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637
마탄의 사수 (637)
“……붉은 염소 팔레오들은 어떻게 됐어요?”
“지금 신대륙에 오는 신규 유저들은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이에요. 보는 족족 쏴서 죽여 버리려고 하던데.”
유저 전체에 대한 팔레오들의 친밀도는 계속해서 내려갈 것이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 대 집단의 문제니까.
더 이상 팔레오들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는 신대륙의 플레이.
지금까지 팔레오들의 덕을 많이 봐 왔던 이하에게 있어선 끔찍한 결말이었다.
“결국 〈제압〉 업적을 따기 위해 돌아다니는 기사단을 이곳에 있는 개개인이 막아야만 한다는 건데…… 어떻게 하죠?”
세이크리드 기사단 전원이 돌아다니는 것도 마땅한 방법이 아니다.
별초가 우르르 돌아다니는 것도 녹록지 않다.
모두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무렵, 아! 하는 얼굴로 고개를 든 것은 보배였다.
“내가 잡으면?”
“응? 잡다뇨?”
“팔레오들 부락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팔레오들이 공격할 때, 내가 화살로 얍얍!”
“……보배 씨, 이런 상황에 개그하려고 해도 안 먹혀요.”
“아, 아니! 기정 씨, 들어 봐요. 나름대로 투명 화살 몇 발 정도는 쏠 수 있으니까! 쿨타임 돌 때마다 쏘면 그래도 기사단의 주요 인물들은 암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걸리면 진짜 난리 나는 거예요. 신대륙에서 우리 별초랑 걔들이랑― 근데 기사단이랑 길드전은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재미는 있겠다.”
잔뜩 흥분한 보배가 아이디어를 냈으나 기정은 심드렁하게 받을 뿐이었다.
실제로 리스크가 너무 큰 데다, 리스크에 비하면 소득도 별로 없을 만한 아이디어였다.
즉사를 시키지 못하면 PK 공격 대상자의 이름이 뜬다.
보배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별초는 기사단들에게 온갖 모함과 공격을 받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보배 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케이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은신 스킬도 있으시겠죠? 하지만 공격하는 순간 은신이 풀릴 테니 너무 위험합니다.”
“거, 거봐요, 보배 씨! 나만 이런 생각하는 거 아니라니까! 일단 머리끄덩이부터 놔줘요, 빨리!”
태일이 진지하게 말하자 보배도 더 이상 강력히 주장할 수 없었다.
어느새 달려들어 기정을 괴롭히던 보배는 얌전히 손에 힘을 빼며 물러났다.
모두가 한숨을 쉬는 그 순간, 유일하게 진지한 고민을 하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겠는데?”
“엥? 엉아?”
“이하 씨?”
“맞는 말이야. 다 죽여 버리면 되잖아. 제압 못 하게.”
“자, 잠깐만!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그랬다가 난리 난다니까! 아무리 형이 길드가 없다지만! 온갖 국가 기사단에서 형한테 척살령 떨어지면 어쩌려고! 시티 가즈아에 전쟁 선포해 버리면 형 도시도 개박살 나는 거 몰라?”
이하가 블랙 베스를 들어 올리자 기정이 허겁지겁 망토로 이하를 가렸다.
마치 누가 보기라도 한다는 듯한 태도였으나 이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얼굴이었다.
“하아아……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거겠죠?”
“아직은 생각이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하이하 씨의 약점은 하이하 씨가 더 잘 알―”
“쉿, 쉿. 나머지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기정아! 나 가 봐야 할 것 같다.”
이하는 벌떡 일어났다.
생각이 났으면 한시라도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이게 시간과의 싸움이 될 거라는 건 이하도 잘 알고 있었다.
슈와아아아아……!
이하의 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하와 세이크리드 기사단, 별초 등이 모여 논의를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흑두루미 팔레오가 제압, 붉은 염소 팔레오 또한 또 다른 기사단에 의해 제압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틀어막는다 해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
미니스가 아닌 타 국가의 기사단에도 〈제압〉 업적에 관한 소문은 점차 흘러들어 가는 상태였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모든 기사단들 또한 더 늦기 전에 〈제압〉 업적을 따야만 한다, 라는 욕심이 생기는 순간 〈신의 지팡이〉 보호를 위한 연합은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
이하가 계획을 위해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약 나흘의 시간이 더 걸렸다.
로그아웃을 최소로 줄여 가며 준비했으나, 더 이상의 시간 단축은 불가능했다.
* * *
불행 중 다행이라는 점은 나흘 사이 〈베르튜르 기사단〉의 움직임을 봉할 수 있었다는 것.
라르크도 자신의 예측이 쉽게 맞아 떨어지지 않자 다소 당황한 상태였다.
“퐁, 상황은?”
“〈제압〉 따러 돌아다니고들 있는 모양이던데. 벌써 흑두루미까지 공략 끝낸 기사단이 다섯이 넘어.”
“흐음…… 분명히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닐 텐데.”
라르크는 팔짱을 끼고 멀리 있는 무리를 바라보았다.
세이크리드 기사단과 별초의 인원들 사이 특별한 움직임은 관찰되지 않았다.
“분명히 알고 있을 거야. 신나라 고년 입장에선 우리만 막으면 된다는 거 아닐까?”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신 여사의 말만 종합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지. 팔레오들이 유저에게 혐오감을 갖는 상황, 그 자체를 막으려고 하는 사람이야. 문명 대 문명이 충돌하는 걸 막기 위한 노력이라 볼 수 있으니, 우리뿐 아니라 다른 기사단도 견제할 확률이 1,000%지. 친밀도 벌써 -100% 찍었다며?”
“맞아.”
다행 중 불행은 이하가 준비를 마치는 나흘의 시간이 지날 때쯤, 레드 우드 인근의 팔레오 부락들은 구대륙의 모든 종족에 대한 친밀도 -100%를 달성한 상태라는 것.
새롭게 신대륙에 진입하여 친밀도를 올릴 생각이었던 유저들이 가장 먼저 도달하게 되는 붉은 염소 팔레오의 부락.
그곳에는 신규 유저들의 잿빛 시체가 그득하게 쌓여 가는 중이었다.
잿빛 시체들이 늘어날수록, 미들 어스 커뮤니티 곳곳에선 팔레오들을 향한 의문과 분노 또한 쌓이고 있었다.
언젠가 이하가 가장 걱정했던 일, 문명 대 문명의 충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이나 다름없었다.
“근데도 안 한다…… 뭔가 믿고 있는 구석이 있나?”
“이제 와서? 지들이? 대충 여기 정리되면 다른 팔레오 공략할 생각이나 해 둬, 대장.”
“……근데 내가 백인대장이라곤 하지만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냐, 재무감?”
“백인대장 한 사람한테 수당 주는 게 다른 기사단원 열 명 부리는 것보다 싸니까.”
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베르튜르 기사단〉에서 공략과 정보를 담당하는 것조차 백인대장인 라르크가 전담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정의 동물적 본능이 라르크를 거부하는 것 또한 그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에 기인했다.
“돌아가면 수당 상한선부터 꼭 없애자고 해야지. 망할 단장…… 직책은 백인대장이면서 맡긴 인원은 이백 명이고, 수당은 다섯 명 분밖에 안 주니, 이거 나만 개손해 같아.”
라르크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캠프 안으로 발을 옮겼다.
세이크리드 기사단과 별초의 동향을 살피며 의문이 들었으나 아직 불안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이 방심하는 사이, 마침내 이하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 * *
“진입 10분 전, 마지막 점검이다. 망할 놈들에게 들은 대로만 하면 죽을 일은 없겠지만, 절대 방심하지 말도록.”
사삭―.
풀잎을 헤치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적진의 한가운데까지 와서 ‘알겠습니다!’라고 크게 대답할 정도로 무식한 기사단원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미니스 기사단 중에서도 용맹함만큼은 어디서도 지지 않을 기사단, 과거 국가전 당시 퓌비엘과의 최전선에서 날뛰었던 〈카스티야 기사단〉 소속 유저들과 NPC들은 굳은 얼굴로 전방을 주시했다.
“현재 시각 1840. 1855까지 각 조별 움직임을 끝마치고 1900에 행동 개시. 1930까지 각 조별 작전 위치에서 대기 후, 1933의 신호탄과 함께 일제히 진입이다. 붉은 염소들과 달리 흑두루미들은 공중을 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하라.”
사삭.
다시 한 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스티야 기사단의 신대륙 파견 단장은 유저가 아니라 NPC였으나, 베르튜르 기사단 라르크를 비롯한 미니스 기사단의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성격은 아니었다.
호승심이라면 지지 않는 카스티야 기사단은 실제로 신대륙 파견 기사단 중 가장 많은 인원을 보낼 정도로 자신들의 뛰어남을 자랑하고 싶어 했기 때문.
오히려 〈제압〉 업적 획득에 뒤늦게 참여하여 분통을 터뜨리는 순간이 더 많았을 지경이었다.
“베르튜르 기사단의 제압 시간이 3시간. 칸투스 놈들이 2시간 30분이라고 했다. 카스티야의 목표는?”
전장 접근 시 어떤 대화도 허락지 않는다.
죽을 때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죽어야 하는 카스티야 기사단의 규율은 매 순간마다 소속 인원들을 시험했다.
만약 지금도 ‘그보다 빨리!’라고 답했다면 기사단장의 칼이 날아왔을 것이다.
“1시간 57분 안에 끊는다. 1933의 신호탄과 함께 진입, 2130 종료 예정의 각오로 움직여라.”
기사단장은 회중시계를 꺼내어 확인했다.
미들 어스 시스템에서 직접 제공하는 시간 알람은 없지만 ‘시계’를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정밀한 고가품인 만큼 금액대가 높을 뿐.
물론 어느 기사단이 되었든 기사단장급에겐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었다.
“조별 행동 개시. 무운을 빈다.”
기사단장은 그렇게 말하곤 몸을 돌렸다.
이미 즈마 시티에서 배정되었던 조별 행동은 즉각 실시되었다.
흑두루미 팔레오들의 부락을 거대한 원에서부터 감싸고, 마나 그물을 하늘로 던져 흑두루미들이 고지대로 비상하지 못하게 차단.
그 후, 비행 마법 스크롤을 사용하여 당황한 흑두루미 팔레오들의 날개를 빠르게 꺾어 낸다.
날개를 완전히 자를 경우 죽어 버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것에 특히 주의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카스티야 기사단 소속 유저들에겐 오히려 그것이 힘든 주문이었다.
‘하지만 칸투스 기사단 같은 새끼들도 성공했는데 우리가 못 할 리가 없지.’
‘마나 그물의 투척 포인트와 타이밍을 맞추는 게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
‘흑두루미 영물은 단장님을 포함한 최정예들이 발목을 잡을 테니까 괜찮을 거야.’
땅으로 떨어진 일반 팔레오들과의 난투전이라면 애당초 카스티야 기사단에게 두려울 게 아니었다.
다만 마법에 능통하지 않은 순수 전사 타입의 유저들이 많아 온갖 행위에 고급 물품과 고급 스크롤을 써야 한다는 게 아쉬운 점일 뿐이었다.
같은 조 내에서도 담당 임무가 정해져 있었기에, 그것에 대해 잠시 확인하며 긴장과 흥분을 가다듬기를 잠시. 마침내 예정된 시간이 다가왔다.
18시 55분. 조별 개인 브리핑까지 모두 끝마치다.
19시 00분. 임무 개시. 흑두루미 팔레오 부락의 8방에 위치하기 위한 은, 엄폐 기동 실시.
19시 15분. 4개조 위치 확인. 제자리 대기.
19시 29분. 8개조 위치 확인. 제자리 대기.
“후우…… 후우.”
버프나 스크롤 따위를 뒤늦게 챙기는 멍청이 따위는 없었다.
재를 잔뜩 발라 달빛에 검 면조차 반사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갖춘 카스티야 기사단의 인원들은 마침내 허리를 곧추세웠다.
19시 33분.
마침내 붉은 신호탄이 쏘아졌다.
그들은 돌격이라 외치지도 않았다.
파삭, 파삭, 파삭!
수풀을 헤치며 빠르게 달려가는 카스티야 기사단 8조의 조장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신호탄과 함께 가장 먼저 실시해야 할 일은 마나 그물을 하늘로 던져 비행을 차단하는 것.
그러나 자신의 뒤편에서 마나 그물이 흩뿌려지지 않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그물― 음?”
그렇게 뒤를 돌아본 조장은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 그물을 던져야 할 인원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새끼, 어디 갔어? 빨리 나와, 이 새끼야! 단장님이 아시면―”
털썩.
“어떻게― 뭐야, 무슨 소리야?”
털썩.
“어, 엉?”
조장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멈췄다한들 자신과 함께 달려 나간 또 다른 조원들은 작전을 그대로 진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 달려 나간 기사단원들의 전투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조장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아니, 그게 아니다. 조, 조원들의 닉네임이 잿빛으로’
파티 창을 켜면 이름은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이름의 상당수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로그아웃 또는 사망 처리.
자신의 조에 유저는 여덟, NPC는 스물아홉.
유저들이라면 로그아웃이나 서버 불안정 등의 튕김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NPC들의 이름이 잿빛으로 변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망!’