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623
마탄의 사수 (623)
처음의 오한 비슷한 가벼운 떨림은 망상이 점점 커짐에 따라 이하의 몸 전체의 진동으로 확산된 상태였다.
총구 너머에 있는 토온의 얼굴, 눈동자조차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공룡의 얼굴이 이하를 완벽히 지배하고 있는 셈이었다.
‘쏠 수 있어. 쏴야 해…….’
“하이하 님!”
“아! 브, 블라우그룬 씨.”
정신없이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갇혀 가는 이하를 깨운 것은 블라우그룬이었다.
최전방 전선에 있던 그가 빠져, 대형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하는 유저들이 비명을 질러 댔으나, 블라우그룬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침착하세요. 괜찮아요.”
이곳에서 유일하게 이하의 상태를 알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블라우그룬은 조막만 한 손을 이하의 손등 위에 얹었다.
“실패하면 뭐 어때요. 정 아니면 제가 드래곤으로 변해 버리는 수도 있잖아요. 말씀만 하세요. 토온을 지금 당장이라도 찢어 버리겠습니다.”
귀여운 목소리로 찢네, 마네 하는 말을 듣자 이하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 한 번의 릴랙스가 이하의 몸에 있던 떨림을 멎게 했다.
“풉, 무슨 가정교육 잘못 받은 꼬맹이 같은 소리예요? 그런 얘기하다 걸리면 바하무트 아저씨한테 혼나지.”
“아저씨?”
“로, 로드! 크흠. 어쨌든 고마워요. 덕분에―”
후우우우우…….
이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탄창 결합, 장전, 조준. 모든 것은 완벽히 이루어져 있다.
사격까지 남은 단계는 하나뿐.
“―쏠 자신이 생겼어. 시발, 어차피 게임인데 뭐.”
하아아아아…….
이하는 검지를 당겼다.
[성력 충전: 88.33%]투콰아아아아아아────────────!!
고작 백여 미터를 날아가기 위한 초속 830m의 탄환.
대상은 그것을 인지하기 전, 이미 그것이 대상을 완전히 헤집으며 관통한 이후여야 했다.
이하가 방아쇠를 조금만 더 빨리 당겼어도 말이다.
카아아아아앙…………!
들려오는 것은 날카로운 파쇄음이었다.
토온의 이마 앞에 어느새 뭉쳐 있던 바윗덩어리들이 고운 입자로 부서져 사라졌다.
“무슨―”
이하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마왕군 측 유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던 것!
“잘했어, 프레아! 그리고 나를 날려!”
치요는 토온의 목 뒤에서 뛰어 올랐다.
남은 시간 1분 10초.
그녀의 등 뒤에 실프들이 붙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줄이는 치요를 보며 유저들은 잠시 당황했다.
토온에만 집중하고 있던 유저들이 타깃을 치요로 바꾸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치요는 유저들의 생각이 흔들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 이런―”
이하도 황급히 총구를 돌렸다.
치요라면 쏠 수 있다. 토온과는 다르다!
그러나 실프까지 붙어 〈신의 지팡이〉까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활강하는 치요를 맞추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하이하 님, 제가 막겠습니다!”
블라우그룬이 황급히 캐스팅에 들어가 마법을 시전하려 했으나 시간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단 한 사람!
처음부터 주변 몬스터나 토온 따위가 아니라 치요에게 집중하고 있던 유저의 비장의 한 수가 실현되었다.
슈와아아아아아──────ㅅ!
“끄아아앗!? 뭐, 뭐야, 이건!”
공중에 날아가던 치요의 몸이 덜컹이며 멈췄다. 날아가던 그녀의 발목을 누군가가 낚아챘다.
“키키킷. 놀랐지?”
“비예미? 네놈이 어떻게…… 아니, 이건 무슨―”
치요는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공격 형태였다.
비예미의 몸은 여전히 지상에 붙어 있었다. 그가 공중에 있는 치요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목’만 늘어났기 때문!
“뱀들한테 산성독액만 받아 온 건 아니거든. 키킷, 네년이라면 반드시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다…… 다 왔는데!”
신의 지팡이의 나뭇결까지 볼 수 있는 거리, 불과 20여 m를 앞둔 채, 치요는 잿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한숨 돌릴 시간도 없었다.
“끄아아아, 다들 뭐 하는 거야!? 거기 집중할 때가 아니라고! 이제 다 틀렸어어어!”
검을 들어 올린 기정의 팔이 땅으로 떨어졌다.
완전히 시야가 어두워진 기정은 토온의 공격이 어디서부터 다가오는지 알아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잘했다, 치요 그리고 정령사! 마무리는 내가 하겠다!]토온은 에너지를 완전히 잃었던 팔을 다시금 치켜들고 기정을 향해 내리쳤다.
“안 돼에에에에───────!”
보배가 시위를 당겨도 공룡의 팔을 멈출 순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공룡의 팔을 멈출 수 있는 건 하나뿐!
투콰아아아아아─────────!!
이하의 총성이 울렸다.
보배의 절규를 뒤덮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으나, 귀가 좋은 유저 몇몇은 들었다.
총성이 울리기 직전, 아주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을.
“〈아이스 에이지: 마나 풀 챠징〉”
* * *
“얼음?”
“아이스 에이지! 람화정이다!”
채찍처럼 큰 호를 그리며 휘둘러지던 토온의 팔이 그대로 얼어붙는 것을 보며 유저들이 환호했다.
“뭐,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람화정 씨가 여기 왜?”
정작 피해 당사자가 될 뻔한 기정은 시야가 어두워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나, 보배의 기쁜 목소리와 람화정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빙결 마법사!? 이런 수준의…….]토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단순히 손이나 팔뚝 정도가 아니라, 어깨까지 몽땅 얼려 버릴 정도의 강대한 마법!
한쪽 팔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애들 장난일 뿐이다.]그럼에도 토온은 여유가 있었다.
람화정이 자신의 모든 마나를 쏟아부어 얼린 것은, 고작 팔 한쪽.
그것도 기정이 〈새크리파이스〉를 써 가며 온 힘을 빼 놓은 상태의 팔 한쪽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토온에겐 다른 팔이 남아 있었으며, 그 외에도 몸통 박치기라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한 수가 남아 있었다.
“람화정 씨, 고맙다는 인사는 나중에 할게요!”
“늦어서 미안. 오빠. 빨리.”
신의 지팡이에서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이하가 귓속말을 날렸던 사람은 자청이었다.
친구 창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도우미를 불러야 했던 이하는 자청에게 람화정을 빨리 불러 달라는 요청을 해 놨던 것.
정확한 상황 파악은 할 수 없었지만 자청이 이하의 부탁을 거부할 리 없었다.
하물며 이하가 부른다고 한다면 람화정은 쇼핑을 하다가도 즉각 달려올 테니까.
[성력 충전: 93.33%]“하이하 님의 공격은요?! 방금 쏘신 건―”
“빗나갔어요. 블라우그룬 씨, 잠시만 쉿.”
이하는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음을 알고 있었다.
머리를 노렸다. 미간 한가운데를 노렸다.
그러나 발포하는 순간, 이하 자신도 모르게 총구를 일부 비끼며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단순한 실수와는 다른 공포에 지배당하는 자의 자연스런 회피 행동이었다.
‘우선 치명적인 피해 한 방이면 돼. 쏴야 한다, 남은 시간은 대략 40초!’
그것만 버티면 끝난다!
이하는 다시금 토온을 노렸다. 그러나 이번엔 총구의 방향이 조금 달랐다.
미간을 노리며 쏠 때 자신의 몸이 여전히 말을 듣지 않고 있었지만 저 얼어붙은 팔이라면 어떨까.
[재미있었다, 이름 없는 팔라딘.]토온은 남은 한쪽의 팔을 다시금 치켜들었다.
기다란 저 팔이 호를 그리는 순간, 기정의 육체는 산산조각 나며 흩뿌려질 것이다.
“세이크리드 기사단! 마스터케이를 보호합니다!”
“꺼져! 꺼지라고 이 공룡 새끼야!”
신나라가 황급히 세이크리드 기사단을 이끌고 달렸다.
보배 또한 악다구니를 쓰며 시위를 당겨 봤지만 얼어붙은 토온의 팔에 몇 발이 꽂혔을 뿐, 스킬이 아닌 일반 공격으로 푸른 수염의 제2 심복에게 치명상을 입힐 순 없었다.
“합동 배리어 실시!”
신나라는 검을 휘두르며 허공에 다이아몬드를 그렸다. 그 마름모꼴에 맞추어 세이크리드 기사단의 주문이 흘러들어 갔다.
“키, 키킷, 분명 국왕을 보호할 때 쓰는 마법이라곤 하지만 저 정도의 기사단 수로는…… 하다못해 열 명만 있었어도.”
세이크리드 기사단의 인원 상당수가 뭉쳐 있다면 모를까, 주변의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합을 맞추지 못한 인원이 대다수였다.
신나라의 지시에 따른 세이크리드 기사단 인원의 수는 고작 넷. 신나라 포함 다섯의 인원으로 토온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
언젠가 알렉산더와 이지원, 페이우 등의 탑 랭커들이 전부 다 뛰어들어서 가까스로 막아 냈던 공격이었다.
비예미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죽어라.]토온은 팔을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이하의 귀에도 들려올 정도였다.
얼어붙은 팔을 노리는 이하는 여전히 검지를 떨며 온 힘을 다하고 있었지만 방아쇠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기정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고 생각한 순간, 비예미와 같은 추측을 한 유저는 또 한 명 있었다.
“그렇게는 안 돼!”
슈와아아앗!
진작부터 좌표를 설정하고 있었던 공간 마법의 달인.
세이지 혜인은 신나라와 기정의 바로 옆으로 공간을 이동하자마자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매스 텔레포트〉!”
팟!
후우우우우우웅────────!
“꺄아아앗!”
풍압이 일으키는 먼지만으로도 보배의 몸이 3m쯤 밀려 날아갈 정도였으나, 기적적으로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다.
“하아…… 하아……. 혜인 씨?”
“후우, 무력자를 보호하겠다는 기사단의 자세만큼은 인정하지만 지금 신나라 씨와 세이크리드 기사단이 무너지면 희망도 무너집니다. 그 점에 유의해 주시길.”
혜인은 신나라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고는 곧장 달려 나갔다.
한순간에 ‘무력자’ 취급을 받은 기정은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두리번거렸다.
“기정 씨!”
“보배 씨, 포, 포션 있어요?”
“포션도 안 갖고 왔단 말이에요?”
“아니, 다 마셨지…….”
기정을 와락 끌어안으려던 보배는 기정의 엉뚱한 소리에 맥이 빠졌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럴 순 없었다.
자신의 공격이 실패한 토온은 한층 더 분노해서 달려들기 시작했으니까.
[벌레 같은 녀석들이 이렇게나 귀찮게 구는구나! 네놈들을―]“그렇군. 아무도 없어야 하는 거였어.”
발광하는 토온을 보며 이하는 어쩐지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껏 자신이 느꼈던 공포의 정체를 어렴풋이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씹어 삼켜도 시원치 않을―]방금 전까지 부들부들 떨리던 손가락이 마침내 움직였다.
투콰아아아아─────────!!
[가하악!]달리려던 토온이 휘청거렸다.
가뜩이나 얼어붙어서 무게가 늘어난 팔에 비정상적인 충격량을 가한다면? 제아무리 44m 체고의 공룡이라도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하이하……!]쿵, 쿵― 쿵───!
토온은 마침내 최후의 돌격을 실시했다.
더 이상 휘두르기를 비롯한 자잘한 공격을 할 여유는 그에게도 없었다.
[성력 충전: 97.6%]“어, 어떻게 좀 해 보십시오, 하이하 님! 앞으로 14초만― 14초만 더 버티면 됩니다!”
주교 NPC는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팔라딘의 부축을 받으며 이하를 독촉했다.
─────!
이하의 총성이 다시 한 번 울렸다.
다가오던 토온은 역시 휘청거렸으나 중심을 완전히 잃진 않았다.
토온의 체구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휘청거린다 해도, 설사 얼어붙은 한쪽 팔이 완전히 깨져서 떨어져 나간다 해도 100여 m의 거리를 좁히기에 14초는 서너 번 왕복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이하 님! 허가를!”
블라우그룬이 이하를 향해 외쳤다.
드래곤으로 변하면 몸통 박치기로 막을 수 있다.
토온과 함께 몇 초만 나뒹굴어 줘도 이것을 막기엔 충분하다!
이하는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걸 숨길 때가 아니었다.
이하는 블라우그룬의 영향력과 토온의 돌격에 대한 계산을 마친 다음 소리쳤다.
“젠장, 젠장! 알겠습니다! 블라우그룬 씨, 드래곤으로 변―”
“우랏─ 하──! 재미있는 건 여기에 다 있었구만!”
“―응!?”
“뭐, 뭐야?”
순간, 이하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레아가 쳐 놓은 돌벽이 여전히 치솟은 상태였으나, 그 위로 누군가가 엉금엉금 기어 올라와 뛰어내리며 소리친 것!
이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겨 토온의 팔을 가격했다.
─────! 얼음 팔 전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온과 떨어진 몇몇 유저들은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찬란한 7색의 잔상이었다.
“무…… 〈무지개의 기사〉! 라르크다!”
라르크가 달릴 때마다 흔들리는 검의 잔상이 일곱 빛깔로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토온을 눈앞에 두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나도 한번 붙어 보고 싶었다고, 공룡! 개멋지잖아! 티라노 싸우르쓰?”
[어리석은 인간이―]신의 지팡이를 눈앞에 둔 토온은 남은 팔 하나를 휘둘러 라르크를 쳐 내려 했다.
토온의 공격 패턴을 겪어 보지 못했다 해도 기형적인 팔 길이와 그의 동작을 보면 공격 자체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형태다.
“라, 라르크 씨!”
그럼에도 라르크는 물러서지 않았다.
자연재해와 같은 토온의 공격을 향해 그 또한 전심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