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531
마탄의 사수 외전 (180)
샤즈라시안 연방과 크라벤 왕국의 일부 유저들 및 NPC들은 크게 반발했다.
“미니스가 빠진 거 아닙니까! 그런데 고작― 고작 이것으로 끝낸다고요, 카렐린 님? 아직 제대로 활약도 못 한 전차가 400대입니다! 2진의 전차와 합하면 700대가량의 전차로 퓌비엘을―.”
“반탈 씨. 700대가 아니라 2,000대의 전차가 있다 한들― 가능할 것 같습니까. ‘지금 이 날씨’라고 가정한다면요.”
야만 용사라는 직업군에 어울리지 않게 기술력을 증명하고자 했던 반탈 또한 그중 한 사람이었다.
물론 하늘을 가리키는 카렐린의 말 한마디에 그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원래도 추운 지방인 샤즈라시안 연방에서는 자연적인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전역 전체에 하얗게 내려앉고 있는 눈송이와 ‘그’가 결합된다면 어떻게 될까.
전차가 몇 대인 게 무슨 소용인가.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얀 죽음〉은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덮쳐 버릴 텐데.
“아니면…… 그를 막기 위해 ‘알렉산더 이상’의 전투를 할 수 있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하이하를 막기 위한 방편은 있느냐.
사실상 미들 어스 유일의 3차 전직자인 알렉산더조차 실패했다.
심지어 혼자서도 아니었고 〈원시룡〉이라 일컬어지는, 컬러 드래곤들에게조차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메탈 드래곤의 상위 호환 드래곤을 대동하고도 실패했다.
미니스 왕국이 항복했다는 것은 즉, 알렉산더라는 카드를 다시는 쓸 수 없다는 의미다.
“그, 그래도― 카렐린 님께서! 대통령님께서 사용하는 ‘그 기술’이 있으니―.”
“반탈 씨, 이고르가 잡혀간 지 하루가 꼬박 지났습니다. 저는 샤즈라시안의 랭커이자 러시아의 자랑인 그를 믿지만……. 그보다도 퓌비엘의 랭커들이 지닌 두뇌가 더 두렵군요.”
유일하게 알렉산더급의 힘을 낼 수 있는 자가 카렐린 본인이다.
당연히 반탈이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모든 생각 정리를 마쳤다는 의미다.
이고르가 직접적으로 모든 비밀을 발설했을 리는 없다.
애당초 이고르 또한 자신의 힘에 대해 전부 아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약간의 단서만 흘려도― 키드나 신나라 등, 본인들이 당해 본 유저들이라면 [합의] 시스템에 대해 추측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
즉, 하이하는 결코 자신과 싸워 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만약 싸워 준다고 말하면 오히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흠.”
카렐린은 자신의 몸이 약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초면책 특권〉이 자신을 얼마나 지켜 줄 수 있을까.
이미 이번 전쟁에서 사용한 것만으로도 [전후 책임]에 대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터.
‘〈하얀 죽음〉의 공간 안에 갇혀 버리기라도 했다면―.’
샤즈라시안 연방의 웬만한 중소 도시 또는 성 하나에 소속된 인물 모두가 사라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연히 그 피해자들인 유저 또는 NPC의 유가족들은 대통령인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크라벤 왕국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전 함대 뱃머리를 돌린다.”
“서, 선장님! 그래도 퓌비엘의 항구 하나를 제대로 점령한다면― 아니, 그냥 이곳에서 저들의 제해권만 압박해도―.”
“돌린다고 말했네, 일항사. 나는 전하께 전권을 위임 받은 총사령관이라는 걸 잊지 말도록.”
절대적인 영향력의 드레이크 한마디면 충분한 일이었다.
당연히 개별 함선 중에서는 드레이크의 명령에 반발하는 자가 있었으나 그들은 드러내 놓고 반항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갑작스레 돌기 시작한 괴소문도 그들이 입을 닫는 데 영향을 주었다.
“끝까지 남아서 버티다가 하이하한테 찍히면 어쩌려고? 미니스보다 더 큰 책임을 묻게 되면? 주권까지 다 박탈당하고 식민지가 되어서, 아주 그냥 나라 이름이 사라져 봐야 정신 차릴 거요?”
미니스 왕국이 시작한 전쟁에서 미니스 왕국이 발을 빼냈다.
그 항복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뜻은 곧 ‘해당 국가’의 이름으로 새로운 전쟁을 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퓌비엘의 수도에 피해를 입어 눈이 돌아가 버린 하이하가 ‘멸망전’을 내세우며 항복 협상을 받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주권을 퓌비엘에 넘겨주어야 하는 [무조건 항복]을 해야 할 가능성에 더해, 아예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크라벤 왕국이라는 역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쩝……. 그래도 분별력 있는 양반이니 그러진 않겠다만―.”
해당 소문을 퍼뜨린 장본인, 시몬이 입맛을 다셨다.
그 또한 하이하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한 명의 인간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이하는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120% 보여주었다.
그의 등골을 스쳐 지나가는 감정은 두려움이나 공포보다는 일종의 경외감에 가까우리라.
미니스 왕국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황이었다.
“〈하얀 죽음〉을……. 과연…….”
“우햐햐햐햣! 그거야말로 폭력의 결정체야! 인공적으로 구름을 걷어 내는 시약이라도 대량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하이하를 이길 방법 자체가 없다는 뜻이니까! 아니, 설령 그런 걸 만들었어도! 블라우그룬이 곁에 있었다면! 또는 키드가 옆에 있었다면 하늘 높이 던져내는 시약을 모조리 깨부쉈겠지!”
파우스트와 크로울리는 길게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이하가 사용할 수 있는, 사실상 제한이 없어진 〈하얀 죽음〉이 얼마나 넓은 범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저들은 그런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다.
하이하가 강한 것은 인정한다.
그가 마왕 에얼쾨니히를 상대로도 대단한 힘을 보였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미니스의 수도를, 혈혈단신으로 함락시킬 정도로 강한 유저인가?
알렉산더조차 하지 못한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인가?
심지어 강성 유저들은 수도 투네라의 왕궁까지 찾아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심기가 불편한 국왕 등 주요 NPC에게 적발될 경우, 무지막지한 페널티를 받을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은 이하의 힘을 확인하길 원했던 것.
“자, 우선 준비된 영상 몇 개를 쭉 틀어 드릴 테니까…… 이걸 다 보시고도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그때 군사령부로 오십쇼. 우리 부서에 저 말고도 여러분들을 상대해 줄 유저나 NPC분들은 많으니까.”
피로한 얼굴로 그들을 상대하고 있던 건 라르크였다.
에윈의 비밀 회의실에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전쟁에 깊이 관여했던 정보 작전 참모는 이제 전후의 민심 관리까지 담당해야 하는 처지가 된 상태였다.
하이하와 람화연이 사용했던 수준은 아니었으나, 일반적으로 와이튜브의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아이템은 있다.
그것 또한 영웅급 이상의 아이템으로 꽤 희귀한 수준이지만 이미 국왕에게 권한을 받은 라르크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불을 끈 어두운 암실로 수십 명 단위를 입장시켜 그는 영상을 틀어 주었다.
〈하얀 죽음〉의 힘을 최초로 확인했던 티아마트전을 비롯하여, 그것의 발동 메커니즘을 알려 주는 분석 동영상들…….
그 동영상의 끝에 나온 것은 ‘이하와 람화연이 직접 제공’한 영상이었다.
수도 투네라를 완전히 뒤덮을 정도의 막대한 강설량과 함께, 그 모든 곳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하얀 죽음〉을 캐스팅하고 있는 이하의 모습.
블랙 베스의 총구가 투네라를 향해 겨눠질 때, 몇몇 유저들은 그것이 지금 당장의 시점인 것처럼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해야만 했다.
“대위님.”
“아, 예, 라르크 대령님.”
“이분들은 충분히 납득하신 것 같으니까, 내보내시고 계속해서 다음 팀으로 교대해 주세요. 아마 며칠 정도는 걸릴 겁니다.”
“예, 옙!”
해당 영상을 모두 시청한 사람 중 항복의 부당함에 대해 주장하는 자는 없었다.
그런 그들 가운데, 사색이 되어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유저가 있었다.
“나, 나는……. 나는…….”
아직 자신에 대한 아무런 처분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으나 보어만은 알고 있었다.
이제 자신의 미들 어스 생활은 끝이 났음을.
〈국가전〉 7일 차의 저녁이 되어 갈 때, 미니스 왕국의 재무 장관 니콜라스와 외교관 보어만이 지하 감옥으로 연행되었다.
그 즈음, 더 이상 로페 대륙에서는 국기를 내걸고 싸우는 유저는 찾아볼 수 없었다.
* * *
갑자기 찾아온 평화는 유저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심지어 국가전 첫날에 사망했던 유저들은 아직 로그아웃의 시간 페널티조차 끝나지 않았는데 전쟁 자체가 종결지어져 버렸다는 소식을 믿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잃었던 기여도를 회복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허무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전쟁 자체에는 소극적으로 참여했어도, 전쟁이 가져오는 각종 ‘비교질’의 즐거움이 끝나 아쉬워하는 유저도 적지 않았다.
전쟁이 끝났다는 말은 즉, 어떤 유저가 더 강한지, 어느 국가가 더 강한지, 누구에게 어떤 비장의 스킬이 숨겨져 있었는지 앞으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확인할 만한 기회가 없어졌다는 뜻이니까.
짧았던 만큼 아쉽고 동시에 짧았던 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던 두 번째 국가전은, 이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의 가십거리로 당분간 생명력을 이어 갈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전쟁이 끝난 건 아니었다.
비록 서로 총칼을 겨누는 전쟁은 끝났어도 누군가에게는 ‘지금부터’가 진짜 전쟁에 가까울지도 모를 테니까.
[콜 오브 듀티: 핫 워]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승전국: 퓌비엘 왕국] [패전국: 미니스 연합군]―미니스 왕국
―크라벤 왕국
―샤즈라시안 연방
패전국 소속의 모든 유저들은 승전국 소속 모든 NPC에 대하여 친밀도가 30% 감소됩니다.
승전국의 승리 보상은 전후戰後 협상이 종료된 후, 최종적인 기여도의 확정 수치에 따라 결정됩니다.
각국 유저 중 전후 협상과 관련된 인원이 기준에 따라 선별됩니다.
―소속 국가 공적치 및 대륙 공통 명성
―소속 국가 내 관직의 위치(국방/예산/행정 등)
―전쟁 당시의 기여도 상위 유저
―주요 전황의 증언 및 목격담 서술 가능 유저(비대면, 서면 진술 가능)
위의 사항은 모든 유저에게 보이는 시스템 공지 사항이었다.
패전국 소속 대다수의 유저는 퓌비엘 NPC에 대한 친밀도 저하 외에 신경 쓸 일은 없었다.
설령 퓌비엘 소속이라 해도 기여도가 최종 결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
그러나 주요 유저들에게는 달랐다.
“흐음…… 이런 식이구만.”
이하는 자신에게 뜬 퀘스트 창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총성 없는 전쟁: 승자]설명: “퓌비엘은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적의 야욕에 휘말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국민들이 도대체 얼마인가. 파괴당한 그들의 보금자리는 또 얼마인가. 짐은 이번 혼란을 초래한 미니스 왕국은 물론, 그들의 꼬임에 넘어갈 정도로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국가들에게 반드시 그 죗값을 받아 낼 생각이네. 물론 그것은 짐을 대신하여 저들을 상대할, 그대들이 힘을 발휘해 줘야 하는 부분이지.”
피와 비명으로 점철되는 전쟁은 끝났다. 이제는 전쟁의 책임을 물어야 할 때다. 패전국의 협상 인원들을 압박하여 본국에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어 내라.
내용: 최종 전후 협상에 따른 퓌비엘 국가의 이익 극대화
보상: 획득 이익별 보상 인센티브
―아이템, 골드, 작위, 직급, 도시 등
실패 조건: 일정 수준 미만의 이익 획득 시
실패 시: 퓌비엘 왕가에 대한 친밀도 -20%
퓌비엘 소속 모든 NPC에 대한 친밀도 -30%
대륙 공통 명성 -10,000
국가 공적치 –30,000
대륙의 공통된 적에 의해 강제로 〈국가전〉이 종결되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이번 전쟁은 확실하게 승자와 패자가 나뉘어 있으며, 서로 죽고 죽였으니 그것으로 책임을 상쇄하던 과거와 달리, 확실하게 피해를 입은 지역과 도시가 존재한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따위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겠지. 6 · 25 전쟁만 해도 휴전 협상을 시작하고 나서 끝내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으니까.’
엇비슷한 수준에서의 휴전 협상과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하루 이틀 만에 〈총성 없는 전쟁〉 퀘스트를 끝낼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할 말도 많고― 그런 자리가 생기면 당연히 참석하려고 하긴 했었는데 말이지…….”
이하는 퀘스트의 내용 사이에 끼어 있는, 자신의 자격 요건을 보며 웃었다.
해당 자격: 퓌비엘 국가 공적치 1위 유저
퓌비엘 소속 중 대륙 공통 명성 1위 유저
퓌비엘 피점령 도시 성주
현시점 국가전 기여도 1위 유저
주요 작전 지휘 및 수행 유저
―‘라이트닝 랜스’ 저지 작전
―렌스크 피랍 인질 구출 작전
―수도 아엘스톡 테러 방어전
―미니스 수도 투네라 함락 작전
“뭐가 이렇게 많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것인지.
얼마나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인지.
이하는 기지개를 켜며 로그아웃을 준비했다. 당장 회의가 잡히지도 않았으니 어차피 당분간은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로그인했을 때 말이야.’
이하는 다짐했다.
[총성 없는 전쟁: 패자] 퀘스트를 부여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끔 만들 것임을.이하가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시점에도, 이미 [패자]로서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얼굴은 똥색이 되어 있었다.
알렉산더도 그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