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48
마탄의 사수 (48)
“그니까 팔아라?”
“응! 우리 길마 형 라인 타면 우리나라 특급 랭커 소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슬쩍 운을 한 번 띄어 볼까?”
별초 길드의 길드 마스터 혜인이 한국 랭킹 8위라고 했다. 그 정도 고레벨이 되면 상위 랭커들끼리 이름과 얼굴은 충분히 아는 사이일 가능성이 있다.
즉, 기정의 제안은 도시락을 팔 경우, 최대한의 값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안전한 방법인 셈.
“내가 최대한 비싸게 받아 줄게. 형 이거 하나만 잘 팔면…….”
“응, 나도 알지. 알아.”
다른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수수료를 노리고 헛소리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겠지만 이하는 기정의 따뜻한 마음을 알고 있기에 아무런 의심도 들지 않았다.
‘기정이의 말 대로야. 이거 하나만 잘 팔면…….’
치료비에 보탬이 되는 건 물론, 생활비로 따져도 엄청나다.
기정은 이하와 이하의 어머니를 위해 이런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았어. 일단 고민 좀 해 보고.”
그러나 이하는 그렇게 쉽게 결정 내리고 싶지 않았다.
목표물이 눈에 보인다고 바로 방아쇠를 당기는 건 저격수가 할 짓이 아니다.
“뭘 고민을 해! 으휴, 답답한 엉아야.”
“킥킥, 생각 좀 하자, 생각 좀. 아,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이 일은 비밀이다? 너네 길드 사람들한테도 말하지 마.”
“에헤이― 엉아! 나 대학생이야. 경영학과! 그 정도 눈치도 없을 줄 알아?”
눈치와 경영학이 무슨 상관인지. 이하는 제 일처럼 방방 뛰는 기정을 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오, 하이하 씨 아니십니까.”
누군가 말을 걸어온 것은 그때였다.
* * *
“음?”
이하와 기정은 뒤를 돌았다. 기정을 부르는 것도 아니고 이하를? 돌아본 곳에 있는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번쩍이는 갑옷. 이제 보니 기정이 입은 풀―플레이트 아머보다 훨씬 하얀빛의 느낌이다.
“세…… 세이크리드 기사단!”
기정은 긴장했다.
세이크리드 기사단이 뭘 하는 사람들인지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수도 방위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 흔치도 않을뿐더러,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뻔하다.
중범죄자의 색출, 검거나, 퓌비엘 왕국 위험 요인에 대한 감찰!
그들의 주된 업무가 그것이니까.
긴장한 기정과는 달리 이하는 태연하게 머릴 긁적였다.
“아, 그, 성함이…… 서신동 가드…… 였나요?”
“아는 사람이야, 형? 서신동? 유저야? 뭐지? 유저 중에 세이크리드 기사단이 있었나?”
기정이 황급히 물었다.
그래, 이 서신동 가드라는 사람이 아는 체를 했던 건 이하니까.
그리고 서신동이라는 단어가 뭔지도 모르는 세이크리드 기사단의 두 명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네?”
“푸우웁.”
신더가드 옆에 서 있던 디그롬이 웃었다. 서(Sir)의 칭호를 어떻게 이해했길래 저런 식으로 부를 수 있는 걸까. 역시 이방인들은 이상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서신동 가드, 서 신더가드는 큼, 큼 목을 가다듬었다.
“서 신더가드입니다.”
“아, 서, 서 신더가드 님. 네.”
NPC이름이 뭐 이렇게 어려워?
이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대체 뭔 짓이야, 엉아! 이 상황에 개그 한 거야? 기정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그저 지나다가 이하 님이 계시기에 인사 드린 것뿐입니다.”
그럴 리가. 이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신더가드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눈치챈 이하는 재빨리 말을 꺼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 녀석에 대한 염려라면 안 하셔도 됩니다. 남부 숲에 풀어 주고 왔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러니 수도에 들어오셨겠죠. 협조에 감사 드립니다. 그러나 정말 인사를 드리기 위해 말을 붙인 것뿐입니다.”
신더가드는 이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빙긋 웃었다.
진짜 인사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이하는 신더가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을 마주치던 신더가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기정에게 눈을 돌렸다.
“옆에 계신 분은 별초 길드원이시군요.”
“네? 네. 별초의 마스터케이라고 합니다.”
“별초라면 서부 국경의 산맥에서 몬스터들의 습격 행위를 막기 위해 분투 중이라는 소식을 종종 들었습니다. 퓌비엘 왕국의 이름으로 감사 드립니다.”
신더가드가 부드럽게 말을 마치자 기정의 표정이 다소 펴졌다. 사실 분투고 뭐고 그냥 레벨 업을 위해 사냥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럼. 하이하 씨, 그리고 마스터케이 씨. 다음에 또 뵙도록 하지요. 가실까요, 서 디그롬.”
신더가드는 이하와 기정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우와……. 세이크리드 기사단이 말 건 거 처음이야.”
걸어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기정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응? 처음이라고?”
“응! 얼마 전에 명성 150 넘겼는데 그것 때문인가? 아니지, 우리 길드를 알아봐 준 거…… 엥? 아니, 그것도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저 사람, 형한테 말을 건 거잖아! 뭐야, 무슨 일이야?”
“새끼 곰 얘기 했잖아. 그거 데리고 들어올 수 없다고. 그래서 어제 하루 다녀온 거라니까.”
“아, 아. 그 저지했다는 사람들이 세이크리드 기사단이었어? 야박하네. 새끼 정도는 키울 수도 있지.”
귀찮아서 이야기를 너무 건너뛰었나.
이하가 말한 ‘새끼 곰’이 일반 몬스터 곰보다 적어도 50% 이상 더 큰 크기라는 걸 알았다면 오히려 기정이 길길이 날뛰었을지도 모르겠다. 제정신이냐면서 말이다.
“근데 너 명성이 150이야?”
“응. 명성 올리려면 사냥 졸라 해야 해. 거의 씨를 말리듯이 하니까 조금 오르더라. 하여튼 이놈의 게임은 뭐 쉬운 게 하나 없―”
“그래? 나 지금 80인데.”
“…어?”
응? 기정이 얼어붙었다.
“어떻게?”
“그…… 몰라. 무슨 퀘스트 깼을 때 줬는데.”
처음 30은 캔들 캐슬의 명예 치안대원이 되면서 받은 것. 블랙 앵거 관련 히든 퀘스트를 모조리 깨고 치안대와 친밀도 100%를 달성해서 받았던 거다.
두 번째 50은 세이크리드 기사단에게 명예의 약속을 받으며 오른 것.
즉, 이하는 몬스터를 사냥해서 받는 방식으로는 명성을 올린 적이 없다.
“말도 안 돼! 명성 퀘스트는 기본 렙제가 200부터일 텐데? 나도 아직 못했어! 용병 길드나 어디 은행 길드 같은 퀘라도 한 거야?”
“그니까 명성 퀘스트…… 가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하려나.”
“헐! 형 미들 어스 처음 하는 거 맞아? 남모르는 공략 루트 같은 거 알아?”
“그럴 리가 있겠냐.”
이하는 머리만 벅벅 긁었다. 확실히 보통의 게임 플레이와는 너무 다른 길을 걸어오긴 했지. 그래서 기정을 이해시키기가 더 힘들다.
설명을 하자니 한도 끝도 없이 풀어내야 하니까.
그리고 애초에 세이크리드 기사단이 말을 건 것은 명성이 아니라 새끼 곰과 관련된 사건, 그리고 이하의 국가 공적치 때문이었다.
“허…… 황당하네. 아예 황당하니까 오히려 이해가 되기도 한다. 참 나…… 특이하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형이 앞으로 또 뭘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하지 마. 난 빨리 커서 돈이 벌고 싶을 뿐이야.”
“맞아, 맞아. 그렇댔지. 여기서부턴 빨리 클 수 있을 거야. 오히려 캔들 캐슬보다 나을걸.”
“여기?”
걸음을 걷던 기정이 딱 멈춰 선다.
“쨘. 여기.”
두 팔을 뻗어 가리키는 곳. 브라운 베스 머스킷 아카데미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대륙 최고의 머스킷티어가 있다는…… 곳이 참…….”
“허름하지?”
“엄청.”
기대했던 외관은 아니었다.
“2골드 정도면 괜찮겠지?”
“오, 좋아. 고맙다, 기정아.”
화약과 탄을 도매가에 구입할 수 있게 된 지금, 기정이 이하에게 주는 2골드는 엄청난 돈이나 다름없다.
현실의 돈으로 생각해도 대충 한화 20만 원의 가치니, 상당한 금액. 이하는 이종사촌이 너무 고마웠다.
“이거면 급한 불은 다 끌 테니까. 괜히 그 옷이나 신발, 모자 다른 사람한테 팔지 말고. 형이 충분히 쓰다가 팔아. 그리고 고마워할 건 없어. 나중에 갚으면 되지.”
“당연하지. 얼른 열렙해서 너 제낀 다음에 갚아 주마.”
“쓰읍, 엉아! 그런 말씀을 하덜 마쇼. 아, 그리고 조심해. 그 불곰 아이템…… 형이 잘 잡은 건 맞는데, 그래도 그때 공대원들이 알면 뒷말이 좀 있을 거야.”
“뒷말?”
“응, 말만 하면 괜찮은데, 귀찮게 할 가능성도 있어.”
따지고 보면 이하의 잘못은 없다.
공대가 완전히 와해된 이후에 공격을 시작한 것뿐이니까. 애초에 공대 파티에 가입한 것도 아니었으니, 나눠 줄 의무 또한 없고.
그러나 사람의 심리는 그런 게 아니다.
“별일이야 있으려고.”
“알아서 잘 하겠지만 뭔 일 있으면 귓말 해. 급하면 바로 튀어 올게.”
“고맙다.”
“고맙긴. 형이 잘 되어야 나도 좋지. 흐흐, 퀘스트 완료하고 다시 사냥하러 가야겠다.”
“퀘스트?”
“응. 엉아 보러 온 것도 있지만 나도 수도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온 거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부터가 바로 고수가 되는 비결일 것. 기정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한 지점을 가리켰다.
커다란 교회. 아니, 신전? 높은 벽으로 담장이 쳐져 있는 웅장한 종교식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뭔데? 교회?”
“큭큭, 비슷해. ‘아흘로’의 신전. 백마법 쓰는 직업군은 저쪽에서 스킬 배우고 퀘스트 받거든.”
“말하자면, 저게 너의 아카데미라는 거지?”
“응.”
이하는 다시 한 번 브라운 베스 머스킷 아카데미를 보았다.
저쪽에 있는 건물에 비하면 이건 창고 수준도 못 되는 규모다. 나무 명패가 얼마나 오래되었으면 ‘브라운 베스’ 라는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니.
“차이가 엄청나구만.”
“원래 직업 훈련소는 유저 수에 비례한다고 하더라고. 머스킷티어가 얼마 없으니 큰 건물도 필요가 없겠지. 유저가 많아지면 건물 확장도 하고 뭐 그렇다는데.”
“하아……. 뭔가 이럴 때 이 직업으로 선택된 게 너무 싫어.”
건물 규모 같은 걸로 천대받는 기분을 느껴야 하다니.
‘부모의 집이 아파트냐, 빌라냐’라고 물으며 차별하는 꼬맹이들과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구플의 의도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다소 잔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하다.
“에헤이. 우리는 팔라딘, 템플러, 프리스트, 시스터, 몽크 같은 직업들이 다 같이 쓰는 곳인데. 형처럼 단일직업군 원거리 딜러랑 비교하면 안 되지.”
“그래…… 아는데,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여하튼 고마웠어. 잘 가고 다음에 또 연락하자.”
“킥킥. 하여튼 고생해, 형!”
펑―! 소리와 함께 땅에서 흙먼지가 솟구쳤다.
동시에 기정이 탄환이 쏘아지듯 튕겨 나가며 순식간에 멀어졌다.
“헐…….”
이하는 템플러의 질주 스킬에 엄청나게 놀랐다. 그동안 이하와 걸음을 맞추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자……. 그러면.”
이하는 가방 안에 꼬깃꼬깃 접어 두었던 소개장을 꺼내어 들었다.
[브라운 베스 머스킷 아카데미.]미우나 고우나 앞으로 이하가 끼고 뒹굴어야 할 곳이라면, 처음부터 안 좋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가 볼까.”
이제 진짜 머스킷티어로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