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2
22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툴툴거리는 소리를 내며 모하메드 장관도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나도 가겠소. 당신 말대로 상황이 여의치 않은 건 사실이니,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뭔가 돌파구를 찾는 것이 좋지 않겠소.”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모하메드 장관이 움직이자 숙덕이던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그, 그럼 나도…….”
“잠깐. 내가 먼저 손들었어.”
처음 용기를 내는 게 어렵지, 일단 흐름을 타니 그다음은 모든 게 손쉽게 흘러갔다.
결국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혁권을 따라가는 것으로 결정 나자 그는 내심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테러범들이 호텔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나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혁권과 자말밖에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선택지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머뭇거릴 것 없이 바로 출발하죠.”
혁권은 테러범들이 정부군에 정신이 팔려 있는 틈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에 서둘러 사람들을 데리고 움직였다.
이런 가운데 코린시아 호텔 테러 사건은 리비아 정부군의 진입 작전 실패와 충격적인 부비트랩 폭발 장면이 방송사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켰다.
벌써 몇 번째 보여 주고 있는 폭발 장면이 끝나고 화면이 스튜디오로 돌아오자 가운데 앉은 남자 앵커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화를 진행했다.
“다시 봐도 아주 충격적인 장면인데요. 리비아 정부군이 무리하게 진압을 시도한 것이 아닙니까?”
밑에 자막으로 군사 전문가라고 찍힌 중년인이 바로 말을 받았다.
“바로 보셨습니다. 함정을 예상하고 충분한 대비를 했어야 되는데, 빨리 상황을 종료시킬 생각에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어요. 이건 명백한 리비아 정부의 실책입니다.”
“이렇게 되면 상황이 장기화될 수도 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데다 자국민이 인질로 잡혀 있는 나라에서 이런저런 압력이 들어올 테니 섣불리 움직이기 어려울 겁니다.”
“말씀을 하셨으니 다시 한 번 알려 드리겠습니다.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 내에 위치한 코린시아 호텔에서 현지 시간 오후 3시경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이슬람 형제단이 벌인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코린시아 호텔은 외국인과 정부 고위 인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으로 UN과 국제구호기금을 비롯한 여러 국제단체들도 여기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정확한 숫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외국인을 포함해 삼백 명가량의 호텔 직원과 손님들이 테러범들한테 인질로 잡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리비아 정부군이 바로 진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 뒤에 이슬람 형제단 이름으로 성명서가 발표됐습니다. 내용은 현재 리비아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조직원 마흔 명을 석방하는 것으로…….”
“멍청한 새끼들!”
집으로 가지 않고 회사 숙직실 텔레비전으로 CNN 뉴스를 보고 있던 유기백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자 혁권의 소식을 전하려 알려 주러 왔던 고복수가 그를 위로했다.
“테러범들을 피해 숨어 계시다고 했으니까 별일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우.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유기백은 답답한 마음에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하지만 담배는 없고 빈 갑만 나오자 유기백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손에 들린 담뱃갑을 구겼다.
“이걸 피우십시오.”
“고마워.”
고복수가 내민 담배를 받아 입에 물고 불을 붙인 유기백은 다시 시선을 돌려 뉴스를 봤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상당히 거리가 먼 곳에서 찍은 듯 아까 폭발로 시커먼 연기가 피워 오르고 있는 코린시아 호텔 전경이 자료 화면으로 나오고 있었다.
바로 저기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 친구인 혁권이 있다는 사실에 그는 마음이 초조하게 타들어 갔다.
“제발 살아만 돌아와라.”
사우나를 나와 조심스럽게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 앞장서서 움직이던 자말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뒤로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이 골치 아프게 됐습니다.”
“무슨 말이야?”
한쪽 귀에 꽂혀 있는 무전기 리시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말이 말했다.
“놈들이 카페테리아에 숨겨 둔 시체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인질들을 구해 낼 때 빼앗은 걸 아랍어를 아는 자말이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테러범들의 교신을 몰래 훔쳐듣고 있었다.
“으음.”
낮은 침음성을 내뱉으며 혁권은 이맛살을 찡그렸다.
이렇게 되면 십중팔구 상대가 자신들의 존재를 눈치챌 것이고 그럼 혼란스러운 와중에 조용히 호텔을 탈출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뒤를 따라오던 일행도 대화를 듣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계속 고집을 피우며 탈의실에 남아 있었다면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하고 테러범들한테 발각됐을 가능성이 컸다.
안도를 하는 한편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불안감에 휩싸였다.
일행이 모두 그를 쳐다보자 혁권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여길 빠져나가는 수밖에. 싸미라 씨.”
“예?”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든 싸미라를 쳐다보면서 혁권이 빠르게 물었다.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갑니까?”
“네.”
싸미라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옆에 있던 자말이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봤다.
“엘리베이터를 타시려는 겁니까?”
“그래.”
“위험하지 않을까요?”
테러범들이 호텔을 장악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이동수단인 엘리베이터를 통제하는 것이었을 텐데, 스스로 적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혁권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게 제일 지름길이잖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여유가 있었다면 다른 방법을 찾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
혁권과 눈이 마주친 자말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불안해하고 있는 일행을 둘러본 혁권은 묵직한 어투로 이야기를 했다.
“지금부터는 가급적 소리를 내지 말고 주위를 잘 살피면서 움직이십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절대 떨어지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자신들의 목숨이 두 사람한테 달려 있다는 걸 알기에 일행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있죠?”
“반대편 복도 끝으로 가야 돼요.”
싸미라의 대답에 혁권은 AK47을 두 손으로 잡고는 개머리판을 어깨에 단단히 밀착시킨 채 몸을 움직였다.
벽에 등을 붙인 그가 눈짓을 하자 반대편에 선 자말이 왼쪽 팔을 뻗어 조심스럽게 철문을 열었다.
끼이익.
재빨리 복도로 나간 혁권은 언제든지 총을 쏠 수 있게 손가락을 방아쇠에 건 자세로 총구를 좌우로 휘둘렀다.
자말도 바로 뒤따라 나와 사방을 살폈다.
다행히 붉은색 카펫이 깔린 복도는 아무런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혁권이 손짓을 하자 비상구에서 숨을 죽인 채 기다리던 일행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고 철제문이 다시 닫혔다.
철컥.
두 사람은 마치 고양이처럼 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 어디서 테러범이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둘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채 주위를 세심하게 살폈다.
나머지 일행은 약간 거리를 두고 그런 혁권과 자말을 뒤따라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이동한 일행은 잠시 뒤 반대편 복도 끝에 도착했다.
“여기예요.”
싸미라가 한쪽 팔을 들어 가리키는 곳을 보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은 회색 철문이 보였다.
철문에 귀를 가져다 대고 안쪽을 살피던 자말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혁권은 일행에게 뒤로 물러서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작은 형광등 하나만 켜져 어두운 직원용 통로에는 아무도 없었다.
총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꼼꼼하게 살핀 혁권은 안전이 확인되자 일행을 불러들였다.
복도에 몸을 드러낸 채 돌아다니는 것이 못내 불안했던 혁권은 일단 직원용 통로까지 들어오는 데 성공하자 나지막하게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완전히 놓기에는 일렀는데 진짜 위험은 지금부터였다.
통로 왼쪽 편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걸 보고 혁권이 버튼을 눌렀다.
위이잉.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위층에 올라가 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혹시나 테러범들이 타고 있을 경우를 대비해 혁권과 자말은 AK47 소총을 들어 올리고는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어서 타십시오.”
뒤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일행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가자 제일 마지막에 그가 올라타며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바로 주차장이 위치한 지하 1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평소 직원뿐만 아니라 각종 화물을 옮기는 용도로도 쓰기 때문에 내부가 넓어 혁권까지 여덟 명이 한꺼번에 타고 자리가 넉넉하게 남았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혁권은 여전히 무전기 리시버를 한쪽 귀에 꽂고 있는 자말을 보며 말했다.
“놈들은 어쩌고 있어?”
그러자 자말은 힐끔 일행을 쳐다보고는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저희를 찾기 위해 건물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아직 지하 주차장 쪽은 생각 못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탈출이 늦어지면 앞뒤로 포위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단호하게 말한 혁권은 시선을 들어 문 위에 있는 층수 표시를 봤다.
화물용이라서 그런지 엘리베이터는 아주 천천히 움직였는데 마음이 초조해서 그런지 더 느리게 느껴졌다.
테러범들이 인질을 잡고 있는 로비로 내려갈수록 더욱 입안이 바싹 말랐다.
두려움과 긴장이 뒤섞인 가운데 살짝 아래로 내렸던 총구를 다시 들어 올리면서 혁권이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쓸어버려.”
“그러죠.”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인 자말도 자동소총 개머리판을 어깨와 뺨에 밀착시키고는 앞을 주시했다.
그러자 다른 일행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몸을 움츠렸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자 혁권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드르르륵.
바로 이어서 문이 열리자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이 나타났다.
동시에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테러범 두 명이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뒤를 돌아보다가 일행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쳤다.
“뭐야!”
테러범들이 손에 든 AK47 소총을 쏘려는 순간 한 박자 빠르게 혁권과 자말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카카카캉!
“으악!”
“컥.”
가슴에 여러 발의 총탄이 박힌 테러범들은 피를 뿌리면서 뒤로 나자빠졌다.
앞으로 달려 나간 두 사람은 주차되어 있는 차량에 몸을 기대고는 주위를 살폈다.
“이럴 줄 알았지. 오른쪽이야!”
고함을 친 혁권은 몸을 옆으로 틀었다.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테러범 다섯 명이 자동소총을 겨누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정부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지하 주차장 입구를 지키고 있던 놈들이었는데 총성을 듣고 바로 움직인 것이다.
이럴 걸 예상했던 혁권은 당황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 사격을 가했다.
카캉! 카카캉!
날카로운 총성이 지하 주차장 가득 울려 퍼졌고 달려오던 테러범 두 명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