제들 기억을 읽었을 테니 설명은 생략하겠다. 즉시 지휘하여 전투할 준비를 하도록.”
바로 등을 돌린다.
그의 말대로, 아시프-1은 상황 파악을 끝냈다. 그는 방금의 소음이, 기어코 더 큰 규모로 군집하여 침공한 드래곤들이 만든 것임을 알았다. 서신을 보낸 젠킨슨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였다.
레드 드래곤 입장에서는 또 한 번의 실패라고 볼 수도 있었다. 젠킨슨은 일부 드래곤들이 그 서신을 보고 얼마나 큰 공포에 빠질 것인지, 그리고 그 부정적 감정을 얼마나 빨리 분노와 적개심으로 돌릴지 완벽하게 공감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런 벗의 실패 역시, 창조주의 예측 범위 내임을 아시프-1은 이제 안다. 아시프-1에게 이레의 말미를 준 것도, 기한이 끝나는 12월 31일에 드래곤들이 침공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날짜는 예언자를 통해 확신했고, 때가 정해진 이상 대비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기다려 주십시오!”
다급하게 외친다. 선실을 나가려던 민준이 멈췄다.
아시프-1은 사방에 퍼진 금빛 가루와 동철을 동시에 보았다. 그리고 정신세계에서 유령이 한 말을 떠올렸다. 영혼에 낙인을 찍듯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입증하겠습니다!”
민준이 어깨를 돌렸다.
“···뭐라고?”
어이가 없다는 말투. 저 감정은 곧 격노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시프-1은 멈출 수 없었다.
“약속대로 입증하겠습니다! 오늘이 딱 7일째입니다. 기한이 남았습니다!”
“······.”
“신성력의 근원과 가치를 입증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당신께선 말의 무게를 아는 분이시기에, 지금까지 어떤 약속이든 어긴 적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증명하겠습니다!”
윰투스와 동철은 당장 그를 말리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약속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러다가 분노한 민준이 아시프-1을 해구 밑바닥에 처박아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눈박이나 고블린이나, 민준의 무표정 아래 숨겨진 감정을 읽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었다.
“너···.”
차디찬 목소리.
“지금이 그럴 때라고 생각하나?”
당장 드래곤들이 몰려오는 지금 느긋하게 약조니 뭐니 따지고 있냐는 힐난.
그는 이정도면 아시프-1이 기를 누그러뜨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네, 지금이 가장 적합한 때입니다!”
“······!”
민준은 오랜만에 불의 채찍을 휘둘러야 할지 고민한다.
하지만 아시프-1은 기세 좋게 외쳤다.
“압니다! 저 밖에 수만의 드래곤 떼가 몰려오고 있지요. 그들을 제 방식대로 ‘처리’함으로써, 아버지에게 신성력의 가치를 입증하겠습니다!”
***
잠시 후.
민준은 이런 선택을 내린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수형자로 잡히기 전이었다면, 아마도 다르게 반응했겠지.’
더 들을 것도 없이, 아시프-1을 강압적으로 찍어 눌렀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때였다면 저 녀석이 거역하지도 않았을 테다. 자유 의지의 유일한 쓸모가, 내 지시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자신이 변화한 이상으로, 아시프-1은 더 많이 바뀐 것이다.
휘이이잉!
거친 해풍이 그의 머리카락을 난폭하게 헤집다가 휘며 스쳐갔다. 귓가에 가득한 공기의 파열음 외에도, 깊고 날카로운 폭음이 끊임없이 들리는 이곳.
민준과 동철, 아시프-1은 지금 지휘선 갑판 위에 서 있다. 외부에 완전히 노출된 공간.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지금은 전시(戰時)야.”
“알고 있습니다.”
아시프-1은 저 멀리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용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교황이 직접 명령하지 않아도 아군의 말을 충실하게 따르게 세뇌되어 있었다.
자신이 유령을 만나는 사이, 용들은 생명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자기보호본능마저 버린 채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선발대로 넘어온 드래곤들은 이미 수적으로 세뇌된 용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세뇌된 드래곤들은 날개가 꺾이고, 사지가 뜯기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눈이 뒤집힌 것처럼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흑마법사가 부리는 좀비를 연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 아시프-1의 눈길이 멎은 곳에서는 정신을 지배당한 화룡 하나가 두 눈이 터진 상태에서도 전의를 불태우는 중이다.
캬아아아!
화룡은 플래티넘 드래곤을 악착같이 쫓고 있었다. 눈물처럼 핏물을 철철 흘리는 모습에 플래티넘 드래곤은 질린 듯했다.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거리를 두려고 시도한다.
그것이 실수였다. 플래티넘 드래곤이 잠깐의 틈을 보이자, 화룡은 달려들어 그의 옆구리를 콱! 물어버렸다.
—!
플래티넘 드래곤은 찢어지는 비명을 토하며 이미 텅 빈 상대의 눈구멍에 손톱을 박아넣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견과류 껍질을 까듯, 두개골을 그대로 위로 젖히려 들었다.
하지만 그의 복부를 깨문 용 입가에 화기(火氣)가 일렁인 것이 먼저였다. 플래티넘 드래곤은 기겁하여 외치려고 했다.
“이 미친 드래곤아··· 그만···!”
화룡의 입에서 화염이 폭발했다.
콰쾅!
동시에 백금 드래곤의 옆구리가 터져 나갔다.
익은 내장 조각과 살점, 갈비뼈 일부가 폭탄 파편처럼 사방에 튀었다. 용은 한 입 베어 먹힌 자국 같은 것을 옆구리에 남긴 채 빙글빙글 돌며 추락했다. 바다에 잠기기 직전 그 몸을 지탱한 것은 초인적인 정신력이었다.
몸의 상당 부분을 상실한 채,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다시 올려다본 백금룡은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아···?!”
본래 불을 뿜는 드래곤의 구강은 몹시 튼튼하다. 자신이 토한 불 때문에 잇몸과 혓바닥, 입천장 따위가 익어버려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구조물은 어디까지나 장애물 없이 불을 뿌릴 때를 상정한 진화의 산물이다. 반면, 방금의 사건은 토치 입구를 막은 채 불을 뿜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플래티넘 드래곤은 방금 브레스를 날린 화룡의 치열(齒列)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뇌당한 용의 입과 코가 있던 자리는 망울을 터뜨린 나팔꽃잎처럼 갈라져 너덜거렸다. 아래턱은 이미 반쯤 사라진 상태. 멀쩡한 걸 찾기 힘든 이빨 사이엔 잔불이 남아 타올랐다.
크라라라라!
화룡이 다시 달려들었다. 걸레 조각처럼 변한 살점 아래, 치아와 연결된 인중의 뼈를 그대로 드러낸 채.
플래티넘 드래곤은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전장 곳곳에, 그것에 버금가거나 더욱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다. 여간해서는 쉽게 죽지 않는 종족이 몸을 사리지 않을 때 벌어지는 광경은 실로 참혹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전세는 세뇌된 용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시프-1은 중얼거린다.
‘곧 뒤집힐 거다.’
차원 도약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적은 곧 뒤집기 힘들 정도의 수적 우위를 점할 터. 그들이 모두 건너오면 아낌없이 광자포 세례를 퍼부어 주는 것이 아버지의 계획이었다. 때가 임박해서도 아시프-1이 머뭇거리면 민준은 더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아시프-1이 말했다.
“데모닉 고블린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가 말을 꺼낸 순간.
가뜩이나 자신이 왜 여기까지 불려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동철은 더욱 당혹스러운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
“······?”
일단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보다도···.
무언가 결심을 내린 듯한 아시프-1과, 뭔가를 알지만 동시에 그 사실이 못마땅한 듯 눈썹을 꿈틀거리는 민준.
그들 둘을 향해 더듬거린다.
“왜··· 두 분 다, 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