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360
마탄의 사수 외전 (9)
이하는 워프 게이트 근처에서 가방을 뒤적거렸다.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어떻게 영웅템 두 개가 전부냐. 아무리 못해도 전설급! 아니면 신화급은 줘야 하는 거 아냐? 실제로 내가 죽일 때도 〈심판의 불〉까지 써서 죽인 건데! 적어도 신화급 몬스터였다는 의미면서…….”
투덜거려 보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하 자신이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이때는 신화급 몬스터가 아니었다는 거겠지. 전설급도 간당간당한 수준? 아니면 전설급 초입?’
푸른 수염을 상대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물론 ‘꼬마’의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나, 일반 근접 공격과 다른 〈총검 돌격〉의 사기적인 메커니즘 등이 있었으나, 그런 것을 감안해도 푸른 수염을 죽이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흐흐흐, 통쾌하긴 했단 말이지.”
정신없이 싸우던 〈제3차 인마대전〉 당시의 푸른 수염과 비교해 보자면 여유가 넘치는 전투였다.
그동안의 괴롭힘을 갚아 주기 위하여, 일부러 치명타가 터지지 않는 부위 위주로 찌르기나 베기를 시도하지 않았던가.
“아이템을 받을 거면―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신성 연합〉 이름으로 받을 거 아직 남았구나.”
푸른 수염을 죽인 1등 공신으로서, 이하는 아직 아이템을 받을 권리가 있다.
거기에 마왕의 조각만이 아니다. 마왕을 직접적으로 죽인 이하의 이름은 또 어찌나 드높아져 있었나.
‘〈신성 연합〉에서 아직 빼먹을 게 많기는 해. 으음, 기왕이면 해체되기 전에 가야 할 텐데.’
이하는 잠시 고민했다.
이제 〈제3차 인마대전〉과 관련된 모든 이벤트는 끝이 났다. 마왕까지 사라졌으므로, 이제 미들 어스의 생명체들에게 목전의 위협은 없어진 셈이다.
팔레오들은 향후 며칠 내 신대륙으로 모두 돌아가 자신들의 터전을 재정비하게 될 것이다.
로페 대륙은?
당연히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신성 연합〉의 해체다.
교황과 에즈웬 교국을 기준으로 성립된 일시적 단체에 가까우니만큼, 모든 목적을 달성한 지금은 연합의 존속 명분이 없지 않은가.
‘에즈웬 교국이 재건될 때까지는 눈치를 슬슬 보면서 단체를 남겨 두겠지만― 교황청까지 완전한 재건이 끝난다면 즉시 해체될 거야.’
이하는 갑작스레 오한이 느껴졌다.
미들 어스는 마왕을 죽이고 마왕의 조각을 없애는 게임이 아니다.
애당초 미들 어스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대규모 컨텐츠는…….
‘국가와 국가 간의 정치. 대륙의 패권을 놓고 다시금 싸움이 벌어질지도.’
바로 국가전이 아니었던가.
이하는 알 수 있었다. 설령 유저들이 거부하고자 해도 미들 어스의 시스템은 그것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그런 게임이 아니니까. 분명히 무슨 수를 써서든 싸움을 붙이려고 할 거다. 그리고 싸움이라면―.’
동시에 새로운 기회, 어쩌면 거기서 〈르네상스〉와 관련된 또 다른 단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제 허접한 일개 유저가 아니다.
랭킹 1위이자 미들 어스의 플레이 패턴에 닳고 닳은 이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앞날을 예측하고 있었다.
“즉시 전쟁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어쨌든 암투 같은 게 발생할 가능성을 따져 보자면―.”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 거지?”
그런 이하를 바라보며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새파란 포신을 반짝거리는 자가 금발을 쓸어 올렸다.
“루거! 흐흐, 마침 잘 왔다.”
삼총사 중 한 사람, 루거를 보자마자 이하의 모든 생각은 하나를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자, 잘 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그럼! 뭐, 대충 알겠지만 이번에 메모리얼 던젼이 말이야…….”
[전투 모드: 피로트-코크리]를 반드시 시티 가즈아에서 한정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 목적이었다.이하는 루거에게 살갑게 달라붙어 곧장 작업을 시작했다.
* * *
루거는 얼이 빠진 얼굴로 잠시 멍하니 있었다.
워프 게이트 NPC 근처의 유저들이 수군거리며 루거의 근처를 지나갔으나, 이하가 등장했을 때와 달리 ‘기브리드 던젼을 만들어 달라’며 루거에게 달려드는 인원은 없었다.
“메모리얼 던젼 속에서도 성격 장난 아니던데…….”
“야, 야, 조심해. 괜히 옆에만 지나가도 쏠지 몰라.”
“키드 님은 성격 좋드만 저 사람은 왜 저럼?”
워프 게이트 근방이니만큼, 그곳에 모여 있던 유저들 상당수가 ‘크롤랑 편’의 메모리얼 던젼을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시점을 바꿀 순 있지만 1인칭 상태에서 도대체 크롤랑을 어떻게 해치웠고, 푸른 수염에게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했던 유저들은 이하의 시점을 고정해 두었다.
즉, 그들은 그곳에서 ‘이하의 시점으로’ 루거를 겪었다.
[체험판]이라고 다를 건 없다.과거 이하의 몸을 그대로 움직여 클리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건만, 당최 협조적이지 않은 루거를 겪은 사람들은 현실의 루거를 보며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키드도 아주 협조적인 건 아니었다만― 루거에 비하면 천사 그 자체였으니…….’
이하는 루거가 정말로 폭발할까 잠시 걱정했으나 지금 루거에게는 주변 유저들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이하는 기브리드의 던젼을 시티 가즈아에 설치하기 위해 그를 설득했고, 설득보다 더 쉬운 방법으로 일단 체험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루거는 모두가 겪었던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전투, 크롤랑 편을 겪고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루거가 주변의 유저들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미들 어스가 간만에 괜찮은 걸 내놨군.”
루거는 곱씹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직도 충격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루거를 보며 이하는 궁금한 게 한 가득이었다. 클리어는 했는가, 어떤 버전의 어떤 플레이를 했는가.
물론 지금은 그런 걸 물어볼 시점이 아니었다.
“그치, 그치? 그렇다니까! 푸른 수염 던젼은 여기다 설치했는데 기브리드 던젼을 다른 곳에 설치할 이유가 없잖아? 여기서 그냥 한 큐에 딱―.”
“하지만 내가 저때 욕을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이하 네 녀석이 원래의 작전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니까.”
“뭐, 뭐가?”
“이상할 거 없다는 뜻이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 퉤, 젠장할.”
씩씩거리며 분노를 토하던 루거의 반응에 이하가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는 곧 호흡을 가다듬었다.
루거의 ‘급발진’에 이하는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호흡을 가다듬던 루거는 다시금 이하에게 접근하며 소리쳤다.
“너, 알고 있지? 네가 이상한 꼬리를 달고 오는 바람에! 짜르인지 타르인지 그 새끼들이 있어서 일이 꼬여 가지고 괜히 싸웠던 거라고. 근데 그걸 내 탓―…….”
루거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목울대가 울렁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한참이나 더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이하의 예상과 달리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으, 응? 루거 당신 탓한 적은 없는데…….”
“시끄러!”
괜히 민망해진 이하가 한마디 던져 보았으나 루거는 소리만 빽 지르고 말 뿐이었다.
루거로서도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하면 말할수록 ‘그 상황’의 대단함을 치켜세우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테니까.
‘빌어먹을…… 레벨 162? 그딴 수치로 어떻게 해낸 거지? 이 멍청한 자식, 〈다탄두탄〉도 없고, 요즘 사용하던 그 어떤 스킬도 없잖아! 진짜 평타로만 그걸 끝냈던 건가? 보정도 없이?’
루거는 [체험판]으로 전투를 실행시켰다.
그리고 지금, 그의 상태 창에는 〈디버프: 체험의 악몽〉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이하에게 충분한 주의 사항을 듣고 접속한 것이었음에도 ‘1회차 도전’으로 [체험판]을 클리어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이하의 몸으로 플레이를 하면서, 과거의 키드와 과거의 자신이 모두 죽고 끝끝내 하이하의 몸을 빌린 자신마저 죽는 경험을 하다니.
루거는 그것이 더욱 분했다.
심지어 자신은 이미 겪었던 일이 아닌가. 흐름을 알고 있었던 데다 주의까지 들었건만 실패를 해?
거기다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는 것은 단순한 사격 실력 부족만이 아니었다.
‘……젠장!’
이하와 키드 곁에서 쉴 틈 없이 욕지거리를 뱉어 내던 과거의 루거, 바로 자신 때문!
굳이 주변의 유저들이 수군거리지 않아도 루거 스스로 그 점을 깨우치고 말았다.
그러니 이하에게 마구잡이로 떠들어 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루거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음을, 지금의 이하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어쨌든…… 기브리드 던젼은 여기다 깔아 줄 거지?”
이하는 가슴을 졸였다.
괜히 [전투 모드]를 겪게 해서 루거의 성질만 돋운 건 아닐까?
혹은 [전투 모드]가 돈이 된다는 걸 계산했으므로, 곧 그도 다른 성이나 도시에, 루거 자신이 운영하게 될 만한 도시를 얻은 후 그곳에다 설치하는 건 아닐까.
‘일리 있지. 루거도 아직 퓌비엘 왕궁에서 보상 안 받았잖아. 이번 전투 공신으로 따지자면 루거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확실하게 들 거야. 그 기준으로 보자면―.’
주요 도시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변방의 작은 성 정도는 그 주인을 교체할 가능성도 있다.
‘아니! 설령 국왕이 그런 식의 보상을 주지 않아도…… 루거라면 가능해. 레벨 200 전후의 중레벨 유저들이 천 명, 이천 명이 있어도……. 혼자서 길드전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필드의 전투가 아니라 ‘공성전’의 형태가 된다면, 키드나 이하와 달리 루거는 포砲를 쓰니까.
성벽이 아무리 두터워도 루거의 〈코발트블루 파이톤〉을 몇 발이나 견딜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요격전이나 게릴라전이라면 키드를 당할 자가 없겠지만, ‘건축물’이 걸려 있는 전투에서는 루거를 당할 자가 없다.
‘이 자식, 이럴 때는 머리가 잘 돌던데. 어떻게든 도장을 찍어 놓을 방법이 없으려나.’
루거가 자신에게 화를 낸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 이하였기에 이런 상상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자신의 말이나 행동 그리고 루거를 바라보는 표정 등이 그의 양심을 파헤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그래. 시티 가즈아에 설치하도록 하지.”
“진짜로? 두말하기 없기다?”
“보, 보틀넥을! 크흠, 보틀넥, 그 영감탱이를 위한 거다. 전설의 드워프에 관한 동상도 꼭 세워라.”
“아, 당연하지. 그런 걱정은 말고! 으흐흐, 근데 어쩐 일이래? 이렇게 순순히 해 주는 사람이 아닌데?”
“닥쳐! 다른 곳에 설치할까?”
“아니! 아뇨!”
이하는 보틀넥상 설치 비용까지 모조리 루거에게 전가시켰을 것이다.
입을 뚝, 다문 이하를 보며 루거는 괜스레 민망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너도 멍청한 놈이로군.”
“뭐가?”
“전투 던젼은 나중에 열어 줘도 된다는 뜻이다. 너, 다른 메모리얼 던젼은 다 봤나?”
그러곤 급히 말을 돌렸다.
이하는 루거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어…… 아니? 그거야― 우리가 대충 아는 일 아닌가?”
[전투 모드]가 아닌 일반 메모리얼 던젼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조금 더 자세히 보여 주는 것이다.미들 어스 공식 홈페이지 세계관에 적힌 일들을 세분화하고 각 NPC별 상황을 이해하게끔 만들어 주는 보조 도우미의 역할 정도다.
그러나 이하를 포함하여 루거, 키드 등은 이미 브로우리스의 퀘스트를 겪고 또 마탄의 사수와 관련된 모험을 하며 이미 충분한 정보를 얻지 않았는가.
“크크크…… 그래서 네가 항상 나사 하나가 부족하다는 거다.”
“뭐?”
그건 이하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루거는 이하와는 또 다른 냄새를 맡은 상태였다.
“단순히 스토리 라인만 이해하게 만들 거였다면 이렇게 디테일하게 만들 리가 없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못 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군.”
“……저 안에 무언가를 숨겨 놨을 것이다?”
이하가 다시 한 번 묻자 루거는 이하를 향해 한 발자국 걸었다.
주변의 유저들이 한껏 가까워진 두 사람을 보며 웅성거렸으나 루거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야 했으니까.
“자미엘은 사라졌지. 네 블랙 베스도 봉인됐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일까.”
루거는 이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하는 그의 눈을 보았다. 감탄스러울 정도의 후각. 본능에 따른 감을 잡아내는 건 역시나 비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업적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를 텐데―.’
보틀넥을 기리는 술자리에서 업적이나 향후의 일 따위를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블랙 베스가 봉인되었고, 이 봉인이 영구적인 게 아니라 반드시 풀어낼 수 있는 상황임을 감지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봉인이 해제될 쯤에는 블랙 베스가 자미엘을 모조리 소화시켜 버린 상태겠지. 그렇게 된다면 네가―.”
어떤 의미에서는 이하보다도 한 발짝 앞선 지점에서, 이미 루거는 기다리고 있었다.
“페널티 없는 마탄의 사수…… 아니, 자미엘의 힘을 빌린 ‘마탄’이 아니라, 그것을 완전히 소화해 낸 블랙 베스의 ‘무언가’를 쏠 수 있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키드와 함께.
키드는 루거와 이하의 곁으로 천천히 걸었다. 보틀넥 대장간에서부터 직선으로 오고 있는 그의 방향.
이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키, 키드? 당신 언제― 메모리얼 던젼을―.”
“메모리얼 던젼? 그런 건 알 바 아닙니다. 당신과 블랙 베스에 관한 일이라면 메모리얼 던젼의 체험이 없어도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키드는 ‘역시나’ 하는 답을 주었다.
루거는 메모리얼 던젼을 겪으며 그 안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 느꼈다.
그러나 키드는? 그런 경험조차 필요 없는 사고의 진행만으로도 눈치챈 것!
루거 또한 그럴 줄 알았다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퉤, 빌어먹을 놈.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한 달쯤은 접속 못 할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그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키드는 모자챙을 슬쩍 들어 루거와 눈을 마주치고는 훗, 웃었다.
“비슷한 일을 한 번 겪었는데 또 그럴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쳇, 하여튼 망할 놈이야.”
인사 아닌 인사를 나누는 루거와 키드를 보며 이하는 다시 한 번 감탄하고 있었다.
적어도 미들 어스라는 게임을 공략하는 데 있어서, 이들은 그 어떤 유저보다도 뛰어날 것이다.
특히나 《마탄의 사수》와 관련된 것이라면.
〈업적: 최후이자 최초의 마탄의 사수 (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