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01
700화.
“잘못되었다.”
케일은 지금 이 신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안로만이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경우고, 또 다른 하나는 제3지구에서 나타났던 신전이 펼쳤던 시험과 이 세계에서 신전이 사용한 시험이 다른 경우였다.
“…돌겠네.”
케일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 최한은 나를 보지 못한다.’
케일은 정말로 철저한 방관자의 위치인 듯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다.’
정확히 말하면 김록수가 빙의를 하기 전, 해리스 마을이 아직 평화로웠던 때였다.
‘어찌 보면 나는 지금 최한의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구의 색이 파란색이었으니, 최한의 슬픔일 수도 있었다.
케일은 처음에는 시험 내용이 자신이 없는 소설 속 영웅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재의 최한이 엮이며 그 관점을 바꿔야 했다.
‘…으음.’
관점을 바꾸면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다른 이들은?’
메리, 로잘린, 툰카, 클로페 세카.
그리고 최한과 케일. 이렇게 여섯이 이 시험에 참가했다.
‘이들은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다 여기 있는 건가?
케일은 머리가 아파왔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를 찜찜하게 만들었던 무언가.
‘붉은 구.’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눈동자와 같았던 붉은 구.
신전 위에 떠오른 그것은 순식간에 파란색 구로 변했지만, 케일의 기억 속에 그 선명한 붉은색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비슷한 붉은색을 케일은 기억 속에서 하나 더 끄집어낼 수 있었다.
‘설마, 그건가?’
케일은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를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엔더블 왕국에서 봉인된 신의 시험을 겪어야 했던 때였다.
봉인된 신. 절망의 신은 케일에게 절망을 겪으며 자신에게 손을 내밀라고 시험에 케일을 빠트렸고, 그 결과로 케일은 스무 살 김록수의 몸으로 이수혁과 최정수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과거가 아닌 다른 세계 속의 이수혁과 최정수 등이었지만, 케일은 과거와는 다른 결과를 도출해내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 때.’
그때, 절망의 신이 케일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내 시험이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난 언제든 너를 지켜보고 있을 터.
-다가올 절망의 순간.
-네 마음이 꺾이거나 흔들리는 순간.
-나는 너를 찾아가리라.
안로만의 정보가 무효화된 상황. 케일은 여러 가설을 세워야 했다. 그중 하나를 읊조렸다.
“슬픔이 아니라, 절망인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었으며 동시에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슬픔이든 절망이든 최한이라면 이겨낼 거다.’
봉인된 신의 시험을 케일과 함께한 동료였으니까. 꽤 똑똑한 최한이니만큼, ‘포기’가 안 되는 것을 보고 변수를 감지해 상황이 흘러가는 것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터.
그때, 최한의 뒤를 졸졸 쫓아가던 케일은 최한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고 흠칫 어깨를 떨었다.
“이제 3일 뒤인가?”
응?
“…이번에는 지켜내야지.”
꿀꺽. 케일은 최한의 살벌하다 못해 시린 눈빛을 보며, 해리스 마을의 참혹한 일이 발생하기까지 3일이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이곳에 하얀 별도 올지 모른다!’
케일은 진짜 케일 헤니투스, 이제는 김록수가 된 이를 꿈속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녀석을 만나 어떻게 서른여섯의 김록수가 케일 헤니투스의 몸에 빙의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그때, 진짜 케일 헤니투스는 친모 주르 템스와 해리스 마을 사이에 얽힌 것을 말해주며 한 가지 가정을 말했다.
‘해리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으면서 최한이 세상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잖아? 그리고 하얀 별은 분명 어머니의 힘을 가지기 위해 해리스 마을에 한 번은 가야 했을 거야.’
‘하얀 별은 최한이 잠시 해리스 마을을 비웠을 때, 해리스 마을에서 어머니의 힘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는 떠나고 남은 수하들에게 뒤처리를 시켰고.’
‘뭐, 아닐 수도 있고. 내 추측이 정답이 아닐 확률도 높잖아?’
케일과 김록수가 추측하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일 수도 있는 정황.
최한이 아픈 마을 사람을 위해 약초를 구하러 어둠의 숲으로 간 사이. 하얀 별은 수하들을 데리고 해리스 마을로 와서 케일의 친모 주르 템스가 남겨둔 나무 속성 힘 절반을 가져간다.
물론 하얀 별은 그 힘이 주르 템스의 힘인 줄은 모르는 상태다.
힘을 획득한 하얀 별은 뒤처리를 위해 수하들에게 해리스 마을 사람들을 모두 처리하라 지시하고 떠났을 것이고, 수하들은 그 명을 모두 처리한 후 떠나려다가 최한과 마주한다.
‘…그리고 모두 최한의 손에 죽지.’
그 일련의 과정 중에 하얀 별 측은 어둠의 숲에 있는 죽은 마나 호수를 발견하고 이를 인어족에게 제공하며 고래족과의 싸움을 부추겼을 것이다.
“미치겠네.”
만약 케일과 김록수가 세운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최한은 하얀 별과 마주한다.’
그러면.
‘불리해.’
최한 홀로 해리스 마을 사람들을 지키며 하얀 별까지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니. 못한다.’
케일은 일전에 마구간에서 최한, 알베르, 라온에게 친모 주르 템스의 무덤에서 발견한 내용들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더불어 뿌리 단검을 제외한 세계수를 통해 들은 것까지 말했었다.
그러나 케일은 어느 누구에게도 진짜 케일 헤니투스, 김록수와 나눈 대화 내용을 말한 적이 없었다.
즉,
‘해리스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언젠가 모든 싸움이 끝나고 난 후, 따로 최한과 이야기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확실하지도 않은 가정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최한이다.’
케일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최한을 그간 지켜보며 꽤 많은 부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난 분명 뿌리 단검으로 내 심장을 찔러야 한다는 것을 빼고는 모두 말했다.’
이는 한 가지를 뜻했다.
‘일기장 속 내용을 최한은 안다.’
물론 세세하게 케일이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간략하게 말해두었다.
주르 템스의 일기장에 적힌 이 부분을 분명 짧게 줄여 말했었다.
‘최한의 머리라면, 내가 한 추측을 똑같이 했을 수도 있다.’
그때는 사자용과의 싸움 중이라, 정신이 없어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는 때였지만. 지금은 또 다르지 않은가.
해리스 마을을 구하는 것. 최한은 그것이 이 시험의 환상을 극복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해리스 마을에 관한 모든 정보를 떠올리고.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툭.
최한은 손에 들린 약초를 떨어뜨렸다.
“음!”
그는 침음을 간신히 삼키며 표정을 굳혔다.
‘생각해냈구나.’
케일의 표정도 굳어졌고, 최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분명 케일 님이 친모께서 남겨둔 절반의 힘을 하얀 별이 가졌고, 그것을 얻은 장소가 해리스 마을이라고 했었지-.”
거기까지 말한 최한은 천천히 몸을 숙이며 떨어진 약초를 주워 들었다.
“최한, 뭐해?”
“약초를 떨어뜨려서요.”
차분하게 대답하는 최한을 마을 사람이 힘내라는 듯 등을 두드리고는 사라졌다. 케일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 최한의 얼굴을 보았다.
“…하, 하하-”
그는 짧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가끔, 케일은 최한에게서 그가 살아온 세월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 기나긴 세월이 느껴졌다.
“못할 것도 없지.”
서늘하게 가라앉은 최한은 그 눈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3일이라.”
최한에게 주어진 시간은 3일.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해볼 만해.”
해볼 만하긴 뭐가 해볼 만해!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훈련을 해야겠어.”
최한은 제 손을 내려다보며 허리에 찬 목검을 내려다봤다. 케일의 표정은 더욱더 일그러져 갔다.
‘역시 어려진 건가.’
최한의 모습은 케일이 아는 현재 최한의 모습보다 조금 어리게 보였다. 수명이 아주 긴 최한이기에 그 모습의 차이가 별달리 없으나, 동료들의 모습을 모두 기록해둔 케일은 그 미묘한 차이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최한은 2년 전의 최한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렇기에 최한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2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는 그가 살아온 셀 수 없는 시간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최한은 더욱더 강해졌으니까.
최한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현재 내 상태는 2년 전과 같고.”
그의 머릿속은 꽤 복잡해 보였다. 그는 촌장이 있는 집으로 홀로 걸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일반적인 환상은 아냐. 그렇다고 이곳이 또 다른 평행 세계 같지는 않은데.”
역시. 케일의 짐작대로 최한은 안로만이 준 정보와 현재 시험을 비교하고 있으며, 나아가 봉인된 신의 시험으로 겪었던 일까지 떠올리며 현 상황을 파악 중이었다.
“일단, 내 슬픔을 해결하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최한은 결론을 내렸고, 케일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최한을 따라 움직이며 케일이 파악한 바로,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도 만질 수가 없었다. 또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똑똑똑.
“촌장님.”
“최한인가? 들어오게!”
최한은 촌장 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케일은 닫히는 문을 보면서도 뒤따라 걸었다.
스윽. 그의 몸이 문을 그냥 통과했다.
‘음. 이거 꽤 유용할지도?’
와중에 케일은 말했다.
“짱돌?”
답이 없다.
“짠돌이?”
역시 답이 없다.
“으음.”
고대의 힘 주인들 목소리가 안 들릴 뿐더러, 그의 몸에 어떠한 고대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케일은 차근차근 자신이 쓸 수 있는 힘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 이 약초는 처음 보는군.”
“당분간 여러 약초들을 캐러 어둠의 숲에 몇 번 더 들어갈 것 같습니다.”
촌장의 눈가 주름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위험하지 않겠나?”
케일은 새삼 최한이 왜 해리스 마을에 큰 애정을 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촌장은 외부인, 그것도 어둠의 숲에서 온 최한을 대하는 것임에도 그저 따뜻했다.
“괜찮아요.”
촌장을 바라보는 최한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지켜보던 케일은 저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움과 씁쓸함.
최한은 그래도 특유의 순하면서도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마을 밖으로 나가볼까 합니다.”
“마을 밖?”
“네. 영주성에 가서 제 신분패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렇지! 내가 신분 보장서를 써줄 테니, 같이 가자꾸나!”
“네. 촌장님.”
영주성. 그 단어가 들린 순간, 케일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일단 최한은 해리스 마을의 일을 해결하고도 환상이 끝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케일은 다른 부분이 좀 걸렸다.
‘으음.’
영주성에 가면 분명 헤니투스 백작가가 있을 것이고, 그곳엔 이 환상 속의 케일 헤니투스가 있으리라.
‘뭔가 찜찜한데.’
케일은 알 수 없이 뒤통수가 서늘해져 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한은 촌장과의 대화를 끝내고 다시 문으로 향했다.
케일은 그 뒤를 따랐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떠 있었지만, 3월이라 그런지 조금 따스한 정도였다.
“최한, 어디 가나?”
“잠시 숲에 들어가려고요.”
“에그, 괜찮겠어?”
최한은 마을 사람이 건넨 말에 그저 웃어 보이고는 적당한 걸음걸이로 해리스 마을 한쪽에 있는 석벽으로 향했다.
저 너머에 어둠의 숲이 있었으니까.
“후우.”
최한은 석벽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목검을 꽉 쥐었다.
“…가능하겠지?”
하아.
그리고 케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가 모를 리가 없지.”
해볼 만하다고 읊조리던 최한. 그도 현 상황이 그에게 꽤 많이 불리함을 알고 있었다.
2년 전의 최한으로 하얀 별과 그 수하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 수하들은 처리할 수 있으나, 하얀 별은 알 수 없었다.
더불어 마을 사람들까지, 한 마을까지 지키면서 홀로 싸우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남들이 들으면 불가능하다고 할 일이었다.
툭. 최한은 석벽에 제 이마를 대었다.
“…케일 님을 뵈러 가볼까? 여기의 케일 님은 내가 아는 케일 님일까?”
석벽의 차가운 기운에 최한은 복잡한 머릿속을 식혀갔다.
“…3일 만에 본래의 실력이 나올 수 있을까? 마을을 지키면서 싸울 수 있을까?”
케일은 들리지 않겠지만, 답답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너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 있다.”
최한도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면 답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케일 자신이 답답하여 저도 모르게 계속 말을 걸게 되었다.
“어둠의 숲에-”
그때였다.
“음?”
최한은 저도 모르게 몸을 홱 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기운은-”
마을 입구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
케일은 저도 모르게 놀람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마을 입구로 향했다.
최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최한은 뛰고 있었다.
오늘 입구 경비를 맡은 마을 사람 몇 명 사이로, 최한은 로브의 후드를 벗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해리스 마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 누가 보아도 외부인이었고, 그 외부인을 맞이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스륵.
외부인이 후드를 내리자 드러난 것은 태양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아침 이슬을 머금은 장미를 생각나게 만드는 화려한 붉은 머리칼이었다.
“로잘린!”
최한은 저도 모르게 마을을 찾아온 이를 불렀다.
“음? 최한, 네가 아는 사람이냐?”
“이 녀석이 아는 사람이었어?”
경비를 맡은 마을 사람들이 최한을 보고 말을 걸어왔지만, 최한은 그에 답할 정신도 없이 로잘린의 앞에 섰다.
“어, 어떻게 네가-”
원래 최한의 과거라면 로잘린은 이곳에 없어야 했다.
로잘린이 묘한 얼굴로 살짝 볼을 긁적였다.
“음. 최한이 나를 알아보는 건, 나도 생각도 못 했는데?”
그녀는 최한이 자신을 알아보는 건 생각도 못 했는지,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너, 내가 아는 최한이니?”
“…맞아. 어떻게 너와 내가 같은 시험이지? 그리고 어떻게 이곳으로?”
호오. 최한의 대답을 들은 로잘린은 그제야 뭔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음. 뭐 조금은 알겠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최한은 로잘린의 반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그는 로잘린에게 손짓해 잠시 마을 입구 밖. 마을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굳이 따라가진 않았다. 누가 보아도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 같았으니까.
최한은 인적이 없는 곳에 오자마자 입을 열었다.
“로잘린, 그러면 넌 내가 못 알아볼 걸 알면서도 여길 온 거야?”
“그래. 여기가 내 과거라고 생각해서, 내 과거라면 최한 네가 나를 못 알아봐야 말이 되잖아?”
“그런데 왜 와?”
최한의 물음에 로잘린은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어떻게 외면하니?”
최한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하.”
그리고 지켜보던 케일의 입가에 점점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로잘린은 말을 이었다.
“지금이 과거라 네가 나를 모르는 상황이더라도, 네 가장 큰 슬픔을 내버려 둘 순 없잖아?”
그녀는 단호했다.
“네 친우로서 그럴 순 없지.”
순간 최한의 얼굴에 또 다른 감정이 일렁였다. 로잘린은 그것을 못 본 척하며 말을 이었다.
“이 시험 이상해.”
그녀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쨌든 현재 상황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봐야 될 것 같아. 너와 내가 같은 곳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같은 곳에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다른 사람들.
그 순간 최한의 입이 열렸다.
“설마 케일 님도-?”
“그래. 그럴 수도 있어. 메리 씨를 포함해서-,”
로잘린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어!”
그러고는 놀란 얼굴로 최한의 등 뒤를 가리켰다.
“음.”
그 순간 최한은 섬뜩한 기운을 느끼며 황급히 로잘린이 가리킨 곳을 향해 뒤돌아섰다.
“…허?”
그리고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지켜보던 케일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돌겠네.”
해리스 마을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하늘 위를 가리키며 외쳤다.
“모, 몬스터다!”
“와- 와이번!”
마을 하늘 위를 뒤덮은 거대한 괴물. 그것은 하얀 와이번이었다.
케일을 비롯하여 로잘린, 최한에게 어딘가 익숙한 괴물이었다.
“설마.”
로잘린이 그 한마디를 내뱉은 때, 와이번은 갑자기 마을 위를 뒤덮던 몸체를 움직여 한 곳을 향해 천천히 낙하하였다.
쿵.
그곳은 바로 마을 입구 밖. 최한과 로잘린이 대화를 나누던 곳이었다.
와이번은 그 육중한 몸을 비교적 가볍게 낙하하더니, 허리를 숙였다.
“역시, 여기 있었군요.”
와이번의 등 위에는 성스러운 갑옷 차림의 백발 녹안의 남자가 고고한 자태로 자리해 있었다.
고독해 보이면서도 우수에 젖은 듯 성스러워 보이는 기사 클로페 세카. 그가 해리스 마을로 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두 분도 내가 아는 그분들 같군요. 다 같은 시험인가 봅니다.”
클로페는 우아하게 와이번 등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최한과 로잘린에게 다가왔다. 로잘린은 다가오는 클로페를 보며 최한에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저 인간이 바로 찾아올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의외네.”
그러게.
최한, 로잘린 바로 옆에 있던 케일도 로잘린의 말에 동의하며 다가오는 클로페를 바라보았다.
클로페 역시도 케일이 보이지 않는 듯 로잘린과 최한에게만 시선을 둔 채 그 두 사람의 앞에 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케일 공자님이 헤니투스 영지에 안 계십니다.”
“…네?”
로잘린이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클로페는 선선히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녹안은 기묘한 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모든 정보를 동원해 알아본 바. 헤니투스 영지에도 케일 헤니투스란 존재는 없으며, 로운 왕국 귀족 명부에도 케일 헤니투스란 이름은 없습니다.”
최한의 눈이 크게 떠졌다. 클로페는 주위를 둘러보며 차분히 말했다. 그러나 그의 눈가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폭발할 것 같은 눈동자였다.
“이 세계에는 케일 공자님이 안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내 과거와 일치합니다.”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케일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여기 있는데.”
그러나 쭈글쭈글한 그 목소리를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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