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48
347화 퍼지는 소문
종남파가 화산파를 징치한 이후, 섬서에는 흉흉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혈교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종남파가 어린 제자들을 제물로 써서 힘을 키웠다는 소문이다.
그런 종남파에 굴복한 화산파 역시 같은 꼴이 될 것이니 주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섬서 남부에 무관을 차린 종남파 속가제자 장일선은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코웃음을 쳤다.
“사파 놈들이 수작질을 부리는군.”
안 그래도 최근 사파의 움직임이 수상쩍다는 소문이 있었다.
실제로 섬서에 사파고수들이 쳐들어온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것도 무려 흑룡회의 고수라는 소문이었다.
그렇기에 장일선은 크게 망신당한 사파가 수작질을 부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정파의 근본인 구대문파가 혈교의 하수인이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사문인 종남파가 그럴 리가 없다고 굳게 믿었다.
허나 속가제자 동기이자 죽마고우인 친우의 생각은 달랐다.
“종남파에 가 봐야겠네.”
불안한 얼굴로 찾아온 친우 진충의 말에 장일선은 불같이 화를 냈다.
“자네는 저런 역겨운 소문을 믿는 것인가!?”
장일선의 성난 목소리에도 진충은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아들의 소식이 끊어진 지 너무 오래됐어. 자네 아들도 그렇지 않나?”
“수련에 매진하다 보면 그럴 수도…….”
“나는 확인해 봐야겠네.”
장일선처럼 종남파에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소문에 흔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종남파에 자식을 속가제자로 보낸 이들이 그런 성향이 짙었다.
단호한 친우의 모습에 장일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나도 함께 가세.”
장일선에게 진충은 평생을 함께한 친우였다.
홀로 보낼 수 없었다.
“그건 안 돼.”
하지만 진충은 장일선과 함께하고자 온 것이 아니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나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걸세.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남은 가족들을 부탁하네.”
최악의 경우 남은 가족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자네…… 하아…….”
비장함이 비치는 친우의 말에 장일선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장일선에게도 의심의 씨앗이 심어졌다.
자신의 아들도 진충의 아들과 함께 종남파에 입문했다.
그런 아들도 언제부터인가 소식이 뚝 끊어졌기 때문이다.
***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하지만 진충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보게, 너무 늦는 게 아닌가…….”
장일선은 친우를 타박하며 혼잣말을 했다.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렸다면 이레 안에는 돌아왔어야 하지만, 열흘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장일선의 마음 깊이 심어졌던 의심의 씨앗도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런 가운데 장일선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진충이 돌아왔는가 싶어 한걸음에 달려 나가자 대문에서 마주한 것은 종남파 본산제자였다.
어딘가 서늘한 눈빛의 종남파 본산제자가 장일선을 향해 물었다.
“당신이 진충의 친구 장일선이오?”
친우의 이름을 담는 종남파 본산제자의 모습에 장일선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는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마음에 심겨 있던 의심은 줄기를 뻗고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이를 내색하는 건 스스로 사지에 들어서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종남파 본산제자라면 홀로 맞설 수 없다.
방심을 유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장일선은 표정 관리에 힘썼다.
“그렇습니다만.”
“맞군.”
눈빛만큼이나 서늘하게 웃은 종남파 본산제자가 검을 휘둘렀다.
슈악!
하지만 충분히 대비를 하고 있었던 장일선은 뒤로 물러서며 공격을 피했다.
“무슨 짓인가!”
“싹을 자르는 것이지.”
사문으로 자랑스러워하던 종남파의 검이 장일선을 겨냥했다.
종남파를 대표하는 검 중 하나이자 살기가 짙어 반드시 상대를 죽이고자 할 때 쓰이는 천성검(天星劍)이 장일선의 목을 날카롭게 노렸다.
캉! 카캉!
“큭!!”
미리 대비했지만, 기량 차이가 너무도 컸다.
처음 서너 번의 공격은 막고 피해냈지만, 거듭된 공격은 점차 장일선의 몸에 닿기 시작했다.
짙은 배신감에 장일선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믿었건만… 내 종남파를 믿었건만…….”
“편히 생각해. 너는 살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종남파를 이루기 위한 초석이 되는 거야.”
“망할 자식!”
장일선의 감정이 들끓었다.
분노가 온몸에 흐르니 판단이 흐려지고, 몸이 굳어졌다.
당장 저 잘난 아가리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장일선을 가장 화나게 하는 건 상대가 원하는 바가 그것이라는 점이다.
장일선을 향한 저 비틀린 웃음은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노림수가 숨어있었다.
격장지계로 장일선을 자극하여 보다 손쉽게 제압하기 위한 술책이던 것이다.
아들과 오랜 친우를 잡아먹고, 그 사실로 조롱하는 자에게 굴욕적으로 살해당한다.
꿈이었으면 싶은 끔찍한 현실이었다.
“네 친우와 자식 곁으로 보내주지.”
완벽하게 퇴로가 차단된 곳으로 내몰린 장일선의 목을 노리고 종남파 본산제자가 검을 휘둘렀다.
슈욱! 퍽!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이 종남파 본산제자의 팔꿈치를 관통했다.
“악! 뭐, 뭐냐…….”
종남파 본산제자 역시 예상외의 상황이었는지 몸이 경직됐다.
장일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퍼벅!
종남파의 장법인 건곤산수(乾坤散手)로 번개같이 어깨와 심장을 때리자 종남파 제자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한 데다 건곤산수로 인한 타격, 그리고 검을 든 오른팔에 화살을 맞아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서걱!
장일선은 검을 휘둘러 종남파 본산제자의 팔을 잘랐다.
“으아!”
“개자식!”
양팔을 잘라 대응할 수단을 없앤 장일선은 양다리를 잘라 기동력을 끊어냈다.
사지가 잘린 종남파 본산제자가 벌레처럼 바닥을 기었다.
그의 사지에서 흘러나온 피가 마당에 고였다.
“이 피에 내 아들과 조카의 것도 흐르느냐?”
소문이 사실이라면 종남파는 혈교의 주구가 되어 사악한 대법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자 역시 아들과 친우, 그리고 조카의 원수나 다름없다.
푸욱!
장일선은 발버둥치던 종남파 본산제자의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컥…….”
벌레처럼 꿈틀거리던 종남파 본산제자는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떨더니 축 늘어졌다.
그렇게 시신이 된 종남파 본산제자를 내려다보던 장일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눈물이었다.
그때 장일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은공이십니까?”
다가온 이가 활을 들고 있는 것에 장일선이 감정을 추스르며 물었다.
“화살을 쏜 사람이라면 제가 맞습니다. 그리고 섬서에 소문을 퍼트린 것도 접니다.”
“아!”
상대의 말에 장일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감사와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물론 분노는 소문을 가볍게 여긴 스스로와 제자들을 배신한 종남파를 향하는 것이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정중하게 포권을 쥐며 허리를 숙이는 장일선이었지만, 상대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닙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피해자가 귀공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일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복수를 원하신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현재 종남파의 주력은 화산에 있습니다. 남아있는 전력은 크지 않지요. 그러니 이런 이대제자급이 움직인 것이고요.”
장일선의 눈이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종남파 속가제자분들에게 진실을 알리십시오. 힘을 모아 원한을 갚고, 죽은 이들의 시신을 찾아 제를 지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은공! 제가 무얼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주체하지 못할 온갖 감정에 지배당했던 장일선의 몸에서 떨림이 점차 사라졌다.
해야 할 일을 깨달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
한발 물러난 관중연은 장일선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무관을 정리하고 두 집의 식솔을 챙겨 피신을 시킨 다음 장일선은 곧장 어디론가 향했다.
분명한 건 뒷모습에서 살기가 가득했다는 점이다.
“좋은 기폭제가 생겼군.”
화산파에 밀렸다곤 하지만, 종남파 역시 구파의 일좌로 오랜 세월 자리매김해왔다.
당연히 적지 않은 수의 종남파 속가제자들이 섬서 각지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 속가제자들을 규합해 종남파 본산을 친다면 생각보다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종남파 전력이 온전한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빈집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잘 될까요?”
“느낌이 좋아.”
지원 업무차 나온 용린대원의 물음에 관중연은 씨익 웃었다.
“뭐, 실패하더라도 추가적인 소문 하나는 끝내주게 퍼트릴 수 있겠지.”
설령 장일선의 봉기가 실패한다 해도, 그 행적만큼은 분명하게 남게 된다.
하물며 장일선이 피신시킨 가족들을 통한 소문을 막을 방도가 없다.
“분명한 건, 앞으로 종남파가 뭘 하든 발목을 잡히게 될 거다.”
화산파를 징치하겠다고 나설 때만 해도 분명한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크게 알려지게 된다면 그 명분은 무의미해진다.
더불어 종남파의 깃발 아래로 들어간 화산파 역시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다.
당연히 종남파와 화산파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걸로 정파가 내부에서 흔들릴 일은 없겠지.”
하지만 용린대원은 여전히 걱정거리가 남아있는 듯했다.
“그건 그렇지만, 나중에 뒷수습할 일이 쉽지 않겠는데요.”
“그거야 무림 일이잖아. 도련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관중연은 은근슬쩍 뒷마무리를 연청운에게 떠넘겼다.
용린대원이 역시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화내면 무섭다던데…….”
“하하하!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관중연은 호탕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용린대원은 그런 관중연의 복부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어째, 조만간 거기에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삼악도를 끌어들인다는 목적을 달성한 나는 다시 한번 배에 올랐다.
어차피 동쪽으로 향할 것이라면 배가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배는 바꿨다. 인원이 늘어난 만큼 기존에 타고 왔던 배는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삼악도에는 배가 많았다.
막대한 곡물을 수송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덩치도 컸다.
한 덩치 하는 삼악도 무인들을 가득 태우고도 자리가 남았다.
하지만, 그 빈자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물건들 때문이었다.
‘저놈의 쇳덩이는…….’
일격에 성벽도 허물 공성병기(?)가 빈자리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벌어들인 재물을 죄다 저기에 때려 넣었는지 무려 열두 개나 되었다.
장검 천 자루는 너끈히 만들 쇳덩이가 열두 개다.
삼악도가 아군이 되었지만, 과연 이들과 손을 잡은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등이 일었다.
사부님들도 의견이 갈릴 정도다.
달마 사부는 꽤나 마음에 들어 하셨지만, 장삼풍 사부는 영 떨떠름해 하셨다.
천마 사부는 그냥 재미있는 놈들 취급이셨다.
놀라운 것은 달마 사부가 저들에게서 선근을 기대하고 계신다는 점이었다.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중이라지만, 저들이 선계에 오르게 되면 어떨까 싶었다.
[앞이나 제대로 봐라.]그런 가운데 장삼풍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두(船頭)로 향해 전방을 살피니 큰 배 세 척이 돛을 펴고 물살을 거스르며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적인가?”
안휘에서의 싸움으로 기존 장강에 자리 잡고 있던 수적들은 모조리 박살 났다.
그렇다고 상선 같지는 않았다.
상선이라면 소속을 표시하여야 하는데, 소속을 표시하는 깃발이 어디에도 없다.
선자불래 내자불선(善者不來 來者不善)이라고 했다.
“적이군.”
경태세가 히죽 웃으며 판단을 내렸다.
“수련 중지! 전투 준비!!”
경태세의 지시에 삼악도 무인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써먹고 싶어 근질근질했는지 그 거대한 쇳덩이를 장난감처럼 들고 빙빙 돌렸다.
“사나이의 이름으로!”
“““사나이!”””
분명 아군인데도 오한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