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다르힘 식스
다르힘은 평범한 하알룬의 농부였고, 앞으로도 평생을 농부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민의 부임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다르힘. 남자로 태어나서 무기는 한 번 잡아 봐야지 않겠냐? 삽이 아니라 칼 말이야. 만약 병사가 된다면 기사가 될 때까지 영주님께서 지원을 아낌없이 해 주실 거라더라.”
“기사라고? 갈란트 형. 기사가 되면 여자한테 인기도 많아지겠지?”
“…의도가 불순한 놈이네, 이거. 됐다, 너는.”
“아니, 나 병사 시켜 줘. 병사는 개간 안 해도 된다며? 다른 영지에 갈 일도 생기고.”
하알룬은 몬스터도 거의 없는 서부 아닌가?
목숨 걸고 싸울 일도 없고.
그렇게 다르힘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알룬의 병사가 된 후….
꽤나 많이 후회했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안 했지.’
다만 만족스러워하는 카민의 모습을 보며 다르힘은 기사가 될 꿈에 부풀었다.
카민은 계속해서 약속을 지켜 냈으니까.
‘언젠가는 기사가 될 수 있을 거야.’
훈련은 힘들었지만,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하알룬의 동료들과 함께하니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카민이 남작이 되고, 마침내 기사 작위를 받자, 그는 모든 것을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다르힘 식스!
하알룬 10기사 중 나이로 여섯 번째라서 식스라는 성을 받은 그는 10명 중 가장 재능이 뛰어났다.
기사가 된 다르힘은 더 큰 꿈을 갖게 되었다.
약간의 우월감, 자신감, 성취감 등이 그의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의외로 나… 대단한 거 아니야?’
비전 검술의 대가인 카민은 그들에게 말했다.
열심히 훈련하면 비전 검술도 터득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리 촌구석에서 자란 다르힘이라 해도 비전 검술을 익힌 기사가 어떤 존재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가장 기본인 [검기>만 익혀도 대륙 상위 1% 안쪽의 기사가 되는 셈이야.’
꿈에 부푼 다르힘은 조금 더 진지하게 수련에 임했다.
그러나 카스톨 래빗이 수호 기사로 하알룬에 오고 나서부터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설마 내 재능이 부족한가?’
우물 안 개구리에게 현실은 차가웠다.
?너희들 모두 신체 능력은 뛰어난 편이지만… 검술에 익숙하지 않은 게 한눈에 보이는군. 지금부터 특훈이다.
카스톨이 진행하는 사관학교식 교육을 경험하자 자신의 재능이 어설픈 것이었음을 알아차리고 만 것이다.
아무리 부모 세대로부터 뛰어난 유전자를 받았다지만 기술 수준까지 물려받을 수는 없는 법.
쟁기나 삽이나 쥐던 이가 검을 몇 달 잡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빠르게 성장한 만큼 정체기에 접어들자 금세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러던 와중에 다르힘은 갈란트와 카스톨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갈란트, 당신의 검술은 괜찮은데… 아무래도 나쁜 버릇이 많아서 문제로군.
?흠. 괜히 기사들이 왕국 검술을 주로 익히는 게 아니지. 비전 검술을 얻기 위한 왕도와 같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처음부터 배우는 건 무리야.
?어쩔 수 없지. 대신 실전검을 통해 비전 검술을 터득하게 되면 파괴력이 남다르니까. 장단점이 있는 셈이지.
심지어 10년 가까이 용병 생활을 한 갈란트도 결국 비전 검술을 익혀 내지 못하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갈란트 형처럼 열심히 해도 쉽지 않은 건가….’
하지만 다르힘은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히 정진하면 비전 검술을 익힐 수 있을 거란 카민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
“맞습니다. 하알룬 기사단은 전원 비전 검술을 쓸 수 있습니다.”
회의 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카민의 말에 다르힘은 당황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지?’
슬럼프를 이겨 내고 죽어라 수련한 끝에 카스톨이 이렇게 평한 게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드디어 왕국의 일반적인 기사 수준에 도달했군.
그런데 비전 검술이라니?
당연히 밖으로 나오자마자 카민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희가 비전 검술을 쓸 수 있다뇨. 생각이 있으셔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전투에 돌입하면 금방 들통날 텐데요.”
걱정스레 묻는 다르힘에게 카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희가 그동안 힘들었음을 안다.”
“예?”
“빠르게 성장했던 만큼 벽을 만난 순간 느낀 좌절은 더욱 컸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카민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너희들만 알고 있어라. 나는 사실 악마 사냥꾼이다.”
“예? 그게 뭔데요?”
다르힘의 반문에 카민은 그가 하알룬의 촌놈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마물 사냥꾼은 들어 보았겠지?”
“아, 네. 헬몬트 형이 살아 있을 때 마물 사냥꾼에 대해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헬몬트라는 말에 카민은 잠시 멈칫했다.
역시 헬몬트가 빙의되었음을 숨겼던 건 옳은 선택이었다.
당시에는 쟈네를 위해서였지만, 지금 와서 자신이 악마 사냥꾼임을 밝혀야 했으니.
“그중 특별한 힘을 터득한 존재를 바로 악마 사냥꾼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나는 비전 검술의 대가가 될 수 있었지.”
짧게 주술에 대해 설명을 들은 다르힘은 눈을 치떴다.
“그러니까… 영주님께서 저희가 비전 검술을 쓸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겁니까?”
“그래. 다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지금은 급한 상황이니까… [검기>의 기본은 배워서 알고 있겠지?”
“예.”
“그대로 실행하면 비전 검술이 발동할 것이다. 다만 그 한계는 정해져 있다. 어디까지나 내가 너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비전 검술을 구현해 내는 것까지니까.”
카민은 엔드라에게 설명을 듣자마자 느꼈다.
제약이 풀린 「영혼의 계약」은 개사기 특성이라고.
힘을 빌면 그의 마나를 저들에게 줄 수 있고, 그 마나가 떨어질 때까지 하알룬 기사단은 비전 검술을 쓸 수 있다.
허나 ‘변경 땅의 영주님’의 고인물인 그는 회의장을 나오면서 또 다른 이점을 하나 생각해 냈다.
“이번 일이 너희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한 번 물길이 생긴 곳으로 물이 계속 흐르듯, 비전 검술을 직접 사용해 보면 몸에 익게 되겠지.”
“예?”
“검술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지?”
“반복 연습입니다.”
“그래. 몸에 완전히 익을 때까지 동작을 연습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같은 동작을 펼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가장 완벽한 동작을 백만 번은 똑같이 해낼 수 있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비전 검술을 얻게 된다.”
“그래서 [검기>가 가장 흔한 비전 검술인 겁니까?”
“맞다. 검술의 기본은 바로 베기니까. 하지만 비전 검술을 쉽게 익힐 수 없는 이유는 개개인의 신체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이니까 당연하지요.”
“그러니 비전 검술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내 기준에서 완벽한 동작과 네 기준에서 완벽한 동작은 다르기 때문이다. 너와 나는 다른 인간이니까.”
“신체가 다르니까 동작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 내 몸이 아니니 완벽한 동작을 구분하기도 어렵고, 가르치기도 어렵지. 비전 검술을 가르치는 방법은 하나다. 당사자가 끊임없이 연습하고, 그걸 지켜보는 존재가 어색한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를 잡아 주며 완벽한 동작을 구현할 수 있도록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과 신체가 합의점에 도달하면 몸에 쌓여 있는 마나가 물 흐르듯 바깥으로 방출된다.
그게 바로 비전 검술.
“임시로나마 비전 검술을 쓸 수 있다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그 순간 너는 내 주술에 의해 ‘완벽한 동작’을 펼치게 된다는 의미다. 결과와 원인이 뒤바뀌게 되는 셈이지.”
카민은 다르힘을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임시로나마 한 번 써 본 경험치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물길이 생긴 곳으로만 물이 흐르는 것처럼. 너는 그 ‘완벽한 동작’을 기억하려 애써야 한다.”
***
손에 쥔 검이 빛나는 순간.
다르힘은 카민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그게 비전 검술을 얻기 위한 지름길이다.”
다르힘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다른 기사가 쓰게 웃었다.
“네 말이 진짜였군, 다르힘.”
“이봐. 검이 반짝거리긴 했는데… 영주님 말씀대로 정말 비전 검술을 쓸 수 있게 된 게 맞는 거냐?”
카민에게 직접 자세한 설명을 들은 건 10명 중 오직 다르힘뿐이었다.
‘영주님은 굳이 왜 나를 골라 설명해 주셨을까?’
그것도 적습이 시작된 다급한 상황에.
카민과 함께한 지 꽤 시간이 지난 탓에 다르힘은 알 수 있었다.
‘영주님께서는 이번 전투에서 내가 비전 검술을 터득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신 거야.’
하알룬 10기사 중에서 오직 나, 다르힘 식스만이.
철컥!
주변을 둘러본 다르힘이 투구의 바이저를 내렸다.
우쭐해 하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모든 전사들의 꿈인 비전 검술을 하알룬 촌놈인 우리들이 쓸 수 있게 된 거라고.”
다르힘 식스는 직사로 활을 쏘기 위해 좌우로 흩어지는 도적단을 보며 검을 치켜들었다.
“다들 우리 역할은 알고 있지?”
“그래. 놈들이 활을 쏘기 전에… 먼저 쏜다.”
“말들이 놀라 자빠지게 해 주자고.”
10명의 하알룬 기사가 들어 올린 검을 일제히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와 함께 좌우 도적의 선두를 향해 강렬한 검기가 뻗어 나갔다.
그중 하나의 검기는 마치 카민의 것처럼 거대했다.
***
어둑해진 틈을 노려 「야간 시야」까지 사용한 뒤, 커티스를 향해 몰래 접근하고 있던 나는 노을 진 하늘을 밝히는 푸른 [검기>의 세례에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뭐야, 저게?”
원래 화살비를 막아 낸 이후의 작전은 이러했다.
적들이 직사를 위해 가까이 다가오면 시가전을 펼치듯 영지 내로 숨는다.
그다음 이쪽이 상대적 우위인 기사들이 나서서 개인 기량으로 맞서 싸운다.
적에게 환생자가 없다면 그냥 내가 다 쓸어버려도 되지만, 환생자가 있다면 그놈을 먼저 잡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그래서 시간 싸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상황에는 카라스코의 영지민이 전멸할 것도 염두에 두었다.
어차피 출신이 범죄자기에 아등바등 보호해 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적에게 환생자가 있으니 포기할 건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작전이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히히힝!
마치 푸른 번개와 같은 거대한 검기 한 줄기에 선두의 말과 용병들이 쓸려 나갔다.
“끄아악!”
“살려줘!”
“피해!”
삽시간에 적의 진형이 어그러지며 일부가 말머리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야 저런 검기를 상대로 뛰어들 용기가 생기면 그게 악마지 사람인가.
그때, 엔드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인간. 반동에 대비해라.
“뭐?”
처음에는 좌측을 타격했던 집채만 한 검기가 이번에는 우측으로 향했다.
그 순간, 이상 현상이 벌어졌다.
내 마나가 쑥 빠져나가면서 코어가 하나 줄어든 것이었다.
“….”
오른쪽으로 돌진하던 도적단도 왼쪽으로 향하던 놈들처럼 혼란에 빠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대체 누구야 저건?”
-네가 다르힘이라 부르던 인간이 한 일이다.
“다르힘? 다르힘이 저 검기를 썼다고?”
-그렇다. 지금 또 쓰는군.
이번에 나타난 검기는 정확히 중앙을 타격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나는 급하게 엔드라에게 말했다.
“엔드라, 얼른 「영혼의 계약」을 끊어라!”
-그러는 게 좋겠군. 아주 신이 난 상태다.
장난스러운 성격의 다르힘은 굉장한 기분파이기도 했다.
저 자식을 그냥 놔두면 내 마나를 다 거덜 낼 것이 뻔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냥 황당해서 내뱉은 혼잣말에 엔드라가 답을 해 주었다.
-저 인간이 [검기>를 터득해 냈다. 그 때문에 위력이 네 것만큼 격상되었다. 다만… 그만큼 저 인간의 검술 수준이 따라 주지 않기에 엄청난 양의 마나를 끌어다 쓰게 된 것이지.”
“…부족한 질을 양으로 메꾼 셈인가?”
-너는 설명하기 어려운 말을 쉽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군.
“하아. 고맙다.”
완전히 공황에 빠진 도적단을 보며 나는 이게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굳이 저놈들을 코어를 두 개나 써가며 제압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나저나 다르힘, 저 자식은 참 이상한 놈이라니까.”
어떻게 귀신같이 이 타이밍에 [검기>를 터득한 거지?
-무슨 소리지? 네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의도? 내가 무슨 의도를 해?”
-굳이 저 인간을 선택해 용기를 북돋아 주지 않았나?
“용기를 북돋아? 내가?”
엔드라의 말에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아. 그거….”
-기억이 났나 보군. 그 덕분에 저 인간과 네 영혼의 연결이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강해졌다. 덕분에 잠재력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지.
그러고 보니 그때 다르힘의 표정이 묘하게 평소와 달랐던 것 같았다.
엔드라의 설명에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혼의 계약」은 신뢰도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아무래도 다르힘, 그 자식이 오해했나 보군….’
그냥 가까이 있어서 다른 놈들에게 전달하라고 설명을 자세히 한 것뿐인데.
다르힘의 성격상,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일시적으로 강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실제로 게임상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NPC 사이의 관계도가 깊으면 아군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스펙 이상의 힘을 낸다든가.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네.
물론 더 어이가 없는 일은 따로 있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다오.”
커티스란 놈이 환생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좋아. 전신의 전술이 뭔지 자세히 설명해 주면 목숨만은 살려 주지.”
“전신의 전술은….”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커티스의 목을 벤 후.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고인물의 전략이 왜 ‘전신의 전술’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퍼져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