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538
마탄의 사수 외전 (187)
이하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췄다.
인스턴스 던전에 입장하는 도중 보였던 [시작 지점 무작위 지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시작하자마자 적들에게 둘러싸일 수도 있다는 거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주변 탐색, 이하는 〈마나 투시〉부터 사용하여 혹 엄폐한 몬스터나 적은 없는지 샅샅이 확인한 후에야 이하는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생명체가 아니라 그저 주변 환경으로써 [절망의 미래]를 본 첫 감상은 흥분이었다.
“거의 갈색에 가까운 하늘에, 약간의 빛이라……. 미들 어스 내에서의 시간선과도 다른 것 같은데―.”
교황청 광장에 있을 때만 해도 달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둡긴 해도 분명 낮일 것이다. 매연과 같은 구름대가 하늘에 퍼져 있고 그로 인해 햇빛이 분산되는 상태가 아닐까.
“―어쨌든 깨끗하지 않은 곳이라는 건 확실하군. 대기 질 하나만큼은 절망적이긴 하네.”
아직까지는 별다른 무서움이나 두려움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권장 레벨이 높다지만 당장 클리어해야 할 압박도 없는 데다, 특별한 퀘스트 실패 페널티도 없다. 그렇다면 굳이 조바심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크툴루 관련이라면 나도 이것저것 많지. 〈흔들리지 않는 마음〉 버프가 적용되니까 초월적 존재에 대한 저항력은 100% 내성이고. 정신이 흔들려서 죽을 이유는 없다 이거야.’
권장 레벨 440짜리 인스턴스 던전에서는 어떤 몬스터가 나올까.
조심스레 이동 방향을 정하려던 이하는 그제야 생각난 듯 퀘스트 창을 열었다.
이곳은 인스턴스 던전이며, 모든 인스턴스 던전은 반드시 클리어 퀘스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인스턴스 던전: 절망의 미래]설명: 모든 절망이 자라난 시대, 신神과 마魔가 모두 사라져 버린 이 시대에 과거의 유물은 없습니다. 현재에 사는 자들은 과거 아흘로와 에얼쾨니히로부터 비롯된 문명을 찾지도 않으며 굳이 찾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선 ‘위대한 옛 존재’와 함께하는 지금이 최상의 상태이니까요.
여러분들은 과연 이 대륙을, 정해져 있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희망하고 희망하고 또 희망하세요.
그러나 당신의 희망이 끝끝내 이루어질 수 없을 때, 당신이 바랐던 희망 그 이상의 절망이 찾아온다는 건 잊지 마시길…….
내용: ?
보상: ?
실패 조건: 입장 인원 전원 사망 시
기한 초과 시
실패 시: 절망 누적
“……엥?”
그러나 터무니없는 퀘스트 내용을 보며 이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퀘스트의 내용조차 없는 퀘스트가 있다?
목표를 주지 않고 오직 제한 시간만을 주는 인스턴스 던전에서 뭘 하라는 거지?
‘으음, 클리어 방법― 그 힌트부터 찾는 게 퀘스트란 말인가? 그럼 15일의 제한은 너무 짧은―…… 아니다. 그게 아니구나.’
출입 횟수에 제한이 없다.
사망 페널티도 없다.
시작 지점이 다르긴 하지만 퀘스트의 근본적인 방향이 변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 그냥 무한 트라이가 가능하다는 건데…… 심지어 나 말고 인던에 들어간 사람도 많으니까―.’
서로서로 단서를 주고받을 수만 있으면 클리어 방법을 알아내고 그 방법에 대한 공략법까지 찾아내는 것도 그저 시간문제인 게 아닌가?
‘권장 레벨 440이라면서? 아! 혹시 그런 방법을 알아도 몬스터가 무지막지하게 강해서 뭐, 클리어할 수가 없다거나 그런 건가.’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수없이 많은 공격 패턴과 변화무쌍한 페이즈들을 전부 꿰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에게만 통하는 특정 아이템이나 스킬만으로 공격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류의 레이드 식 인스턴스 던전도 이미 미들 어스 세상에는 많이 있지 않은가.
단지 그것의 난이도가 지금까지보다 더 올라간 정도라고 본다면,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흐음, 그다음은 이건데……. 죽는다고 해서 사망 페널티가 주어지진 않지만 퀘스트의 실패에 따른 실패 페널티는 주어진다는 거지.’
[절망 누적].뜬금없는 단어였으나 이 또한 인스턴스 던전에 입장하며 보았던 문구 중 하나였다.
[누적 절망: 0.000001%]‘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서, 아마 신경 쓰지 않았다면 0이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었을 거야.’
터무니없이 낮은 축적률에 비웃음까지 나올 것 같았던 누적 절망이 있었다.
처음 인스턴스 던전에 접속하는 자신에게 그러한 누적 절망이 보였다는 것도 분명한 단서였다.
‘베르나르 씨가 들어갔던 거― 아마 그거겠지? 그렇다면 이 누적 절망이라는 것은 해당 인던을 사용하는 모두의 수치가 더해지는 것일 테고…….’
그게 100%가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이하는 그런 생각을 하다 말고 피식 웃어 버렸다.
“그거야말로 절망적인 미래네. 그런 식으로 해서 도대체 언제 100%를 채울 수 있다고.”
이하는 블랙 베스를 조심스레 들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교황의 갑작스런 소집이나 베르나르의 소란에 비해서는 썩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려는 찰나.
“……응?”
이하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검고 뿌연 연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그 연기는 한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다. 뒤에 기다란 꼬리를 달고.
이하는 그게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뭐, 뭐야? 이거― 엥? 뭐야? 왜 미들 어스에―.”
따라서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뿌──뿌우우우───────!
“―기차가― 증기기관차가 있는 거야?”
매연을 내뿜으며 철로를 달리는 건 분명한 증기 기관차였으니까.
* * *
[묭! 묭묭!]“응, 조심히. 천천히 접근하자.”
이하는 젤라퐁을 활용하여 숲속을 내달리고 있었다.
다행히 자신이 빠져나가려던 숲은 기차의 철로를 따라 길게 뻗어 있었으므로 몸을 숨긴 채 기차를 쫓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아. 지금의 젤라퐁이라면 문제없이 쫓을 수 있다. 문제라면―.’
숲과 철로의 각도. 최초 증기기관차와의 거리는 약 1.6km였고 현재는 600m 거리까지 가까워진 상태였다.
이러한 형태라면 곧 숲을 통해 쫓는 게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조금 더 가까워진 상태에서 확실히 확인하거나 또는 증기기관차에 올라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했던 이하였으나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역시 확인은 해 봐야겠지.”
저 기차가 정말 자신이 아는 기차가 맞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운전은 누가 하고 있으며, 탑승자는 누구인가.
또한 철로는 어디서부터 뻗어 나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선 그중 첫 번째 답을 찾아야 했다.
“젤라퐁,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독수리의 눈〉.”
이하는 스킬을 사용한 채 증기기관차의 창문을 줌-인 하여 살폈다.
햇살의 방향 때문인지 대부분의 창문에는 커튼이 쳐 있는 상태였다.
그것이 오히려 이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19세기에 있을 것 같은 증기기관차에, 햇빛을 피해 커튼까지 내리는 건 그냥……’
인간 아닌가?
분명 이교도인이라고 했고 크툴루의 영향을 받은 세계관이라는 설명까지 나와 있거늘 이렇게나 인간다운 모습들을 보일 수가 있는 것일까?
‘이 정도면 그냥 근대의 지구라고 봐도 되는 거 아냐? 게다가 증기기관이 있을 정도의 세계관이면―.’
이곳의 도시는 어떻지? 생활양식은?
증기 기관이 발달한 지 얼마나 지났을지 몰라도, 거의 현대에 가까워진 근대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볼트 액션 총기도 ‘구식’ 취급을 받을 때가 아닌가?
‘으하핫! 진짜 맥심 기관총 같은 기본형 자동화기들도 충분히 나왔을 것 같은데! 그거랑 키드가 [속사] 대결하면 누가―. 음?’
검과 마법의 세계에서 삽시간에 느끼게 된 근대의 향수에 이하는 자기도 모르게 장밋빛 상상을 즐겼다.
때마침 걷어진 커튼 사이로 보인, ‘그것’의 형상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상은 조금 더 지속되었으리라.
히죽거리던 이하의 입꼬리는 단숨에 내려갔다.
“과연…… 그렇긴 그렇다는 거군. 젤라퐁, 멈춰 줘.”
그리 길지 않았지만 확실했다. 기본적인 형태는 분명 인간과 같았다.
그러나 턱 부분으로 추정되는 곳에 무성히 자란 촉수를 비롯하여, 커튼을 조작하는 손마저도 개수를 셀 수 없는 촉수로 이루어져 있는 생명체라면, 인간이라고 볼 수는 없으리라.
‘르뤼에를 파괴할 때 봤던 것들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고등 생명체로 취급해야 한다.
당시의 몬스터들만 해도 신나라의 페이크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전투적인 면에서는 발달해 있었다.
‘그 정도는 일종의 방어 본능― 전투 본능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말 수 있지. 지금과는 달라.’
완벽하게 쌓아 올린 기술이 있다.
신과 마가 사라졌다, 라는 인스턴스 던전의 설명이 맞는다면 이곳에서 〈신성력〉이나 〈마법〉을 사용하는 자는 없다고도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신도 마도 없는 세계에서, 오직 과학의 발전으로 나아가는 거라면―.”
이하는 이제 숲의 끄트머리에 다다라 있었다.
기차가 거리를 벌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냥 현실이잖아?”
그 기차가 향하는 방면에는, 이하의 〈독수리의 눈〉에도 포착된 도시가 보이고 있었다.
도시의 전체적인 형태나 불쑥불쑥 솟아난 높은 건물들 그리고 곳곳에서부터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매연 따위는 익숙지 않았으나 한 가지만은 익숙했다.
증기기관차가 들어간 도시의 입구, 그 위에 써 있는 팻말에 적힌 이름.
[아엘스톡]‘과거’ 퓌비엘의 수도였던 도시는 이제 크툴루화 되어 버린 괴수들의 도시 중 한 군데가 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변해 버린 현실이네. 이래서야― 음!?”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이하의 눈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정확히는, 이하가 누군가의 눈에 포착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생물 발견. 이생물 발견.] [처리하라.]“어? 어어!? 어떻게?”
아엘스톡의 관문에서 검은 점들이 쏟아진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그것들은 이하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제, 젤라퐁! 튀자!”
[묘오오오옹―!]* * *
[쫓아라.] [알 수 없는 보조 장치의 활용.] [수분으로 되어 있으나 그 이상의 분석은 불가.]“빌어먹을, 〈다탄두탄〉!”
푸화아아아────────ㄱ!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하는 곧장 몸을 돌려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떨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도망치기 시작한 지 7분이 다 되어 가도록, 이하 자신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느낌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의지의 탄환〉이나 〈시간을 꿰뚫는 명중〉은 사용하지 않았다지만―.’
사실상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필살기가 아니라, 꾸준히 사용할 수 있는 전투 기술로 저들을 상대할 수는 없다는 뜻인가?
일반적인 탄환은 물론, 〈커브 샷〉, 〈다탄두탄〉, 〈저수지의 개들〉 등 적들의 시선을 빼앗으며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한 스킬들은 이미 모두 통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근처에는 불씨가 없어 〈붉은 버섯〉조차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이하는 다음 스킬을 사용했다.
“〈낯익은 두려움〉!”
스스스스스……!
이하의 걱정과 달리 언캐니는 이하의 몸에서부터 자연스레 빠져나와 주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향정신성 작용 괴생명체.] [무시한다.]이미 크툴루에게 정신을 지배당하고 조종당하는 그들이 공포의 정령에게 겁을 먹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들은 언캐니를 뚫어 버리듯 움직였고 잠시 숨을 돌리려던 이하는 다시금 젤라퐁을 재촉해야 했다.
‘젠장, 그래도 쫓아오는 놈들의 수가 줄어서 다행인가? 열 마리가 넘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일곱 마리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들의 속도가 젤라퐁의 이동보다 빠르다. 일반적인 도망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그들의 전투력으로 비추어 보아, 〈녹아드는 숨결〉도 100%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생물의 기술 분석 필요.] [처리 명령에서 생포 명령으로 변환.] [현재의 우리와는 다른 체계의 기술.] [이생물의 정체 분석…….]이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1회 차 도전에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우선 자신의 스킬 중 무엇이 통하는지만 알고 나가면 충분하다.
죽음을 각오한 상태로 이하는 그들 중 하나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의지의 탄화―.”
그리고 그 시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생물은 스폰Spawn이 아니다. 스폰Spawn으로 재탄생한 게 아니다.]투콰아아아────────……!
총성으로도 덮을 수 없는 단어.
다른 유저들은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하라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
“스폰……?”
이하 자신이 해결해 주었기에 더욱 잊을 수 없는 단어가 그들의 입에서 나왔다.
빠밤―!
들려오는 업적 팡파르 소리만으로도, 그 단어가 그들의 정체를 밝혀 줄 단서로써 작용한다는 게 분명해진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