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554
마탄의 사수 외전 (203)
키드는 카운터 안쪽으로 자리를 안내하려다 문득, 매장 안에 있는 손님을 발견하곤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하와 람화연도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있다면 카운터 내부로 들어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들어온 손님을 내쫓을 수도 없는 법.
람화연과 이하는 잠깐 지나치는 게 전부지만, 키드에게 있어선 그가 주요 고객층이 될 수도 있다.
람화연은 물론 이하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더 말을 하진 않았다.
“우선 여기 앉으면 될 겁니다.”
키드도 결국 카운터 앞에 놓인 의자들을 향해 턱을 까딱거렸다.
이하와 람화연이 엉거주춤 엉덩이를 대기 무섭게 그는 몸을 돌렸다.
“마실 건 커피밖에 없으니 먹든 말든 가져오겠습니다.”
그러곤 직원들만 출입이 가능해 보이는 카운터 뒤 공간의 문을 열고 휙, 사라져 버렸다.
람화연은 그런 키드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게임 안에서랑 별반 차이도 없네? 실제로 만나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무언가를 기대했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람화연을 보며 이하는 웃었다.
람화연은 아직 느끼지 못했겠지만 이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다른 거야.”
“응? 다르다고? 똑같은데?”
“아냐, 달라. 지금 키드 저 인간…… 부끄러워하는 거라고.”
평소처럼 쿨하고 시크한 척하지만 뭔가가 다르다.
이하가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던 건 키드의 눈빛 때문이었다.
‘미들 어스 안에서도 눈을 마주친 적은 별로 없지만―.’
그것은 모자에 의해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키드는 모자를 쓰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미들 어스 안에서에 비하면 다소 짧은 머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리거나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하는 볼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둘 곳 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결국 키드는 민망함에 자리를 피하고자 마실 것을 준비하러 들어간 게 아닌가.
“푸흐흐, 저런 모습도 있네…… 캬, 이런 걸 루거가 같이 봤어야 했는데. 아쉽다, 아쉬워. 사진이라도 찍어서 어디 올리면 루거가 볼 수 있을라나?”
이하는 낄낄거리며 슬쩍 스마트폰도 꺼냈다.
반쯤은 장난스러운 태도였으나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이하를 보며 람화연은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보다도 키드에 대해 더 잘 아는구나? 관심도 많고. 나랑은 사진 한 장 안 찍었으면서.”
“응?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황급히 그녀를 달래 주려던 이하였으나 정작 람화연은 이하가 걱정하는 감정에 휘둘려 말한 게 아니었다.
“아니, 서운하다는 게 아니야. 보기 좋아.”
오히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남자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는 감정에 가까우리라.
끼이익…….
“크흠, 뭘 그렇게들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잠시 후, 커피 잔 세 개를 들고 온 키드가 카운터 반대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 세 개는 모두 모양과 크기가 달랐다.
이하는 그것마저도 어쩐지 우스운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은근 깔끔한 태도가 있어서 이런 것도 전부 ‘깔 맞춤’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냥 사는구나?”
“무슨― 내가 그렇게 보였단 말입니까. 애당초 ‘슬리핑’이라는 별명이 왜 붙었었는지 모르는 겁니까.”
할 때는 하지만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무던하고 게으르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하 또한 그러한 뜻을 모르는 게 아니었으나, 미들 어스 안에서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어쩔 수 없었다.
“아니, 깔끔하다기보다는 하여튼……. 좀 세련된 미국 총잡이…… 옷도 말이야! 미들 어스 안에서처럼! 뭐, 가죽조끼 같은 것도 입고, 부츠도 신고, 뒤에 무슨 톱니바퀴도 달려 있고 그럴 줄 알았거든. 근데 셔츠에 청바지― 거기다 컨버스 운동화는 뭔가 어색하달까?”
이하는 일일이 키드의 옷차림을 가리키며 지적했으나 당하는 키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커피만 들이켤 뿐이었다.
누가 누구의 옷차림을 지적하는가.
“……불과 얼마 전까지 곰 가죽으로 만든 망토 따위를 걸치고 다녔으며 지금은 ‘젤라퐁’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할 말입니까.”
미들 어스 안에서 전투를 치르는 이하의 모습과, 거의 세미 수트 차림에 가깝도록 차려입고 미국에 도착한 이하의 모습이야말로 키드가 보기에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건만.
“그, 그건― 아니, 내 옷은 누가 봐도 게임 아이템이잖아! 뭔가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부츠 뒤에 붙이는 건 ‘박차’라는 겁니다. 말을 타지 않는 요즘은 멋으로 달기에 귀찮기만 할 겁니다. 아무래도 하이하 당신의 머릿속엔 텍사스가 ‘골드 러쉬’ 시대의 서부로만 인식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키드의 한마디에 람화연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키드는 그녀의 시원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람화연의 얼굴을 한 번 그리고 이하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여하튼…… 현실에서 정말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곤 미소 지었다.
처음 만나는 거지만 처음 만나는 것 같지 않은 편안함.
골머리를 싸매야 하는 문제 없이, 이렇게 시원하게 웃고 장난칠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키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람화연도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키드 씨.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네요.”
“당신은 현실에서의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립니다.”
“힛, 오빠도 그런 칭찬은 잘 안 해 줬는데. 역시 마음에 든다니까.”
“자, 잠깐, 화연아. 마음―.”
“그러니까! 우선 이것부터 한번 읽어 볼래요?”
당황하는 이하를 제쳐 두고, 람화연은 가방에서 문서철을 꺼내어 키드에게 건넸다.
키드는 문서 표지에 적힌 문구만 보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챘으나, 굳이 그녀에게 다시금 물었다.
“이게 뭡니까.”
“읽어 보세요. 어쨌든 주소를 알려 줬다는 건 오빠뿐만이 아니라 날 만날 의향도 있었다는 거고, 그러면 뭐, 아쉬울 거 없는 제안일 테니까. 리쿠르팅 관련 문건이에요.”
람화연은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녀가 키드와 관련되어 했던 발언은 모두 진심이었고, 이하와 키드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작은 ‘서프라이즈’보다 더욱 중요했던 건 그를 람롱 그룹의 ‘신사업 개발 본부’로 스카우트하고자 함이었다.
본격적으로 미들 어스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이하와 키드가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 게 뻔했으므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선공’을 나선 셈.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그러나 키드는 서류를 읽지도 않고 그대로 카운터 한구석으로 스윽, 밀어냈다.
람화연은 그 정도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당장 답하라는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읽고 답변 주면 돼요. 어차피 여기서는…… 크흠, 민망한 얘기지만 그렇게 바쁠 것 같지도 않으니까.”
총포상 내부에는 여전히 한 명의 손님뿐, 람화연이 은근슬쩍 그 점을 지적하자 이하는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아참! 그러고 보니까 총포상 이야기는 들었는데 주인인 줄은 몰랐네? 저 센스 없는 간판 하며…… 키드 당신이 주인인 거지?”
“그렇습니다. 직원으로 일하다 위치가 마음에 들어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센스라면…… 하이하 당신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습니다.”
“아 왜!”
“〈정령탄〉의 스킬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 그래도! From Kidd not kid보단 낫지!”
“그게 바로 라임Rhyme이라는 고급 언어유희입니다. 무엇보다 여기는…….”
이하와 티격태격 장난을 치던 키드는 훗, 웃으며 매장 내부를 바라보았다.
멀리 시선을 두는 그를 따라 이하와 람화연의 눈도 함께 움직였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었지. 곡예 총사를 그만둔 것도 그 즈음이었고.’
낡은 매장인만큼 어떤 추억이 담긴 곳일까.
어쩌면 키드가 아버지와 가장 먼저 찾아왔던 건-샵은 아닐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르지. 이런 파리나 날리는 매장을 굳이 자신이 인수한 것도…… 어렸을 적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일지 몰라.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장사가 잘 되느냐, 따위는 어차피 중요한 게 아니겠군.’
키드의 우수 어린 눈빛에 이하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키드는 후우우우, 하는 긴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곳, 총포상의 직원으로 일하다 인수한 이유는 간단했다.
“손님도 적당히 드물어 미들 어스를 즐기기에는 최적입니다.”
“응?”
“엥?”
오히려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여유가 생기니까.
이하와 람화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크흠! 미들 어스만으로도 충분한 수입은 되지만― 당연히 현실의 기반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키드는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으나 그것은 변명으로 듣기에도 어림없는 말이었다.
이하도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겨우 입을 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그치만― 이런 파리나 날리는 가게를 ‘기반’이라보기에는…….”
하루에 매상이 1건이나 일어날지도 의문이지 않은가.
이 정도면 기반이 아니라 그저 취미 생활 수준이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취미 생활보다 더 구려! 이미 미들 어스라는 수입원 겸 취미가 있는데― 오히려 이건 본업인 미들 어스를 방해만 하는 거 아닌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는 이하처럼 람화연도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힘을 줘 잡아 두고 있었다.
“이 총포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준 서류 꼭, 잘 읽어 봐요. 이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을 하실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당분간은 미들 어스 내에서 활동하는 것이고, 키드 당신이 굳이 〈화홍〉 길드로 가입하진 않아도 돼요.”
현실의 기반을 원한다면 람롱 그룹으로 끌어들이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설령 미들 어스가 망해서 사라진다 해도 키드의 비판적인 사고관과 시각은 얻기 어려운 게 아닌가.
‘전공이 무엇인진 모르지만 아마 어느 자리에서도 금세 일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를 영입할 가치는 충분하다.
물론 이하와 람화연이 어느 정도 진심으로 말을 건네고 있어도, 두 사람 다 웃음을 참고 있었기 때문에 키드에게는 그저 놀리는 것으로밖에 와닿지 않는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두 사람 다 시끄럽습니다. 나는 여기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이래 봬도 목이 좋은 자리라―.”
“푸하하하핫―!”
갑작스레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키드와 이하, 람화연은 아니었다. 세 사람의 고개는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는 건 이 매장 안에 유일한 손님이었다.
“푸흐흐…… 낄낄낄.”
하얀색의 긴 가운을 입고 꽁지머리를 꽉 묶은 금발의 남성이 웃고 있었다.
총포상에서 보이는 이상 행동은 결코 함부로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이하는 람화연의 앞으로 스윽, 나서 그녀를 가려 주었다.
키드 또한 이상을 느끼자마자 카운터 아래에 숨겨 두었던 리볼버까지 집어 든 상태였다.
“……무슨…… 일입니까.”
키드는 여전히 번역기를 켜 둔 채 말했다.
금발의 남성은 키드의 말을 들으면서도 웃기만 했다. 총을 쥔 키드의 손이 서서히 카운터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발생한 긴장 상황에 이하의 표정도 굳었다.
아무리 총기 소유가 자유인 국가라지만 이렇게 곧장 총격전이 발생할 정도로 위험한 곳인가?
하물며 총포상의 주인이라면 당연히 호신용 총기를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할 텐데, 이곳에서 함부로 위험해 보이는 짓을 할 수 있을까?
“천천히…… 손을 드십시오.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거나 빠르게 움직일 경우, 제가 당신을 향해 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텍사스 주법에 의거하여 알리는―.”
“멍청한 짓이야. 진짜, 하나같이…… 하나같이 똑같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군.”
“―음?”
마침내 금발의 포니테일 남성이 입을 열었다.
두꺼운 목소리는 다소 공격적인 언행을 쏟아 내었으나, 정작 동작 자체는 느릿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고는 그대로 뒤를 돌기 시작했다.
하얀 가운, 금발 포니테일 헤어와 어울리지 않는 다부진 체격과 각진 얼굴.
안경알 너머로도 보이는 푸른 눈동자가 번뜩였을 때, 이하와 키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람화연마저도 누군가가 떠올라 조심스레 입을 열었을 때.
“설마…… 당신은…….”
금발의 남성이 말했다.
“미들 어스 안에서나 밖에서나 이렇게 한결같을 줄은 몰랐는데……. 키드. 그리고 하이하와 람화연.”
거기까지 말이 나온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키드와 이하는 당황했으나 그들의 입꼬리는 이미 자연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스르륵, 올라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루거…….”
“루거!?”
일찌감치 키드의 총포상 안으로 들어와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던, 삼총사의 마지막 한 사람.
“근데 머리가 왜 그 꼴―.”
“닥쳣!”
[관통]의 루거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