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0
제40장 서옥랑 (5)
“기분이 엿 같을 때는, 회포를 풀러 가야지.”
라고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별주라도 나누자는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 동천관의 꼴통.
난데없이 데리고 온 곳은 소호에서 멀리 떨어진 동굴이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지?’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동굴 옆에는 ‘매검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잠깐. 매검굴이라면….”
각지를 떠도는 낭인들이 모여 죽음을 사고파는 곳.
내일이 없는 인생들이 모여 사는 위험한 장터.
그곳에 보무도 당당히 걸어간 꼴통이 외쳤다.
“뭐하냐! X신들아! 손님 받아라!”
꼴통의 한마디에 동굴 속에 수십 개나 되는 살기 어린 시선들이 이쪽을 향했고.
채채채챙!
매검굴에서 수많은 검광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
‘꺄아아아악!’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서옥랑이 검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그녀의 시야에 서서히 뒤로 넘어가는 낭인이 보였다.
그 뒤로 더욱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달려오는 낭인들도.
‘이 미친 인간이!’
지금이라도 어서 사죄를!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너무 늦었다.
사죄는커녕, 쓰러지는 낭인의 뒤통수를 밟고 뛴 꼴통이 연거푸 주먹질을 한 것이다.
퍽! 퍽!
소리는 두 번 들렸는데, 달려들던 낭인 다섯이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놀랍도록 신묘한 방법으로 손을 썼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커억!”
“썅!”
동료가 쓰러지자, 낭인들도 자리를 박차고 가세했다.
돈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팔고, 동료도 판다는 낭인들이지만, 공통의 적이 등장하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힘을 합친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이 낭인들의 진짜 무서움 아닐까?’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타탓!
전면에서 꼴통이 흘린 낭인들이 이쪽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으니까.
“서 소저!”
황급히 일표가 그녀 앞에 끼여들어 검광을 뿌렸다.
쉬익!
은천관의 관도를 자처할만한 상당한 검격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전투에 이골이 난 낭인들.
타탓!
정직한 검격을 코웃음을 치며 피하더니, 섬뜩한 검광으로 목을 그어왔다.
“윽!”
챙! 챙챙챙!
순식간에 네 명의 합공을 받게 된 일표가 불식간에 보법을 밟는 한편, 좌우로 검을 크게 떨쳤다.
챙! 차라랑!
상대방의 검과 도를 쳐내는 깔끔한 초식에 순식간에 네 개의 불꽃이 튀며 병장기를 밀어냈다.
하지만.
타탓.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물러서는 일표와 달리 낭인들은 노련했다.
파악! 타탁!
뒤로 물러나는 대신, 바닥의 흙을 차올리는 탓에, 일표가 당황성을 내뱉었다.
“크윽!”
맞다. 잊고 있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기억 속 색마의 치졸한 수법을 떠올려 내었지만, 이미 시야가 흐릿했다.
“크윽!”
재빨리 소매로 눈가를 훔쳤지만, 이 찰나를 놓칠 이들이 아니었다.
“제법 실력은 있는 것 같다만.”
“그래 봐야 애송이일 뿐이지.”
“뒈져라!”
촤악!
어깨와 옆구리를 베는 검광에 일표는 깨달았다.
‘늦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다른 것이 있었으니.
“일 소협!”
채앵!
뾰족하게 외친 서옥랑이 발끝으로 신형을 밀어내며 끼어든 것이다.
세류보(細流步).
흐르는 시냇물을 닮은 청성파의 비기는.
서옥랑의 작은 몸이 엄중한 검광 사이로 흘러 들어가, 네 사람의 공세에 맞서게 만들었다.
때앵!
오른손으로 등룡장법의 초식을 펼쳐내 검신을 때리고.
따딱!
뒤로 넘어질 듯 상체를 기울이며, 발끝을 차올려 초식을 펼치는 낭인들의 손목을 걷어찬다.
파팍!
이어, 허공에 몸을 띄워 공중제비를 돈 채로, 청풍검법.
채채채챙!
가까스로 네 사람을 밀어낸 서옥랑은 본능적으로 검법을 이어가며 네 사람을 쫓았다.
쉬쉬쉬쉭!
예리하기 짝이 없는 검초에 낭인들이 잇소리를 내며 물러섰다.
“제길!”
“헉. 헉.”
어깨를 오르락거리는 서옥랑은 스스로의 실력에 몹시 놀랐다.
‘몸이 가벼워?’
부지불식간에 펼쳐낸 연격이 이렇게 자연스럽다니.
‘한동안 무공을 등한시한 지금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음의 위기에 잠자고 있던 본능이라도 깨어난 것일까?
‘어쩌면.’
마음에 한 조각 불씨가 살아낼 때였다.
쉬익!
등 뒤를 쪼개오는 검광에 정신을 차릴 때 즈음.
채앵!
“일 소협!”
등을 맞대며 일표가 검 끝으로 바닥을 죽 긁었다.
“뒤를 조심하십시오. 위험하지 않습니까?”
도망치는 대신 곁을 지키기로 한 일표에 서옥랑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호선을 그리는 부드러운 입꼬리.
“꽤 듬직한데요?”
하지만, 웃는 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꼴통! 뒤에! 뒤에!”
“어이쿠!”
사방에서 번쩍이는 검광에 갇힌 교관이 데구르 바닥을 구르는 모습에 웃음기가 쏙 들어갔다.
“서 소저! 옆을 조심!”
“이익. 진짜.”
촤르륵! 챙!
상체를 크게 원을 그리며, 떨쳐내는 검신에 서옥랑의 손이 바빠졌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느새 저 멀리 나아가던 인간이 사라진 것도 눈치채지 못하게 된 것은 말이다.
***
매검굴은 규율이 있다.
약한 자들은 입구에, 실력자일수록 안쪽에 자리를 잡는 것.
단순히 위계를 나타내는 것만은 아니었다.
뜨내기손님들은 받지 않겠다는 자존심의 발로.
어지간한 이들은 입구에서 걸러내고, 진짜배기들만 상대하기 위해 상급 낭인들이 만든 규칙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 중 진짜배기 의뢰인이 얼마나 있을까?
대체로 공을 치는 것이 다반사인 일상.
소호의 매검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상광 또한 마찬가지였다.
‘적당한 일이라도 찾아야 하나?’
최근 들어 뜸해진 의뢰인에 슬슬 위기감을 느낄 때 즈음.
평소와 조금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 챙챙챙챙!
매검곡의 가장 깊은 곳이라지만, 평생을 검을 팔던 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소리였다.
“어디서 굴러먹던 뜨내기가 싸움이라도 벌인 모양이군.”
가끔 있는 일이다.
매검굴의 험한 낭인들을 참지 못한 의뢰자가 사고를 치는 것은 말이다.
이럴 때 결말은 대부분 똑같았다.
“또 소호의 물고기들만 포식하겠군.”
하지만, 상광은 이내 섣부른 단정을 번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챙챙챙챙!
“꽤 오래 버티는데….”
명문의 제자라도 찾아온 것일까?
‘뭐, 그렇다고 해도 차이는 없지.’
결코 연무장에서 검을 배운 이는 낭인들을 버텨낼 수 없다.
실전에서 벼린 칼은 천둥벌거숭이 따위가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조금 더 숨을 붙이고 있냐가 다를 뿐, 다진 고기가 되어 소호에 뿌려지는 결말은 동일하겠지.
“잠이나 잘까?”
거적에 몸을 말며, 돌아누우려던 때였다.
저벅. 저벅.
매검굴을 울리는 낯선 발자국에 상광은 깜짝 놀랐다.
‘돌파해냈어?’
입구 초입이라면 모른다.
가장 약한 자들만 있는 곳이니까.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깊고도 깊은 이곳으로 오기까지 상당한 고수들이 즐비하였고, 개중에는 자신도 무시할 수 없는 강자도 있었다.
어느 문파에 가서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강자들.
그럼에도 부평초처럼 떠돌 수밖에 없는 사나운 이들.
죽음에 내몰리는 과거와 배경을 가진 실전의 고수들을 모두 뿌리치고 이곳에 들어왔다?
‘맙소사. 뿌리친 것이 아니로군.’
이곳을 향하는 발걸음은 차분하기만 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듯 여유로운 걸음 소리.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였다.
‘아무도 이 자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차이를 깨달은 상광은 등골이 쭈뼛 섰다.
저벅. 저벅.
이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머리맡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것은 또 있었으니.
‘헛!’
분명히 머리맡에 놓아두었을 검 대신 허공이 잡혔다.
수십 년을 언제나 한결같이 같은 곳에 놓아두었을 터인데.
“소호흑랑. 맞나?”
‘어느새!’
가까이서 울리는 목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타탁!
우수로 땅을 치며 재빨리 몸을 뒤집으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허.”
하지만 그는 이내 김이 빠진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의 손에 분명 머리맡에 있었어야 할 자신의 검이 들려 있던 탓이다.
‘짐작도 못 할 고수였군.’
빠르게 전의가 사그라들었다.
“눈치가 빨라 좋군.”
휘익. 턱.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손에 안긴 검을 쓰다듬으며 상광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시었소?”
“의뢰를 할 것이 있다.”
“귀하는 내가 범접도 못 할 고수인데, 나 같은 사람에게 맡길 일이 있소?”
“닭 잡는데 용 잡는 칼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용을 잡는 칼이라니.
상대의 광오함에 기가 막히면서도 상광은 고개를 주억였다.
‘이 자라면 충분히 광오할 만하지.’
비록 지금은 겁을 먹을 비루한 개꼴이지만, 소호흑랑의 이름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런 자신을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인사이니, 말해 무엇할까?
‘오늘은 필시 내 죽는 날이 되겠군.’
마지막을 직감하면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가 물었다.
“의뢰에 대해 알려줄 수 있소?”
“원한다면.”
어둠 속에서 흐릿한 인상이 떠올랐다.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야.”
이 자는 누구일까?
어둠 속을 주시했지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좀처럼 얼굴이 보이지 않는군.’
의아해하며 이어지는 설명을 들은 상광의 안색이 묘해졌다.
“정말 그것뿐이오?”
“나는 바쁜 사람이야. 실없는 소리를 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
섬뜩.
재차 등골을 내달리는 소름에 상광이 얼른 말을 고쳤다.
“내 말은 귀하를 의심해서 하는 말이 아니오.”
사내의 충격적인 등장치고, 의뢰는 너무 간단했다.
하나. 입구에서의 싸움을 멈춰줄 것.
둘. 지목하는 자를 순순히 내어줄 것.
셋. 그를 입구의 불청객들에게 내어달라는 것뿐.
“왜? 같은 낭인이라고 동료애라도 생긴 건가?”
“그럴 리가.”
제 목숨도 파는 마당이다.
다른 사람의 목숨의 경중이야 깃털만큼이나 가벼웠다.
다만.
“귀하와 같은 분이라면 충분히 손을 쓰실 수 있을 텐데.”
“때로는 남의 손을 빌려 멋진 연극을 펼치는 것도 즐겁거든.”
“그런 이유로.”
이봐. 혓바닥이 길어.
“말했지만 내가 바쁜 사람이라서 말이야.”
흥정을 하는 시간조차 아깝군.
툭.
눈앞에 떨어진 전낭을 열어본 상광은 크게 놀랐다.
“이건 너무 많….”
하지만 그는 이내 깨달았다.
눈앞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툭.
손에 든 전낭을 떨어트리며 상광이 목을 쓰다듬었다.
“후우. 사신(死神)이 다녀갔군.”
겁에 질린 목소리가 매검굴의 어둠을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