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314
마탄의 사수 (1314)
대형 홀로그램을 통해 비춰지는 건 분명 〈신성 연합〉의 대단한 활약이었다.
소환사 엘미가 전장을 혼란 상태로 만들어 놓고, 그곳을 휘젓는 아르젠마트와 람화정, 블라우그룬 그리고 키드의 조합.
발 빠르게 움직이는데다, 괴조들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는 막강한 화력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렇습니다, 저는 감히 ‘그러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날 어덜트 드래곤을 꿰뚫어 죽였던 괴조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적의 병력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지금 막 적의 야수화 군단이 협곡으로 진입했습니다! 300명의 정예병이라도 수만의 대군을 막기 힘들었건만, 과연 미들 어스에서는 가능할 것인가!”
하늘에서 보는 시야로는 분명 압도적인 전력 차이였다.
그러나 긴장한 취재진과 달리 오히려 그들을 코앞에서 맞이하는 기정과 팔레오들은 그렇지 않았다.
“멈춰 세우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다들 아시죠!? 앞으로 15분만 버티면 돼요!”
“흥,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사기는 충분하다.”
저들을 전부 죽일 필요가 없으니까.
―시간 맞추실 수 있는 거죠?
―하이하의 동생 아니랄까 봐 죽어라고 재촉하는군. 닥치고 버티기나 해. 신호하면 알아서 튀고.
괴조 떼가 협곡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던 또 다른 이유이자, 수비 장소를 협곡으로 정하고 버텼던 이유.
그것은 바로 루거의 한 발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간과 이어진 관통〉이 모든 것을 날려 버리리라.
* * *
람화연은 호흡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지축을 흔드는 적의 야수화 군단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자아내고 있었다.
“람화연 씨, 그렇게 무서우시면 그냥 후방으로―.”
“아니. 괜찮아요. 어차피 나는― 죽지 않으니까. 이곳에 있겠어요.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람화연은 기정의 제안을 뿌리치며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 기정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이 시점에 람화연이 믿을 수 있는 건 루거의 한 방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위험에 빠졌을 때,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있는 곳을 바라보게 된다.
‘뒤를 흘끗거리고 싶겠지. 이미 〈은신〉 상태인 루거를 발견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는 건―.’
그녀는 목에 힘을 빳빳하게 주어 억지로 참아 내고 있다는 뜻이다.
―형, 이제 곧 부딪칠 거야.
―그래. 어차피 내가 만들어 준 키메라도 있으니까. 당장 위험할 정도는 안 될 건데 그래도 모르니―.
―허허, 걱정 마셔. 설마 ‘형수님’을 못 지킬까.
―짜식이 또. 하여튼 부탁한다.
기정은 이하와 귓속말을 나누며 웃었다.
몇몇 야수들은 속도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협곡의 경사로까지 올라가 달려오고 있었다.
굳건한 방어벽은 저런 소수의 침입만으로도 흔들릴 우려가 있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타아아앙─────────……!
“오, 명중. 보노보 팔레오 분들은 진짜 총 잘 쏘네요.”
“지, 지금 그런 걸 볼 때가 아니잖아요! 옆을 뛰는 건 저쪽에 맡기기로 했으니까 마스터케이 씨는―.”
“네, 네. 저도 제 할 일에 집중해야죠. 그럼, 멧돼지 팔레오 여러분! 고릴라 팔레오 여러분!”
기정은 투구를 쓴 후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의 양옆으로 늘어서 협곡을 막은 주류 팔레오는 역시나 ‘덩치’와 ‘맷집’을 기준으로 선별한 개체들.
그런 그들과 함께라면 새롭게 얻은 힘을 시험하기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막아 봅시다! 〈강화: 기갑 성체機甲 聖體〉.”
쿠우우우우웅……!
기정은 치켜든 방패를 땅으로 내리찍었다.
그곳에서부터 휘광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기정을 비롯하여 기정의 반경 50m까지 뻗어 나갔다. 단순히 뻗어 나가기만 한 게 아니었다.
“저― 저한테도 쓰는 거였어요?”
“어, 아군으로 인식되는 개체는 전부 포함이에요. 람화연 씨도 당연히 포함이죠.”
더 이상 기정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풀 플레이트 갑주를 착용한 그였으나, 지금은 그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있었다.
빛이 그의 갑주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럼 미리 말이라도 해야―.”
솨아아아아아─────……!!!!
그리고 기정에게서 일어나던 변화는 곧 빛 내부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토온의 뼈 방패에서 비롯된 것은 공룡화였다. 당시 새카만 뼈는 기정의 몸을 날렵하게 둘렀었다.
엄청난 버프 스킬이었으나 기정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데다 시간제한이 짧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들 준비됐죠!?]람화연은 물론이고, 이하가 람화연을 위해 만들어 주었던 키메라들 그리고 기정의 곁에 있던 모든 팔레오의 모습이 삽시간에 변했다.
[와일드― 보어어어어어―!] [이거라면 충분해! 완벽하다고!]그들은 더 이상 맨살을 드러낸 짐승 팔레오가 아니었다.
부족 수호신들의 힘을 받아 동물의 특성을 지닌 외형에 더불어, 신성력이 만들어 낸 중장갑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성스러운 요새〉.]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기정이 두 번째 스킬을 사용한 순간, 야수화 군단이 쇄도했다.
“캬아아아아앗―!”
“크아아아아아!”
람화연의 팔보다도 두꺼운 손톱과 이빨을 들이밀며 달려든 그들의 공격은 터무니없는 울림음을 만들어 내었다.
팅, 텅, 탱…….
중장갑으로 덧칠이 된 기정과 팔레오들의 앞에는 반투명의 성벽이 생성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키릿?”
“캭, 캬각―.”
이빨이 부서지고 손톱이 뭉개진다.
한순간이긴 하지만 모든 물리적 피해량이 제로로 돌아간다.
그들의 공격은 물론이고, 직접 육체로 부딪치는 돌진력 또한 무위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돌파 공격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일격만 성공적으로 막아 낸다면 그다음은 걱정할 게 없다.
[가즈아아아아아아아!]신성력으로 만든 궁극의 장갑을 둘러싼 〈홀리 나이트〉가 달려 나갔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건, 비록 크기와 종족은 다르더라도 하나의 의지로 똘똘 뭉친 〈팔레오 팔라딘〉이었다.
콰아아아아────────ㅇ!
철갑과 마주한 살점이 파여 나갔다.
기갑화된 고릴라 팔레오들의 주먹은 야수들의 두터운 흉곽을 일격에 부쉈다. 손목을 꺾어 버리고, 어깨를 뜯어 버렸다.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야수들이 고릴라 팔레오들의 갑주를 물어 뜯으려했지만 그 이빨은 박히지도 않았다.
부러진 늑골을 부여잡으며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 했지만 이미 그들의 ‘돌파력’은 떨어졌다.
그런 상태에서 ‘밀어내기’ 싸움?
[와일―드― 보어어어어어어!]멧돼지 팔레오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야수화 몬스터들은 공격 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정과 팔레오들에게 밀려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기세를 살린 돌파 공격의 제1진이 방어선을 뚫지 못한다면 오히려 협곡에서의 돌격은 부정적인 효과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꾸엑, 끄아아악!”
“미, 밀지 마! 밀지 마, 이 병신들아!”
앞선의 상황을 모르는 뒷선은 마구잡이로 들이닥쳤고 제1진 야수화 몬스터들 중에서는 압사를 당하는 개체가 생겨날 정도였다.
하늘의 괴조는 아르젠마트와 블라우그룬 그리고 엘미가 만들어 낸 판에서 키드와 흑두루미 등이 날뛰었다.
지상의 야수들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막중한 압박에 짓눌려 있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이동한다 한들, 보노보 팔레오가 만들어 보급한 볼트액션 총기가 두고 볼 리가 없다.
아골 골짜기에 울리는 것은 날짐승과 들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뿐이었다.
압도적인 병력의 차이를, 〈신성 연합〉은 지형과 특성을 교묘하게 살려 완벽한 대치 구도로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앞으로 5분 남았다.
―시간은 나도 계산할 줄 알아요. 그쪽에는 미리 연락해 놨어요.
―빌어먹을, 하이하 동생이나 여자 친구나 하여튼 건방진 소리들 하는 데에는―.
―시끄럽고. 스킬이나 제때 맞춰 써요, 루거.
골짜기로 밀고 들어오는 몬스터들이라지만 무한정 달려들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왕군도 분명 후방에 연락을 취할 것이고, 전방이 압사되는 일이 없도록 후방의 병력을 조금 더 뒤로 무르게 만들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후우우우…… 아골 골짜기를 전장으로 삼았을 때, 벌써 거기까지 계획하고 있었다니. 하핫…… 치요, 네가 최고라고 생각했겠지?”
그 모든 상황을 ‘일찌감치’ 전달받아 배치되어 있던 유저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은 에윈과 그랜빌이 만들어 낸 전술이 아니다.
도대체 〈신성 연합〉을 이끌어 가는 두뇌들은 얼마나 더 큰 계획을 세워 놓았을까.
“라르크…… 람화연……. 핫. 내가 ‘불꽃술사’ 영웅의 후예가 되지 않았다면, 그 자리는 무조건 람화연이 차지했겠군.”
그들 스스로 생각한 점도 있겠지만 주변 NPC와 유저들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인사 행정이야말로 〈신성 연합〉의 최고 장점이리라.
아골 골짜기의 협곡 위에서 엄폐용 길리 슈트를 입고 엎드려 있던 유저가 일어섰다.
그의 길리 슈트는 곧 열기에 의해 자연스레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골짜기 바깥으로 몬스터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러니 그것을 막아야 한다, 라……. 하이하 말고도 겨룰 상대가 이렇게 많았다니.”
앞으로의 미들 어스는 얼마나 더 재미있어질 것인가.
“그렇다면 나도 보여 줘야지. 화염천주보다 더 뜨거운 불 맛을 보여 주마! 〈초열지옥焦熱地獄〉!
아골 골짜기의 입구, 야수화 몬스터들의 퇴로가 되어 주어야 할 그곳에서 불의 벽이 치솟아 올랐다.
염마가 사용하던 흑색의 불이 아니다. 그러나 파이로가 사용했던 적색의 불도 아니다.
그곳에서 일렁이는 불은 백색이었다.
새로운 방향으로 2차 전직을 마친 〈염왕炎王〉 파이로가 웃고 있었다.
“역시. 2차 전직인가.”
“뭐, 어느 정도는 예정된 일이었죠. 이미 2차 전직을 한 번 마쳤다가 다시 1차 전직으로 롤―백 했던 유저들은, 금세 힌트나 키워드를 찾아낼 테니까.”
아골 골짜기의 전황을 대형 홀로그램에 송출하고 있는 혜인과 페르낭이 말했다.
루비니는 자신의 지도로 마왕군의 상황을 파악하여 말해 주었다.
“협곡 내부에 갇힌 게 25%가량이군요. 당초 목표했던 40%는 역시 무리였나 보네요.”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텔레포트만 못 쓰게 만들면 그 25%가 깔끔하게 삭제될 테니까요.”
혜인은 진작부터 스킬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모이던 연보랏빛이 삽시간에 퍼져 거대한 돔을 만들어 내었다.
이제 협곡 내부의 마왕군은 어떠한 방법을 써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혼란이 가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케에에엑…….”
“뜨, 뜨거워! 농담이 아니라 진짜 생각보다 뜨겁다고! 동화율 45%인데 어떻게 이런 열기가― 도대체 온도가 몇 도이길래―.”
“뒤로 가! 뒤로 빠지라고!”
“이 새끼야, 불바다가 터졌는데 저걸 어떻게 뚫고 빠져! 앞으로 가! 앞으로!”
“텔레포트도 안 되고, 앞은 벽인데 어딜 가!”
파이로의 스킬은 협곡의 입구를 가까스로 막을 정도의 길이밖에 되지 않는데다, 길이를 늘어뜨려야 하므로 그 두께는 얇을 수밖에 없었으나 충분한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마왕군은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었다.
아비규환인 그들을 상대로 단지 버티기만 하는 것이라면 〈신성 연합〉에게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즉, 5분의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뜻이다.
〈신성 연합〉의 최후미이자, 아골 골짜기의 출구에는 오직 한 명의 유저만이 위치하고 있었다.
“푸른 수염이 저 안에 없는 게 아쉽군.”
〈코발트블루 파이톤〉을 들어 올린 루거가 웃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탈칵.
“〈공간과 이어진 관통〉.”
슈와아아아아……!
시끄러운 포성은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스킬은 완벽하게 구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