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2
31화 소림의 요란한 밤(3)
나름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장소월은 돌아가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뜬금없는 일들이 펑펑 터지고 있는 상황이다.
옛 마도명문의 후인이 소림이 있는 숭산까지 쳐들어와 공격한 일에 말린 것은 정말 재수 없게 걸렸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다.
정사마가 전면전을 피한 채 휴전 중이라고 하지만, 소소한 분쟁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소가 장소이고, 이 일이 소소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이런 전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후 등장한 이 젊은 고수다.
처음 등장할 때 보인 패도적인 무공은 강권 그 자체였다.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역시나 소림.
아무래도 여기 위치가 숭산이고 하니 소림에서 키워낸 제자이겠거니 싶었다. 소림 제자치곤 머리카락이 풍성했지만 뭔가 사연이 있겠거니 했다. 소림이라고 속가제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다음 보여 준 건 장소월의 상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숙련도의 무당파 무공이다.
비슷한 류의 다른 무공을 착각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장소월은 확신했다.
지나칠 정도로 짙은 무당파의 냄새가 났다.
장소월의 아버지 장문경은 검을 완성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해본 인물이다. 그런 그의 무공인 절정검도가 무림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알면, 그리고 장소월이 그런 아버지의 절정검도를 익혔다는 것을 고려하면 장소월의 안목은 분명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그 안목이 확신했다.
무당파 무공이 분명하다.
소림권에 무당권.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대놓고 드러낸 무공들은 분명 정파 무림의 두 거두, 남존 무당과 북숭 소림의 무공이다.
무당과 소림이 손잡고 몰래 키운 기재라도 되는 건지 싶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해줬던 옛이야기 중에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일생을 건 검사의 검과 극강의 일격이 부딪치는 일합은 장소월의 마음을 흔들었다.
소녀적인 감성은 아니다. 장소월 본인부터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인(武人)이다. 무인으로서 감탄할 만한 광경인 것은 분명했다.
이 사람은 눈에 띈다.
그런 사람이 있다. 그저 자신이 원래 하던 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그 자신에게는 평범한 것이 주변인에게는 특별하게 보이는 사람.
평범한 하얀색 사이에서 홀로 붉은 사람.
장소월이 혀로 윗입술을 핥았다.
“흥미가 생기네.”
아버지는 말했다. 지금 장소월의 눈높이를 고려하면 구파의 기재들이라 할지라도 흥미를 끄는 녀석은 없을 거라고.
아버지가 틀렸다.
있었다. 흥미를 끄는 사람이.
“둘 다.”
게다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명공진살의 진의를 드러낸 검초를 검째로 부숴 버리는 일격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런 일격에 밀리지 않는 위압감을 보이는 검도 만만치 않다.
장소월이 묘한 미소를 흘렸다.
***
소림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도의 무리가 습격해 온 것만 해도 기함할 일인데, 거기에 휘말려 죽은 제자까지 나왔다.
하필이면 죽은 이도 거물이었다.
장래 종남파의 미래를 책임질 거라 기대받던 후기지수가 죽어 버렸다.
숭산에서 일어난 일이니, 소림의 영향력 아래에서 벌어진 일이다. 소림 입장에서는 골치 아프게 됐다.
“꽤나 활약했다고 들었네.”
소림의 경내로 돌아온 나는, 찾아온 혜원 스님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혜원 스님의 말에 막상 날뛸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 닿아 왔다.
내 손을 본 혜원 스님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쳤군.”
“예, 뭐.”
장소월과 대치했던 적들의 수장, 그가 마지막으로 펼친 검을 맨손으로 감당한 대가였다.
강철도 진흙처럼 베어 버릴 일격을 정면으로 깨부순 대가라고 치면 별거 아닌 상처였지만.
“또라이 짓을 하면 다친다는 걸 너도 이제 좀 깨달아야 할 텐데.”
“시끄러.”
가만히 있던 백무호가 툴툴거리며 한마디 한다.
내가 쏘아붙이니 쓱 고개를 돌리지만, 입술이 비쭉 튀어나온 것이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투닥거리는 우리 둘을 보고 혜원 스님이 얕게 웃어 보였다.
“이걸 가져오길 잘했구먼.”
혜원 스님은 품에서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기름을 먹인 종이로 뭔가를 싸매 두었는데 검은색을 띠고 있는 고약 같았다.
[현유보신고(玄幽補身膏)구나. 준영약급에 들어가는 물건일 텐데?]달마 사부의 말을 들어보면 꽤나 좋은 약인 것 같다.
“귀한 물건 같은데…….”
“귀하긴 하지. 그러니 의미도 있지 않겠나.”
혜원 스님은 손가락 끝으로 약을 아주 조금 떠서 다친 손에 발라 주었다.
따끔한 통증에 이어 뭔가 시원한 느낌이 상처 위에서 번졌다.
준영약이라더니, 벌써부터 통증이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거친 수련을 하다 보면 몸이 상하기 쉬운 법이지. 현유보신고는 거친 소림의 수련을 돕는 약 중에서도 가장 약효가 좋은 물건이다.]근육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그런 수련 말이죠?
진짜 준영약이라 할 만하다.
나도 저런 거 하나쯤 있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도 조만간 장삼풍 사부가 내 몸을 가지고 뭔가 미친 짓 좀 하실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다.
“뭐 하나, 안 받고.”
“예?”
“아껴 쓰게. 자네 말대로 귀한 물건일세.”
속에 있는 걸 아주 조금만 꺼내 썼던 혜원 스님이 상자를 갈무리하여 내게 건넸다.
탐나긴 한데, 진짜 받아도 되는 건가?
“받아도 되는 겁니까?”
“위에서 허락을 받았네. 따지고 보면 이제 자네도 소림의 외인이라 볼 수 없는 몸이고. 뭣보다 자네가 소림에 해준 것들은 하나같이 작은 일들이 아닐세.”
달마 사부의 무공을 전해 준 것도 있고, 이번에 구파의 제자들이 큰 희생을 치르지 않게 막은 일도 있다.
희생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없었으면 소림의 분위기는 지금과 확연히 달랐을 거다.
그 정도면 오히려 작은 보상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뭔가 보상이라고 주는 방식이 좀 이상한데?
“크흠! 나도 여기 좀 다친 게…….”
“침이나 발라.”
“쳇!”
하여간 산통 깨는 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어디까지 생각했더라?
아, 주는 방식.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
“있네.”
역시 뭔가 있었다.
내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소림에서는 대대적으로 나를 내세우는 것이 좋다. 혜원 스님이 말했다시피 나야 이미 소림에 소속된 몸으로 봐도 무방하니까.
내 눈치도 쓸 만하지?
나는 의기양양하게 백무호를 바라봤다. 그런데 왜 입 모양은 ‘병신’이라 말하고 있을까?
“독단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닐 것 같아서 말이야. 자네 의견에 따라 결정이 갈릴 것 같네만.”
“이번 사태의 뒷일에 대한 겁니까?”
“맞네. 습격해 온 상대의 전력을 생각하면 이번 일은 분명 적은 희생으로 적들을 물리친 것일세. 허나, 하필 죽은 이가 문제야. 아끼던 후기지수가 죽은 만큼 분명 종남파가 움직일 걸세. 안 그래도 요즘 평화가 너무 길었다는 주전파의 의견도 커지는 마당이라. 그들 또한 합심해서 움직일 테고.”
“정치적인 문제인가 보네요.”
“그렇지. 자네도 여기 계속 있으면 휘말릴 걸세.”
“으음…….”
나야 뭐, 공을 세운 입장이니 종남이든 소림이든 나쁜 대우를 하진 않겠지만, 혜원 스님의 언급을 들어보면 골치 아픈 일의 전초가 될 수 있는 사안에 말려들 수도 있겠다 싶다.
구파 내에서도 주전파가 있어 사마 무리를 멸절해야 한다는 이들이 있는 모양인데, 이번 일은 그들이 명분 삼기 딱 좋은 일이긴 하다.
이번 일에 큰 공을 세운 내 입장이나 목소리는 그들이 이용해먹기 딱 좋다는 거다.
“출세나 권력에 욕심이 있다면 기회일 수도 있겠네만.”
“그런 쪽으로는 별로 관심이 없네요.”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했네. 그런 쪽에 관심이 있었다면 애당초 태사조의 제자 자리를 걷어차진 않았을 테니.”
담백한 내 대답에 혜원 스님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거다.
“미안한 말이네만, 뜻이 그렇다면 발목 잡히기 전에 떠나는 게 좋을 걸세.”
아뇨, 이미 소림에선 얻을 거 다 얻었는데요.
내 입장에선 그렇지만 혜원 스님은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혜원 스님 입장에선 나를 소림에 데려와서 나름 뭔가를 가르치고 전수해 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질 못하게 됐으니 무척이나 미안한 것 같다.
괜히 내가 더 미안하네.
“해서 말인데.”
혜원 스님이 품에서 뭔가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이것도 가져가게나.”
꺼낸 것은 팔찌 같은 것이었다. 투박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묵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앞으로의 수련에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네.”
“무엇이기에…….”
“태사조께서 소림의 선물이라며 전하라 하시더군. 들어보니 그를 차고 내공을 수련하면 좀 더 정순한 기운이 모인다는 것 같네. 성장할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 자네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지.”
사실이라면 보물이나 다름없다.
그런 물건이라면 거절은 못 하겠다.
“잘 쓰겠습니다.”
나는 그 물건을 소중히 받아들였다.
손에 닿은 팔찌에서 금속 특유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방금 들은 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허허.]갑자기 귓가에 달마 사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게 뭔지 아시는 눈치다.
[그게 아직도 남아 있었나?]남아있었나?
태사조라는 사람이 달마 사부의 최후 유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이것도 혹시?
심 봤다?
***
화산(華山).
천하제일의 험산이라 불리는 천혜의 영역.
허나 그 험난하기 그지없는 산에도 사람이 살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존경받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런 존재 중 한 명을 찾아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막 신선도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그야말로 도골선풍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풍모의 인물이 손가락에 내려앉은 새를 쓰다듬곤 그 새의 다리를 더듬었다.
이윽고 그의 손에 작은 서신 하나가 들렸다.
그 서신을 확인하는 옥안에 주름이 생겼다.
“허허, 실패라.”
청아한 목소리가 방안에 곱게 울렸다.
“죽은 건 종남파의 아해 정도라니. 버러지 같은 것들이란 건 알았지만, 실상은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이었던가.”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청아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화륵!
이어 그의 손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들고 있던 작은 서신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흩어졌다.
잿가루가 완전히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먼 곳을 바라봤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군. 종남파가 얌전한 친구들이 아니긴 하지.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은 되겠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그가 손을 저었다.
파악!
조금 전까지 얌전하게 앉아있던 새가 갑자기 형태를 잃고 사라졌다.
***
지옥에서 죄인들을 튀기고 있는 천마가 유난히 집착하는 대상은 마교 출신의 마인들이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피곤해서 짜증이 나더라도 그쪽만큼은 전담했다.
마도랍시고 노는 꼴들이 아주 엿 같아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보고 있자니 짜증 나는데 눈을 돌릴 수도 없는.
“그래, 니들은 몇 년짜리들이냐?”
한 무더기나 되는 마인들을 똥통에 던져 넣으면서 지옥에 온 잡놈들의 개인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업경(業鏡)을 살피던 천마가 얼굴을 굳혔다.
“극강격?”
현세에 있어선 안 될 무공이다.
그럴 것이, 저 무공이 완성된 곳은 현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 무공이 완성된 곳은 천상이다.
게다가.
“진품 무당파 무공?”
몸놀림이며 발재간까지 이제 현세에 없을 무공들을 펼치는 꼬맹이가 마인들의 최후를 비추는 업경에 드러나 있었다.
천마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똥통의 건너편, 요즘 농땡이 치는 일이 잦아 그 벌충으로 지옥에 차출되어온 장삼풍을 응시했다.
“너, 달마 그 새끼랑 뭔 짓을 하고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