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주교 몽펠 (2)
방법을 알겠다고?
나도 바닥의 흙을 만져 보았다.
마치 뭔가에 젖은 것처럼 끈적하다.
순간 떠오르는 끔찍한 기억.
나는 흙을 그대로 내던졌다.
“윽. 이거… 좀비의 체액이로군.”
“예. 좀비도 과거에는 인간이었지요, 임시로나마 인신 공양을 취한 것 같습니다. 좀비의 생명… 생명이라 하니 우습군요. 좀비의 근원을 이루는 마기를 소모해 결계를 부수는 수법입니다.”
“주교였던 자가 이런 끔찍한 방법을….”
“몽펠이란 인물은 어떤 자였습니까? 마인으로 변하기 전의 성격을 통해, 악마에게 얻은 권능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녀석, 마물 사냥꾼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더니 뭔가 많이 알고 있긴 한 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았다.
“주교 몽펠은 다른 점은 문제가 없었으나, 특히 여자를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악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 확률이 높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야. 음심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여인들이 택할 것은 마음속으로 신을 부르짖는 것밖에 없지요. 그건 마물에게는 너무나 좋은 먹이입니다. 게다가 바알은 풍요를 사랑하는 악마. 인간의 번식 행위에서 발생하는 정기를 특히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가.
로몬의 사람들은 이미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었으니….
그중 악마에 심취한 자가 더 없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마음속 깊은 곳에 꾹 숨기고 있으면, 알아낼 방법은 없다.
“주교 정도의 인물이 미리 그런 유혹을 눈치채지 못하는 건가?”
“예. 주교 카라코바가 저를 검사했던 것처럼, 특별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저희 마물 사냥꾼들에게도 그런 주술이 있죠.”
“곤란하군.”
“아무튼, 그런 점에 빗대어 보면 그는 타인의 정기를 직접 힘으로 활용하는 유형의 마인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하기 까다롭죠.”
정기를 직접… 아하.
그런 타입의 놈들은 마법사나 다름없다.
나는 상대법을 머리에 떠올린 후, 그에게 말했다.
“라무르. 너를 한번 믿어 보겠다.”
“예?”
약간 모험이지만… 지금 닐스를 보내면, 지금쯤 로몬으로 출발했을 주교 메르티나 사제들을 비롯한 이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최대한 버텨 봐라. 네가 마물 사냥꾼이라면.”
“…알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라무르가 몽펠처럼 물드는 거겠지만.
마물 사냥꾼이라는데 설마 그럴까?
나는 닐스에게 속삭였다.
“마주크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려라.”
히힝.
닐스가 그대로 남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 일을 잘해 주면, 제국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 주지.”
공을 세워 두면, 가레스든 바르둠 마탑주든 누군가에게 말해서 워프 게이트 이용권 정도는 받아 낼 수 있을 터였다.
* * *
바르둠 마탑주 로브엘 에스쿼스는 오랜만에 전투복을 차려입었다.
참나무를 깎아 만든 스태프를 집어 든 그는 과거의 향수를 진하게 느끼고 있었다.
“스승님. 지금 여유 부리실 때가 아니에요. 빨리 가야 해요.”
“왜 이렇게 급하게 구는 거냐? 하엘린, 너답지 않게.”
바르둠 마탑주 로브엘은 하엘린을 보며 실실 웃었다.
“주교 헤브리는 하알룬 영주가 직접 나섰다고 하던데.”
“…그래서 더 문제예요. 위험하잖아요. 영주가 단신으로 악마의 하수인과 맞선다는데.”
“그가 아닌 다른 영주가 악마와 사생결단을 벌여도 너는 상관 안 할 것 같은데.”
하엘린이 울컥하며 말을 받아쳤다.
“그 악마가 바알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이번 일에서 저희도 무관한 건 아니에요. 대부님이 조금 더 신경을 쓰셨다면….”
“흠. 그건 그렇지. 회주가 나섰으니 금세 해결할 줄 알았는데. 일 처리가 생각보다 말끔하지가 않아.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주교 몽펠을 로몬에 배치한 게 문제겠지.”
이번 일로 일월성교회의 회주 이사벨라 로칸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주교 몽펠이 마인이 되고 말았다.
즉, 수하가 악마와 결탁한 것과 같으니까.
물론 사제가 마인으로 타락하는 사건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주교급이 마인이 되는 일은 드물다.
몽펠을 로몬으로 파견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회주인 이사벨라.
그녀를 견제하는 일교의 대주교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다.
“일월성교회는 왕국 전역을 다 신경 써야 하니까요. 따지고 보면 영주들이 몸을 사린 게 시발점이죠.”
“하긴 한낮 몬스터 따위를 처리 못 해서 교단의 지원을 요청해 대니… 정작 중요한 상황에 인력이 모자라게 되었군.”
더러운 성격을 가진 회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일교의 대주교가 이번 일을 문제 삼는다면 회주는 국정에 무관심한 국왕을 걸고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태가 아주 볼 만해질 것이다.
“덕분에 우리도 서부로 출장을 가야 하고요.”
하엘린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나 로브엘은 오히려 바람을 쐴 기회를 얻어서 좋았다.
마탑주쯤 되면 직접 몸을 움직일 일이 그다지 없다.
가끔은 호기롭게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몬스터와 드잡이질을 벌이는 것도 새로운 기분일 터.
게다가 마인을 상대하는 것은 도대체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결계를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레베론 후작은 로몬의 일에 아예 손을 뗀 것 같더구나. 베르트 공작과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군.”
“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보아하니 베르트 공작은 옳다구나 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던데. 오히려 로몬을 책임지는 대신 그녀에게서 뭔가를 더 얻어 낼 공산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그렇다면….”
“신임 베르트 공작 휘하에 인재가 없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하알룬 영주가 단숨에 서부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지. 지금껏 서부 개척지대의 역사에서 두 개의 영지를 손에 넣은 자는 없었으니까.”
그 말에 하엘린은 카민의 반응을 예상했다.
“…하알룬 영주로서는 그리 좋아할 것 같지 않은 결과네요.”
말이야 두 개의 영지의 주인이지….
쑥대밭이 된 로몬의 뒤처리를 맡으라는 뜻과 같았으니까.
* * *
급히 떠나는 카민의 뒷모습을 보며 라무르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던 영주라는 종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군….”
[라무르 호지슨의 신뢰도가 상승했습니다.] [ (0) → (30) ]그가 알고 있는 보통의 영주라면 좀비와 맞닥뜨린 순간 군대의 뒤로 숨었을 것이다.
아니면 성안 비상탈출로의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거나.
제국에서 영주란 존재는 그런 것이었다.
황제를 대리해 영지를 운영하는 관리.
그러나 그 역할마저 제대로 수행하는 이가 드물었다.
오직 자신의 배만 채우고, 백성의 고혈을 빨아들일 방법만 고민하는 존재가 바로 영주였다.
“내게는 다행이지만.”
만약 그들이 황제의 명을 제대로 이행하려 노력했다면….
반역자의 이름을 이은 자신이 마음껏 활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니까.
비록 제국의 변방, 포트라렌이라 하더라도.
“흠. 나를 믿는다고…?”
그에게는 낯간지러운 말이었다.
반역자를 믿고 일을 맡긴다라.
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 해 볼까.”
마물 사냥꾼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라무르지만, 이 정도의 대사건은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그는 책임감인지 흥분인지 모를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채, 피에 젖은 불길한 뼈다귀 사이로 타다만 나뭇가지를 박아 넣기 시작했다.
귀면의 문양을 최대한 흐트러트려, 성력과 마기의 충돌을 지연시킬 셈이었다.
카민이 그에게 부여한 임무는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문제를 풀 수 없다면, 마감 기한을 늘리면 되는 것.
물론 실수로 엉뚱한 곳에 나뭇가지를 놓는 순간 결계가 일거에 무너질 확률도 있었다.
그러나 카민은 라무르의 실력을 눈으로 보았기에 일을 맡겼다.
만약 잘못되더라도 몽펠을 놓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로몬에서 사고가 터지는 쪽이 낫다는 생각에서.
제국의 반역자 라무르는 타국의 영주가 내린 명령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땀방울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 * *
라무르가 알려 준 몽펠의 이동 방향을 볼 때, 목표는 뻔했다.
로몬의 결계와 하알룬의 결계가 맞닿는 부분.
이미 소머리 악마, 바알이 몸으로 부딪쳐도 결계 장치는 깨어지지 않음을 확인했다.
라무르의 말을 듣고 보니, 어쩌면 그게 바알의 본체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마인 정도가 결계 장치를 부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노릴 장소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부분.
즉, 결계의 끝이다.
“잡았다.”
무시무시한 크기의 석판 덕에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앞에 있는 게 몽펠인가?
가려서 안 보이니 석판이 저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두워진 와중에 보니 조금 오싹할 정도.
전생이었다면 오줌을 지릴 광경이지만….
환생 후에 워낙 못 볼 꼴을 많이 봐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사자후를 내질렀다.
“멈춰라-!”
쿵.
외침과 함께 석판이 멈추어 선다.
그리고 석판 위로 갑자기 몽펠로 보이는 자가 올라섰다.
“말발굽…?”
손과 발이 말발굽이고 찢어진 사제복 사이로 갈기가 솟아 나와 있다.
하필 징그러운 쪽으로 변했군.
“하알룬 영주.”
목소리는 몽펠의 것이 맞았다.
“초면이지만 구면이로군.”
그는 가만히 자기 손발을 내려다보다가 쓰게 웃었다.
얼굴이 말처럼 변하지 않아 다행이다.
그랬다면 웃어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주교란 자가 악마의 꾐에 넘어간 거냐?”
“글쎄… 나로서는 주군의 제의가 구미가 당기더군. 이왕 한 번 태어난 인생, 왜 굳이 본능을 참아 가며 구도를 해야 하지?”
어이없는 소리다.
“그렇다기에는 너는 본능을 참지 않아 온 것 같던데?”
나는 몽펠의 아래에 달려 대롱거리는 물건을 보며 조니워커 블루를 뽑아 들었다.
아무래도 저건 꼭 잘라 줘야 할 것 같았다.
몽펠은 껄껄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네 얼굴을 보고 싶어 한 자가 있다.”
꿈틀.
바닥의 흙이 꿈틀대며 솟아오른다.
갯벌도 아닌데, 꿀렁대는 흙이 계속 생겨나 하나의 인영을 이루었다.
흔한 좀비의 모습을 찾은 흙에 색이 입혀지고, 점점 내가 아는 얼굴로 변해 갔다.
“갈라베스….”
로몬 영주 갈라베스였다.
“이거 진짜 갈라베스냐?”
“그렇다. 그를 벌해 묻어 둔 것이 바로 나였으니.”
그렇겠지.
사람 갈라베스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나지만, 좀비 갈라베스를 마무리한 건 몽펠이니까.
“그럼, 안녕이다.”
“뭐?”
석판이 먼저 뛰고, 몽펠이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를 제압하려 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속았다.
“어딜 가시려 하나.”
“너는 좀 꺼져 주라….”
죽었던 놈이 살아나, 아니 그것도 두 번이나 살아나서 덤비는 건 너무하지 않나.
“큭. 네게 감사를 전해야겠군.”
“뭘?”
“덕분에 새로운 주군을 만나 새 삶을 부여받았으니까.”
놈이 검은색으로 빛나는 검을 뽑아 드는 순간 나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역시나 입으로 나불댈 때 알아봤다.
이 녀석, 엉망진창이다.
그저 시간 끌기용.
어쩌면 갈라베스의 모습만 빌려온 다른 좀비일지도 모르고.
“검술이나 더 익히고 살아나라.”
놈의 검을 피하며 허리를 베어 냈다.
피 대신 냄새나는 진흙이 사방으로 튀겼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달렸다.
몽펠이 쓰는 수법을 나라고 못 쓸 게 있나.
“이노옴!”
어?
무슨 고무 인간도 아니고 팔이 쑥 늘어나 내 다리를 휘감았다.
다리가 붙잡힌 나는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며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으윽.”
검으로 놈의 팔을 잘라 내고 바닥을 굴러 일어났다.
젠장.
옷에 묻은 검은 흙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
“흐흐. 못 간다고 했잖나.”
갈라베스의 팔은 땅에 붙어 있는데, 몸이 부웅 날아 자석처럼 내 앞으로 다가왔다.
뒤를 돌아보니 석판은 벌써 저 멀리 가 있다.
[폭뢰검>이나 [토룡 출세> 어느 하나만 쓸 마나가 있었으면 이런 놈에게 발목을 잡힐 이유가 없었을 텐데.음…?
“너… 몸이 제대로 안 붙어 있는데?”
“뭐라고?”
갈라베스인지 뭔지 모를 괴물도 자신의 배를 본다.
나머지 부분은 인간의 모습인데, 그 부분만 정확히 흙이다.
그리고 잘렸던 단면에서 흙가루가 흘러내리고 있다.
“오호라.”
나는 조니워커 블루를 쳐다봤다.
어둑한 가운데 달빛을 받아 청정한 푸른 빛을 내뿜고 있다.
?청장석을 녹여 만든 검이니 마기를 물리치는 힘을 가졌다. 써 보고 나중에 결과나 알려다오.
결과가 아주 죽이는데.
마침 해가 져서 그런가?
“이러면 굳이 피할 필요가 없지.”
나는 놈의 공격을 피해 가며 칼질을 계속했다.
한 열 번쯤 되자, 이제 놈의 몸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으으, 으아악.”
흘러내리는 몸을 억지로 짜 맞추려니 오히려 제 몸을 가누지 못한다.
놈의 뒤로 돌아가 가볍게 열 등분을 내 주었다.
“으으어. 우어….”
얼굴이 반으로 갈라지자 이제는 말도 잇지 못한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놈을 놔둔 채, 그대로 몸을 돌렸다.
역시나 쫓아오지 못한다.
“그럼 잘 있으라고.”
게헤른에게 검의 성능이 정말 끝내줬다고 전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